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명(自明)
【정견망】
많은 사람이 다년간 법을 공부하거나 심지어 책을 여러 번 외우기도 했지만 여전히 법을 얻지 못한다. 심지어 하나의 관(關)을 넘기지 못하면 의심이 생겨서 최후에 이 의심 때문에 공부를 그만두기도 한다.
우리는 장기간 사람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의 습관적인 사고방식은 바로 사람의 것이며, 법(法)에 대한 이해 역시 대부분 사람의 이해다. 많은 사람이 매일 법을 공부하고 또 많이 하지만, 늘 사람의 사유 방식으로 법을 이해한다. 결국 법을 아무리 많이 배우더라도 내함(內涵)을 배우지 못하고, 법에 대한 이해는 여러 해가 지나도 변함이 없다.
우리가 알다시피 사람이 어떤 것을 배우는 습관은 우선 이해하고, 깨달은 후 반복적으로 연습하고, 마침내 완전히 터득한다. 하지만 법 공부는 오히려 그렇지 않다.
첫째, 우리는 속인의 사고 습관과 사유 방식을 수련인의 사유 방식으로 고쳐야 한다. 속인의 학습은 반복적인 이해와 반복적인 연습이 필수지만, 우리가 배우는 법은 당신이 법(法)을 보지만 사실 그 속의 공(功)과 법(法)은 사부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사유 속에서 믿지 못하는 그런 관념을 제거하는 것이고 당신이 이미 진정으로 얻었고 이미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당신의 반복적인 법 공부는 바로 반복적으로 믿는 것이고 반복적으로 법에 위배되고 충돌하는 그런 관념, 생각, 습관을 제거하는 것이다.
마치 과거 어느 조각가가 한 말과 같다.
“나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 물건을 조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물건 자체는 이미 그곳에 존재하고 있고 나는 단지 불필요한 그런 요소들을 제거할 뿐입니다.”
반본귀진(反本歸真)에 대한 나의 한 층 이해는 그것이 이미 그곳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단지 사람 속에서 양성한 사람의 생각, 사람의 각종 저능(低能)한 것들을 제거하기만 하면 그런 고급적인 것이 자연히 드러날 것이다. 당신이 본 그 ‘수(修)’라는 글자에는 많은 ‘칼(刀)’들이 있는데 즉 사람이 구비한 모든 저능한 것들을 당신은 잘라내야 한다.
또한 법을 이해하면서 늘 사람의 사유를 사용해선 안 된다. 가령, 사부님께서는 “수련인이 안에서 찾는 이것은 법보(法寶)이다.”라고 말씀하셨다(《각지 설법 9》 〈2009년 워싱턴DC 국제법회설법〉).
많은 사람이 사람의 사유 방식으로 ‘법보(法寶)’라는 두 글자를 일종의 비유로 여긴다. 하지만 만약 수련인의 사유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비유가 아니라 진실하고 진실한 ‘법보(法寶)’다. 어떤 사람은 나도 안으로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고 말한다. 사실 이는 사부님께서 이 “법보”를 당신에게 주셨음을 당신이 믿지 않고 당신이 원하지 않는 것이다. 당신은 여전히 속인의 사유로 “안으로 찾는데” 속인의 사유는 속인의 효과를 초래하기에, 당신은 늘 찾을 수 없다.
만약 “법보(法寶)”를 사용할 때 효과가 없다면, 그것을 여전히 법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누군가 안으로 찾았지만 찾지 못하겠다고 말할 때면, 당신은 그가 이 한 점에서 아직 “법을 얻지 못했고” 이 “법보”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의 사유 방식과 사람의 이해 방식은 사람이 법을 얻는 데 가장 큰 장애가 될 수 있다. 어떤 동수들은 날마다 공부하면서 매일 몇 강을 읽었다면서 수량을 정진의 지표 삼는다. 하지만 다년간 늘 사람의 사유 방식, 사유 습관으로 공부하니 얼마나 안타까운가! 대열에서 떨어지고, 반면(反面)으로 나가거나, 법을 의심하는 그런 동수들에게 가장 큰 장애는 어쩌면 법을 공부해도 법을 얻지 못하고 늘 사람에서 걸어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얕은 인식에 불과하며 법의 내함은 그야말로 거대한 보물 창고처럼 무궁무진하다. 모두 함께 정진합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0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