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진상 책자를 만들다 실수로 《환원(還元)》 책자 뒷표지를 《장자석(藏字石)》 책자 뒷표지로 바꿔 찍었다. 표지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 얇은 종이로 다시 인쇄해 붙였다. 책자가 꽤 많았는데 아마 50권이 넘었을 것이다. 이렇게 종이를 붙이면서 생각했다. 내가 왜 이런 실수를 했을까? 나는 반드시 이 기회를 이용해 잘 깨달아야 하며 이 실수를 헛되이 넘길 수 없다.
처음에 나는 이렇게 깨달았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수보[修補 역주: 직역하면 ‘수리해서 보완한다’는 뜻으로 유지보수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수(修)에는 또 수련의 의미가 있어서 닦아서 잘못을 보완한다고 볼 수도 있기에 원문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수보로 번역한다.]하고 있다. 만약 내가 대법에서 안으로 찾고 대법에 동화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자신의 잘못을 수보(修補)하는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우리가 그를 도와 손실을 보완한다면, 이는 그가 수보하는 것을 돕는 것이 아닌가? 이 역시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을 원용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리 法輪(파룬)의 특성이 자동으로 일체 표준적이지 못한 것을 수리 복구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그는 끊임없이 일체를 원용(圓容)하는데, 정법(正法)의 목적은 바로 이를 더욱 아름답게 하기 위한 것이다.”(《싱가포르 법회설법》)
우리는 대법에서 또 수보(修補)의 지혜를 닦아내야 한다. 다음 날, 나는 동수 A와 법 공부 소조에 갔다. 법 공부를 마친 후, A가 나더러 B 동수에게 인쇄물을 전달하러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속으로 좀 망설였다. ‘어제도 가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또 가야 하는가?’
A 동수가 말했다.
“아직 그녀에게 전달하지 않은 문서가 있는데, 급히 필요합니다. 오늘 반드시 전달해야 합니다.”
듣고 나서 나도 반드시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순간적으로 이런 일념(一念)이 떠올랐다.
‘그녀가 어제 (이 일을) 잊었으니 이는 그녀에게 나타난 잘못인데 오늘 또 나더러 다시 가라고 하자 내가 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수련하기 전에 나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일단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할 때마다 속으로 내키지 않았다. 나는 이런 생각이 옳지 않음을 안다. 이는 나의 가장 큰 결점이고 위사(爲私)한 표현이었지만, 어떻게 자신을 바로잡아야 하는지 몰랐다.
나중에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내가 만약 A 동수와 함께 가서 문서를 전달한다면, 이것이 바로 동수가 잘못을 수보(修補)하도록 돕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수보(修補)’라는 이 법에 동화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수보하는 동시에 자신이 대법의 자동적인 수보 메커니즘에 녹아 들어가게 하는데 이는 사실 또한 자신이 타인을 원용하는 지혜를 수보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후 평형을 이루지 못하던 마음이 사라졌다. 법에 동화한 후 평온함을 느꼈고 마음이 아주 즐거웠으며 묵묵히 동수의 단점을 수보하고 싶어졌다.
우주는 성(成), 주(住), 괴(壞)의 특성이 있기에 사람 역시 잘못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수보(修補)의 지혜가 필요하며, 끊임없이 안으로 자신이 어디에서 잘하지 못했는지 찾아 자신을 수보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보완하도록 도우면서 타인의 부족한 점을 원용하도록 수보(修補)할 수 있다. 이는 파룬의 운행원리와 같은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제도하고 남을 제도하며 중생을 널리 제도함을 말한다. 그러므로 法輪(파룬), 그가 안으로 돌 때는 자신을 제도하고, 밖으로 돌 때는 남을 제도할 수 있다.”(《전법륜》) 나는 자신이 한 가지 작은 일에서 착실히 수련하면서 한 가지 큰 결함을 수보했고 동시에 수보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지혜는 또한 미래 신우주(新宇宙)의 원용불멸(圓容不滅)에 필요한 것이 아닌가!
이상은 대법제자가 착실한 수련을 통해 깨달은 것으로 이를 써내어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1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