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북 대법제자 일수(一修)
【정견망】
최근에 나도 모르게 아주 바쁜 것 같은데 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에 빠져 있음을 깨달았다. 또 세 가지 일도 하는 것 같지만 잘하지 못한다. 문제를 찾아보면 또 그리 큰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또 문제가 아주 많은 듯하다. 나는 현재 상태를 바꾸고 싶었지만 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랐다. 이 상태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 몰랐다.
최근에 나는 모든 것은 다 안일심(安逸心)의 장난에서 유래했음을 점점 더 깨닫게 되었다. 게으름, 고생을 겪기 두려워하고 즐거움을 추구하며 이익에 대한 집착 등 나의 평소 행동은 모두 안일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먼저 게으름과 고생을 겪기 싫어하는 것을 말해보자. 안일심 때문에 새벽 연공을 하고 싶지 않았고, 한밤중 발정념을 하고 싶지 않았으며, 날마다 진상을 밝혀 사람을 구하고 싶지 않았다. 비록 세 가지 일을 하고는 있지만, 자신에게 높이 요구하고 엄격히 요구하지 않았으며, 조금만 실천해도 자만심에 빠져, 수련이란 바로 고생을 겪는 것임을 몰랐다. 현실에서 표현되는 것은 음식을 하기 싫어하고 음식을 사는 것이다. 구실은 출근하기 때문에 바빠서 요리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지만 사실상 게으름이다.
또 물질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도 있다. 안일을 추구하다 보니 물질적인 삶을 추구하고, 청결함을 추구하고, 더러운 바닥은 참을 수 없고, 지저분한 집을 참을 수 없고, 편안함을 추구하고, 좋은 것을 사고 싶고, 좋은 것을 사용하고 싶고, 큰 집에서 살고 싶다. 또 다른 사람의 좋은 나한상(羅漢床 역주: 중국 전통 목가구의 일종으로 폭이 길어서 소파처럼 앉거나 누울 수 있다)을 보면 사고 싶고, 또한 돈과 이익에 집착하는 등등. 이렇게 수시로 떠오르는 사람 마음은 모두 수련인의 정진을 방해하는데, 지나치게 집착하면 사람 속에 깊이 빠져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다. 결국, 이 안일심은 모두 사람 속에서 소위 행복한 생활을 추구하는 것이다.
나는 또 많은 집착심이 모두 안일심과 관련이 있음을 발견했다. 예를 들면 두려운 마음, 색욕심, 이익심, 번거로움을 두려워하는 마음, 새로운 걸 배우길 두려워하는 마음, 어려운 일을 꺼리는 마음, 근심을 두려워하는 마음, 신경 쓰이는 일에 대한 두려움, 스트레스를 받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 책임지려 하지 않는 마음, 쉽게 만족하는 마음, 또한 최근에 많이 언급된 핸드폰 보기나 심지어 명예를 추구하는 마음, 질투심 등등이 있다.
먼저 휴대폰을 말해 보자. 나는 휴대폰의 해악을 잘 알기에 평소에는 가급적 멀리 하지만, 업무에 지쳐서 휴식하고 싶을 때면 곧 휴대폰을 집어 든다. 집안일을 하느라 피곤해서 휴식을 취할 때도 곧 휴대폰을 들고 화면을 넘긴다.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아이들을 데리러 갈 때나, 물건을 사기 위해 줄을 설 때, 별일이 없으면 곧 휴대폰을 들고 무의식적으로 바라본다. 사실, 우리는 그저 느슨해지고 싶어 안일을 추구할 뿐이지만 뇌에 많은 나쁜 것들을 주입해 자신도 모르게 정진의 의지를 느슨히 한다.
또 두려움을 말해보자.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결국은 박해받을까 봐 두려워하는데 왜 박해받을까 두려워하는가? 구타당하는 것이 두려운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두려운가? 고생을 겪는 것이 두려운가? 궁극적으로 말하자면 여전히 안일한 생활을 잃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또 색욕심도 있는데 일단 느슨해지고 싶고 안일함을 추구할 때면 이런 색욕이란 사상업(思想業)이 곧 미친 듯이 커진다. 왜 그럴 수 있는가? 왜냐하면 당신이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는 사람 마음과 사람 생각이 주도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사람의 것을 추구하고 사람 생활을 동경하게 되는데, 정(情), 색(色), 욕(慾) 역시 사람의 것이라 곧 이것들이 함께 표면 공간으로 침투해 들어올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럴 때 당신은 온라인 소설을 읽고 싶은데(사실, 진정한 자신이 아니라 색욕심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정념이 부족해 자신을 파악하지 못할 때면, 사상업에 이끌린다. 이것이 바로 왜 내게 인터넷 소설을 보는 문제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가 하는 원인이다.
또한, 번거로움을 두려워하는 마음, 어려움을 두려워하고, 피로를 두려워하고, 걱정을 두려워하고, 책임지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모두 안일심을 추구하는 것이다. 늘 편해지고 싶고,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다. 업무에서도 번거로운 일을 하려 하지 않고, 남에게 미뤄 번거로움을 줄이려 한다. 집에서 표현되는 것은 아이를 돌보려 하지 않는 것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점점 더 말을 잘 듣지 않고 다루기 힘들어지므로, 가능하다면 피하려 한다. 결과, 아이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게 되고 부모는 소제자(小弟子)를 돌보는 시간을 들이려 하지 않는다. 비록 늘 아이를 단체 법학습에 데려가긴 하지만, 마음을 쓰는 정도가 아주 부족한데, 이는 사실 무책임한 것이다.
이러한 무책임은 또 동수를 구하는 데서도 반영된다. 최근, 몇몇 현지 동수들이 박해를 받아 재판을 앞두고 있다. 모두 동수를 구출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는데, 드러나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현지 대법제자들이 강력한 정체를 형성해서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안으로 자신을 찾아보니, 자신이 마음을 쓰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이런 책임을 맡거나 이런 부담을 지고 싶지 않았고, 여유롭게 지내고 싶었다. 어쨌든, 이 문제에는 많은 사람이 연루되어 있고, 이는 단지 나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동수의 일을 자신의 일로 여기지 않았고,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주인공을 연기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자신이 짊어진 책임을 회피한 것이다.
그러나 대법제자는 모두 중대한 역사적 사명을 짊어졌으니 바로 조사정법(助師正法)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천상(天上) 지하(地下)에서 가장 큰 책임을 진 사람이라 절대로 느슨해질 수 없으며 절대 느슨해지면 안 되는 사람이다.
아주 오래 전 필자가 법을 얻은 초기 TV에서 《서유기》 시리즈가 방송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중 한 편에서 당승이 손오공을 도제로 거두자, 관음보살이 손오공에게 “앞으로는 절대 나태한 마음을 내지 말아라.”라고 경고한다. 당시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심신이 크게 진동했고 뜨거운 눈물이 나왔는데 나는 이 말이 나더러 들으라고 한 것임을 느꼈다. 사실, 사부님께서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대법 수련에서 더는 나태하지 말아야 한다고 점화하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잘하지 못했다.
나는 지금에 와서야 이 마음을 깊이 깨달았는데 이렇게 많은 소중한 시간을 낭비한 것이 정말 후회스럽다. 나는 마침내 왜 수련의 길에서 때로는 정진하다 때로는 나태했는지 그 이유를 똑똑히 알게 되었다. 명백한 일면(一面), 본성의 일면은 모두 수련의 소중함을 알고, 정진하길 갈망하며,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함을 안다. 때문에 잠시 나태해진 후에는 곧 후회하고, 정념(正念)이 강해져서 세 가지 일을 다그쳐 한다. 하지만 사람의 일면은 미혹 속에서 쉽사리 세상의 표면적인 것에 넘어가 명리정(名利情)과 사람의 소위 행복한 생활에 유혹당해 사람 속에 빠지는데 사람 속에서 완전히 빠져나올 수 없고,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또 나태해진다.
사실, 이 역시 대법제자가 속인 사회 속에서 수련하는 어려움이고, 이런 환경은 또한 구세력이 대법제자에게 억지로 더한 어려움이다. 이러한 집착심은 구세력이 역사적으로 생생세세(生生世世) 체계적으로 배치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련해 내야만 그것들은 비로소 승인한다. 안일한 마음은 가장 발견하기 어려운 마음으로 겉으로는 달콤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독(毒)이 있다. 고인은 “안일함이 독주(毒酒)보다 강하다”고 했는데 정말 맞는 말이다. 구세력은 따뜻한 물에 개구리를 삶는 것같은 은밀한 방법을 사용해 대법제자를 훼멸하려 한다. 사실 많은 대법제자들이 세 가지 일을 하고는 있지만, 시간이 나면 카드놀이를 하거나, 마작을 하는 사람도 있고, 드라마를 보는 사람도 있다. 모두 안일심이며, 또한 구세력이 정교하게 엮어 만든 달콤한 그물이다.
이점을 똑똑히 알고 난 뒤, 나는 더 이상 안일심에 통제당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녁 12시에 발정념부터 시작해, 나는 늘 자신의 일사일념(一思一念)이 안일심에 이끌리지 않도록 주의하고, 안일한 마음과 관련된 모든 집착심이 나오지 않도록 주의하는데, 발견하면 다그쳐 그것을 부정하고, 그것을 배척하며,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 안일심과 관련된 행동과 습관을 다그쳐 고쳐 법에서 자신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주로 자신의 이 마음을 폭로하기 위함이고 또한 나와 유사한 상황에 처한 동수들이 이를 중시해 거울로 삼기를 희망한다.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6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