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白鹿)
【정견망】
나에게는 속인의 취미가 하나 있는데, 바로 사진 찍기와 사진 편집을 좋아하는 것이다. 법을 통해 속인의 취미는 정(情)이자 집착임을 알고는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마음을 닦아버리는 것을 결코 마음에 두지 않았고, 이런 작은 집착쯤은 없애기가 매우 쉬울 것으로 생각했다. 한번은 동수에게 “내가 가진 사진 촬영과 편집 기술이 비록 뛰어나지는 않지만, 법을 실증하는 데 쓰기에는 충분하다”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명혜망에 전시판이 등장한 후, 여든에 가까운 한 노년 동수가 나를 찾아와 전시판을 다 만들었으니 젊은 사람이 가서 붙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해를 폭로하는 내용임을 보고 나는 주저 없이 “좋습니다, 제가 가서 함께 붙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다음 날 우리는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아주 눈에 잘 띄는 곳에 전시판을 붙였다. 붙이자마자 사람들이 다가와 구경하길래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 몇 장을 찍었고, 그중 두 장을 골라 명혜망에 보냈다. 나중에 명혜주간의 한 회차 표지에 내가 찍은 사진이 실린 것을 보고 매우 기뻤다. 그러자 동수는 나에게 “환희심을 내지 마라”고 일깨워 주었다.
휴대전화가 출현한 후, 이 마귀가 부체(附體)한 산물은 인류 사회 도처에 침투했을 뿐만 아니라 수련생의 손과 눈, 마음속으로도 거세게 밀고 들어와 수련인에게 매우 큰 집착이 되었다. 나는 휴대전화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는 것과 관련된 많은 글을 보았지만, 나 역시 이끌려 휴대전화로 소설을 보고 영상을 보며 게임을 하곤 했다. 몇 년 전 나는 큰 공을 들여 소설 보는 마음을 닦아버렸다.
지난 3년 동안은 영상을 보는 집착과 계속 줄다리기를 하며 며칠은 괜찮다가 며칠은 다시 빠지며 이 마음과 겨루어왔다. 얼마 전 나는 영상을 보는 마음이 내가 아니라 외부에서 온 요마귀괴(妖魔鬼怪)란 점을 깨달았다. 내가 진정으로 이 점을 인식했을 때 사부님께서는 나의 이 마음을 제거해 주셨다. 당시 기쁘기도 하고 낙담스럽기도 했는데, 기쁜 것은 마침내 이 마음을 없앴기 때문이고 낙담스러운 것은 보기에 그리 커 보이지 않던 마음 하나를 없애는 데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과연 몇 번의 3년이나 더 있겠는가.
영상 보는 마음을 없애고 나니 사진 편집에 대한 집착이 도드라졌다. 2026년 중국 신년 기간에 나의 과시심이 다시 나왔는데, 남의 축하 카드를 써서 새해 인사를 하고 싶지 않았고 직접 제작하고 싶었다. 최근 2년 사이 AI가 맹렬한 기세로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 작년에 은퇴한 옛 동료 몇 명이 AI 사진 편집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내 사진을 아주 예쁘게 보정해서 보내주며 함께 AI를 배우자고 권했지만 나는 시간이 없다며 거절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직접 AI 앱을 내려받아 휴대전화에 설치했다. 당시에는 카드 몇 장만 만들고 바로 삭제하겠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휴대전화가 마귀라면 지능형 AI인들 오죽하겠는가. 휴대전화를 들기만 하면 걷잡을 수 없이 사진 편집에 빠져들었다. 축하 카드를 다 만들고 나면 내 사진을 편집하고, 내 것을 다 하면 남의 것을 편집하며 순식간에 며칠이 지나갔다. 내가 이미 심하게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몹시 후회하며 ‘나는 왜 이렇게 집착이 많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다시 생각해보니 ‘아니지, 내가 왜 이것을 또 나라고 여기고 있는가? 이것은 내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능형 AI를 삭제했다. 그런데 이번에 사부님께서는 그것을 가져가 주지 않으셨다. 나는 ‘이번에는 사부님께서 왜 이것을 제거해 주지 않으셨을까?’ 생각하며 자신을 찾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나는 겉으로는 그것이 내가 아님을 알았지만, 여전히 그것을 붙잡고 있었으며 진정으로 이 마음을 없애지 않았던 것이다. 내심 깊은 곳에서는 몰래 ‘나중에 한가할 때 다시 설치해서 며칠 더 놀아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AI와 줄다리기를 시작했다. 삭제했다가 설치하고, 설치했다가 다시 삭제했다. 그제야 나는 내가 작다고 여겼던 이 취미가 뜻밖에도 커다란 집착임을 의식하게 되었다.
내가 사진 찍기와 사진 편집을 좋아하는 것은 청년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을 깨달았다. 당시 우연히 1949년 이전의 미국제 구식 카메라를 얻었고, 아버지가 젊을 때 직접 만드신 인화기를 물려받아 직접 사진을 찍고 흑백 사진을 현상했다. 그때는 대부분의 가정에 카메라가 없던 시절이라 구식 고물 카메라 하나만 있어도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컬러사진이 생활에 가득 차고 나서야 비로소 직접 사진을 현상하지 않게 되었다. 알고 보니 이 취미는 이미 수십 년 동안 나를 따라다녔던 것이다. 이를 인식한 후 나는 집착에 끌려다닐 수 없으며 반드시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늘 나의 이 집착을 폭로하는 이유는 동수들에게 자신의 어떤 집착이든 작은 마음으로 보지 말라고 일깨워 주기 위해서다. 그것은 어쩌면 매우 방대한 것일 수도 있다. 사부님께서는 《각지 설법 13》 〈2014년 샌프란시스코 법회 설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어떤 때 수련 중 넘어가지 못하는 관(關)에서, 집착을 찾지 못하게 됨은 일부 아주 작은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때문이다. 사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안 된다.” 하물며 당신의 그 집착이 반드시 정말로 작은 집착이라는 보장도 없다. 이성적이고 맑은 정신으로 모든 집착을 바라보고 수련을 엄숙하게 대해야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