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정확한 사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동시에 자신을 수련하고 있다. 오늘 수업을 준비하면서 다음 수업에서는 학생들에게 어떤 법리로 학습을 지도해야 할지 생각하는데 “우리는 왜 무조건 여러분에게 줄 수 있는가?”(《전법륜》)를 공부하다 문득 ‘무조건(無條件)’이라는 단어가 단번에 머릿속에 떠올랐고, 학생들이 무조건 배울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렇게 학생을 인도한다. 만약 한 어머니가 아이가 자기 말을 잘 들으면 사랑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 어머니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조건부 사랑이다. 또 만약 학생이 선생님이 자신을 비평한다고 선생님이 싫어 공부하길 싫어한다면 이 학생은 진짜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어떤 학생이 시험에서 100점을 받으면 부모님이 돈을 준다고 해서 열심히 공부한다면 이것은 진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의 길을 좁히는 것이다.
학습은 학생의 당연한 책임과 사명이니 아무 조건이 없어야 하고, 조건이 있다면 학습의 길에 장애가 될 수 있으니 무조건적인 학습만이 진정한 학습이다.
이번 수업에서 우리는 그 어떤 학습 조건도 다 내려놓고 무조건 학습하고 진정으로 학습했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에게 이번 수업을 통해 어떤 수확이 있었는지 묻자 학생 1이 말했다.
“무조건적인 학습은 자신의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학습이고, 진정한 학습에는 그 어떤 조건도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저는 학습이 원래 이렇게 오묘함을 발견했는데, 마치 시간이 아주 빨리 지나가고 학습이 사랑스러워지는 어느 신기한 공간에 빠진 것 같아요.”
학생 2: “무조건 학습한 후 스트레스가 사라져서 더 쉽게 깊게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학습이 마치 금빛으로 반짝이며 매우 행복한 것 같았고 저도 공부를 더 좋아하게 되었어요.”
학생들의 학습 경험을 듣고 나서 나는 ‘무조건’에 대한 보다 깊은 한 층의 함의를 단번에 깨달았는데, 그 어떤 조건이든 당신에게 아무리 충분한 이유가 있더라도 그것은 모두 집착이고 곤란이거나 심지어 마난(魔難)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반 우주에서 무조건 우주 대법을 널리 전하셨고, 중생 구도를 위해 무조건 당신의 일체를 바치셨다.
내가 하는 수업도 마땅히 무조건 학생들에게 베풀어야지, 학생들의 존중을 받기 위해,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위해, 자신의 업무성과를 위해, 학교에서 자신의 입지 등을 위해 하는 것은 모두 위사(爲私)하고, 변이된 것이며, 불순한 것이니 다 내려놓아야 한다.
대법제자의 “수련에는 어떤 조건도 없는바, 수련하려고 생각하면, 그러면 수련하라.”(《전법륜》) 수련은 무조건이고 구함이 없어야 저절로 얻는 것으로, 어떤 조건을 지닌 수련은 모두 불순한 것으로 모두 사상의 틀이 되어 수련의 길에서 장애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한 후 나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훨씬 더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대법제자가 조사정법(助師正法)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가장 중요한 사명을 완수하는 것도 마땅히 무조건적으로 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헌신은 우주 특성과 부합하는 것으로, 바로 정법(正法)의 에너지가 있고, 구세력의 배치 속에 있지 않는 것으로, 사전(史前)의 큰 소원을 더 잘 완수할 수 있는 것이다.
더 생각해 보니 동수 사이에도 마땅히 무조건 협력을 잘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길은 같지 않으며 매 사람의 길은 모두 같지 않은바, 생명이 법 중에서 깨달은 이치는 모두 같지 않다. 그러나 결과는 틀림없이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결과를 보며, 그의 결과가 도달한 것, 정말로 도달하고자 하는 것에 도달할 수 있다면 모두들 동의하는데, 신(神)은 모두 이렇게 생각한다. 게다가 어디가 부족한 것이 있으면 또 조건 없이 묵묵히 보완해주어 그것이 더욱 원만하게 이루어지도록 한다.”(《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 법회 설법》)
우리는 모두 한마음으로 인간 세상에 왔고, 모두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구도하러 왔으니, 마땅히 무조건 서로 잘 협력하고 서로 원용해서 대법 속에서 무너뜨릴 수 없는 정체를 형성해 더 큰 신(神)의 위력을 발휘해야 한다.
무조건은 또한 일종의 경지이며 여기에는 더 큰 자비와 더 큰 용량, 가장 큰 지혜의 표현이 있다.
우주 중생에 대해 말하자면 성주괴멸(成住壞滅)의 법리 속에서 이미 끝까지 걸어왔고 구 우주의 일체의 일체는 다 안 되는데, 아무리 높은 층차의 생명이라도 모두 이 말후(末後)의 멸(滅)을 벗어날 수 없다. 만약 사부님께서 우주 중의 일체를 받쳐주지 않으셨다면, 구우주는 진작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부님께서 무조건 우주 중생을 위해 감당하셨기 때문에 모든 중생이 비로소 구도 받을 기연(機緣)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구우주의 모든 생명이 미래를 원한다면 오직 무조건 대법과 정법을 받아들이고 정법과의 관계를 바로잡고 대법에 동화해야만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우주의 모든 중생이 다 무조건 정법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본 세간 생명의 표현은, 비록 구세력의 좌우 하에 있지만, 각계 중생, 뭇 신도 모두 점차 대법을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런 인정은 또 진정으로 대법과 정법, 대법제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접수가 아니라 정법의 성공이 온 천체(天體)를 홍관(洪灌)시킨 기세가 그로 하여금 어찌할 도리가 없게 한 것이다. 물론 또 상당히 많은 일부분은 정말로 명백해졌는데 그것은 그들이 이런 정법의 추세와 미래의 일체가 반드시 이루어짐을 보았기 때문이다.”(《2005년 캐나다 법회 설법》)
그들의 불신은 아마 구(舊) 이치, 구(舊) 관념의 저애 때문일 수 있는데 여기에 우리 대법제자가 정법 중에서 대법을 실증할 필요가 있고 그것들을 위해 걸림돌을 풀어주고 그들이 무조건 대법과 정법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는데, 이는 구우주 모든 생명이 구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이상은 실제 수행에서 제가 깨달은 것을 여러분과 공유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65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