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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동수 강용(江勇)을 추모하며

【정견망】

상해 파룬궁 수련생 강용(江勇)

최근 강용(江勇)이 감옥에 있을 때 부친에게 쓴 편지를 읽었는데, 이렇게 특수하고 엄혹한 환경에서도 이토록 정기(正氣)가 충만한 편지를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자 그가 얼마나 지혜로운지 보여준다. 지금 이 편지는 강용의 친필 유서(遺書)가 되었다. 편지에서는 속인의 각도에서 간절한 언어로 부친에게 똑똑히 도리를 드러냈다. 행간에 정정당당하고 호연(浩然)한 정기(正氣)를 드러내 보는 이를 숙연하고 경외심을 품게 만든다!

강용이 감옥에서 부친에게 보낸 친필 편지

〖아버님, 잘 지내시죠!

저를 걱정해주시는 아버님의 관심과 애정에 소자는 마음속으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파룬궁 박해로) 가정이 무너지고 사람이 죽거나 집을 떠나 떠도는 특수한 시기입니다. 만약 한 가정이나 한 개인의 고난으로 수많은 사람과 가정을 각성시킬 수 있다면 아들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버님께서 당연히 정의(正義)가 무엇인지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우리 나라 전통문화에서는 많은 영웅적인 사적과 정의로운 정신을 남겨주어, 후손들에게 무엇이 신앙이고, 무엇이 바른 믿음인지 어떻게 해야 정의로운지 알 수 있게 했습니다. 예를 들면 악비(岳飛), 문천상(文天祥), 위징(魏徵) 등에게 인생의 의미란 무엇이었습니까? 그런데 왜 아들이 후손들에게 그들이 학습하는 모범이 되는 것은 허락하지 않으십니까? 아버지로서 마땅히 아들에게 모범이 되어야만 아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관념이 아니라 똑똑히 구별할 수 있는 것이고, 평상시 말만 하고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겉과 속이 다른 것입니다. 때문에 아들이 하는 일은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고, 하늘에 떳떳하고, 땅에 떳떳하며, 진정으로 아버님께 떳떳하고, 가정에 떳떳하며, 벗들에게 떳떳하고, 백성들에게 떳떳합니다. 사람이 되려면 정정당당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정념을 지닌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만이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으며 이런 사람만이 죽은 후에도 영원히 인류에게 진정한 것을 남겨 놓을 수 있고, 영원한 정신(精神)과 정의(正義)를 남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만 진정으로 인류가 자신을 영원히 봉헌할 수 있습니다.

이것과 비교해보면 한 사람이 물욕(物慾)만을 탐한다면 그야말로 자신의 생명을 진정으로 낭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사는 것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람은 언젠가 죽기 마련이고, 인생은 짧습니다. 고인(古人)은 인생이란 “흰 망아지가 틈을 지나가는 것”처럼 아주 짧다고 했습니다. 그 찰나의 삶에서 영원한 진리를 추구할 수 있다면 그것만이 위대한 생명이고 그것만이 가장 밝은 빛입니다. 그가 가져온 빛은 대지를 환히 비출 수 있고, 어두운 밤의 장막을 열 수 있으며, 생명의 진정한 의미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반대로 그 짧은 인생을 단지 개인이 탐진치(貪瞋癡 탐욕 분노 어리석음)를 위해 산다면 그것은 구차한 생명의 불에 불과할 뿐이며, 자신의 사욕(私慾)을 비추는 외에 사회에 공헌할 수 없는 빛일 뿐입니다.

중국이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 우뚝 설 수 있는 위대함은 무엇 때문입니까? 중국의 박대(博大)한 문화, 정신적인 영성(靈性), 전통의 바른 믿음, 정통적인 예의야말로 세계인들이 우리를 우러르는 원인입니다. 그렇다면 민족의 일원로서 그것을 영원히 계승해야만 조상들의 신령(神靈)께 면목이 서고, 중화 민족 선조들에게 면목이 설 수 있습니다. 중국의 발전은 우선 민족정신의 발전이어야 하고, 민족혼의 발전이어야 하는데, 이런 발전만이 응집력이 있고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해서, 조화롭고 안정적으로 위아래가 화목하게 번영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늘 자신이 옳고 틀리지 않다고 여기지만 그가 선택한 것이 옳은지 보려면 길을 바르게 선택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길에서 그가 걸어가야 한다고 여기는 것은 사실 틀리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정확한 길은 늘 “견지(堅持)”를 동반하며, 정확한 길은 끝까지 걸어갈 의지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선택입니다.

아버님, 제 선택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 선택은 정념(正念)의 기초위에 서 있고, 정통적인 도덕과 바른 믿음의 기초위에 수립되어 있으며, 중화 전통문화의 정신 위에 건립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무사(無私 사심이 없음)하고 전심전력을 다해 인민을 위함을 기초로 합니다. 당시 우리 중화 민족이 오랫동안 발양해 온 정통적인 문화정신은 바로 진선인(真善忍) 이며 이는 또한 사람이 되는 근본입니다. 만약 이것이 틀렸다면 그럼 대체 무엇이 옳고 바른 것인지 말씀해 보세요.

아들에게는 단지 부모님께 효를 다할 의무가 있을 뿐만 아니라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칠 직책이 있습니다. 또한 아버님께 책임을 편달하고 부모님께 부족한 점이 있다면 지적해 줄 의무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명령에 항명하는 정의로운 행동이 있습니다. 관리가 되었다면 상부의 명령에 무작정 순종할 것이 아니라 잘못을 간언할 의무가 있습니다.

대당(大唐)의 충신 위징은 태종 이세민의 단점을 지적하지 않았습니까? 일국의 군주조차 옛일을 거울로 삼고, 역사를 거울로 삼고, 사람을 거울로 삼을 수 있었는데 아버님은 왜 아들을 거울로 삼고, 정념(正念)을 거울로 삼아 자신을 돌아보진 않으십니까? 부모님 말씀에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꼭 불효한 것입니까? 설마 장지신(張志新 역주: 문화혁명을 비판하다 중공에 의해 참혹하게 살해당한 인물) 등이 다 불효라고 여기십니까? 설마 친일파 왕정위(汪精衛 역주: 국민당 간부로 장개석에 반대해 일본과 손잡고 친일 괴뢰정권의 수반이 된 인물)가 부모님께 효도를 다했다고 보십니까?

진정한 효(孝)란 정념(正念)과 도덕으로 가늠해야만 진정하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말씀하시는 효에는 사(私 이기심)가 숨겨져 있지 않습니까? 오직 자신만 고려한 것이 아닙니까? 아시다시피 악비의 효는 백세(百世)에 아름다운 명성을 남겼습니다. 악비의 모친은 웅대한 뜻을 품은 아들이 자신을 봉양하고 효도하기 위해 차마 떠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아들을 만류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큰 포부 때문에 언젠가 아들을 잃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대의(大義)를 똑똑히 알고, 나라를 위해 아들을 바치려는 뜻에서 등에 ‘정충보국(精忠報國)’이란 네 글자로 자신의 의사를 밝혔습니다. 악비 모친의 사심 없는 마음이 악비를 위대하게 만들었고, 이것이 바로 중화 민족이 몇천년간 불멸하게 한 것으로 이것이 발로 진정한 정통 도덕입니다.

비록 당시 조정은 어리석은 황제가 간신들의 모함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악비의 항명(抗命) 목숨을 앗아가는 재앙을 초래했지만 악비의 큰 포부와 절개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에 사심이 없고 정정당당했으며, 진정으로 민족을 위하고 진정으로 백성을 위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가장 고상한 목표입니다. 만약 우리 조국에 악비와 같은 그런 가정과 그런 부모님이 더 많다면 중화민족의 부흥이 곧 도래할 것입니다. 이런 사명은 모든 중국인들이 다 지닌 것으로 개인부터 일어나고 자기 가정부터 일어선다면, 저 밝고 아름다운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겁니다.

소자 강용 올림
20XⅩ년 XⅩ월 28일〗

강용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이미 5년이 넘었고, 향년 겨우 51세였다. 이 특별한 시기에 나는 상해 지역의 훌륭한 동수 강용을 회고한다. 그는 법 공부 기초를 착실하게 다졌고,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박해에 맞서 생사를 내려놓았으며, 견정하게 대법을 실증했고, 우주 대법을 수호했으며, 사악을 폭로하며 박해에 반대했고, 전력을 다해 조사정법(助師正法)하고 중생을 구도했으며, 무사(無私)하고 선량하게 동수를 돕는데 최선을 다했다.

정직하면서도 선량하고 단호한 눈빛에 고통을 참아내는 그의 사진은 우리 상해 대법제자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새겨질 것이다! 그의 위덕은 창궁, 우주, 그리고 세간에 영원히 빛날 것이다!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비록 죽었지만 여전히 살아 있다! 그는 끊임없이 우리 대법제자들에게 용맹정진하고 정념정행(正念正行)해서, 조사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하며, 서약을 실현해, 중대하고 신성한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라고 격려하고 있다.

강용이 받은 박해에 대한 간단한 소개

상해 대법제자 강용은 그 이름만큼이나 강인하고 용감했다. 그의 집은 서휘구(徐彙區) 상숙로(常熟路) 163번지 24호에 있었다.

그는 생전에 두 차례에 걸쳐 사악한 당의 판결을 받아 모두 13년을 살았다. 상해 제람교(提籃橋) 감옥에서 파룬따파는 고덕대법(高德大法)으로 나라와 백성들에게 백 가지 이로움만 있을 뿐 한 가지 해로움도 없음을 실증하고, 신앙을 확고히 지켰고, 사악의 요구와 명령 지시에 협조하지 않았다. 반박해(反迫害)를 견지하다 장기간 중점관리 대대에 감금되기도 했고 수많은 야만적으로 잔인한 고문을 당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장기간 잔인한 고문을 당한 강용은 위출혈과 위천공 증상이 나타나 여러 차례 감옥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았다.

교도관들의 가혹한 수단에도 불구하고 강용은 의연히 굴복하지 않았으며 도리어 힘들수록 더 용감하고 견정하게 박해에 반대했다. 감옥 안에서 끊임없이 외부의 관련 기관과 검찰에게 감옥 내 교도관들의 위법 사실을 고발했다. 또 감옥 안에서도 소리 높여 끊임없이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등의 구호를 외쳤고, 단식으로 항의했으며, 연공을 견지했다. 이에 교도관들은 그를 보기만 해도 두려워했고 또 미워했으며 그러면서 탄복했다!

2019년 4월 24일 강용은 다시 한번 서휘구 국보 경찰에 납치되었고 불법으로 집을 수색당해 핸드폰과 노트북 등을 빼앗겼다. 강용은 이날 뇌출혈 증상이 나타나 생명이 위태로웠기 때문에 이튿날 구치소에서 수감을 거부해 병 보석으로 풀려났다. 집에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610 및 경찰관들이 여러 차례 집에 찾아가 소란을 피우고 협박을 가했다. 10월 1일부터 9일까지 여러 사람이 자신을 24시간 감시하면서 미행하자 강용은 심신에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다 11월 19일 갑자기 뇌출혈 증상이 나타났고 혼수상태에 빠졌으며 7일이 지난 11월 26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51세.

그가 박해받은 상세한 정황을 알고 싶으면 명혜망에서 다음 기사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江勇被上海提籃橋監獄六、七根電棍同時電擊》
《被上海提籃橋監獄劫持迫害八年 江勇再次失蹤(圖)》
《兩次被非法判刑 上海江勇控告江澤民》
《遭十三年冤獄折磨 上海法輪功學員江勇被迫害離世》

​[역주: 인용된 명혜망 문장들이 대부분 번역되지 않아 그냥 원제목만 남깁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6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