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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이 배치한 병업 가상을 타파하는 것에 대한 몇 가지 체회

북방 대법제자

【정견망】

최근 몇 년간 우리 지역 수련생들 사이에서 병업의 표현이 비교적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아마 다른 지역에서도 이 문제가 어느 정도 보편적으로 존재할 수 있기에, 이 방면에 대한 제 개인적인 몇 가지 체회(體會)를 나누고자 한다.

1. 병업가상을 정념으로 대해야지 사람마음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심각한 병업 가상에 부딪혔을 때,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이 찾아오면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때 일부 동수들은 여전히 어떤 방법(수법)을 통해 지름길을 가려 하거나, 공능(功能)이 있는 사람을 찾아가 해결해 달라고 부탁하다. 혹은 누군가가 한 말에 귀를 기울이며 그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기도 한다. 사실 이것은 모두 밖으로 구하는(向外求) 사람 마음이 나타난 것이다. 비록 상술한 방법으로 표면적인 고비는 넘길지라도 심성(心性)이 진정으로 제고되고 승화된 것이 아니라면, 여전히 그 문제에 결함이 있고 누락이 있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수련에 있어서도 거대한 손실이다. 그러므로 수련의 길은 반드시 법(法) 에서 착실하게 닦아야만 진정으로 닦아낼 수 있다.

또 다른 오해 중 하나는, 일부 동수들이 사악의 교란과 업력 제거 사이의 개념을 여전히 모호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24년 전인 2002년, 사부님께서는 《북미순회설법》에서 다음과 같이 문제에 대답하셨다.

“제자: …일부 아주 정진하는 제자가 어떤 때 마치 아직도 비교적 엄중한 병업(病業)의 표현이 있는 것 같은데, 그들은 이것이 자신의 개인적인 업력인지 아니면 사악의 파괴인지를 알고 싶어 하는데, 그들은 마땅히 어떻게 이 일을 대해야 합니까?

사부: 첫 번째 문제에서 그들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는 그들 자신이 결정할 일이며 이것은 그들 자신을 보아야 한다. 두 번째 문제에서 어떠한 일에 부딪혀도 먼저 자신을 보아야 하며 이는 대법제자와 속인이 같지 않은 가장 큰 특징이다. 만약 우리 자신이 정말로 문제가 없다면 그것은 반드시 대법제자에 대한 그러한 사악의 박해이다. 특히 현재 정법시기에 대법제자의 업력은 이미 문제가 아니다. 청성(淸醒)하게 사악한 생명의 박해를 인식해야 하는바 그것들은 진정으로 나쁜 일을 하고 있다. 대법제자로서 가장 좋기로는 자신의 길을 바르게 걸어야 하며 사악에게 박해 당할 구실을 주지 말아야 한다.”

이 많은 세월을 지나오면서, 나는 이 방면에서 우리 모두가 더욱 성숙한 심태로 이 문제를 대해야 한다고 깊이 느낀다.

개인적인 실천 속에서 깊이 깨달은 것은, 신체가 가끔 괴롭고 아픈 표현이 나타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생활이나 수련에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갑작스러운 현상에 직면했을 때, 나는 우선 자신의 심성과 행동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본 후, 발정념으로 사악의 가상을 철저히 부정한다. 그것이 아무리 사납게 몰아치더라도 결코 인정하지 않고 깨끗이 멸(滅)해 버리며, 이 과정에서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러면 매우 빠르게 지나간다.

2. 수련의 엄숙함을 똑똑히 인식해야

이 역사 단계는 그야말로 정법(正法)의 최후 중의 최후에 도달했다. 이 시간은 모두 사부님께서 거대한 대가를 치르시며 연장해 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육신은 매우 엄숙한 문제에 직면한다. 우리의 생명이 모두 연장된 것인 만큼, 만약 우리가 여전히 수련과 법을 입증하는 일을 엄숙하게 대하지 않는다면, 이는 정법의 엄숙성에 위배되는 것이며 사악이 빈틈을 타기 쉽다.

3. ‘진상을 알리고’ ‘법을 실증하는 것’은 수련의 과정일 뿐 근본 목적이 아님을 알아야

지난 30여 년간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대법을 입증하는 일을 지속해 왔기에, 많은 이들이 이것을 수련의 최종 목적이라고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것은 과정일 뿐이며, 우리가 수련 원만(圓滿)을 향해 반드시 걸어가야 할 여정이다.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진정한 원만 회귀이며, 앞으로 다가올 기나긴 세월 속에서 해당 층차의 우주를 보위하고, 중생을 관리하며, 그 층차의 법을 원융(圓容)하는 책임을 이행하는 것이다. 인간의 이 층차를 떠나 어떤 높은 표준에 도달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다. 그렇기에 이 표준에 도달하려면 매우 엄숙하게 표준을 충족해야 하며, 그 어떤 핑계로도 인간 세상에 미련을 두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더없이 신성하고 엄숙한 일이다.

많은 이들이 무의식중에 이 과정을 최종 목적으로 대하다 보니, 사람이 사람을 박해하고 박해에 반대한다는 사고의 오류에 쉽게 빠지며, 자신도 모르게 구세력(舊勢力)이 안배한 함정에 걸려들다. 사람이 사람의 일을 하는 것에는 법(法)의 위력이 나타나지 않으며, 사람의 힘으로는 구(舊) 신의 교란을 저지할 수 없다.

또한 “법을 실증하는 일에 앞장서던 동수”나 “진상을 적극적으로 알리던 동수가 병업 교란을 받으면 주위 동수들에게 부면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등의 주장 역시 사람 마음과 사람 사유의 표현일 뿐이다.

우리는 ‘법을 실증하는 일에 앞장선 것’이 결코 사악이 박해할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명백히 알아야 한다. ‘관망’하거나 ‘남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는 것’ 자체가 아직 자신의 길을 걸어 나오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이런 사고방식 자체가 구세력이 안배한 함정이다. 우리 각자는 진정으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타인의 경험을 참고할 수 있고 교훈을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서로 협력하여 견고한 정체(整體)를 형성해야 하지만, 결국 자신의 길은 스스로 착실하게 걸어나가야 한다. 이는 매우 엄숙한 문제다. 마음이 확고하지 못하고 사람 마음이 남아 있을 때 비로소 남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다음 방향을 결정하려 한다.

반대로 우리가 병업 가상에 처한 동수를 정념으로 대한다면, 사악한 교란의 압력과 핑계(예를 들어, 특정 지역 수련인들의 제고를 명목으로 누군가에게 병업 가상을 일으키는 것)를 크게 줄여줄 수 있다. 또한 병업 상태에 있는 동수 본인이 이성적이고 엄숙하며 성숙하게 수련과 법 실증을 대하고, 신속히 사악을 철저히 부정한다면, 주위의 수련인들과 수련하지 않는 가족, 친지들에게 확실히 정면(正面)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개인 수련의 문제를 넘어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의 책임을 이행하는 문제이다.

4. 구세력의 안배를 똑바로 인식하고 부정해야

사부님의 《북미순회설법》과 《2003년 정월대보름설법》을 통해 우리는 구세력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그것들은 우주를 구원한다는 명목으로 자신들만의 체계를 안배했으나,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일지 몰라도 실질적으로는 모두 정법을 교란하는 것이기에 정법의 제거 대상이 되었다. 그것들의 공통된 특징은 과거의 것을 고수하며 아주 완고한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구세력을 부정한다고 말할 때는 그저 말로만 외치거나 못 본 척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대법에서 닦아낸 모든 정의 요소를 가지고 전면적으로 부정해야 한다.

그것들의 목적은 모종의 의미에서 말하자면 과거의 상태로 복구하고 자신들의 인식과 가졌던 모든 것을 고수하려는 데 있다. 만약 오늘날 우리의 생각 속에 이러한 고집스러운 사고방식이 남아 있다면 사악한 구세력을 철저히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우리는 늘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원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 3》 〈뉴욕법회에 드리는 축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역사의 오늘날, 대법은 당신들에게 중생을 구도(救度)할 사명을 부여했으며, 역사의 장래에 당신들의 순수하고 올바른 일체는 바로 대궁(大穹)이 성주불파(成住不破)할 수 있는 보증이다. 당신들이 길을 잘 걸음으로써 구원받는 생명은 바로 당신들의 중생이며, 당신들이 한 일체는 바로 당신들 원만의 일체를 성취하고 있는 것이다”

구세력의 표현과 실질을 똑바로 인식하고 우리의 책임을 명확히 하며, 여기에 강력한 정념을 더해 사악의 안배를 철저히 부정해야 한다. 우리가 본래 이 육신을 가진 목적은 법을 더 잘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함이지, 개인 수련이나 인간 세상에서 속인의 삶을 누리기 위함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이 기점(基點)을 바르게 세운다면 사악의 교란을 철저히 부정하는 것이 훨씬 쉬워질 것이다.

5. 구세력과 맺었던 약속의 문제를 철저히 부정해야

우리는 법을 배우고 동수들의 체회를 보면서, 많은 수련인이 이 인간 세상에 오기 전에 구세력과 어떤 약속을 맺었다는 점을 알고 있다. 지금에 와서 구체적으로 어떤 약속을 했는지 집착하며 얽매일 필요는 없다. 그것들은 우리가 대법을 얻기 전, 과거의 생명들과 맺은 계약일 뿐이므로 지금 이 순간 철저히 제거해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악한 생명들이 이를 빌미로 교란하기 쉽다.

6. 당초 사부님과 서명한 약정을 바로 잡아야

당초 우리가 사부님과 맺은 서약이 아무리 순정하다고 여겼을지라도, 그것은 구우주 생명의 지혜가 나타난 것일 뿐 결코 신우주의 표준에는 도달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의 사상 깊은 곳에서 사부님과의 과거 약속을 너무 절대적인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그 구체적인 내용을 굳이 알 필요도 없다). 오늘날 우리가 이미 법을 얻었으므로, 이제는 완전히 신우주의 표준에 따라 다시 가늠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구세력이 교란할 구실을 없앨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구세력은 우리에게 번거로움을 만들어낼 때 종종 “이것은 당신들이 당초 당신들 사부님 앞에서 직접 말했던 내용이다”라며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이 점은 반드시 새롭게 가늠해야 한다.

7. 인체 표면에 남은 가족의 유전 요소를 바로잡아야

인간 세상에서 우리는 흔히 이 단독적인 개체에만 주목하기 쉽지만, 질병이나 성격 등 ‘가족 유전’이라는 또 다른 요소가 존재한다. 이 방면 역시 고급 생명들이 체계적으로 안배해 놓은 것이다. 다만 말법 시기에 이르러 이 방면을 관리하던 신들조차 패괴되어 정법의 청산 대상이 되었기에 많은 폐단이 나타나고 있다. 어떤 수련인은 가족 유전 질환이란 가상을 겪기도 한다. 본인의 원인 외에도, 정념을 발할 때 이 방면의 요소를 주의 깊게 정리해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8. 구세력이 아직 완전히 닦이지 않은 일면을 이용해 틈을 타는 것을 인식해야

수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우리에게는 여전히 완전히 닦이지 않은 인간의 육신(표면 신체뿐만 아니라 법에 동화되지 못한 모든 부분의 신체를 의미하며, 인간의 공간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과 미처 깨닫지 못한 집착이 존재한다. 사악한 구세력은 대개 이 방면의 틈을 노린다. 이때 발생하는 많은 교란은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던 불순한 신체나 심성상의 집착을 빌미로 대폭 강화된 것이다. 이 점을 각별히 주의하여 부정하고 제거해야 한다.

내 사례를 들자면, 나는 본래 약간의 자신을 비하하는 마음이 있었다. 한동안 사악이 내 머리속에 스스로를 망가뜨리려는 자멸적인 생각을 자꾸 불어넣었다. 순간 나는 번쩍 정신이 들었고, 즉시 정념으로 이를 제거하자 며칠 뒤 이런 것들이 깨끗이 사라졌다.

아울러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것은 법(法)의 표준이지, 구세력이 박해하지 않는 표준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결코 그들이 안배한 사고방식의 틀 안에서 닦아서는 안 되며, 그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많은 동수가 병업의 가상에 부딪힌 후, 아무리 찾아도 집착심을 찾지 못하고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발견하지 못해 답답해한다. 가상이 장기화될수록 서둘러 원인을 찾으려 하지만 여전히 미궁 속을 헤맨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나는 우선 사악의 존재 자체를 철저히 부정해야 한다고 본다. 이때 ‘반드시 집착을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또 다른 집착을 형성해서는 안 되며, 이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다. 자신을 돌아보려는 순수한 마음만 유지하고, 그 순간 우리 자신을 온전히 사부님께 맡겨야 한다. 우리가 어떤 집착을 버려야 할 때가 되면 사부님께서는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우리에게 알려주실 것이다. 이것 역시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信師信法) 구체적인 체현이다.

9. ‘법을 스승으로 삼음을 견지해 변칙적인 사악의 교란을 승인하지 말아야

누가 무엇이라 말하든, 혹은 천목(天目)이 열린 사람이 무어라 하든 결코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의 말(특히 천목이 열린 사람이 무심코 던진 말) 때문에 마음에 부담을 가져서는 안 되며, 그것은 변칙적인 형태로 사악의 안배를 인정하는 꼴이 된다. 바르지 못한 요소를 들었을 때 첫 일념은 오직 자신의 능력을 다해 그것을 깨끗이 멸해 버리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지에 매달리지 말아야 하는데, ‘법을 스승으로 삼는’ 원칙은 우리가 매 순간 확고하게 지켜내야 할 생명선이다.

맺음말

사람마다 병업의 구체적인 표현이 다르므로 구세력의 안배를 철저히 부정하는 방식 역시 제각각일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된 점은, 진정으로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을 걸어가야 하며, 구세력이 틈을 노리는 구실과 표상을 명확히 분별해야만 비로소 그 안배를 실질적으로 부정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오랜 수련의 세월을 통해 우리는 심성을 닦지 않고 특정 경지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결코 천상에 오를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표면적인 그 어떤 방식도 일정한 국한성을 가질 뿐이다. 오직 신우주 신(神)의 표준에 부합될 때만 사악의 교란을 철저히 청산할 수 있으며, 중생을 구도하는 신성한 직무를 더욱 훌륭히 완수할 수 있다.

끝으로 이 자리를 빌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문안 인사를 올리며, 지난 25년간 국내외 동수들이 보내주신 관심과 격려에 깊이 감사드린다. 아울러 제 주변에서 수년간 묵묵히 헌신해 준 가족들에게도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한다.

개인의 작은 깨달음이므로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은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28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