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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4·25’ 평화 상방을 기념할 것인지에 대한 작은 깨달음

중국 대법제자 필성(畢成)

【정견망】

올해 ‘4·25’가 곧 다가온다. 1999년 ‘4·25’ 중남해 평화 상방이 있은 지 벌써 27년이 흘렀다. 당시 나는 아직 수련에 들어서지 않았으나, 부친은 ‘4·25’ 평화 상방을 직접 경험하셨다. 매년 4월 25일이 가까워지면 세계 각국의 대법제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 특수한 날을 기념한다. ‘4·25’ 중남해 평화 상방은 수련인들이 평화와 이성, 대선(大善)과 대인(大忍)으로 일구어낸 인류 도덕의 불후의 금자탑이다! 우리 대륙 대법제자들은 이 특수한 날을 어떻게 기념할 수 있을까? 아래에 나의 생각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하니, 부적절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1. ‘4·25’ 기념을 이용해 안으로 찾기

내가 알기로 ‘4·25’ 그날 많은 동수가 여러 가지 이유로 참여하지 못했다. 어떤 이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여할 수 없었고, 어떤 이는 사악한 당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또 어떤 이는 집안의 아이나 직장을 내려놓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참여하지 않았다. 가지 못한 동수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 당시 왜 참여하지 못했는지, 어떤 마음이 우리의 법 실증 길을 가로막았는지 잘 생각해 볼 수 있다.

참여했던 동수들도 당시 어떤 마음가짐으로 참여했는지 다시금 회상해 볼 수 있다. 사람 중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대법제자로서 법을 수호하려는 정신(正信)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 말이다. 수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당시의 ‘4·25’ 평화 상방을 되돌아보며 우리에게 어떤 부족함이 있었는지 살피는 과정은 우리가 이성적으로 법을 인식하고 제고하여 세 가지 일을 더 잘 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우리 지역의 한 노동수가 떠오른다. 그녀는 아침에 밥장사를 했는데 1999년 ‘4·25’ 평화 상방에 참여했다. 그녀는 기념 기사에서 이렇게 썼다. “차라리 내가 일찍 일어나 샤오빙(燒餅, 구운 밀가루 떡)을 만들어 짊어지고 가자. 동수들이 배고플 때 급한 불이라도 꺼야지….” 그리하여 그녀는 집에서 샤오빙 반 자루를 짊어지고 중남해로 향했다(명혜 문장 《4·25 샤오빙 반 자루를 짊어지고 상방하다》). 매 순간 타인을 위하는 동수의 그 마음이 이 작은 일 속에서 드러났다. 참여했던 우리는 당시 어떤 마음을 품고 참여했는가?

비록 나처럼 1999년 이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라 할지라도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만약 자신이 당시의 일원이었다면, 과연 자아를 내려놓고 대법에서 닦아낸 대선(大善)과 이성으로 대법을 수호할 수 있었을까?

‘4·25’ 상방의 전 과정을 되돌아보면, 동수들에게 시각장애인 유도블록을 비워주자고 일깨워주던 동수들, 무사무아(無私無我)하게 앞장서서 대표가 되었던 동수들, 사악한 당을 두려워하지 않고 첫 줄에 섰던 동수들, 자발적으로 화장실을 청소하고 질서를 유지했던 동수들… 모두가 우리의 경탄과 존경을 받기에 충분하다. 이것이 바로 수련인 경지의 직접적인 체현이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 〈뿌리를 캐다〉에서 “기회는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4·25’ 평화 상방을 기념하면서 사부님께서 주신 법보(法寶)인 ‘안으로 찾기’를 통해, 당시 제고했어야 하나 제고하지 못했던 부분을 보충한다면 이 또한 사부님의 또 다른 자비의 현시가 아니겠는가?

2. 옛 동수들 찾아오기

당시 ‘4·25’에 참여했던 노동수 중에는 상태가 좋지 않은 이들도 있음을 알고 있다. 어떤 이는 병업(病業)에 시달리고 있으며, 어떤 이는 수련의 대열에서 이탈하기도 했다. 우리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다. 매년 ‘4·25’ 즈음이면 명혜망에는 많은 기념 활동 보도와 당시 참여했던 동수들이 쓴 글이 올라온다. 이러한 글과 보도 사진들을 출력하여 명혜망에 자주 접속하지 못하는 노동수들과 나눈다면, 그들이 당시의 정진(精進) 상태를 되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어쩌면 당시 참여했던 노동수들은 줄곧 우리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러분의 말 한마디, 글 한 편이 그들의 마음속 매듭을 풀고 다시 수련의 대열로 돌아오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건이 되는 동수들은 ‘4·25’ 기념을 빌려, 당시 중남해까지 가서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 한마디를 하고자 했던 노동수들을 다시 방문해 보기를 바란다. 사부님께서는 단 한 명의 대법제자도 낙오되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3. ‘4·25’ 기념을 빌려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을 명확히 알리기

사악한 당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할 때부터 소위 ‘중남해 포위 공격’은 민중의 마음속에 지어낸 가장 큰 거짓말이었다. 연중 내내 밖에서 대면하여 진상을 알리는 대법제자들은 세계 각지의 축하 활동 보도를 세상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줄 수도 있다. 일반인들은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 각지에서 ‘4·25’를 기념하는 진상을 알려주며 1999년 4월 25일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소란을 피우고 거짓말을 지어냈는지 말해주어야 한다. 내 주변의 몇몇 동수는 매년 ‘4·25’ 대행진 때가 되면 행진 영상을 다운로드하여 친지들에게 보여주곤 하는데, 이러한 진실한 화면들은 대법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의혹과 오해를 푸는 데 큰 효과가 있다.

1999년 ‘4·25’ 평화 상방으로부터 27년이 지났다. 27년 전 4월 25일, 자아를 버리고 무사무외(無私無畏)했던 동수들은 평화롭고 이성적인 방식으로 대법을 수호하며 세상 사람들 앞에 수련인의 고상한 경지를 보여주었다. ‘4·25’는 마치 요괴를 비추는 거울인 조요경(照妖鏡)과 같아서, 대법제자의 대선(大善)과 대인(大忍) 앞에서 사악한 당과 대마두가 얼마나 겁쟁이이며 보잘것없는 존재인지를 비추어 냈다.

수많은 국제 언론으로부터 “중국 상방 역사상 가장 이성적이고 평화적이며 원만한 상방”이라는 찬사를 받은 ‘4·25’ 평화 상방은 이미 인류 역사상 도덕의 금자탑이 되었다. 27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대법제자들은 여전히 가장 평화롭고 이성적인 방식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며 파룬따파의 위대함을 실증하고 있다. 더 많은 세상 사람이 진상을 알고 함께 손잡고 신기원으로 들어서기를 희망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