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속인들 속에서는 매 하나의 상품마다 모두 그것의 가격이 있고, 일자리가 있는 사람마다 급여가 있는데, 이것은 표면적인 가치를 가늠하지만, 도리어 진정한 가늠 표준은 아니다. 진정으로 고층차의 공간에서는 덕(德)과 업력(業力)으로 사람이 이번 생에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얼마나 많은 복을 누릴 수 있는지를 가늠한다. 덕과 업력은 돈으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들은 사람의 심성(心性)의 좋고 나쁨과 관계가 있다. 이것은 인간 이 층차의 공간에서는 알 수 없는 이치이다.
과거 구우주(舊宇宙)의 매 층차 공간은 아마도 모두 이렇게 가늠했을 것인데, 모두 눈으로 볼 수 있는 양식으로 생명의 좋고 나쁨을 가늠하고, 일의 옳고 그름을 가늠하며, 모두 유형(有形)의 것으로 가늠했다. 그러나 진정한 가늠 표준은 고층차의 공간에 있지만, 낮은 층차 공간의 생명은 알지 못한다. 층층이 모두 이러하다. 아마도 과거 우주 속에서는 생명이 법(法)이 존재하는 표현을 아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법이 존재함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단지 우주에 대한 자신의 인식과 자신이 본 우주 현상으로 가늠할 수밖에 없었으며, 대법(大法)에서 편차가 생겨도 알지 못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일정일부는 구(舊) 우주의 일체를 평형 시키고 있다. 우주의 구세력은 널리 전해지는 대법이 모두 선(善)한 것을 보고, 그것은 많은 마를 만들어 냈고, 그것은 많은 마난(魔難)을 만들어 냈다.” (《각지 설법 11》 〈2010년 뉴욕법회설법〉)
일정일부라는 이러한 균형은 진정으로 균형을 잡는 작용을 일으킬 수 없고, 단지 표면상의 수량상의 유형의 것으로 잠시 균형 작용을 일으킬 뿐이다. 현재 인류 이곳은 이미 음양이 뒤바뀌고(陰陽反背), 음양이 거꾸로 매달려(陰陽倒懸) 이미 안 되게 되었으며, 전체 구우주는 이미 안 되게 되었다. 만약 정법(正法)이 아니었다면 구우주는 진작에 훼멸되었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책은 이미 가치를 가늠할 수 없다.” (《전법륜》)
사실 많은 생명의 표현과 많은 일은 가치로 가늠할 수 없다. 예컨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파룬(法輪)은 가치로 가늠할 수 없고, 사부님께서 대법제자를 위해 해주신 모든 것, 정법을 위해 해주신 모든 것,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해주신 모든 것 등등은 모두 가치로 가늠할 수 없다. 또 예를 들어 사람이 수련하려는 마음을 가지면 비할 바 없이 소중한데 이 역시 가치로 가늠할 수 없으며, 그 어떤 유형의 것으로도 가늠할 수 없다. 과거 구우주 속에서는 이미 유형의 것으로 가늠하는 데 습관이 되었고, 아울러 많은 관념을 형성했다.
“이것이 바로 그것들이 오늘날 감히 우리에게 이 한 차례 재난을 가져다 준 원인이다. 그런 즉 더욱 높은 과위(果位)와 이렇듯 큰 법은 이렇듯 큰 고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도항》 〈미국서부법회설법〉)
대법은 그 어떤 가치로도 가늠할 수 없으며, 그 어떤 형식으로도 고험할 수 없다. 왜냐하면 대법은 모든 생명, 모든 법리, 만사만물을 만들었기 때문이니, 누가 감히 고험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가늠하는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실 우리는 누가 어떠하든 법은 오로지 하나이며, 오로지 이 대법(大法)에 따라 하는 것만이 비로소 진정한 표준이다.” (《전법륜》)
“真(쩐)ㆍ善(싼)ㆍ忍(런), 이런 특성은 우주 중에서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표준이다.”(《전법륜》)
그 어떤 유형의 것으로 가늠하든 모두 치우친 것이며, 오직 법으로 가늠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정확하다. 예컨대 선(善)에는 선의 보응이 있고 악(惡)에는 악의 보응이 있다는 이치는 과거에는 절대적이었지만, 미래에는 변화가 발생할 것이다. 내가 이해하기로 이러한 변화는 바로 법으로 가늠함으로써 가져오는 변화이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이 전세에 악을 행하여 형성된 업력이 있는데 이번 생에 이 사람이 대법을 얻었다면, 그의 심성이 제고되어 많은 업력을 전화(轉化)할 수 있다. 그와 악연(惡緣)이 있던 그 사람도 대법을 얻어 심성이 제고됨을 얻어 빚을 독촉하려 하지 않고 그와 선해(善解)하기를 원해, 서로 선보(善報)로 악연을 화해한다. 그들 사이의 심성의 변화는 가치로 가늠할 수 없으며, 대법에 동화한 후 법이 모든 것을 균형 잡는 표현이다.
사람은 물질세계 속에 생활하면서 물질 공간 속의 유형의 것에 착안하는 사유방식을 형성했다. 예컨대 한 사람이 돈이 있고, 원만한 가정이 있으며, 좋은 직장이 있고, 좋은 자식이 있는 등등이 바로 잘 사는 것이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 여기며, 심지어 이것들을 위해 고통스럽게 추구한다. 이러한 사유방식이 강할수록 우주 특성과 멀어지고, 본성(本性)은 더욱 매몰되며,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더욱 얻지 못한다. 사상 경지가 어느 층차로 제고되면 자연히 그 층차 중의 것이 있게 되는데, 왜냐하면 “정신과 물질은 일성(一性).”(《오스트레일리아법회 설법》)이기 때문이다. 그 경지의 표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그 경지 중의 것이 없으며, 구하면 구할수록 더욱 없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처럼 유형의 것에 집착하는 사유방식을 바꾸어야 하며, 마땅히 사상 경지의 제고를 중시해야 한다. 많은 것들은 모두 가격을 매길 수 없는데, 예를 들면 정념(正念), 자비(慈悲), 원융(圓容), 조건 없이 타인을 위해 감당하는 것 등이다. 이것은 가치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직 서로 다른 층차의 법으로만 가늠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수(實修) 중에서 마땅히 법으로 자신의 사상을 지도해야 하고, 법으로 마주치는 모든 일을 가늠해야 하며, 끊임없이 서로 다른 층차 상의 법리를 실증하고 끊임없이 법의 내함(內涵)을 나타내야 한다.
이상은 법 속에서의 수련 체득이며, 써내어 여러분과 공유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2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