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작은 감의 배후

대련 대법제자

【정견망】

며칠 전 외출했다가 슈퍼마켓 앞을 지나갔다. 진열된 작은 감이 유난히 맛있어 보여 가격이 얼마인지 묻자 1근(500g)에 6.98위안이라고 했다. 내가 10위안어치만 달라고 했다. 직원이 봉투를 가져다가 아래 쟁반에 담긴 것을 붓더니 윗쟁반에 담긴 것을 봉투에 넣고 일부를 덜어냈다. 분명 10위안치고는 많지 않아 보였지만 이렇게 했다. 또 위와 아래의 양이 달라서 마음이 조금 불편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이렇게 돈을 내고 가져와 보니 봉투에 또 찢어진 곳이 있어서 사람 마음을 건드렸다. 그래서 직원에게 말했다. “안에 금이 가고 깨진 것이 있네요.” 내 말뜻은 대신 좋은 걸로 바꿔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직원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두 번이나 말했지만 그녀는 나를 쳐다보더니 무시했다. 나는 원래 마음이 불편하고 불만족스러웠는데 이런 모습을 보고 그 흠집 있는 감을 버리고 좋은 것을 가져다 봉투에 넣었다.

이때 내 앞에서 누가 줄곧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나도 그의 눈을 보았다. 우리 둘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심장이 쿵쾅거렸고 하늘의 수많은 눈들이 모두 나를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좀 부끄러웠는데 내가 틀렸단 말인가? 나는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섰다. 나는 혼자 생각했다.

“내가 왜 이러지? 이 행동이 과연 나란 말인가? 이 작은 감이 나의 어떤 마음을 움직였을까? 그것은 겨우 0.8위안에 불과하지 않은가?” 나는 마음이 아주 고통스러웠고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오래 수련해 왔고 비교적 정진하는 대법제자로 이기심이나 강세(强勢)는 나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여겨왔다. 나는 오래전에 이익 관계를 내려놓았다. 특히 대법 항목에서는 대법을 위해 모든 것을 감당했고, 다른 사람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줄 수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명리심에 대해 담담하게 여겨왔는데 왜 이 작은 감 하나를 내려놓지 못하는가?’

나는 몹시 당혹스러웠고 또 후회했다! 이 안에 어떤 마음이 숨겨져 있는가? 명예인가? 이익인가? 아니면 원망인가?

집에 돌아와서도 이 문제는 계속 떠올랐고, 생각할수록 자신이 너무 차(差)하고 창피했으며 정말로 대법제자의 이미지에 손상을 주었다고 후회했다. 괴로운 고통 속에서 나는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너는 수련인인가? 만약 그렇다면 마땅히 법(法)에서 도(道)를 깨닫고 진선인(真善忍) 표준에 따라 자신을 엄격히 요구해야 한다.” 나는 마음속 깊이 이 사람 마음을 팠다.

곧 앉아서 가부좌를 했는데, 이때 사존의 법이 머리에 들어왔다.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말하는데, 실제로 속인사회에서, 오늘날에 발생된 일체 일들이 모두 대법제자들의 마음에 의해서 촉성(促成)된 것이다.”(《각지 설법 2》 〈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 법회 설법〉).

또 말씀하셨다.

“수련 중에서 당신들이 부딪힌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모두 좋은 일이다.”(《정진요지 3》 〈시카고 법회〉)

나는 활연히 알게 되었다. 그렇다, 작은 감은 단지 하나의 표현형식에 불과하고 수련만이 관건이다. 비록 작은 일이지만 표현되어 나온 마음은 결코 작지 않다. 제때 그것을 발견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구세력이 틈을 타서 구실을 잡혀 박해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수련 환경이 교란 받고 신체에도 부정확한 상태가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은 모두 사람 마음이 바르지 못해서 초래된 것이다.

나는 이런 표현 형식이 다 좋은 일임을 깊이 안다. 그렇다면 분명히 내 생명 깊은 곳에서 더러운 사람 마음이 건드려진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오늘이 바로 이 마음을 제거할 때가 된 것이다. 사존의 자비하신 점화에 감사드린다. 그렇다면 그것은 대체 어떤 마음일까?

나는 이미 수련한 지 20년이 넘은 노제자(老弟子)로, 사부님을 따라 우여곡절을 겪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왔고, 동수들이 보기에는 비교적 정진하며 어떤 어려움이나 관(關)을 만나도 당당하게 마주할 수 있고 큰 방향을 파악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 마음을 없애는 데는 큰일과 작은 일의 구별이 있다. 이런 표현을 돌이켜보면 나는 자신의 행동이 정말 어리석고 가소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법은 표준이 있는 것이다. 내가 관념(觀念)을 전변하자 즉 정념(正念)이 생겼고, 반영되어 나온 이런 강렬한 사람 마음을 완전히 폭로하고 그것을 해체하고 그것을 소멸해야 한다.

사실 이런 일은 우연히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진정으로 그것을 건드릴 때면 근본적인 것은 아주 깊이 묻혀 있어서 당신이 발견하기 쉽지 않다.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생각해 보니 사실 아주 깊이 감춰진 허영심(虛榮心)이 장난친 것이 아닌가?

그것은 매우 교활하고 은폐되어 있으며, 그것이 당신을 조종한다. 표현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위풍당당하지만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 마음을 감출 수 있다. 예를 들어 원한심, 쟁투심, 과시심, 색심, 체면심, 탐욕심, 두려운 마음, 자아를 실증하려는 마음 등등이다. 이러한 사람 마음은 언제 어디서나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동수를 무시하는 마음, 동수의 집착에 집착하는 것이다. 동수의 단점을 보면 직접 말하기를 꺼리고 동수의 기분이 상할까 두려워 늘 주변만 맴돈다. 좋은 말에는 기꺼이 귀를 기울이지만, 좋지 않은 말은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나가서 진상을 알리다 쇼핑몰에 들어가 예쁜 옷을 보면 자꾸 돌아본다. 완벽을 추구하며 아름다운 생활을 동경하는 마음이 있다. 자신이 상처받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서, 물건을 살 때 먼저 가격을 묻고, 손해를 볼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 등등. 사존의 자비하신 고도(苦度)에 정말 부끄럽다.

정법 수련은 표준이 있고 또한 끝나는 날이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아직도 이렇게 많은 사람 마음을 묻어두고 있으니 정말로 부끄럽고 창피하다. 이렇게 오래 수련했음에도 여전히 이렇게 많은 사람 마음을 고수하고 있다니 정말로 몹시 두렵다. 사존께서 내가 이 층차에서 늘 제고해 올라가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곧 작은 감 하나로, 나의 이렇게 많은 사람마음을 폭로하셨다. 오직 제자가 제고해 표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이렇게 마음을 쓰시고 고심한 배치를 하신 사존께 감사드린다.

수련이란 엄숙하고 아주 엄숙한 것으로 오직 법에서 닦아야 한다. 일에 부딪혀 안으로 찾음은 영원히 우리 수련의 종지(宗旨)다. 예전에 나는 비록 이러한 집착심을 닦아내긴 했지만 단지 표면만 닦았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 그것이 다시 이렇게 강렬하게 나타난 것이다. 나를 더 높은 층차로 한 단계 끌어올려 주신 것은 위대한 사존이시다. 나로 하여금 법에서 끊임없이 제고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해주셨다. 그렇다, 수련은 바로 이렇게 한층 한층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고, 한층 한층 사람 마음을 닦아내고 신념(神念 신의 생각)을 닦아내는 것이다. 수련과정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승화해 올라가는 것이다. 모든 집착심을 다 닦아 없앨 때까지 그렇다.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법정각(正法正覺) 각자의 풍모를 닦아내야 한다.

제자에게 수련 제고할 기회를 주신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오직 정진하고 또 정진하겠습니다! 법을 많이 공부하고 잘해서 사존의 정법 노정을 바짝 따르고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를 하면서 착실하게 자신을 닦을 것이다. 서약을 지키고 사부님을 따라 진정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최근의 얕은 인식이니 이를 제때 써내어 경계로 삼고자 한다.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6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