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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에 진상 현수막을 걸다

중국 대법제자 월명(月明)

【정견망】

1999년 ‘7.20’ 사건 이후, 사악한 당이 거짓말을 퍼뜨리며 전국적으로 파룬궁 박해가 시작되었다. 세인들이 독해 당하자 우리 대법제자들은 대법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북경에 가서 상방(上訪)하기 시작했다. 나는 정의를 위해 여러 차례 북경에 가서 상방했지만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으로 순조롭게 지나갈 수 있었다.

북경에 처음 상방하고 돌아온 후 나는 악당의 ‘블랙 리스트’에 올랐다. 그 이후 구(區)와 진(鎭) ‘610’, 정치법률위원회, 종합 치안 사무실 및 경찰서 등 관계자들이 늘 우리 집에 불법적으로 침입해서 나를 괴롭혔다. 나는 중공이야말로 동서고금을 통털어 세상에서 가장 큰 사악한 조직임을 분명히 보았다. 사악한 당 내부의 중생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묶여 연루되어 있다.

그들이 오기만 하면 나는 늘 그들에게 사실을 드러내며 진상을 알렸고 구치소에서 불법 감금된 기간에 들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옛날 토비(土匪)들은 깊은 산속에 있었지만, 지금 토비는 공안 내부에 있습니다. ‘당(黨)’은 천안문 앞에서 마음대로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며 세인을 박해합니다. 구치소에서 한 아가씨가 시 검찰 검사에게 괴롭힘을 당했지만 오히려 무고죄로 감금당했고 검사는 법망을 멋대로 빠져나갔습니다.”

그러면 관계자들은 말한다.

“이건 우리 권한 밖 일이라 우리가 통제할 수 없어요.”

나는 말했다.

“당신들은 나쁜 사람은 다스리지 않고 전적으로 좋은 사람만 다스리는데 누가 진선인(真善忍)에 반대한다면 그가 바로 바르지 않은 겁니다.”

그들 중 한 명이 말했다.

“그녀는 독해가 너무 심하군.”

내가 말했다.

“나는 파룬궁을 연마해서 많은 혜택을 받았습니다. 연공하기 전에는 온몸에 병이 있었고 아무리 해도 치료할 수 없었지만 연공한 후 다 좋아셨습니다.”

이런 식의 대화가 늘 있었고 매번 한번 왔던 사람은 다시는 오지 않았다.

내가 파룬궁을 수련했기 때문에 아이도 많은 박해를 받았고, 어린 마음이 여러 가지 압력에 의해 파괴되었다. 학교에서 늘 다른 학생들이 “너희 엄마는 파룬궁이지”라고 말하며 차별하는 경우가 많았고, 아들은 너무 화가 나서 그들을 욕했다고 했다. 이런 것들은 나중에 아들이 한 말이고 당시에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파룬궁을 박해하는 기간에 경찰 내부에도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신방국(信訪局)에 가서 상방하자 우리 진(鎭) 경찰서에서 나를 데려다 경찰서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20대의 한 젊은 경찰관이 내게 물을 마시고 싶은지 물어보고 가부좌를 보여달라고 했다. 이 청년은 한번도 대법에 대해 나쁜 말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선량한 사람들은 말후(末後) 대선(大選 큰 선택)에서 반드시 대법의 구도를 받을 것이다.

또 한 번은 진(鎭)정부와 610에서 모두 십여 명이 나와 우리 마을 입구에서 돌아가면서 나를 공격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말했다.

“당신은 너무 미약한데 정부에 대항하다니 정말 걱정됩니다.”

“나는 미약하지만 내가 배우는 법은 큽니다. 나는 ‘진선인(真善忍)’ 세 글자로 좋고 나쁨을 판별합니다.”

그들이 말했다.

“당신은 남에게 이용당하면서도 누가 말을 해도 듣지 않는 정말 바보로군요.”

내가 말했다.

“누가 나를 이용합니까, 누구도 나를 시킨 적이 없습니다. 내가 당신더러 하라고 하면 하겠습니까? 당신은 내가 돈을 준다고 해도 아마 하지 않을 겁니다.”

그들이 말했다.

“돈을 아무리 준다 해도 감히 할 수 없지.”

그들은 내가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고 천안문에 갔기 때문에 자신들이 연루되었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나는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지 않았다면 나도 천안문에 갈 시간이 없었을 것이고 먼저 박해한 것은 바로 당신들입니다.”라고 말했다.

610 요원이 소귀에 경 읽기라고 말하더니 떠났다.

며칠 후 610 요원이 다시 우리 집에 쳐들어왔다. 그들은 들어 오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없고 그냥 이 동영상만 같이 봅시다.”

그들은 침대 위에 가위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는 황급히 가위를 빼앗고는 나를 쳐다봤다. 그들은 중국 공산당이 퍼뜨린 거짓말을 정말로 믿었다. ‘610’이 보여준 영상은 ‘천안문 분신 자살 사기극’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법정건곤(法正乾坤) 사악전멸(邪惡全滅)”을 외웠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매우 득의만만해하더니 나를 보고 말했다.

“이번에는 당신도 무슨 할 말이 없겠지.”

내가 말했다.

“이것은 전부 가짜이고 다 중공이 날조한 겁니다. 우리 대법 책에는 ‘연공인은 살생을 해서는 안 된다.’(《전법륜》), ‘자살은 죄가 있는 것'(《시드니법회 설법》)이라고 했습니다. 당신들이 우리 가족들에게 물어보세요. 한 번은 친구가 남편에게 살아 있는 큰 잉어를 준 적이 있는데 내가 잡을 수 없어서 남편이 잡게 해 화를 낸 적이 있으니까요.”

그러자 그들 중 한 명이 남편에게 물었다.

“그런 일이 있었나요?”

남편이 대답했다.

“네 그들은 살생을 하지 않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반문했다.

“우리 이렇게 많은 수련생들이 북경에 청원하러 가서 진실을 말하고, ‘파룬따파하오’를 실증했으며, 파룬궁 수련을 통해 각종 난치병이 좋아지는 경험을 했는데, 당신들은 왜 이런 것들은 녹화해서 백성들에게 보여주지 않습니까? 당신들이 감히 이런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군중을 선동해 군중과 싸우게 하고’ 파룬궁을 먹칠하려는 중공의 일관된 수법이 아닙니까? 선과 악에는 보응이 따릅니다. 누가 나쁜 짓을 하면 그가 갚아야 합니다.”

그들은 서로 몇 마디 하더니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우리 같이 가서 식사나 합시다.”라고 했다.

밥을 먹으면서 내가 말했다.

“당신들도 고생이 많네요. 전화 한 통에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하니. 제가 선의로 술 한 잔 따라드리겠습니다.”

610 요원이 미소를 지으며 뭔가 말하고 싶어 했다.

내가 말했다.

“하지 말아야 할 이라면 하지 말고 술을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마시기 싫으면 내려놓으세요.”

그는 “마십니다. 마셔요.”라고 했다.

그 당시 사악은 천지를 뒤덮을 듯이 미친 듯이 탄압했고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 며칠에 한 번씩 찾아왔고 심지어 마을 간부를 배치해 밤낮으로 감시하게 했다. 어느 날 아침 내가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자 마을 간부가 내게 말했다.

“당신은 집에서 따뜻한 침대에서 잤지만, 우리는 당신 때문에 보초를 서면서 추위에 떨고 있소.”

나는 듣고 화도 나고 그가 불쌍해서 말했다.

“누가 당신더러 이렇게 하라고 했습니까?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니 내게 이런 누명 씌우지 말아요. 내가 당신더러 오라고 한 적도 없고, 내가 정말 나가고 싶으면 당신이 감시하려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지속적인 박해와 괴롭힘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대법이 있고 사부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거대한 압력이었다. 한번은 남편이 내게 말했다.

“당신이 상방하러 간 후 너무 걱정돼서 제자리에서 담배를 피우며 맴돌다가 너무 심란해졌고 하마터면 정신이 무너질 뻔했어.”

사악의 박해 속에서 남편은 핍박을 받아 친정 오빠에게 내가 집에 돌아오면 이혼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내가 집에 돌아오자 남편은 이혼 얘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나중에 시누이가 내게 알려주었다.

“오빠가 정말 이혼했다면 더는 언니처럼 이렇게 좋은 사람을 찾지 못했을 거예요.”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나갔다. 남편은 지금 사악한 당의 사악함을 잘 알게 되었고, 더 나아가 대법을 배우는 사람들이 가장 좋은 사람임을 알고 있다. 진상을 똑똑히 알게 된 후 그는 명절 때면 대법 사부님께 문안 인사를 보낸다. 한 번은 축사에 “파룬궁이 하루빨리 명예를 회복하고 이 사악한 박해가 하루빨리 종식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썼다.

사악한 당이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을 날조한 후 박해는 더욱 악랄해졌다. 나는 이에 밖에 나가 전봇대나 나무위에 올라가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파룬따파는 정법이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걸었는데 주변에 다 걸었다. 나는 먼 곳까지 가서 현수막을 걸고 싶었다. 이런 생각으로 미리 사둔 빨간색과 노란색 천에 진상 현수막을 만들기 시작했다. 현수막을 다 쓴 다음 날 아침 버스를 타고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마을이 보여 그 방향으로 걸어갔고, 가는 길에 지나가는 사람에게 만리장성까지 가는 방법을 물어봤다. 지나는 행인에게 만리장성 가는 길을 묻자 한 노인이 길을 알려주었다. 그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갔는데 정말 가파르고 한 사람이 겨우 건널 수 있는 좁은 길이었다. 가파른 경사도 있었고 바닥이 다 자갈이었다. 나는 비록 시골 출신이지만 이런 곳에서는 그래도 조심해야지 조심하지 않으면 넘어질 수 있었다. 만리장성 성벽 위에 도착해서 보니 성벽의 기초석은 수백 킬로에 달하는 돌로 만들어져 있었다. 초석 위에는 큰 녹색 벽돌이 있는데 벽돌 하나가 몇십 킬로였다.

만리장성 성벽은 매우 높아서 아무곳에서나 올라갈 수는 없었다. 내가 보니 아래쪽의 성의 문동(門洞)이 보였다. 내가 문동을 지나가니 누군가가 훼손한 작은길이 있었다. 나는 곧 이 길을 따라 올라갔다. 성벽에 올라가 앉아 쉬면서 물을 마셨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니 초록빛 무성한 풀밭 위에 폭이 2미터가 넘는 성벽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어렸을 때 아버지가 자주 들려주셨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버지가 어릴 때 노인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성벽을 수리할 때 돌과 벽돌을 전부 인력으로 날라서, 사람들은 아주 피곤했다고 했다. 어느 날 흰 수염을 기른 노인이 채찍을 휘두르자 돌들이 전부 스스로 언덕 위로 올라갔다고 한다.

아버지는 또 개인적으로 당신이 직접 겪으신 한 가지 일도 들려주셨다. 어느 여름 마을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렸고 산 정상에서 앞뒤로 번개가 치더니 대야보다 큰 불덩이 같은 번개를 보았고 또 산꼭대기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물소리와 함께 용(龍)의 포효 소리도 들었는데 다른 곳은 비가 내렸지만 산 아래는 매우 큰 흙탕물이었다고 했다. 비가 그치고 사람들이 가서 보니 산 정상에 커다란 ‘용 발톱’이 있었다고 한다. 3년 전만 해도 용 발톱이 있던 자리에는 풀조차 자라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나도 좀 쉬었다. 나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각기 다른 내용의 현수막을 걸기 위해 걸어가면서 진상 현수막을 걸기 시작했다. 이 성벽이 얼마나 긴지 알 수 없었고 아무리 봐도, 머리와 꼬리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걸어가면서 현수막을 걸었다.

어느새 성루(城樓) 아래에 도달했다. 이 성루는 아주 높았고 성벽보다 더 컸다. 두 번을 시도해도 올라갈 수 없었다. 사다리로 사용할 무언가를 찾아보았다. 이때 나는 방금 건 현수막들이 바람에 펄럭이는 것을 보았는데 정말 좋았다. 나는 더욱 자신감이 생겨서 다시 발을 디딜만한 것을 찾았는데 손으로 성루 모서리를 잡고 간신히 올라갔다. 속으로 마음을 졸였는데 아주 위험했다. 나도 모르게 고인의 지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날씨는 아주 맑고 화창했고 성루 안은 아주 시원했다. 수시로 사람들이 수다를 떨고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곧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法輪大法好,真善忍好)”, “법정건곤(法正乾坤)”, “사악전멸(邪惡全滅)”, “법도중생(法度眾生)”, “불법무변(佛法無邊)”, “법륜상전(法輪常轉)” 등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성 위를 돌아다니며 빠진 곳이 없도록 현수막을 걸었 다.

산에는 많은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나는 성루에서 나와 20~30미터 간격으로 성벽 위에 현수막을 하나씩 걸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현수막들을 돌아보니 모두 새소리 및 꽃향기와 어울려 성벽 위에서 빛을 내고 있었다. 나는 사부님 《홍음》 〈파룬쓰제〉란 시에서 “천만갈래 찬란한 빛 눈이 부셔라”라는 구절이 떠올랐는데 정말 너무 아름다웠다.

“파룬따파하오”는 이미 전 세계에 널리 퍼졌다. 지금도 이 오랜 장성의 성벽은 우뚝 서서 여전히 우리 강산을 묵묵히 지키고 있다. 높고 긴 장성 성벽은 마치 생명이 주입된 것처럼 보였다. 강산이 다시 밝아올 그날을 기다리는 듯했다.

바로 다음과 같았다.

만리장성 기나긴 옛길에
진상 현수막 만 장의 빛을 뿌리니
조사정법하려는 자비로운 염원에
대법이 이 일방에 은혜를 내리셨네

萬裏長城古道長
真相橫幅萬丈光
助師正法慈悲願
大法恩賜這一方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6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