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원래 중국은 예의의 나라였고 감사라는 이념은 유교에서 핵심 사상의 하나였다. 때문에 “감사합니다”라는 단어는 사용 빈도가 아주 높다.
속인 중에서도 가족이 식사 준비를 도와주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친구가 선물을 보내도 “감사합니다”라고 하며, 동료가 어려운 문제 해결을 도와주어도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데 늘 이 말을 달고 산다. 그렇다면 왜 감사해야 하는가? 왜냐하면 우리가 남의 서비스를 받았거나, 물질을 얻었거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좋은 것을 얻거나 이익을 봤다면 곧 베풀어 준 사람에게 감사를 표현해야 한다. 이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수련 중에서 다른 사람이 우리를 욕하거나 우리를 괴롭히거나 우리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도 우리는 감사드려야 한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우리는 초상(超常)적인 혜택을 얻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려면 사람의 관념을 전변(轉變)해야만 비로소 해낼 수 있다.
한번은 내가 외국에 나갈 일이 있어서 남편이 비행기 표 예약을 도와주었다. 내가 비교적 좋은 시간과 더 비싼 항공권을 선택하자 남편이 짜증을 내며 인상을 쓰면서 험한 말을 하면서, 내가 돈을 너무 많이 쓴다고 불평했다. 나는 당시 그래도 이지적이고 청성했기에 법을 외웠다.
“일거사득(一擧四得)이다. 당신은 어찌 그에게 감사드리지 않을 수 있는가? 당신은 마음속으로 정말 그에게 톡톡히 감사드려야 하는데, 확실히 이렇다.”(《전법륜》)
아마 당시 내 심태가 비교적 안정되고 고요했을 것이다. “마음속으로 정말 그에게 톡톡히 감사드려야 하는데”(《전법륜》) 이 몇 마디 말이 내 머릿속에 들어왔는데 마치 처음 본 것 같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대조해 보거나 깨닫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내심에서 우러나와 진정으로 남에게 감사를 표시한 적이 있는가?”
대답은 “아니오”였다.
나는 이어서 자신에게 또 물었다.
“너는 누구에게 진심으로 성실하게 감사를 표시한 적이 있는가?”
이렇게 물어본 후 나는 깜짝 놀랐는데 나는 마치 누구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드린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법을 외우고 자신과 대조하면서 나는 다음 몇 가지를 깨달았다.
첫째, 원망이 있으면 감사가 없다. 스스로 묻고 안으로 찾아보니 부모님을 원망하며 앙심을 품고 있었고, 자식을 업신여겼고, 동료에게는 불만이 가득했고, 동수에 대해서도 완벽하지 못하다고 탓하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 마음의 용량에는 한계가 있기에 원한(怨恨)이 너무 많으면 포용할 수 없고, 은혜에 감사하기란 더욱 어렵다. 오직 관념을 전변해 원망하지 않고 감사를 많이해야 하는데 이렇게 해야만 정념(正念)이다.
둘째, 사물에 감응하면 마음이 움직인다. 감(感)이란 글자는 “咸+心”으로 구성된 회의 문자인데 ‘함(咸)’은 ‘모두 또는 전부’라는 뜻이다. 즉 온 마음이 진동했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희생하면, 내심 깊이 감동하고, 마음속으로 감동하면 눈에서 눈물이 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구나 시간, 체력, 금전에 다 한계가 있는 것으로, 남이 우리를 위해 조금이라도 뭔가를 했다면 우리는 늘 진지하게 인정하고 중시하며 보답할 줄 알아야 한다.
“작은 은혜를 입어도 크게 보답해야 한다[滴水之恩,涌泉相报]”는 말은 바로 은혜를 알고 보답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심지어 부모님의 은혜조차 망각하고 앙심을 품는데,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덜 주면 빚을 졌다고 여긴다. 사실 부모님의 양육은 몇십 년 동안 온갖 고생을 다하는 것으로 진심으로 부모님의 노고와 감당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진실로 무량한 은정(恩情)이다.
셋째, 감사한 마음이 있으면 실천으로 사례해야 한다. “사(謝)”는 “言+射”로 구성되어 감사한 뜻을 말로 표현할 때는 장중하고 진실해야 한다는 것을 표현한다. 수련 중에서 나를 폄하하고 나를 해를 끼친 사람에게도 감사해야 하는데, 이유는 그가 내게 공(功)의 근본이자 복(福)의 원천인 덕(德)을 주었기 때문이다. 덕이 없으면 공이 없고, 덕이 없으면 얻을 수 없다. 우리가 내심에서 다른 사람이 우리를 위해 업(業)을 없애 주고 덕(德)을 준 것을 느낄 수 있을 때면 곧 명백히 알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천 량의 황금이나 만 마지기의 좋은 땅을 주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다.
“일거사득(一擧四得)이다. 당신은 어찌 그에게 감사드리지 않을 수 있는가? 당신은 마음속으로 정말 그에게 톡톡히 감사드려야 하는데, 확실히 이렇다.”(《전법륜》)
넷째, 절대 무성의하게 감사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평소 늘 감사하다고 말하는데 자신은 아주 예의 바르게 행동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깊이 들어가면, 내 입에서 나오는 감사 중 얼마나 많은 감사가 예의 또는 체면 때문에 한 것인가? 내심으로 감수하고 인지하면서 감사함이 없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단지 형식적이고 무성의한 상투어에 불과할 뿐인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내심의 감촉이나, 감수, 깊은 정도 없고, 감사하는 뜻도 없이, 그저 입으로만 감사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격려할 수도 없다. 또한 그저 형식만 있고 마음이 없는 감사는 진(真)을 수련하는 것에 위배되는 것으로 반드시 버려야 한다.
다섯째, 진심으로 진실로 감사해야 한다. 과거를 돌아보면 내게 덕(德)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한 적이 있었는가? 정말 없었다. 나는 늘 속인의 이치에 입각했기 때문에 상처를 입거나 손해를 보았다고 여겨 마음속으로 늘 다른 사람을 원망했다. 수련의 이치에 입각해서 자신이 이렇게 소중한 덕과 공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때문에 남에게 감사드리는 마음과 감사드리는 행동이 없었던 것이다. 정말로 부끄러운데, 수련한 지 이십여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내 마음은 속인의 억울함과 원망 속에서 발버둥치면서, 허허 웃고 담담하게 넘어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정말 진지하게 감사하는 것은 더욱 해내지 못했다. 수련이 그리 착실하지 않았다. 비록 날마다 법을 공부하고 연공도 했지만 관념을 전변하지 않아 마음이 여전히 사람 속에 있었으니 정말로 부끄럽다.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동정심이 없고,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이 없기에, 남의 희생을 보아도 못 본 척한다. 이런 사람에게 어디 선(善)이 있는가? 우리는 남에게 감사를 잘해야 하는데, 감사하는 마음만으로는 안되고 또 상응하는 적절한 행동이 있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은 그에게 화를 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당신은 마음속으로 그에게 또 감사드려야 하는데, 정말 그에게 감사드려야 한다. 속인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큐(阿Q)가 아닌가?’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이런 일이 아니다.”(《전법륜》)
“그러면 무엇 때문에 또 그에게 감사드려야 하는가? 당신이 생각해 보라. 당신이 얻는 것은 무엇인가? 이 우주 중에는, 잃지 않는 자는 얻지 못하며, 얻으면 곧 잃어야 한다는 이치가 있다. 그가 속인 중에서 당신을 납작하게 만들었기에 그를 가진 쪽으로 치는데, 그는 이익을 얻었다. 그가 당신을 납작하게 만들면 만들수록, 소문을 퍼뜨리면 퍼뜨릴수록 당신 자신이 감당하는 것이 더욱 크고, 그가 잃는 德(더)는 더욱 많은데, 이런 德(더)를 모두 당신에게 준다.”(《전법륜》)
작은 소견이니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65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