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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얻기 전과 후 (상)

호북 대법제자 명월(明月) 구술

【정견망】

나는 원래 대중 속의 평범한 사람이었다. 다행히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접하게 되면서 내 삶은 깊은 변화를 겪었다. 평범한 인생이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수련은 내 몸을 변화시키고 심령(心靈)이 승화되었다. 아래에서 내가 법을 얻기까지의 여정을 사부님께 간략히 보고드린다. 부당한 곳이 있다면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1. 우연히 법을 얻었으나 큰 수확

내가 법을 얻게 된 경험은 매우 우연한 일처럼 보인다.

1997년 6월 18일, 딸 친구 부모님이 파룬궁이 훌륭한 수련법이라며 내게 수련을 권했다. 나는 즉시 동의했다. 나중에 강둑에 연공장이 있는 것을 보고 따라서 연마했다.

처음 연공할 때는 부끄럽지만, 파룬따파가 우주의 고덕대법(高德大法)임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파룬궁에 대해 초보적인 이해만 있었다. 일주일 만에 수년간 나를 괴롭혔던 심한 경추증이 사라졌다. 경추를 눌러도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괜찮았다. 인후염도 고질이었는데, 의사는 약물로 일시적인 호전은 몰라도 치료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가끔은 가벼운 감기에도 인후염이 악화되어 주사를 맞곤 했다. 한번은 의사가 주사를 세 번 맞으라고 했는데 두 번밖에 맞지 않았다. 효과가 나타나자 세 번째 주사는 건너뛰었다. 그 결과 기침이 계속되었고, 세 번이나 주사를 맞아야 했다. 당시 나는 경제적으로 어려웠음에도 병원에 자주 다니느라 생활은 아주 검소하게 살아야 했다.

하지만 연공하고 나서 병이 완전히 낫자, 일과 생활은 점점 더 정상화되었다. 얼굴의 주근깨는 금세 저절로 사라졌고, 한 병에 120위안이나 하는 주근깨 크림은 버렸다. 연공과 법 공부 외에도 가끔 파룬따파 음악인 “보도(普度)”와 “제세(濟世)”를 들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1999년, 중공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하자 나는 수련 환경을 잃었다. 게다가 마음속 깊이 법을 배우지 않았고, 정(情) 때문에 포기하고 연공을 중단했다. 사악은 또 나를 박해했고, 남편은 바람을 피웠다. 내연녀의 시누이가 전화를 걸어왔는데, 나는 너무 화가 나서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고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수면제 다섯 알을 한꺼번에 먹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45kg이었던 체중이 갑자기 38kg으로 줄었다. 날마다 울었고, 너무 많이 울어서 직장에도 갈 수 없었고 수련에 집중할 수 없었다.

2. 두 차례 점화와 사부님의 고달픈 마음쓰심

수련을 포기한 후에도 마난(魔難)은 멈추지 않았다. 남편은 곧 나와 이혼했다. 이번에 나는 울지도 않았고, 소란도 피우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가 이혼한 사실을 몰랐다. 내연녀가 기숙사 앞까지 찾아와 고함을 지르며 이미 혼인 신고서를 받았고 결혼증서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즉 나더러 자신을 이해하고 소란을 피우지 말라는 뜻이었다. 직장 상사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내가 너무 좋고 선량하다고 칭찬했다. 나는 다투거나 소란을 피우지도 않았고 아무도 모르게 남편과 이혼했다.

사부님의 두 차례 점화 이후 나는 다시 법을 얻었다. 수련을 포기한 후 나는 병마에 시달렸다. 끊임없이 약과 주사를 맞았지만 몸에 성한 곳이 없었다. 돈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약과 주사를 끊고 참아야 할 때도 있었다. 이혼 후, 기숙사에 살던 이웃들이 나를 돌봐주겠다며 마작을 하자며 집에 찾아왔다. 그들은 내게 돈을 좀 주었고, 나는 그들에게 점심을 만들어 주었다.

한번은 마작을 하는 사람들이 준 100위안 지폐로 채소를 사러 시장에 갔다. 생선 장수의 손이 젖어 있었는데, 지폐를 꽉 쥐고 물에 적신 후 이 돈은 가짜라고 말했다. 시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경찰에 신고해서 나를 체포하겠다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그저 욕설만 퍼부었다. 나는 그런 엄청난 굴욕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틀 후, 생선 장수에게 묻자 그는 “어떻게 가짜일 수 있겠어요? 돈을 다 써버렸는데.”라고 말했다.

며칠 후, 마작을 하던 한 여성이 200위안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녀는 가방을 뒤집어 보여주었고, 돈이 사라졌다고 했다. 어떤 때는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안방에 들어가지 않았고 나만 들어갔다고 말했다. 나는 변명할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너무 억울하고 속이 상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밤새 울었다. 다음 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다음 날, 그들은 “아, 실수였어, 실수야. 돈은 잃어버리지 않았어.”라고 말했다. 나는 밤새 울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어머, 눈이 팅팅 부었네!”라고 말했다.

언제나 이런 상황이 끝날까? 나는 문득 파룬궁(法輪功)이 떠올랐다. 나는 아직 파룬궁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파룬궁만이 이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고, 파룬궁만이 내게 희망을 줄 수 있다.

2005년 7월 20일, 6년의 시간을 허비한 끝에 나는 다시 수련을 시작했다. 당시 나는 양손으로 파룬을 돌리는 방향도 반대로 했고 거의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연공 시간이 되어도 여전히 게을러서 누군가 “일어나서 연공해야지!”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바로 사부님께서 외치신 것이었다. 오직 사부님만이 늘 나를 아껴주셨다. 1997년, 연공할 때도 사부님께서 “일어나서 연공해야지!”라고 외치신 적이 있는데 나는 즉시 일어났다.

때때로 그런 우울한 과거 일들이 생각나면 마음속으로 다시 회생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미 마음속에 법(法)이 있었다. 수련을 시작하자마자 그런 집착을 버리고, 원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았다. 수련을 시작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되었는데, 사람들이 “왜 이렇게 달라 보여요?”라고 물었다. 모두 나를 신기한 듯 쳐다보았고, 내 얼굴도 달라졌다. 마치 한낮의 먹구름이 걷힌 듯, 한결 가벼워진 기분으로 걸을 수 있었다. 정말 기뻤다.

3. 사악의 소란을 부정하고 중생이 대법에 죄를 짓지 못하게 하다

세 가지 일을 잘하지 못하고 모든 것은 다 법 공부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집에서 법 공부를 했고, 때로는 단체 법학습에도 참여했다. 직접 만나서 진상을 알리고, 진상 스티커를 붙이고, 전단을 돌리고, 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또한, 동수들과 함께 나가서 직접 진상을 알리기도 했다. 정법 노정에 따라 이후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한 장쩌민 소송에 나도 실명으로 동참했다. 세 가지 일을 모두 했지만, 사부님의 요구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파룬궁은 사람을 반본귀진(反本歸真)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는 늘 “이렇게 좋은 사부님과 이렇게 좋은 법이 있는데 사부님 말씀 외에 누구의 말을 듣는단 말인가? 파룬궁은 정법(正法)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중공을 탈퇴하면 어떤 이익이 있는지 묻는다. 그러면 나는 백 년 후 가는 곳이 달라진다고 말하는데 지옥에 가지 않을 것이다. 그 젊은이는 이 말을 듣고 비웃었다.

일반적으로 파룬궁이 병 치료 및 건강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나는 말은 잘 못하지만,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진상은 알리려 하는데 “천안문 분신 자살”은 가짜인데, 화상 환자는 붕대로 감쌀 수 없고,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질러도 머리카락이 타지 않는다는 등을 말한다.

2021년 팬데믹 이후, 중국 공산당의 소위 “제로화 행동” 기간에 두 달 반 동안 정부와 사구 공무원들이 거의 매주 우리 집을 찾아와 반복적으로 괴롭혔다. 나는 그들이 지역 책임자와 정부 부서의 당 서기라는 것만을 알았다. 그들은 감히 이름조차 밝히지 않았고, 물어봐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들은 내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나는 그들에게 좋지 않을 테니 찍지 말라고 했다.

“지난번에 왔을 때, 우리 문에 붙어 있던 ‘진선인하오(真善忍好)’는 문구를 찢어 버리셨잖아요. 그 문구가 뭐가 문제죠?”

그들은 할 말을 잃고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말했다.

“당신들은 무엇을 하러 왔습니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저 하나를 괴롭히려는 겁니까?”

그들은 방을 둘러보더니 사부님 법상과 파룬이 있는 불당(佛堂)을 보자, 그 서기가 말했다.

“이곳에는 분명 보살들이 많이 계시겠네요.”

나는 “이분이 제 사부님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이 사부님의 함자를 말하자, 나는 “우리 사부님 존함을 함부로 부르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그들은 다시는 사부님 함자를 직접 언급하지 못했다.

그들은 와서 앉아 지루해하며 방을 둘러보더니 먹을 것을 찾았다. 냉장고도 뒤졌다. 그동안 나는 요리를 많이 하지 않았다. 가끔 양배추 한 봉지와 라면 몇 개만 있을 때도 있었다. 냄비도 뒤졌지만 음식은 많지 않았다. 그들은 “냄비에 기름도 없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당신들이 이렇게 사흘이 멀다 않고 계속 찾아와 괴롭히는데 어떻게 먹을 수 있겠어요? 당신들은 모두 염황의 자손이지 마르크스 레닌의 자손이 아닙니다. 그러니 잘못을 저지르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그들은 “사부님이 당신한테 돈을 주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돈을 주시진 않지만 건강한 몸을 주셨고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 주셨다고 말했다.

나중에 그들은 또 수련을 포기하는 문서에 서명하라고 강요했다. 심지어 누구누구도 이미 서명했다며 부채질했다. 나는 결코 인정하지 않았고 단호히 거부했다. 나중에 그들은 다른 사악한 술책을 써서 남동생이 집 짓는 것을 방해하고, 딸이 직장에 가서 괴롭히는 등 사악한 수단으로 위협하고 교란했다. 동생에게 엄청난 압력을 주면서 그들이 나를 설득하러 왔다. 나는 그들에게 나는 이미 서약에 서명했다고 말했다. 그들이 어떤 서약인지 물었고, 나는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는 서약이라고 말했다. 이 기간에 정진하지 않던 몇몇 노수련생들이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내게 말했지만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동생에게 나를 대신하여 서명하라고 핍박했다. 압력을 견딜 수 없었던 동생은 어쩔 수 없이 서명했다. 나는 이 일이 동생과 그들에게 모두 아주 좋지 않음을 알기에 몹시 마음이 상했다. 나중에 나는 동생이 강제로 서명한 문서를 무효화하는 “엄정 성명”을 작성했다.

음력 12월 20일경, 주민센터에서 몇몇이 “답방”한다면서 찾아왔고 또 300위안쯤 돈이 든 붉은 봉투를 가져왔다. 나는 그것을 받지 않았다. 그들은 내게 그들이 한 말을 인정하라고 했지만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속으로 알고 있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다음 날, 나는 그들에게 연락해서 나는 거짓말을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6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