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덕을 지키는 것은 초상적인 이치로 가늠해야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덕을 지키는 것[守德]은 우리 생활의 다양한 측면을 포함하는데 덕을 지키려 한다면 착실하고 착실하게 해야 하며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동수 A의 남편이 갑자기 그녀를 병원으로 불렀다. 갔더니 남편이 “동생”(친구)과 함께 병원에 있었다. 동생이 다쳐서 수술을 해야 하는데 일단 3000위안을 선불로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 말을 듣자마자 화가 나서 “당신 아들이 병원에 입원해도 문병 한번 안 오던 사람이 남이 입원했는데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요! 게다가 병원비까지 내주고. 우리 집에 그런 여윳돈은 없어요! 나는 상관하지 않겠어요!”

이 말을 들은 남편은 너무 화가 나서 눈알이 튀어나오려 했다. 그녀는 남편의 이런 끔찍한 표정을 보고 즉시 자신이 틀렸음을 알았다. 그녀는 더는 남편과 말다툼을 하지 않고 급히 남편을 위로해 화를 가라앉히게 했다.

그녀는 자신이 어디에서 잘못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녀는 법(法)에서 안으로 찾아보았다. 남편은 왜 이토록 이 친구에게 관심을 갖는가? 심지어 자기 자식보다 더 관심을 갖는가? 아마 전생에 이 친구와 어떤 인연이 있었고, 금생에 이 일을 통해 결산하려 하는 것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과거의 은원(恩怨)을 해결하기 위해 3,000위안을 쓰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 보니 확실히 내가 잘못했다. 애초 나는 속인의 이치로 가늠했는데 그럼 나는 바로 속인이 아닌가. 그러니 남편과 다툰 것이다. 즉 나쁜 일을 한 것으로 덕(德)을 지키지 못하고 반대로 덕을 잃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공(功)이 자라겠는가? 수련인은 초상적인 이치로 가늠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또 한 층의 뜻이 있는데, 당신이 德(더)를 쌓는다고 하자. 당신이 보기에 그 일이 좋은 일이라도 당신이 하면 곧 나쁜 일일지도 모르며, 당신이 보기에 그 일이 나쁜 일이라도 당신이 만약 상관하면 또한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당신은 그 속에 있는 그것의 인연관계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법률이 속인 중의 일을 상관하는 이것은 문제가 없다. 연공인이라면 바로 초상(超常)적인데, 그렇다면 당신은 초상적인 사람으로서, 초상적인 이치로 당신에게 요구해야 하지, 속인 중의 이치로 가늠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한 가지 일의 인연관계를 모르기 때문에 당신은 이 일을 잘못하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위(無爲)를 말하는데, 당신이 무엇을 하고 싶다고 해서 무엇을 해서는 안 된다.”(《전법륜》)

그녀는 법에서 안으로 찾고 법에서 바로잡자 즉시 마음이 평형을 되찾았고 더는 남편에게 화를 내지 않았으며 남편 친구 가족이 올 때까지 남편과 함께 차분하게 동행했다.

A 동수가 대법을 실증한 교류를 듣고 나는 많은 영감을 받았다. 사부님께서는 “모든 일은 다 인연관계가 있다”(《전법륜》)고 말씀하셨는데, A 동수 남편과 그 친구의 인과관계는 신(神)이 오래 전에 이미 잘 배치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라! 만약 동수 A가 이 일로 남편과 다투고 기어코 친구 일에 간섭하지 못하게 했다면 이는 신의 배치를 어지럽힌 것이 아닌가? 이는 신에게 빚을 진 것이 아닌가! 이는 아주 큰 나쁜 짓을 한 게 아닌가! 그 신이 그녀를 쉽게 용서하겠는가? 그녀가 만약 수련인이라면 신에 의해 층차가 내려가지 않겠는가?

우리의 일상과 업무를 돌아보면, 우리는 종종 다음과 같은 낯선 일들과 마주치게 된다.

왜 우리 아이는 그렇게 말을 듣지 않는가?
왜 아내는 늘 나를 나쁘게 대하는가?
남편의 일은 왜 그렇게 순조롭지 못한가?
왜 상사는 늘 나를 무시하는가? 등등 등등

이런 것을 통제하려 들면 잘못을 저질러 덕을 잃을 수 있는데 어떻게 덕을 지킬 수 있겠는가? 따라서 우리는 사람의 이치로 일의 옳고 그름을 논할 수 없는데, 그렇게 하면 우리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우리는 초상적인 이치로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을 가늠해야 하며 법으로 자신을 가늠하고 남을 가늠해야 한다. 속인의 표현은 우리의 심성 제고를 위해 이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대법을 실증하는 속에서만이 진정으로 덕을 지켜낼 수 있다.

이상은 진수(真修) 대법제자가 대법을 실증한 이야기로, 이를 써서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7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