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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누락을 찾지 못하는데, 구세력이 어찌 손을 놓겠는가?

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이 글을 쓰면서 사실 내 마음은 매우 무거웠다. 일부 동수들이 병업(病業)에 빠져 있으면서도 진정으로 안으로 찾지 못하는 것을 보며 깊이 애통함을 느꼈다. 지금 우리의 시간은 매우 제한되어 있으며,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사람을 구하라고 주신 시간이지, 이 기간에 소업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1. 구세력의 안배를 인정

맨 처음 나는 병업 속에 있는 동수를 보고 ‘사람마다 업력의 크기가 다르니 어쩌면 소업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병업에 빠진 동수도 “내가 세세생생 진 빚이니 내가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일찍이 아주 명확하게 말씀하셨다. “한 수련인으로서 금후의 인생행로는 개변될 것이며, 나의 법신이 당신에게 새롭게 안배해 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사부님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인생 행로를 바꾸어 주셨음을 믿지 못하고 감히 믿으려 하지 않는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설령 한 속인이 오늘 “파룬따파는 좋다(法輪大法好)”라고 한마디 외칠지라도 사부는 그를 보호하는데, 그가 이 한마디를 외쳤기 때문이며 사악 속에서 내가 그를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물며 당신들은 수련하는 사람이 아닌가? 또 극소수 수련생들은 정말로 불치병에 걸렸는데 여러분들 생각해 보라. 법을 배우기 전의 중환자들과 불치병에 걸린 많은 사람들이 대법을 배운 후 모두 좋아지지 않았는가. 그러나 무엇 때문에 일부 수련생들은 오히려 안 되는가? 설마 대법이 중생에게 차별이 있단 말인가? 내가 사부로서 수련생에게 다르게 대하는가? 나는 정말로 당신들에게 물어보겠다. 당신은 진수(真修)하고 있는가? 당신은 정말로 대법의 요구에 따라 했는가?!”[1]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우리 우주 중에는, 그 자신이 추구하고 자신이 가지려 하는 것을 일반 정황에서는 다른 사람이 간섭할 수 없다는 이치가 있는데, 그것은 이런 빈틈을 탔다. ‘그가 가지려고 하면 내가 그에게 주고, 내가 그를 돕는, 이것은 잘못이 없지 않은가?’ 그것이 준다.”

당신은 ‘소업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좋다, 그럼 내가 당신이 소업하게 해 주겠다. 당신이 감당하고 싶은가? 그럼 감당하게 해 주겠다. 그렇다면 당신 자신이 인정하고 스스로 원하는 상황에서, 사부님의 법신께서 어떻게 관장하실 수 있으며 동수들이 발정념(發正念)을 해 주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바로 이런 바르지 못한 일념 때문에 구세력이 안배한 길을 걸은 것이며, 곧 구세력의 안배를 인정한 꼴이 된다.

어느 날 나는 길거리에서 마약에 중독된 한 여성을 보았는데, 뼈만 남고 상태가 매우 참혹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만약 그녀를 도우려면 약물 중독을 치료하러 보내야 한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 끊을 생각이 없고 자신을 바꾸려는 의지가 없다면, 아무리 재활을 도와 몸이 좀 나아진들 그것은 일시적일 뿐이며 나중에 다시 마약을 할 것이다. 심지어 한쪽에서는 중독을 치료해 주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마약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가 병업에 빠진 동수를 위해 발정념을 해주는 것도 이와 같다. 그렇다, 발정념은 당연히 효과가 있어 동수는 일시적으로 몸이 덜 괴롭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을 해결할 수 없으며 근본 뿌리는 그 동수 자신에게 있다. 우리가 발정념을 멈추면 동수는 다시 괴로워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때 그 동수는 의존심이 생겨 “당신들 모두 와서 나를 위해 발정념을 해주세요. 발정념을 해주면 나는 좋아지고, 해주지 않으면 상태가 나빠집니다”라고 한다. 비록 수많은 동수가 그를 위해 발정념을 해주며 마난에서 벗어나도록 돕고자 하지만, 자기 스스로 심성(心性)에 누락이 생겼음을 진정으로 깨닫지 못한다면, 구세력이 어찌 쉽게 손을 놓으려 하겠는가?

2. 진정으로 안으로 찾지 못함

사실 동수의 집착이 어디에 있는지는 주변 동수들이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그 동수에게 “당신의 집착은 무엇이며, 당신의 누락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말하면, 그녀는 끊임없이 수많은 이유를 대며 반박하고 자신이 옳다는 많은 증거를 찾는다.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내가 당신에게 이런 집착이 있다고 말하는데 당신은 왜 반박합니까? 왜 마음이 불편합니까? 마음속에 그 집착이 있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고 마음이 괴로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관건입니다.”

하지만 동수는 자신의 관점만을 고수하며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영원히 옳을 수 있겠는가?’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수가 필사적으로 이유를 찾아 자신을 방어하는 모습을 볼 때, 나는 그것이 사실 진정한 그녀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녀 배후에 있는 업력이 죽고 싶지 않기 때문인데, 그것 역시 살아 있는 것이라 필사적으로 동수로 하여금 “이 모든 구실과 이유가 다 스스로 생각한 것”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사실 많은 수련생들이, 시간이 그렇게 많이 지나갔지만, 더욱이 99년 7.20 이후부터 걸어 나온 후 많은 문제를 정말로 근본에서부터 잘 살펴보아야 하고 냉정해져야 하며 진정으로 사고해 보아야 한다. 당신은 내가 대법제자이니 아무런 것도 있지 말아야 하고 있으면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또한 다른 사람이 어떠하니 당신도 마땅히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매 사람마다 상황은 같지 않으며 관건은 당신들 자신이 도대체 어떻게 하는지에 달려있다. 온종일 그 사상 중에서 집착하는 것은 속인의 것이며, 심지어 정(情)에 괴롭힘을 당해서 종잡을 수 없게 되면서도 마난(魔難)이 오면, 당신은 “나 대법제자가 장기간 마난을 받고 있다.”라고 한다. (뭇 사람 웃음) 아이고, 그러므로 어떤 때에 사부가 중하게 말하면 좋지 않고 가볍게 말하면 또 깨달으려고 하지 않는다. 곧 결속하게 된다. 당신들은 자신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2]

3. 일하는 기점(基點)의 문제

동수는 말한다.

“당신이 보세요, 나도 매일 법공부하고 연공하고 발정념하며 세 가지 일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내 병업관은 아직 끝나지 않을까요?”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장기간 이래, 일부 수련생들에게는 제거하지 않은 근본적인 집착이 있다! 최후까지 쌓여서 넘어가지 못하면 난(難)은 곧 커진다. 문제가 나타나면 心性(씬씽) 상에서 찾지 않고 근본적으로 자신을 제고하지 않으며, 정말로 이 일을 내려놓고 다른 한 방면에서 정정당당하게 걸어오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을 겨냥하여 아이고 나의 이 일이 어찌 아직도 지나가지 않는가? 내가 오늘 좀 잘했으니 마땅히 좀 좋아야 하는데, 내가 내일 좀 더 잘하면 마땅히 좀 더 좋아지겠지! 라고 한다. 그는 언제나 이 일을 내려놓지 못하고, 보기엔 그래도 마치 보여주듯이,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을 당신이 보라고 한다. 당신이 잘하고 있는 것은 그것을 위해 잘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결코 진정한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3]

나는 올해 션윈(神韻) 프로그램 중 하나가 떠올랐다. 노부부 A는 한 거지에게 동정은커녕 비웃음을 보였다. 반면 노부부 B는 매우 선량하여 그 거지에게 음식을 주었다. 그 선함에 보답하고자 거지는 노부부 B를 한 나무 앞으로 데려가 열매를 먹게 했다. 노부부 B는 열매를 먹은 후 젊은이로 변했다.

노부부 A가 노부부 B에게 어떻게 젊어졌냐고 묻자, 노부부 B는 가난한 이들에게 음식을 적선하라고 일러주었다. 노부부 A는 자기가 젊어지기 위해 마음속으로는 아까웠지만 그대로 따라 했다. 노부부 B는 노부부 A를 나무 앞으로 데려갔다. A 부부 중 남편이 열매 하나를 먹고 자신이 젊어진 것을 확인하자, 아내에게 열매를 주지 않고 자기가 또 하나를 먹어 버렸다. 결국 그는 엉엉 울어대는 아기가 되고 말았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표면상으로는 모두 세 가지 일을 하고 있지만, 일하는 기점이 무엇인가? 단지 자신이 병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그것은 사실 구우주의 이치에 부합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수련성취하라고 하신 것은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이다. 우리가 일하는 마음가짐과 기점이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요구에 도달했는가?

4. 매일 법을 공부하지만 진정으로 법을 얻지 못함

나는 많은 대법제자가 매일 책을 읽고 있지만, 책 읽는 것을 일종의 임무나 형식으로 치부하는 것을 본다. 사부님의 법은 아주 똑똑히 말씀하셨으나, 동수는 사부님의 법으로 자신을 대조해 보지 못하고 마치 사부님께서 설하신 법리가 자신이 아니라 남을 향한 것처럼 대한다. 병업 중인 동수와 교류할 때, 그 동수가 법 속에서 무엇을 깨달았는지, 사부님의 법에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말하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고, 늘 다른 동수가 무슨 말을 했는지만 이야기한다. 우리는 모두 동수가 한 말은 법이 아님을 다 알고 있는데, 왜 동수의 말에 그토록 연연하는가?

나는 생각한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신 대법은 단지 우리에게 보고 외우라고만 주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을 대조하여 착실하고 착실하게 수련하라고 주신 것이다. 우리는 수련자, 즉 법리를 진정으로 실천하는 수련자가 되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일찍이 우리에게 명시해 주셨다.

“중생을 구도하는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당신은 당신 대법제자의 책임을 완성하지 않는 것이며, 당신의 수련은 영(零)과 같다. 왜냐하면 당신에게 대법제자가 되게 한 것은 당신 개인적인 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중대한 사명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4]

나는 이제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걸어 나와 사람을 구하라고 하신 의의를 더욱 명확히 알게 되었다. 대법제자로서 걸어 나와 사람을 구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수련은 0과 같다. 매일 손에 경전을 들고 있더라도 실천 속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단련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당승은 왜 성불(成佛)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그가 81가지 난을 겪었기 때문이며, 경전을 구하러 가는 과정에서 온갖 사람 마음과 집착을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그 매 하나의 관과 난은 모두 사람의 집착을 겨냥하여 온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수련 또한 어찌 이와 다르겠는가?

현재 층차에서의 짧은 깨달음이니 부족한 점은 동수 여러분께서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허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 3》 〈대뉴욕지역 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 3》 〈대뉴욕지역 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 3》 〈대뉴욕지역 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 9》 〈2009년 워싱턴 DC 국제법회 설법〉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5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