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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이 불어도, 20년 동안 신념은 변하지 않다

장지

【정견망】

나는 줄곧 인생이 단지 생활의 자질구레한 것에 불과하며, 분주하고 힘든 순환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운명은 나에게 세속을 초월한 믿음, 비바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 굳건함을 목격하게 해 주었다.

깜짝 놀란 순간

​1999년 여름방학에 나는 어머니를 따라 산둥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때 어머니는 이미 파룬궁을 수련한 지 거의 1년이 되었고, 건강이 많이 좋아졌으며, 전체적으로 더욱 온화하고 조용해졌다. 그녀는 늘 말씀하시길 “수련은 진정한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잘 이해하지 못했고, 단지 그녀가 일찍 일어나 연공하고 책을 읽는 습관이 그저 평범한 건강 관리 방법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죄명’이 될 줄은 몰랐다.

장거리 버스로 환승하여 경제 남성구를 지나는 길에 창밖의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객실 안은 시끄러웠고, 승객들은 이야기를 나누거나 조는 사람도 있었고 나는 어머니 옆에 기대어 있었다. 갑자기 차의 속도가 느려지고 방송에서 “승객 여러분, 전방 검문소입니다, 경찰이 올라와 정기 검문을 할 것입니다.”

차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고, 승객들은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하면 주의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가 가볍게 내 손을 잡으셨는데, 나는 그녀의 손끝이 약간 차가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다리 아래에는 여행용 가방이 하나 놓여 있는데, 그 안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옷과 음식, 그리고 몇 권의 이 파룬궁 서적이 들어 있었다. 그 시절에는 종교는 이미 금기가 되었고, 이 몇 권의 책은 그녀를 납치하기에 충분했다.

경찰 몇 명이 차에 올라탔는데 안색이 냉엄하고 손에 경찰봉을 들고 눈빛이 칼처럼 날카로웠다. 그들은 승객의 짐을 하나하나 검사하고, 무엇을 뒤지고 있었다. 공기 중에 긴장된 기운이 가득 차서, 내 심장이 거의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어머니는 내 손을 그녀의 손바닥에 잡으며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속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외워라.”고 하셨다.

경찰이 점점 가까워지자, 나는 숨을 죽이고 그들의 손이 하나하나 소포를 열고 옷을 뒤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신발 밑창도 놓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어머니의 책을 발견하면 우리가 어떤 결과에 직면하게 될지 알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끌려가는 장면을 상상할 수 없었고, 그녀가 겪을 수 있는 고통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들은 마침내 우리 앞에 다가왔다. 경찰 중 한 명이 어머니의 얼굴에 1초 동안 시선을 멈춘 후, 곧바로 손을 뻗어 우리의 상자를 뒤졌다. 나는 어머니가 내 손을 더 꽉 잡고 있는 것을 느꼈고, 심지어 약간 떨리기도 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경찰이 몇 번을 뒤졌지만 책이 있던 옷가지들을 들추지 않고 상징적으로만 검사한 뒤 상자를 한쪽으로 밀어 뒷줄로 향했다는 점이다.

나는 내 눈을 거의 믿을 수 없었지만, 어머니는 그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두 손을 모으고 묵묵히 무언가를 외우고 계셨다. 내가 그녀를 바라볼 때,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은 없었고, 단지 감사함만 있었다. 마치 어떤 신성한 보호와 힘을 어렴풋이 느낀 것 같았다.

비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다

그 이후로 하룻밤 사이에 하늘 땅을 뒤덮듯이 넘쳐나는 텔레비전 방송이 파룬궁을 비방하기 시작했고, 어머니가 매일 연마하고 읽던 책은 이제 ‘사이비 종교’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나는 그녀가 두려움 속에서도 어떻게 버텨내고, 어둠 속에서도 여전히 빛을 믿는지를 직접 보았다. 그녀는 더 이상 예전처럼 공개적으로 연공을 하지 않고, 매일 밤이 깊어 인적이 없을 때 조용히 침대 옆에서 다리를 틀고 앉는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을 지키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그 책들을 보관하고 있다. 그녀는 만약 발견되면, 그 결과는 상상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수없이 권했다:

“엄마, 그만해요. 요즘 조사가 너무 심해요.”

하지만 그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사람 사는 데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 만약 자신마저 부정한다면,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생이별과 사별의 아픔

​2015년 어느 날, 어머니는 평소처럼 시장에 장을 보러 나가셨다. 떠나기 전, 그녀는 나에게 말하셨다.

“돌아와서 네가 가장 좋아하는 가지찜을 만들어 줄게.”

그러나 그 이후로 나는 어머니의 요리를 먹어본 적이 없다.

​그날 밤, 우리는 어머니가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파룬궁의 진상을 이야기하던 중 경찰에 의해 연행되어 구치소에 수감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그녀가 철창 안에서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상상할 수 없었고 마음속은 분노와 무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족들은 그녀의 소식을 알아보려고 여기저기 뛰어다녔지만, 곳곳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어머니는 한 달 동안 어둠 속에 갇혀 있었다. 그녀가 나왔을 때, 전체적으로 수척해졌지만,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확고했다.

“걱정 마, 난 괜찮아.”

나도 안다, 그녀는 분명 고생을 많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한테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그녀는 나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여전히 중복했다: “언젠가는 그들이 알게 될 것이다.”

먼곳의 빛

현재 우리 가족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으며, 비록 생활이 부유하지는 않지만 마음은 자유롭다. 아내는 오래전부터 수련을 시작했는데, 그녀는 자주 여기서 안심하며 법을 배우고 연공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얻기 드문 행복이라고 말한다. 나는 종종 그녀와 아이들을 데리고 현지의 파룬궁 활동에 참가하는데, 수련자들의 얼굴에 나타난 평온함과 확고함을 보고 마음속으로 감회가 새롭다.

나는 아직 정식으로 수련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이 바른 힘에 깊이 감동받았다. 나는 20여 년 전, 그 장거리 버스에서의 놀란 순간을 떠올렸고, 비바람 속에서 여러 번 나아가는 어머니의 뒷모습도 떠올렸다. 세월은 흐르고 세상은 변하지만, 오직 신앙의 빛만이 꺼지지 않는다.

20년의 비바람 속에서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쩌면 어느 날, 나는 가장 순수한 나를 찾기 위해 같은 여정을 떠날지도 모른다. 나는 내 마음이 이미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을 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5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