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대법제자
【정견망】
사부님,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올해 85세이다.
어렸을 때 집이 가난해서 학비도 못 내고 중학교를 겨우 졸업했다. 어려서부터 수련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부처 수련을 향한 묵묵한 동경이 있었다. 마흔 살 때 아내에게 말했다.
“내 나이가 좀 많아지면 절에 가서 수련을 할 것 같다.“
그 당시 아내는 매우 불쾌했고 수련이 머리를 깎고 절에 가서 경을 읽고 목탁을 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에 나도 왜 수련을 하고 싶은지 몰랐다.
집을 사기 위해 두 가지 힘든 일을 했는데 너무 피곤해서 정규직을 그만두고 유리 가공일에 전념했다. 아침 일찍 나가고 저녁 늦게 돌아오며, 매일 5톤 이상의 유리를 옮겨야 했으니 매우 피곤했다. 그 결과 몸에 문제가 생겼다. 불면증, 혀와 입에 염증이 생기고 음식을 먹기 어려웠다. 심장에도 문제가 생겨 20일에 한 번씩 발작이 일어났다. 밤늦게나 새벽에 발작을 일으켜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죽을 것 같이 괴롭지만 매번 3~5분이면 지나갔다.
어느 날, 발병이 10분 동안 멈추지 않자, 맞은편 식료품점에 달려가 사장 아내에게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부인은 내 얼굴이 창백해진 것을 보고 감히 나를 태우지 못했고, 그때는 119를 부를 줄 몰랐다. 병세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타이베이로 가서 심장 권위 있는 의사를 찾아가 진료를 받았고, 1년 넘게 약을 먹었는데 많은 돈을 썼지만 심장병도 낫지 않았다. 친구가 나에게 한의사를 보러 가라고 해서 1년 넘게 한약을 먹었지만, 건강도 나아지지 않았다. 또 돈을 써서 기공을 배웠지만 역시 낫지 않아서 자주 사원에 가서 경을 읽고 불공을 드렸다.
1. 기쁘게 대법을 얻고 이웃의 인정을 받다
1998년 4월, 나는 한 장의 파룬궁 전단지를 보았다. 그 위에는 “고층 수련, 무료 공법”이라고 적혀 있었다. 속으로 이런 좋은 일이 어디 있어? 하면서 일단 시험삼아 나는 9일반을 들으러 갔다. 8일째 되던 날, 아내가 가기 싫다고 하자, 나는 “싫으면 우리 가지말자.” 다음 날, 나는 집에서 두 번째 공법 ‘푸젠포륜’을 연습할 때, 양손에 강한 전류가 흐르며 오른쪽 손가락의 전류가 왼쪽 손가락으로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약 30 초 지나서야 나는 이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계속 9일 반을 마쳤다.
대법을 얻은 후, 나는 법공부 장소를 찾아 법을 배우고 연공을 하기 시작했다. 다섯 번째 공법을 연마할 때, 동수는 내 온몸에 땀이 나고 얼굴이 하얗게 되었는데도 다리를 내려놓지 않는 것을 보고 웃었다. 사부님은 <전법륜>에서 “어떤 사람은 다리를 튼 시간이 조금 길어져도 견뎌내지 못한다. 일단 다리를 내려놓으면 연마(煉)는 헛된다.”
나는 헛되이 연마하지 않고, 이제부터 대법 수련을 견지하고 스승님을 따르기로 했다.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발정념을 하고, 법공부 장소에 가서 법을 배우고, 단체연공에 참가했다.
수련 후 나는 불면증도 없었고, 입에 염증이 생기지 않았으며, 심장병도 발병하지 않았다. 거친 일을 거침없이 해도 몸이 정정하고, 넓은 밭에 채소도 심었다. 처음 수련했을 때, 대법이 너무 좋다고 생각하여 이웃과 친지들에게 소개했는데, 그들은 모두 내가 미신을 믿는다고 나를 멀리했다. 20여 년 후, 이웃이 말하길, ”우리 동네에 당신 또래의 사람들은 죽거나 아니면 병원에 입원하거나 뇌졸중을 앓고 있어요.” 당신들은 파룬공을 연마하는 사람이 정말 다르군요, 부부 모두 이렇게 건강하니, 정말 지역사회의 모범적인 부부네요.“
사실 이 모두 대법을 수련하여 얻은 것이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2. 먀오리 열여덟 마을을 돌아다니며 진상을 말하다.
1999년 7.20, 사부님과 대법은 장쯔민 귀신 일당의 사악한 비방과 탄압을 받았다. 제자인 나는 실제 행동으로 법륜대법을 수호하고, 사부님의 결백을 증명하며, 법륜대법이 올바른 법이라는 것을 증명하여 조사세간행을 해야 한다.
그때 우리는 먀오리 열여덟 개의 마을을 돌아다니며 진상을 이야기하고 전단지를 배포했다. 노 수련생들이 경로를 계획할 때, 나는 동수를 태우고 먀오리 각 마을을 깊이 탐방했다. 그러던 중 개에게 물려 오른발 뒤꿈치에 물린 곳에 피가 줄줄 흘러 너무 아팠다. 나는 개에게 “내가 진 빚을 오늘 갚았다.”
휴지로 멍든 피를 짜냈는데, 이틀 후에 나았다.
나는 동수 부인이 전화로 진상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긴장해서인지 목소리가 커서 이웃에게 들릴까 봐 빨리 문을 닫았다. 부인은 “그럼 당신이 해보세요.” 나는 “하라면 하지요.”
뜻밖에 긴장하자 말하는 것이 천둥번개처럼 되어 내 아내가 문을 닫았다. 나중에 내가 말을 잘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부님은 《홍음2》〈가로막지 못하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련의 길은 같지 않으나
모두 대법 가운데 있도다
만사에 집착이 없으면
눈앞에 길은 스스로 열리리라
나는 막일만 할 수 있어서 먀오리현 18개 마을에서 “파룬따파하오”라는 간판을 걸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설치 비용이 높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직접 걸었다. 평소에 광고차를 몰고 골목골목에서 진상을 이야기했다.
나는 활동 팀에 속해 있어서, 행사를 진행할 때 많은 물건을 우리 집에 두는데 창고는 4층에 있다. 모든 간판을 1층에서 4층으로 천천히 옮겨야 하지만, 나는 고생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2년 전 션윈공연이 먀오리현에서 할 때, 나는 짐을 나르고 심부름을 맡았다. 최근에는 ‘국유 장기’ 영화 홍보에 참여하며, 광고차량을 몰고 거리 곳곳에서 방송하여 중생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있다. 몸이 건강하기 때문에 힘을 쓰는 데 문제가 없는 것이 나의 편리이다. 26년이 지나, 나는 광고차를 세 대 바꿨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부님.
3. 아이슬란드와 독일 발정념에 참여하다
2002년 6월, 장쯔민이 아이슬란드를 방문하려고 하는데, 우리 대만도 근거리 발정념을 하기 위해 단체를 결성했는데 나도 참가했다. 우리가 공항에 도착하여 입국하려고 할 때, 세관 직원이 우리의 입국을 거부하고 우리를 포위하여 구석에 몰았다. 현지 주민들은 이 소식을 듣고 삼사백 명이 잇달아 공항에 나와 항의했다. 결국 새벽이 돼서야 입국시켰고 그들이 피자, 주스, 음료수를 잔뜩 사와 허기를 채울 수 있었다. 나는 피자 처음 먹었는데 맛있었다.
이날 아이슬란드의 한 최대 신문은 1면에 중국어 제목 ‘죄송합니다’는 기사를 싣고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사과했다. 6월 14일, 현지 주민들은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3,000명의 대규모 시위를 열어 파룬궁에 대한 장쯔민의 인권 박해에 항의하고, 아이슬란드 정부의 잘못된 대우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기 위해 검은 천으로 입을 막았다. 현지 주민들은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매우 친절했다.
장쩌민이 독일에 가서 독을 퍼뜨리자, 나와 많은 동수들은 함께 발정념과 단식 투쟁을 하러 갔다. 장쯔민은 놀라서 얼굴이 굳어졌다. 한 경찰관은 강마두가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해 독일 대통령에게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을 다시 보게 되면 방문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시위대는 수백m 떨어진 곳에 배치돼 강귀신이 보이지 않도록 했다.
우리 《홍음3》〈어디로 도망갈쏘냐〉를 암송하자.
황급히 뒷문으로 돌아가거니
쓰레기 버리는 길이라
파룬따파 하오를 감히 바로보지 못하네
타격해도 무너지지 않고
보기 또한 두려워
도망가기 급급하거니
9평이 전해지자 사당(邪黨)이 무너지네
나는 해외에 갈 때 만두와 군용 건빵을 많이 가지고 간다. 외국 물건은 비싸서 직접 가져가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설사 만두가 거의 상해도 나는 먹는다, 어차피 굶지 않으면 되니. 출국하는 동안 나는 늘 기침과 콧물을 흘렸고, 계속 소업을 했다. 귀국할 때는 이미 코에 흉터가 생겼고, 아내가 하마터면 나를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소업은 모두 좋은 일이다.
이 외에, 이전에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홍콩에 가서 진상을 말하곤 했다. 나는 힘이 세서 수레를 밀고, 발정념을 하고, 현수막을 펼치고, 패널을 드는 일을 맡았다. 홍콩의 여러 관광지에서 《대기원시보》를 배포하고 있으며, 많은 중국 본토 관광객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와서 진상을 본다. 신문을 나눠주기 어려우며 사람마다 다 가져가지 않는다. 그럼 나는 말한다: “좋은 사람은 좋은 신문 보세요!” 금방 다 보냈다.
4. 난을 지나가다. 사부님의 보호에 감사드립니다
2004년 《9평》이 나온 후, 그때 나는 이미 은퇴했고, 편리한 조건이 있어 동수와 함께 방송차를 몰고 여기저기 《9평》 특집호와 방송을 보냈다. 나는 발이 빠르므로 내가 나눠주며 동수는 운전을 맡았다.
어느 날, 차가 먀오리현의 퉁뤄향과 싼이향 사이에 도착했을 때, 동수가 졸아서 광고차가 도로에서 2미터 깊이의 논으로 빠져들어 몇 바퀴를 돌았다. 차 앞 유리가 깨지고 차체가 납작해졌다. 운전하던 동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쇼크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가슴을 급히 세 번 두드렸고, 그는 숨을 한 번 쉬자 바로 깨어났다.
우리 두 사람은 차에서 뚫고 나왔는데, 큰 문제는 없었고, 단지 온몸이 진흙투성이였다. 도로에서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었고, 경찰도 와서 우리에게 구급차를 부를지 물었다. 동수가 괜찮습니다, 저희는 다치지 않았어요. 경찰은 “당신들이 차를 들어 올린 뒤 벼를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말하고 가버렸다.
내가 옆 도랑에 세수를 하러 갔더니 이마에서 5센티미터 길이의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마도 유리에 베인 것 같았다. 지혈 후, 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견인차를 운전하는 동수와 연락하여 차량을 끌어올려 수리 공장으로 갔다. 진상 자료를 먀오리시에 있는 동수에게 보내야 해서, 집에 가서 깨끗이 씻은 후 오토바이를 타고 자료를 보냈다. 동수는 ”어떻게 자료에 흙이 묻었어요?”
나는 “아침에 교통사고가 났는데 사부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한 번은 집에서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 주저앉았다. 동수인 아내가 물었다.
“왜 거기 쭈그리고 앉아 있어요?“
”어지러워요.”
그녀는 즉시 나에게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를 외우라고 했다.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 하오”를 외우자 나는 즉시 어지러워지지 않았다.
5. 안으로 찾아 하카족(주: 중국 남부, 타이완 등에 있는 한족의 일파) 가부장주의를 제거해 버리다
수련 전 아내는 늘 말했다. “다음 생에 태어나면 사내와 결혼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주 얻어 맞고, 몰상식적하다고 지적받아 매우 힘들고 피곤하다고 했다.
당시 나는 그 말을 들으면 매우 화를 냈다:
“내가 어디가 나빠? 나는 매우 표준적이고, 나쁜 습관이 없어. 등불을 들고도 이렇게 좋은 남편을 찾을 수 없는데, 아직도 나를 싫어해?“
수련 후 안으로 찾을 줄 안다. 손녀를 돌볼 때, 아내가 하루 종일 바쁜 것을 보고 나서야 수십 년 동안 그녀가 이렇게 고생했던 것을 생각했다. 우리 세 아이가 어떻게 자랐는지 나는 모른다. 아내는 나와 함께 일해야 하고, 유리 5톤을 옮기는데도 끌어야 했으며, 집에 돌아가서는 집안일도 하고, 요리도 하고, 아이도 돌봐야 했다. 나는 샤워를 하고 밥을 먹기만을 기다렸지만, 그녀의 고생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나는 당신이 수십 년 동안 매우 힘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나는 당신에게 잘 대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집안일을 시작했다. 바닥을 닦고 밥을 짓는데 너, 나를 구분하지 않았다. 아내는 재료를 준비하고, 나는 만두, 완탕, 하카 요리 만두를 빚어 그녀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후회 없이 가부장적 태도를 버렸다.
원래 머리가 벗겨진 상태에서 머리카락이 자라기 시작하고 검은 머리도 많아졌다. 어쩌면 내가 집착을 내려놓자 몸과 마음의 상태가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사부님은 “그러나 내가 말하는데, 한 수련인으로서 자기를 느슨히 해서는 안 된다. 가장 간고한 길을 당신들은 모두 걸어지나왔고, 가장 어려운 때에도 당신들은 해냈다. 자기의 이 길을 잘 걷기가 말하기는 확실히 아주 쉽지만, 해내기는 확실히 매우 어렵다. 그러나 어떻게 어렵든지 간에, 당신은 이 일을 위해 왔다. 어떻게 어렵든지 간에, 당신의 생명은 바로 이 일을 위해 성취되었다.”(<각지설법 15><2018 워싱턴DC 설법>)
사부님, 감사합니다, 이번 생에 파룬따파를 수련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부님께서 주신 은혜를 더욱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이상이 나의 평범한 수련 과정이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동수들은 자비로이 지적을 바란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동수님들 감사합니다!
(2025년 대만법회 심득교류 원고)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0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