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뒤늦은 안으로 찾기

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처음 동수가 나에게 안으로 찾는 심득을 써보라고 권했을 때, 나는 쓸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집필 소조에 참가한 지 1년여 동안 많은 것을 배웠고, 물론 자신의 많은 문제점도 발견했지만, 소조 안의 상호 관계가 상당히 화목했기 때문이다. 또한 모두 나에게 매우 관대했으며, 특히 나의 큰 문제점인 꾸물거리는 습관을 잘 참아주었기에 안으로 찾는 것에 관해 공유할 만한 체득이 별로 없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것 같았고, 나를 집필 소조에 참가하게 안배해 주신 사부님께 매우 감사드렸다.

나중에 소조의 갑(甲) 동수와 반년 전 나로 인해 발생했던 충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스스로 그 일을 매우 평온하게 대할 수 있다고 여겼는데, 유일한 후유증이라면 동수 을(乙)의 문장에 대해 어떠한 의견도 내지 않게 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각과 사고방식이 늘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동수 갑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당신은 속은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즉시 알아차렸다. 당시 우리는 안으로 찾는 교류 원고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그 후 며칠 동안 각지 설법을 공부하면서 사부님께서 어떻게 안으로 찾아야 하는지, 왜 안으로 찾아야 하는지에 대해 반복해서 말씀하고 계심을 발견했다. 나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것은 다음의 두 단락 설법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싱가포르 법회 설법》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우리는 흔히 어떠한 일에 부딪히면 모두 밖을 본다. 당신은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가? 마음속에 일종의 공평치 못한 느낌이 들어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데, 이것이 모든 생명의 가장 크고 치명적인 장애이다. 과거 일부 사람들이 말하기를 수련해 올라가지 못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수련해 올라갈 수 있는가? 이는 제일 큰 장애로서, 누구도 모순 속에서 자신을 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가 받은 고통과 당한 불행을 자신에게서 찾고, 자신의 어느 곳이 잘못되었는지를 찾는다는 것은 정말로 하기 매우 어렵다. 만약 누가 할 수 있다면 나는 이 길에서, 수련하는 이 길에서, 당신의 영원한 생명에서, 당신을 가로막을 어떠한 것도 없다고 말한다. 정말 이러하다.”

사부님께서는 또 《각지 설법 13》 〈2015년 뉴욕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안을 향해 찾지 않는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것은 바로 속인이 아닌가. 속인은 누가 안을 향해 찾는가? 안을 향해 찾는 속인이 어디 있는가? 어떠한 모순에 부딪히면 ‘나는 나 자신의 어디에 잘못이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하면서 정말로 똑똑히 생각해 본 후, 그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한마디 한다.”

이 두 단락의 법을 공부한 후, 나는 다시 소조 내의 그 충돌을 떠올렸고 자신이 정말로 안으로 찾지 않았음을 느꼈다. “상대방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다음은 그 충돌에 대해 안으로 찾은 후의 몇 가지 느낌과 체득을 동수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갑작스러운 충돌

일의 발단은 매우 간단했다. 나는 소조의 진상 원고에서 흔히 사용하는 좋은 단어 하나가 속인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보았다. 중공이 주장하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주재한다는 설에 우리가 찬성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기에, 그 단어를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자신이 옳다고 굳게 믿었으며, 나의 출발점이 진상을 듣는 속인에게 책임지는 것이라고 여겼기에 말투가 상대적으로 단호했다.

동수 을은 그 문장의 작성자였고, 그 문장은 이미 오랫동안 사용해 왔다. 소조에서 전화를 거는 동수들도 테스트 결과 효과가 매우 좋고 공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여겼다. 그러나 나는 바로 그 공감이 상대방의 ‘내 명은 내가 정한다(我命由我)’는 생각을 강화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느꼈기에, 그 문장을 더는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동수 을은 매우 불만스러워했다.

나는 동수 을의 반응이 매우 격렬하다고 느꼈지만, 수련자로서 다른 사람과 다투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속으로 ‘정 안 되면 사과하고 짧게 설명하고 끝내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말을 다시 써서는 안 된다고 고집했다.

그 후 소조 내에서 몇 차례 논쟁이 일어났다. 솔직히 말해서 당시 나는 동수 을의 메시지를 읽는 것이 조금 두려워 가능한 한 회피하려 했지만, 평온을 유지해야 한다고 자신을 타일렀다.

안으로 찾기

이제야 깨달았지만, 당시 나는 진정으로 안으로 찾지 않았고 단지 표면적인 평온만 유지하고 있었다. 깊이 파헤쳐 보니 나의 문제점은 꽤 많았다.

1. 게으름: 동수 을이 불만을 품게 된 첫 번째 점은 왜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에야 문제를 제기했느냐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동수들에게 감히 말하지 못했는데, 주요 원인은 내가 너무 게을렀기 때문이다. 예전의 많은 진상 원고를 제대로 보지 않았고, 동수들이 효과가 좋다고 하니 그냥 좋은 것이라 여기며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다른 업무 때문에 자세히 읽어야만 했고, 그때서야 이것이 원칙적인 문제라고 느껴 다른 동수들에게 조언을 구한 뒤 확실히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제기한 것이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미루어온 것은 분명 나의 잘못이었다.

2. 두려움: 나는 다른 사람과 충돌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상대방의 격렬한 반응을 보고 표면적으로는 자신의 태도 등에 대해 사과했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으며 견지해야 한다고 여겼다.

3. 다른 사람을 얕보는 마음: 나는 동수 을의 당시 반응이 다소 이해할 수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상대방과 소통하여 오해를 풀어야 한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했다.

4. 위사(爲私),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하는 마음: 우리는 모두 문자로 메시지를 주고받았기에, 나는 상대방의 글을 읽을 때 상대방의 출발점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나의 감정을 이입했다. 해석 역시 자아로부터 출발했으며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았다. 가령 상대방 역시 진상 알리기의 효과를 더 좋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식의 생각 말이다. 만약 당시 그렇게 생각하고 더 나아가 설명했다면 상대방의 불안감을 줄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우리의 목적은 진상 알리기의 효과를 높이는 것으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5. 정체를 생각하지 않음: 나는 상대방이 내 수정을 원치 않으니 그냥 원하는 대로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 이면에 오기가 섞인 쟁투심이 있었고, 심지어 아직 인식하지 못한 다른 마음이나 회피하려는 선하지 못한 마음이 있었음을 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이런 심태가 소조 동수들 사이에 간격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은 생각하지 못했다. 나의 고려는 여전히 자신으로부터, 사(私)의 각도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배운 점들

이번 충돌을 다시 회상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1. 왜 나에게 상대방의 그토록 격렬한 반응을 겪게 하셨는지 아직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이처럼 영문 모를 격렬한 반응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런 상황에서 동요하지 않는 법을 배우고, 특히 여전히 상대방을 배려하며 상대방의 입장에서 선하게 대할 기회를 주신 것 같다.

2. 자신의 생각으로 상대방의 언행에 대한 출발점과 목적을 단정 짓지 말아야 한다. 사람마다 겪어온 과정과 생각이 다르므로, 때로는 선의로 물어보는 것이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는 길이다.

3. 다른 사람의 좋은 면을 많이 보아야 한다. 나는 소동파와 불인(不忍) 선사의 대화(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는 일화)를 떠올리며 자신을 경계하곤 한다. 내가 상대방이 좋지 않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단지 나의 심태가 좋지 않아 상대방의 언행을 좋지 않게 보는 것일 수 있다.

4. 하늘의 공을 탐해서는 안 된다. 내가 쓴 글이 수정된 후 원래보다 못하다고 느껴질 때 마음속으로 다소 불만이 생기곤 했다. 그래서 자신을 일깨워야 한다고 느꼈다. 수정된 것이 더 나은지 여부를 떠나, 설령 자신이 어떤 일을 해냈고 좋은 효과를 거두었다 해도 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다. 만약 효과가 좋지 않다면 그것은 반드시 자신의 수련에 누락이 있는 것이니 제대로 수정해야 한다.

5. 스스로를 가두지 말아야 한다. 좋은 효과가 있는 것은 당연히 좋지만, 만약 좌절을 겪거나 다른 사람이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처럼 보일 때, 그것을 한 걸음 물러나 넓은 세상을 바라볼 기회이자 제고하는 계단으로 여겨야 한다. 솔직히 나는 진상을 알리는 것이 어떤 특정한 한 문장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법(法)이 이토록 크니 우리의 지혜도 무궁무진할 수 있다. 만약 이 길로 통하지 않거나 잘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방해물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길을 바꾸라는 뜻일 수 있고 새로운 길의 풍경이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다. 초심만 변하지 않는다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는데, 왜 자신이 고수하는 것, 자신이 좋다고 여기는 것만을 고집하다가 제고하고 더 좋은 방안을 얻을 기회를 놓쳐야 하겠는가?

6. 자신의 득실만 따지거나 감정에 이끌리지 말고 정체를 위주로 해야 한다.

7. 협력하는 동수들 사이의 성격과 생각이 다른 것은 오히려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해 줄 수 있다. 우리의 목표는 일치하지만 구도해야 할 속인들은 제각각이기 때문에 사고를 넓힐 수 있다. 만약 모두가 각자의 장기를 발휘한다면 더 많은 속인을 포용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 서로 화합하면서 각자의 개성을 존중)”이라 했다.

8. 옛사람들의 이야기와 언행을 볼수록 그들의 겸손, 도량, 관용, 예절을 배워야 한다. 이 역시 “진선인(眞善忍好)”의 한 가지 체현이다.

9. 타인을 선하게 대하는 것이 곧 자신을 선하게 대하는 것이다.

10. 수련 중에 자신의 제고를 가로막는 것은 바로 사람의 관념이다. 내려놓는 관념이 많을수록 수련의 절묘함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반년이 지나서야 진지하게 안으로 찾을 생각을 하니 매우 부끄럽다. 현 단계의 체득을 적어두는 것은 스스로 경각심을 주고, 앞으로 자아를 옳다고 여기는 마음을 잘 제거하며, 다른 사람을 더 많이 배려하고 선하게 대하기 위함이다. 특히 모든 기회를 이용해 안으로 찾아 자신을 제고할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희망한다.

사부님의 고심 어린 안배와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드립니다!

동수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