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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 알리기 시리즈 1: ‘왜 그런가’에 대한 답변

한망(寒芒)

【정견망】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의 사고방식은 대법 법리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되며, 실천과 착실한 수련(實修) 속에서 대법은 더 깊은 법리를 드러내 준다.

법에서 내가 이해하기에 우주의 이치는 위에서 아래까지 관통되어 있으며, 높은 층차의 이치가 인류 사회까지 관통되어 있기에 반드시 인류의 언어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점이다.

1. 우리가 누군가를 깊이 사랑할 때, 그를 난처하게 만들기보다는 그를 이루어주고 싶어 한다. 만약 시험 문제를 낸다면 그가 “통과할 수 있는 것”만 나오게 할 것이다.

왜 삼퇴를 하고, 파룬궁 진상을 이해하며, 진심으로 구자진언을 외우는 것만으로 이토록 간단하게 구도받을 수 있는가?

그것은 신(神)이 세상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인데 신은 사람을 구하러 오신 것이지, 사람을 곤란하게 하려고 오신게 아니다.

파룬따파가 억울한 누명을 쓴 시기에 이 세 가지를 해낼 수 있다면, 그것은 귀중한 선념(善念)을 가진 것으로 간주된다. 너무 간단하다고 해서 이 만고의 기연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2. 왜 삼퇴 해야 하는가

맹세는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데, 특히 독한 맹세는 더욱 그러하다.

역사적으로 독한 맹세를 한 뒤 정말로 “벼락을 맞거나” “비참하게 죽은” 사례들이 아주 많다.

공산당 입당 선서에 “당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를 갖추고, 영원히 당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있다.

‘모든 것’에는 당연히 건강, 재물, 육친정, 장기, 영혼 등이 포함된다.

이것이 독한 맹세다.

삼퇴란 이 독한 맹세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삼퇴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자 또 자신을 구하는 것이다.

3. 신통(神通)에 관하여

1) 만약 모든 것을 신통과 법력으로 해결한다면 석가모니는 왜 49년 동안 고생스럽게 법을 전했겠는가? 노자께서는 왜 《도덕경》을 남겼겠는가? 왜 사람을 직접 하늘로 데려가지 않는가?

속세에 떨어져 먼지에 오염되면 산처럼 무거워지는데, 어떻게 하늘로 돌아가겠는가?

리 대사께서 고생스럽게 학습반을 여시고 파룬따파의 공리와 공법으로 사람의 선념(善念)을 일깨우며 사람의 건강을 이롭게 하신 것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바로잡기 위함이다. 이것이 바로 정법(正法)정도(正道)를 전하는 방식이다.

2) 무신론에 심각하게 세뇌된 사람에게 신통을 크게 논하는 것은 어린 아이에게 미적분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 이는 생명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훼손하는 일이며, 그 아이는 영원히 배움을 싫어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든 마음을 고용히 하고 《전법륜》을 읽는다면, 사회 계층이나 신앙 여부에 상관없이 이 책이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책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리 대사님의 중생에 대한 자비다. 점진적인 학습과 실천 속에서 수련자 스스로 인식하고 체험하게 하신 것이다.

3) 개미가 상자 속에 갇혀 있을 때는 상자가 세상 전부인 줄 안다.

사람이 과학이라는 틀 속에서 기어 다닐 때는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신이 사람을 구도하러 오면서 왜 신통을 크게 드러내지 않으시는가?

신앙이란 여태껏 증명하는 문제가 아니라 선택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우주 대법이 바로 당신 앞에 있는데, 당신은 믿는가, 믿지 않는가?

신이 제자를 파견해 당신을 하늘로 구하려 하시는데, 당신은 가려 하는가, 하지 않는가?

4. 어떤 이는 묻는다. 파룬궁이 좋다면 집에서나 할 것이지 왜 압력을 무릅쓰고 밖에 나와 알리는가?

눈보라 치는 날, 누가 화로 앞에 앉아 차를 달이며 책을 읽고 매화를 감상하고 싶지 않겠는가?

다만 사악한 당의 매 차례 악행은 인류의 도덕적 한계선을 시험하는 것이며, 양보해서 얻는 것은 그것이 움츠러드는 것이 아니라 방자한 권력의 확장뿐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보지 못했는가. 실종된 아이의 장기가 적출되고, 젊은 아들이 보이스피싱 범죄 단체에 속아 넘어가는 것을.

먼 곳에서 비통한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공산 붉은 마귀가 사라지지 않았는데, 인간 세상이 어찌 평안할 수 있겠는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