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나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가정을 이룬 후 여덟 살 된 딸을 두어 현재 초등학교 2학년이다. 그들 세 식구는 따로 살고 있다. 설이나 명절, 생일 때나 함께 모이고 보통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들 집에 가지 않는다. 각자 할 일이 있고 용건이 있으면 전화로 소통한다.
이제 아들과 며느리는 서른이 훌쩍 넘었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개성이 비교적 강하다. 함께 일상 대화를 나눌 때 나는 늘 그들의 생각에 맞춰 말하며 충돌하지 않으려 했는데, 선(善)을 닦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에 기반하다 보니 말을 할 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사상은 무신론, 진화론, 현대의 변이된 관념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바른 것을 말하면 겉으로 대들지는 않아도 속으로는 내가 어리석고 낙후되었다고 여긴다. 논쟁이나 갈등이 생길까 봐 말할 때 그들의 눈치를 보게 되고, 혹시라도 말이 지나쳐 그들을 불쾌하게 할까 봐 늘 전전긍긍했다. 수련하기 전에는 이렇지 않았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며 거리낌이 없었는데, 이제는 이런 상태가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무엇이 부족한지 몰라 오랫동안 바꾸지 못했다. 그들 앞에서 기를 펴지 못하는 것 같아 가급적 접촉을 피하고 싶었다.
그동안 아이들은 나의 수련을 지지해주었고 삼퇴(三退)도 했으며, 평소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자주 외우라고 하면 그러겠다고 대답하곤 했다. 그러다 얼마 전 발생한 한 사건을 통해 나는 더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두 달 전 손녀가 걸을 때 다리가 좀 아프다고 했다. 며느리가 인터넷을 찾아보더니 성장통이라며 칼슘제를 좀 먹이면 된다고 했다. 며칠이 지나도 효과가 없자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오른쪽 무릎 반월판에 손상이 있어 미세 절개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아들과 며느리는 어린 아이가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 아파하며 서둘러 아는 사람을 통해 경험 많은 주임 의사를 섭외했다.
수술 전 나는 아들과 며느리, 손녀에게 구자 진언(九字眞言)을 외우면 사부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손녀에게 말했다. “우리는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거야. 네가 안에서 외우면 엄마 아빠랑 할머니는 문밖에서 외울 테니 무서워하지 마라.”
수술실에서 나온 아이의 몸에는 각종 측정 기기가 달려 있었고 배액관도 꽂혀 있었다. 전신마취를 한 상태였다. 병실로 옮겨진 후 의사는 여섯 시간 뒤 마취 기운이 풀리면 대부분의 기기를 떼어낼 수 있지만 배액관은 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아이가 통증을 느낄 것이니 퇴근하면서 다른 의사에게 진통제 처방을 부탁해두겠다고 했다. 아들과 며느리는 여섯 시간 뒤 아이가 겪을 고통을 걱정하며 무척 우울해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다음 날 아침 전화를 걸자 며느리가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어제저녁에 아이에게 준비해준 음식을 다 먹었어요. 심지어 내려가서 놀고 싶다고 할 정도예요. 하나도 안 아프대요. 밤늦게 잠들어서 아침까지 한 번도 안 깨고 푹 자고 일어났어요. 의사 선생님은 아플 거라고 했는데 전혀 안 아프대요.”
며느리의 말을 듣고 수술이 매우 성공적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며느리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깊이 감사드렸다. 사부님께서는 정말 누구든 도와주시는구나 싶어 아이들에게 사부님께 꼭 감사드려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퇴원 다음 날 아들 집에 가보니 손녀의 회복 상태가 놀라울 정도로 좋았다. 문을 열자마자 아이가 바퀴 달린 장난감 말을 타고 수술하지 않은 다리로 힘차게 땅을 구르며 화장실, 거실, 침실을 쌩쌩 누비고 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노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어 보였다. 이 모습을 본 아들과 며느리는 얼굴 가득 웃음꽃이 피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아들이 말했다.
“아이 수술이 이렇게 잘 되다니 정말 예상 밖이에요. 다 X 주임 덕분이에요. 역시 30년 경력의 베테랑 의사는 다르네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이 공로가 어찌 의사에게 간단 말인가? 이것은 대법의 신기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
나는 즉시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게 아니란다! 의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수술 과정을 좀 더 숙련되게 하고 계획을 잘 세울 뿐이지, 어떻게 아이의 통증까지 줄여줄 수 있겠니? 손에 가시 하나만 박혀도 뽑을 때 아픈 법인데 무릎에 구멍을 두 개나 냈는데 말이다. 그건 구자 진언을 외웠기 때문이고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신 것이란다.”
그러고는 손녀에게 물었다. “할머니가 말해준 것을 외웠니?”
“네!” 아이가 싱글벙글하며 대답했다.
그러자 아들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에휴, 뭐든 좋은 일만 생기면 다 그쪽으로 연결하세요.”
나는 엄숙하게 말했다.
“사람이 위급할 때 도움을 받고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다음 기회가 있을 수 있겠느냐!”
순간 마음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집에 돌아와 이 일을 되새겨보았다. 명백히 사부님께서 도와주신 것인데 아들이 정말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고의로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동안 나는 가족들 앞에서 늘 그들의 비위만 맞췄고,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두려워 내 진심을 말하지 못했다. 앞뒤를 재고 굽실거리는 것이 마치 나 자신의 선(善)과 인(忍)을 닦는 것이라 여겼는데, 이것이 진정한 선이고 인인가? 나는 단 한 번도 그들을 구도한다는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았고, 가족들의 생명이 영원히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라지 않았다. 그저 진상을 알려주었으니 얼마나 깨닫는지는 그들의 몫이라 여겼고, 젊은 사람들에게 너무 간섭하면 갈등이 생겨 내 심성을 지키지 못할까 봐 몸을 사렸던 것이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니 나의 바르지 못한 사고방식이 초래한 결과였다.
이 일을 통해 처음으로 허리를 곧게 펴고 당당해졌다. 당시에는 생각이 많지 않았다. 한낱 속인 의사가 무슨 덕과 능력이 있어 이런 천지개벽할 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 당연히 우리 사부님께 감사드려야 하는 것이다! 대법이 은혜를 베풀어 주었는데 감사할 줄 모른다면 어찌 되겠는가? 그런 생명이 어찌 미래를 바랄 수 있겠는가! 동시에 그것은 아들의 배후에 있는 무신론과 변이된 관념의 사령(邪靈)이 장난을 치는 것임을 깨닫고 일념이면 해결하고 ‘소멸할 수 있다.’ 앞으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알게 되었다. 당당하게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그들에게 들려주고 전통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야말로 생명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사상이 변하자 몇 번의 접촉 끝에 아이들도 변하고 있음을 기쁘게 발견했다.
며칠 전 손녀 생일이라 함께 밥을 먹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아들이 말했다. 어느 날 저녁 집에서 밥을 먹고 앉아 팔찌를 꿰고 있었는데, 팔찌를 꿰는 바늘이 손가락 끝 살 속으로 1센티미터 넘게 박혔는데 심지어 갈고리 형태라 그냥 뽑을 수가 없었다. 억지로 뽑으면 살점까지 떨어져 나갈 정도로 엄청난 통증이 따를 상황이었다. 15년 동안 팔찌를 꿰어왔지만 이런 실수는 처음이라고 했다. 해결 방법은 단 하나, 병원에 가서 마취를 하고 손가락을 절개해 바늘을 뺀 뒤 봉합하는 것뿐이었다. 그 생각을 하니 식은땀이 흘렀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속으로 구자 진언을 외웠더니 신기하게도 큰 통증 없이 바늘이 빠져나왔다고 한다.
며느리도 한마디 거들었다. 손녀가 수술할 때 며느리는 만약 이번 수술이 순조롭게 끝나고 회복이 잘 된다면 앞으로 매일 구자 진언을 외우겠다고 발원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이 한 약속은 지켜야 한다며 매일 밤 자기 전에 외우고 있었다. 며칠 전에는 목이 너무 아파 말이 안 나올 정도였는데도 소리 내어 외웠더니 며칠 만에 씻은 듯이 나았다고 했다. 며느리는 또 우리 세 식구는 병치레가 거의 없고 감기도 잘 안 걸린다며, 옆집은 허구한 날 링거를 맞고 침을 맞으러 다니는데 우리는 정말 다른 집과 좀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 생일과 설이 되어 돈을 좀 주자 며느리가 말했다.
“어머니, 돈도 얼마 없으신데 어머니 쓰세요. 평소 그렇게 아껴 쓰시면서요.”
나는 대답했다.
“그렇지. 사실 내가 너희 가정을 꾸려주면서 빚 한 푼 남겨주지 않았으니,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너희 몫이다. 하지만 요즘 경제 상황이 어려우니 엄마가 좀 덜 먹고 덜 입더라도 너희를 생각해야지, 아이도 있잖니. 나한테 고마워하지 말고 정말 감사하려면 사부님께 감사드려라. 내가 이 책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나만 챙겼을 게다. 네가 착해서 현모양처의 도리를 다하니 대법이 너희에게 복을 주는 것이란다. 그러니 받아두렴.”
며느리는 무척 감동한 모습이었다.
그렇다. 파룬따파가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아름다움이다. 어떤 상황을 만나든 정성으로 외우면 반드시 신불(神佛)의 보호를 받게 되어, 큰일은 작게 변하고 작은 일은 사라지며 흉한 일은 길한 일로 바뀌고 어려운 일이 상서로운 일로 변하게 된다.
수련인으로서 사부님께서는 가족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법리(法理)를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다. 그럼에도 나는 마음을 다해 법공부를 하지 않았고, 읽고 나서 그냥 넘겨버렸을 뿐 대조해보고 실천하지 않았다. 이제야 더욱 명확히 깨닫게 되었다. 나 자신을 잘 닦아야만 비로소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苦度)에 감사드립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9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