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중생(重生)
【정견망】
최근에 나는 법공부와 법 암기 및 착실한 수련을 통해, 수련 중에 여전히 세 가지 큰 착각이 있음을 깨달았고, 이를 써내어 동수들과 교류하며 공동 제고하고자 한다.
1. 일하는 것을 수련으로 착각
지금까지도 나는 여전히 일을 하는 문제에서 때로는 수련인의 상태에서 벗어난다. 자비로운 심태로 법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이치를 붙잡고, 구하려는 마음을 품고 대법을 공부한다. 대법 일을 할 때도 여전히 부정(不淨)한 마음으로 하는데, 자신의 원만(圓滿)을 위해, 자신의 목표에 도달하고자 한다. 20여 년간 나는 하루 종일 일하느라 바빴다. 그러나 기점이 옳지 않아, 자신을 수련인의 위치에 놓지 못했고, 당연히 지금까지도 고층차의 법리를 배우지 못했다. 아주 많은 일을 했음에 심성(心性)은 여전히 진정으로 제고하지 못했고, 줄곧 교란이 아주 많았으며, 이리 비틀 저리 비틀거리며 넘어지곤 했다. 정말이지 자비하신 사부님께 아주 많은 걱정을 끼쳐드렸다!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당신이 한 일 자체가 수련은 아니다.”(《2019년 뉴욕법회설법》)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20년 넘게 수련해왔고, 줄곧 자신이 꽤 수련을 잘했다고 여겨왔다. 대법 일을 하는 자체를 수련으로 여겼는데 이는 일 자체가 수련이 아니라는 사부님의 말씀과는 정반대다.
예전에 교류 문장을 쓰든 동수들과 교류를 하든 늘 말한 것은 자신이었다. 즉 내가 자료를 얼마나 많이 배포했고, 진상 스티커를 얼마나 많이 붙였으며, 진상 자료와 진상 화폐를 얼마나 많이 인쇄했는지 및 삼퇴를 몇 명이나 시켰는지 등등. 매번 자신이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서 한 이런 일들을 이야기할 때마다 여전히 늘 희희낙락하면서, 늘 자신이 대법 일을 어떻게 잘했다고 여겼다. 때로는 두려운 마음 때문에 감히 대법 일을 하지 못하는 그런 동수들을 무시하기도 했다.
사실 진정으로 사부님의 법을 잘 배우지 못했고, 무엇이 진정한 수련인지 진정으로 깨닫지 못한 것이다. 일을 수련으로 착각했고, 마음을 주로 일에 두었으며, 일하는 과정에서 사람 마음을 닦아버리는 것을 주로 삼지 않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많은 일을 했음에도 나는 집착심 제거가 여전히 아주 느렸고 당연히 제고 역시 매우 느렸다. 명백히 말하자면 나는 수련할 줄 몰랐고 대법 수련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말세(末世)에 도덕이 저하된 현재 상황에서 닦는 것이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사부님의 설법을 통해 나는 일은 일에 불과할 뿐 대법 수련이 아님을 깨달았다. 우리 중 누구도 속인 중의 역할을 내려놓을 수는 없다. 우리는 속인 중에서 마땅히 그 역할을 잘 연기해야 한다. 즉 마땅히 부모님께 효도하고, 자녀를 가르치고 단속하며, 친구와 이웃 간의 관계를 잘 처리해야 한다. 속인 중에서 우리는 마땅히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며, 속인 일을 잘해야만 한다. 우리가 심지어 자신의 일조차 잘하지 못한다면, 속인 중에서 심지어 좋은 사람이 되지도 못할 텐데, 어떻게 수련인이 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우리는 반드시 자신을 잘 수련하고, 심성을 닦아야지만, 층차를 제고할 수 있고, 반드시 구체적인 사람 마음을 닦는 것부터 시작해 자신을 잘 수련해야만 사부님께서 우리더러 하라고 하신 3가지 일을 잘할 수 있다. 대법 항목 자체는 수련이 아니며 또한 그것은 대법 본래의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구체적인 항목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잘 수련할 수 있고 자신을 제고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자신의 사람 마음의 집착을 닦아버릴 수 있다.
2. 안으로 찾으면서 조건 달기
사부님께서는 “진정한 수련은 곧 마음을 닦아야 하고, 안으로 닦아야 하며, 안에서 찾아야 하는데, 밖에서 찾는 것이 없다.”(《전법륜》)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이해하기에 사부님께서는 우리더러 안으로 찾으라고 하셨지, 그 어떤 부가적인 조건을 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만약 우리가 무조건 안으로 찾음을 해낼 수 없다면 그럼 진정으로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안으로 찾음이 아니다.
그 표현은 다음과 같다. 변칙적인 안으로 찾기인데 겉으로는 안으로 찾는 것 같지만 사실 밖으로 보면서 상대방의 문제를 찾고, 동수의 잘못을 찾는다. 모순에 봉착하면 먼저 자신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더러 안으로 찾으라고 말하고, 원래 자신의 잘못임에도 기어코 상대방의 잘못을 안으로 찾으라고 한다. 대부분의 동수는 오직 문제에 봉착해야만 안으로 찾는데, 안으로 찾는 목적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다. 또 일부 동수들은 매번 정체(整體)적으로 박해받는 일이 나타날 때마다 크고 공허하게 안으로 찾는데, 그러면서 분분히 불평하면서 우리 정체에 어떠어떠한 누락이 있다고 말하는 등등.
개인적으로 보기에 이렇게 안으로 찾는 것은 모두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안으로 찾음이 아니며 모두 조건이 달린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무조건 안으로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모순에 부딪히면 누가 옳고 누가 틀리든, 먼저 자신의 문제를 찾아야 하는데, 이렇게 하는 것만이 수련인의 안으로 찾음이고, 자신을 닦아야만 심성 제고에 도달할 수 있다.
3. 수련인은 일찍 가든 늦게 가든 모두 원만한다는 착각
수련 과정에서 일부 동수들은 줄곧 “수련인은 일찍 가든 늦게 가든 모두 원만”이라고 착오적으로 인식한다. 때문에 자신의 수련에 대해 그리 엄숙하지 않다. 사실 당신이 일찍 가든 늦게 가든 모두 원만이라고 여길 때 사실 원만을 추구하는 하나의 마음이 생긴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는 일찍 가든 늦게 가든 모두 원만이다.”(《2014년 샌프란시스코 법회 설법》)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이해하기에, 이 말씀은 수련인이 일찍 가든 늦게 가든 모두 원만한다는 뜻이 아니다. 일부 동수들은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지 못하는데, 특히 박해 이전에 법을 얻은 노(老)대법제자는 자신이 법을 일찍 얻었다고 여기면서, 엄격하게 자신의 수련을 대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그리 정진하지 않는다. 사람 마음이 아주 많아서 마난에 부딪혀 관(關)을 넘지 못하면, 심지어 “빨리 인간 세상을 떠나자 어쨌든 원만할 수 있다”라고 여긴다. 때문에 최근 몇 년간 일부 이런 동수들이 흐리멍덩하게 세상을 떠났다. 나는 이 부분 동수들이 정말 안타깝다.
수련이란 엄숙한 것으로 특히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사부님 말씀처럼 “정법기간의 제자는 반드시 정법이 결속된 후에야 비로소 떠나갈 수 있다”(《정진요지 2》 〈정법시기 대법제자〉)
만약 세상을 떠난 동수가 세상에 있을 때 그리 정진하지 않고 사부님께서 하라고 하신 세 가지 일을 잘하지 않았다면 그럼에도 여전히 대법제자라 할 수 있는가? 어떻게 원만하겠는가? 그럼 자신이 원만을 구한 것이 아닌가? 대법 수련은 엄숙하고 원만에는 표준이 있는 것이다. 대심판(大審判)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 이에 비춰본다면 우리는 마땅히 자신의 수련에 대해 책임져야 하며 “일찍 가든 늦게 가든 모두 원만”이란 법을 단편적으로 이해하지 말아야 한다. 더욱이 원만을 구하는 마음을 내선 더욱 안 된다.
자신의 견해를 써내니 이는 현 단계에서 개인적으로 법에서 깨달은 것이다. 이를 써내어 폭로하니 법에 없는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64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