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최근 연공장에서 동수들 사이의 모순을 처리할 때, 나는 이전에 인식한 하나의 집착을 보았다. 동수들이 나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다른 말을 하는 동수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런 동수는 정직하지 않다고 느꼈고, 설령 진실한 생각을 말할 용기가 없더라도 자기 생각과 반대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일찍이 같은 문제로 다른 한 동수와 모순을 겪은 적이 있다. 나는 동수가 진실(真)하지 않다고 느꼈고, 동수는 오히려 내가 선량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 당시에는 수련 초기라 착실히 수련할 줄 몰랐기 때문에 늘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을 분석했고 서로 상대방의 단점만 보았다. 나중에 각자 안으로 찾는 법을 배웠고 자기 문제에 공력을 들이기 시작하고 안으로 노력하자 서로 개인 수련에서 크게 제고했다.
하지만 내가 왜 다른 사람의 ‘부정직’을 싫어한 이유에 대해서는 줄곧 더 깊이 파본 적이 없었다. 다만 두루뭉술하게 남이 내 마음을 존중하기를 원한다고 여겼고 이 자아를 닦아버려야 한다는 두루뭉술한 느낌만 있었다.
어젯밤에 정견망에서 동수 문장을 보니 집착심이 형성된 근본 원인을 찾는 방법을 말했다. 오늘 아침 연공을 하기 전에 “내가 다른 사람의 ‘진실하지 않음’을 그토록 싫어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다른 사람의 ‘진실하지 않음’이 다른 결점보다 나를 더 건드린 이유는 무엇일까?”라고 스스로 물어보았다. 한 시간 포륜(抱輪)을 할 때 “통제[掌控]”라는 두 글자가 머릿속에 들어왔다.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렇다! “통제”였다. 다른 사람이 진실을 말하지 않을 때, 기만당하거나 도무지 상황을 알 수 없을 때, 이런 것들이 내 기분을 나쁘게 한 것이다. 나는 전에 다른 사람이 솔직하게 내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내가 모르는 상황에서 다른 목적에 나를 이용하는 것을 알고 화가 났었다. 표면적으로는 다른 사람이 정직하지 않고 나를 이용한 것에 화가 났지만, 더 깊이 파보니 내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통제해야’ 했고 우롱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제권이 내 손에 있어서,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나 도와주고 싶은 일이면 내가 도와주고, 돕고 싶지 않으면 돕지 않아야 한다. 내가 일의 전반적인 상황을 장악하고 사정을 다 알아야 한다. 이것은 더 은폐된 자아다.
더 깊이 파보니, ‘통제’하려는 이 마음은 다른 사람이 내게 ‘진실하지 않을’ 때뿐만 아니라 다른 방면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수련인에게 심각한 병업이 나타났을 때 그 문제가 오직 ‘통제’ 범위 내에 있는 한, 일반적으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병업가상이 내 ‘통제’를 벗어날 때면, 내 눈으로 보는 것을 사실로 여기고, 마치 탈출구가 없을 때면 이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말로 신사신법(信師信法)을 선택해 모든 것을 사부님께 맡길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확실하지 않고 결과를 “통제”할 수 없을 때 사람의 방법을 사용해 “최저선을 지키려”하는가?
또 다른 예를 들면 아이에 대한 집착이다. 아이가 성장해도 속으로 여전히 걱정이 많은데 이것은 또 늘 내가 결정하려는 것으로 사람은 각기 운명이 있음을 모르는 것이다.
“통제”하고 싶은 마음은 사실 신사신법하지 못하는 마음이고, 세상 일체는 우주 특성의 제약을 받고 있고 사부님 배치가 가장 좋은 것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통제”와 “의심”은 관련이 있으며, 둘 다 진정으로 인과(因果)를 믿지 않고 “사람의 계산은 하늘의 계산만 못하다”는 것과 “잃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 담담해지지 못한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하고, 진정으로 신사신법해서 모든 것을 사부님께 맡겨야 한다.
개인의 제한된 인식이니 타당하지 못한 곳이 있다면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69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