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시보
【정견망】
제 이름은 사수분(謝秀分 셰슈펀)이고 올해(역주: 1998년) 53세입니다. 하북성 한단(邯鄲) 농촌 출신이며 군인 가족입니다. 남편은 301 병원에서 40년 넘게 배관공으로 일했고 지금은 은퇴했습니다.
저는 무려 16년 동안 하반신 마비를 앓았지만 리훙쯔(李洪志) 선생님께서 제 인생의 길을 다시 배치해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1979년, 하북성 한단의 어느 농촌 공사 병원에서 불임 수술을 받았습니다. 병원에 갈 때는 멀쩡하게 자전거를 타고 갔지만 요추 부위에 마취제를 맞고 수술받은 후로는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되어 16년 동안 병상에 누워 지내야 했습니다. 301 병원에서는 척수 손상과 편마비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저는 현재 장애인연합회에서 발급한 하지마비 장애인 증명서를 갖고 있습니다. 마비의 고통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당시 이미 네 자녀가 있었는데, 막내는 겨우 두 살이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생활할 수 없어 어머니께 전적으로 의지해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또 다섯 식구가 있었고, 끝없는 농사와 집안일을 하셔야 했습니다. 아이들을 돌봐야 했을 뿐만 아니라 저를 돌봐야 했기에 어머니는 지치셨습니다. 저는 종종 눈물이 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 고통이 대체 언제쯤 끝날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쥐약을 먹고 자살할 생각까지 했지만, 가족을 위해 살아 남았습니다.
남동생이 결혼한 후, 저는 더 이상 부모님 댁에 머물 수 없게 되었습니다. 1989년에 군에 입대하여 북경으로 이사했습니다. 당시 남편의 월급은 40~50위안밖에 되지 않았고, 여섯 식구가 함께 살다 보니 먹는 것조차 버거웠습니다.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남편이 직장에서 피곤하게 일하고 퇴근한 후에도 요리, 빨래, 아이들 돌보느라 늘 바쁘게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남편의 몫이었습니다. 그는 진정한 아빠이자 엄마였고, 또 저를 돌봐야 했습니다. 저는 울음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잠자리에 오줌을 누는 것이 두려워 먹고 마시는 것도 줄였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침대에 오래 누워 있을수록 위축성 위염, 관상동맥 심장병, 고혈압, 식도염, 대장염, 경추척추염, 항문열상 등 열두 가지가 넘는 질병이 생겼습니다. 다리와 목을 움직일 수 없어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한번은 목이 말라 물컵을 찾았지만 손을 뻗어도 닿지 않았습니다. 손을 더 내밀다 그만 침대에서 떨어져 이가 하나 빠졌고 바닥에 꼼짝도 하지 못한 채 누워 있어야만 했습니다. 남편이 퇴근 후 집에 돌아온 후에야 다시 침대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고, 정말 죽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당신한테 짐만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어요!”
남편이 위로하며 말했습니다.
“아빠가 아무리 잘해도 엄마만은 못해요. 당신이 죽으면 우리 네 아이들은 어떻게 하라고? 당신이 평생 누워만 있어도 내가 평생 돌봐 줄께. 이렇게 하면 늘 온전한 가정을 꾸릴 수 있어! 좋은 의사를 찾으면 내가 당신을 꼭 고쳐줄께.“
그래서 여러 대형 병원에 입원해 봤지만, 명망 있는 의사들조차 제 병을 고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고통에 몸부림쳤습니다…
이렇게 16년이 흘렀습니다. 1996년 4월, 여동생이 부부가 함께 파룬따파를 수련하는데 아주 좋다고 했습니다. 여동생은 “파룬따파를 수련하면 무슨 병이든 다 사라져. 언니 이런 병쯤은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몹시 기뻤지만, ‘선생님을 직접 뵙지 않고도 가능할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동생이 “가능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게 《전법륜》을 보내주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심하게 아픈데, 사람들이 날 받아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그래서 저는 먼저 다리를 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벽에 기대 서서 《전법륜》을 읽었습니다. 몇 분에서 10분까지 읽다가 바닥에 쓰러지면 무릎을 꿇고 읽었습니다.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연마하니 3개월 훈련한 후, 다리가 전보다 튼튼해졌고 더 오래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어느 날, 남편에게 휠체어를 밀고 모(某) 회사 연공장으로 가달라고 했습니다. 책임자인 노안(老安)이 물었습니다. “어디 병이 있나요?“
저는 “저는 병이 없습니다. 병이 없어요!”라고 반복해서 대답했습니다. 그는 미소만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조금 편해졌습니다. 저는 서쪽 끝에 조금 떨어져서 서서 혼자 수련하며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중에 그들이 제게 와서 연마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마침내 마음을 놓았습니다. 저는 이 날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1996년 7월 1일, 저는 정상인처럼 연공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연공을 시작하면서부터 저는 《전법륜》의 요구에 따라 했고 자신에게 병이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법 공부와 연공을 꾸준히 했습니다.
두 달 후, 몸이 아프거나 가렵지 않았고, 이전에 앓았던 모든 병이 다 나았습니다. 다시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체중도 늘었으며, 다리에 갈수록 힘이 생기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1년 동안 휠체어를 타고 연공장에 다녔습니다. 어느 날, 남편과 상의해 지팡이를 짚고 연공하러 가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걷는 것이 힘들었고, 남편이 옆에서 나를 지켜보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줄곧 혼자 걸어가겠다고 고집했습니다.
이런 상태가 약 3개월 더 지속되었습니다. 1998년 2월 2일, 저는 지팡이를 짚고 남편과 함께 단체 법 공부를 하러 갔습니다. 법 공부가 끝난 후, 저는 남편더러 집에 가서 아이들 밥을 먹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천천히 혼자 걸어 갔습니다. 얼마 걷지 못했는데, “내려놓아라! 내려놓아!”라고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저는 누군가 나를 부르는 줄 알고 돌아섰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는 입을 가리고 당황한 얼굴로 돌아갔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를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그날 저녁, 나는 계속 이 일을 생각했습니다. 안(安) 동수 집에서 우리 집까지 걸어가는 데 45분이 걸렸는데, 나는 계속 “내려놓아라!”라고 소리쳤는데 대체 왜 이 단어를 계속 외쳤을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서 어떻게 대법을 널리 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다음 날 아침, 저는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비틀거리며 집 안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아! 할 수 있구나.”
남편이 저를 보면서 불안한 듯 말했습니다.
“당신 미쳤어? 뭐 하는 거야? 넘어지면 큰일 나.”
하지만 저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지팡이를 버리고 걸어갈래요! 봐요, 좋잖아요!”
그때부터 저는 지팡이를 버리고 연공장에 갔습니다.
이날, 공우(功友)들은 제가 발을 뒤뚱거리며 자신들에게 걸어오는 것을 보고 모두 놀라서 웃으며 제가 다시 일어선 것을 축하했습니다! 저는 너무 감동해서 정말로 큰소리로 외치고 싶었습니다. “나는 일어났다! 리 선생님께서 나를 구해주셨다!”
저는 매번 선생님 사진을 볼 때마다 울고 싶어집니다! 《전법륜》을 읽을 때면 웃음이 나고, 때로는 큰 소리로 웃기도 합니다. 제가 어찌 리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견정하게 계속 수련해 나갈 겁니다.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두렵지 않습니다! 가부좌할 때 5kg 짜리 역기 두 개로 다리를 눌렀는데,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났습니다. 지금 저는 가부좌를 한 시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올해 2월 3일부터 다시 걷기 시작했고, 법 공부와 연공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새처럼 날아가고 싶은데 대부분의 사람은 저보다 빨리 걷지 못합니다. 이것은 바로 제 몸에서 확실하게 발생한 파룬따파의 사실입니다!
(《중국경제시보(中國經濟時報)》 1998년 7월 10일 기사)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74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