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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운 “자기 증명”

신명(新明)

【정견망】

최근 어떤 사람이 매우 흥미로운 주제를 언급한 것을 보았다. 많은 부자들은 자신의 자녀가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많은 부자들에게 있어, 자녀가 사치하는 것이나 방탕하게 쓰는 것은 모두 사소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축적한 재산이 너무 많기 때문인데, 다만 그들이 소위 “자기 자신”을 증명하려는 것을 두려워한다.

어떤 사람이 실제 사례를 들었다. 한 부유한 2세가 외국에서 돌아와 가업을 계승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증명하기 위하여, 곧 자신의 회사에서 새로운 마케팅 방식의 변혁을 진행했다. 결과는 의사결정의 실수로 인하여, 회사가 파산 위기에 처하게 만들었고, 그 커다란 가업은 거의 하룻밤 사이에 제로로 돌아갔다. 나중에 비록 아버지의 힘으로 광란을 돌려세운 아래에서 회사를 살리긴 했으나, 회사는 마지막에 역시 숨이 끊어질 듯 약해졌다.

왜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 이토록 무서울 수 있는가? 사실 이것은 법리(法理)가 결정한 것이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경문 《2004년 뉴욕국제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만약 당신이 법을 실증한다면,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해도 당신은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당신의 의견에 충격(衝擊)을 주고 당신의 목소리를 눌러 당신이 기분 나쁘다고 느끼거나, 만약 다른 사람이 당신의 어떤 문제를 견주어 당신에게 반대 의견을 제출하거나,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아 당신이 불편을 느낄 때면, 당신은 일어나서 반대하고 변명한다. 그리하여 주제에서 벗어나는 것마저도 꺼리지 않는데, 가장 선의적인 변명이라 할지라도 당신은 모두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다. (박수) 왜냐하면, 당신이 대법을 제1위에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당신이 제일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다.”

대법제자로서 하는 모든 것은 다 법을 실증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다 법의 위덕(威德)이지, 자기 자신이 얼마나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똑같은 일을 다른 대법제자가 가서 하더라도 똑같이 잘할 것이며, 심지어 더 잘할 수도 있다. 대법에 부합하기만 하면 바로 옳은 것이다.

예를 들어 대법제자의 글쓰기는 이 대법제자의 지혜가 얼마나 큰가가 아니라, 그가 대법의 표준에 부합하여 법을 실증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증명하고 싶어 한다면, 그러면 문장 역시 선택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神)은 내심을 보기 때문이다.

어떤 동수들은 매우 의아해하는데, 자신의 글솜씨가 다른 사람보다 못하지 않은데 왜 문장이 선택되지 않는가? 많은 것이 다 사람 마음 때문이며, 자기 자신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대법제자가 하는 일은 법을 실증하는 것이지, 자기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의 자기 증명 또한 많은 경우 역시 자신이 대단하고 남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 인간 세상에서 나타난 표현이다. 다만 말 한마디를 바꾸어, 자기 자신을 증명한다고 부를 뿐이다.

대법의 이치는 단지 수련해서 원만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람이 되는 이치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발견할 수 있는데, 인간 세상에서 잘 정립되어 사람을 좋게 변화시키는 철리(哲理)들은 모두 대법이 사람 이 한 층의 이치에서 드러난 것이다. 우주 안의 그 어떤 인지(認知)와 이치도 모두 대법이 서로 다른 층차에서 이치가 체현된 것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보면, 곧 이 도리를 알게 될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