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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각도에서 수련

하얼빈 대법제자

【정견망】

정법 형세의 변화에 따라 대법제자에 대한 요구 역시 달라진다. 개인적으로 현재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는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은데 그 이유는 여전히 우리 매 대법제자 자신에게 있다. 외부 형세는 매 대법제자의 수련 상태, 특히 우리의 정체(整體)적인 상태에 따라 결정된다. 정체에 대한 인식에서 자신의 일부 깨달음을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정체에 관해 말하자면 늘 함께 하거나 또는 모두 나와 함께 일하는 것이 정체가 아니고, 또한 한 사람이나 몇 사람이 정체가 아니라는 것도 아니다. 정체란 우리의 마음이 함께 있고, 우리의 사상이 법에 있는 이것이 바로 무형(無形)중의 에너지가 강대한 정체다. 만약 우리가 사상 속에 누군가를 언급한다면 사상에는 많은 생각과 원망이 있게 되는데 보는 것은 모두 다른 사람의 문제이고 자신을 닦지 않는다. 그러면 서로 날마다 함께 있어도 또 간격(間隔) 속에 있으니 정체가 아니다. 구세력과 좋지 않은 요소는 곧 우리가 그것에게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데 바로 간격이다. 간격이 클수록 그것들은 더 기뻐하고 더 많은 풍파를 만들 수 있다.

정법 수련의 최후에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로 우리가 정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정체 형성은 특정한 사람이나 어느 지역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든 대법제자 자신부터 시작해야 한다. 대법 수련은 일맥(一脈)이 백 맥(百脈)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백 맥이 동시에 운행하는 것이다. 대법제자가 모두 정체 속에 있으면 사악이 손을 쓸 수 없고 더 교란한다면 곧 스스로 멸망할 뿐이다. 대법제자가 모두 정체 속에 있다면, 늘 서로 강력한 에너지 운행중에 있으니 그런 병업(病業)이나 납치 등의 구세력이 배치한 요소도 효과가 없을 것이며 모두 순식간에 해체될 것이다.

정체에 있지 않는 표현은 바로 밖을 보는 것으로, 밖을 보기만 하면 곧 간격이며, 밖을 더 많이 볼수록 간격이 더 커지고 정체에서 더 멀어진다. 구체적인 표현은 이렇다. 늘 다른 사람의 문제를 보고, 누구를 언급하기만 하면 많은 생각이 있고, 일부 논평을 하거나, 심지어 원망하고, 화를 내며, 비난하고, 무시하는 등이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이 능력이 있고 강자라 여기며 자신을 수련생 속에 놓지 못하는 등이다.

반대로 정체 속에 있는 표현은 이렇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보지 않고 늘 자신의 문제를 보고, 다른 사람의 문제를 말하지 않고 늘 자신의 문제를 말한다. 일을 하면서도 늘 남을 고려하고 자기 주장을 강요하지 않는다. 일단 동수를 언급하기만 하면 말하는 것은 우선 장점과 칭찬이다. 왜냐하면 자신을 정말 정체에 녹아 들어가게 한다면, 그 정체가 바로 자신이니, 동수 역시 자신의 일부인데 여전히 자신이 좋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여전히 자신의 손이 자신의 발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며 모두 정체의 일부이니 누가 누구보다 낫다는 개념이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을 정체로 본다면 그가 손가락 하나를 다쳤다면 나머지 신체 부위가 그 다친 손가락을 탓하겠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신체의 각 부위가 모두 조건 없이 다친 손가락을 돕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다. 왜냐하면 손가락이 다치면 신체의 모든 부분이 다 연대(連帶)되고 모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도 확실히 하나의 문제가 있다. 즉, 동수에게 일부 관념과 집착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이는 바로 그 다친 손가락과 같다. 다친 것은 외부에서 온 것이고 억지로 더해진 것이며 손가락 자체는 좋은 것이다. 우리는 외부에서 더해진 것을 부정해야 하지만 동수 자체를 부정해선 안 된다. 왜냐하면 대법제자 자체는 진선인(真善忍)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장 바르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실 대법과 대법제자의 정념에 부합되지 않는 일체 것들은 모두 구세력이 참여하여 조성한 것으로, 자신의 바르지 않은 일체 요소를 포함하는데”(《푸왠선(副元神) 관련 문장이 일으킨 파동에 관해》)

내가 보기에 어떤 동수들은 함께 협력을 잘하지만 역시 작은 정체일 뿐이다. 다른 작은 정체를 배척하고 다른 작은 정체를 무시하며 역시 위에 언급한 문제를 갖고 있다.

우리 매 제자(또는 작은 정체)가 더욱 안으로 찾을수록 우리는 더욱 정체를 향해 나아갈 것이며, 더욱 밖을 바라볼수록 정체에서 더욱 멀어질 것이다. 물론 정체에서 멀어지면 쉽게 위험이 나타나며, 이는 늑대가 사냥할 때 먼저 양을 무리에서 분리시키는 자연의 법칙과 같은 이치다. 왜냐하면 정체 속의 매 한 입자는 정체 속의 다른 모두 입자와 연결되어 있기에, 사악이 박해하려면 이러한 연대를 끊어야만 비로소 손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정체 속으로 걸어가고 싶은 것이야말로 모든 대법제자(또는 작은 정체)의 일념(一念)이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혼자 있든, 동수들과 함께 있든, 우리는 안으로 자신을 잘 닦고, 자아를 내려놓고, 무사(無私)하고 위타(爲他)하며, 우리 자신의 간격을 없앨 수 있다면 우리는 정체 속에 용해될 수 있고 법의 위력이 곧 펼쳐질 것이다. 우리가 안으로 도 찾을수록 연대가 더 강해지고, 법력이 더 커지며, 위력도 더 강해지고, 강대한 불법(佛法)이 인간 세상에서 재현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다.

우리 매 대법제자가 자신부터 시작해, 매 대법제자가 모두 잘하면 곧 모두 좋아질 것이며 외부의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이 말해 보라. 다른 사람이 상관할 필요 없이 사람마다 모두 자신을 단속하고 자신의 마음 안으로 찾는다면 이 얼마나 좋은가.”(《전법륜》)

우리 매 제자가 자신부터 시작해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각도에서 안으로 찾아 자신을 착실히 수련해 정체를 형성해야만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더 잘할 수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7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