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몇 년 전 우리 부서에 안기(가명)라는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그녀는 이와 관련한 업무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부서 책임자가 지인의 체면을 봐주어 채용했던 것이다. 책임자는 특별히 나를 따로 불러 면담하며, 안기를 잘 가르쳐서 현재 업무를 능숙하게 해낼 수 있도록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내 업무량만으로도 이미 벅찬 상태였는데, 여기에 또 하나의 짐이 늘어난 셈이었다. 나는 ‘사부님의 지시이니 일단 해보자. 그녀를 잘 가르치면 내 일도 좀 수월해지겠지’라고 생각했다.
안기가 온 뒤로 나는 여전히 기쁜 마음으로 매일 손수 붙잡고 일을 가르쳤다. 그녀가 조속히 배워 익힐 수 있도록 모든 일을 손수 모범을 보였고, 그녀가 ‘이제 다 배웠다’고 말할 때까지 하나하나 가르쳤다. 하지만 반년이 지난 뒤, 나는 거의 붕괴 직전에 이르렀다. ‘어떻게 이렇게 멍청한 사람이 있을 수 있지?’ 하고 속으로 탄식했다. 예전에 신입을 가르칠 때는 어떤 일을 가르쳐도 대개 세 번을 넘기지 않으면 다 알아들었고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안기는 세 번 만에 이해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조금이라도 머리를 굴려야 하는 일은 아예 알아듣지 못했다. 때로는 N번을 가르쳐도 이해하지 못해, 스스로 ‘내가 설명을 잘 못 하는 건가? 내 언어 조직에 문제가 있는 건가?’ 하고 의심할 지경이었다.
내 매일의 업무량은 엄청나게 많았다. 다급한 일이 생겼을 때 안기가 할 줄 모르면 결국 내가 직접 처리하고 나서 나중에 다시 가르쳐야 했다. 일은 많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반복해서 가르쳐야 하니,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날이 갈수록 신체적·정신적 한계에 부딪혔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책임자를 찾아가 인력 충원을 요구했다. 그러나 책임자는 회사의 경영 실적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나는 다시 책임자에게 고충을 털어놓았다. 안기를 가르치는 게 너무 힘들고 어떻게 가르쳐도 배우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그러자 책임자는 내가 더 정성을 들여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말의 앞뒤 정황으로 보아, 책임자는 내가 안기를 정성을 다해 가르치지 않았다고 여기는 눈치였다. 안기가 그렇게 멍청할 리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책임자와의 면담이 몇 번 거듭되자, 나는 스스로가 억울함과 짜증, 원망이 펄펄 끓어오르는 압력밥솥으로 변해버린 것만 같았다.
나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안으로 찾을 줄을 몰랐고, 찾기만 하면 온통 남의 탓뿐이었다. 일이 너무 많고 힘들다고 원망했고, 내가 이렇게 일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인력을 충원해주지 않는 책임자를 원망했으며, 안기가 왜 저렇게 멍청한지, 세상에 어찌 저렇게 멍청한 사람이 다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원망했고, 내가 정성껏 가르치지 않는다고 말한 책임자를 원망했다. 나는 이 강렬한 집착심들에 이끌려 법을 보아도 마음이 들어오지 않았고, 연공을 할 때는 잡생각이 가득했으며, 꿈속조차 편안하지 않았다. 내 상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절할 힘이 없었고, 매일 업무에 쫓기며 하루하루를 그저 흘려보냈다.
정말이지 하나의 관을 넘지 못하면 다음 관이 또다시 들이닥친다!
두 달 뒤 어느 날, 우리는 새로운 사무실 건물로 이사하게 되었다. 책임자는 오후까지 반드시 이사를 마쳐야 한다고 지시했다. 우리 부서에는 자료가 특히 많았는데, 벽을 따라 늘어선 캐비닛마다 자료가 가득 차 있었다. 이사를 하려면 자료를 상자에 담아 번호순대로 정리해야 했으며, 뒤섞여서는 안 되었다. 이는 상당한 공이 들어가는 힘든 육체노동이었다. 나는 안기에게 말했다.
“자기 책상 위에 있는 물건들부터 정리하고 우리 같이 상자에 담자.”
안기가 대답했다.
“알았어요, 제가 손에 쥐고 있는 이 일만 먼저 끝내고 할게요.”
내가 보니 그녀의 손에 쥐어진 것은 몇 장의 전표뿐이었고, 모두 매일 반드시 해야 하는 단순 업무들이라 컴퓨터에 입력만 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그녀의 평소 속도로 볼 수 있듯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터였다. 그래서 나는 먼저 다른 물건들을 정리하러 갔다.
한 시간이 흘렀다. 나는 무심코 물었다.
“다 끝났어?”
“다 돼 가요, 조금만 기다려요.”
또 한 시간이 넘게 흘렀지만 대답은 여전히
“다 돼 가요, 조금만 기다려요”
였다. 오전 내내 그녀의
“조금만 기다려요”
라는 말 속에서 흘러갔다. 내 마음속에 조금씩 불만이 치밀었다. ‘겨우 그까짓 일을 하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지!’ 하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됐어, 그녀가 아무리 늑장을 부려도 오후쯤엔 다 끝나겠지.’ 그래서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고, 그동안 사무실의 다른 물건들을 모두 정리해 두었다.
오후 일 할 시간이 되자 나는 말했다.
“어때, 일 다 끝났지? 우리 빨리 자료 상자에 담자오, 저기 다른 부서들은 벌써 다 이사 끝냈어.”
그녀는 나를 보지 않은 채 눈을 컴퓨터 화면에 고정한 채 말했다.
“저 아직 안 끝났는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왈칵 화가 치밀었다. 이미 오전 내내 기다려주었고, 나는 또 나대로 그 많은 일을 혼자 다 처리했는데, 너는 겨우 그 두 장짜리 전표를 이 오랜 시간 동안 붙잡고 있으면서 아직도 안 끝냈단 말인가? 이건 속이는 게 아닌가? 노동을 회피하려는 수작인가? 마음속에서 치솟는 화는 머리끝까지 치밀어 머리에서 김이 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억지로 화를 누르며 말했다.
“일단 이사부터 하자고요. 이사 끝내고 나서 천천히 마저 해요, 그건 급한 일도 아니잖아.”
그러자 안기는 ‘침묵은 금’이라는 듯 나에게 침묵으로 일관했고, 이후에 무슨 말을 건네도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정말로 불을 뿜고 싶었지만, 수련인으로서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방 안을 서성거리며 꾹 참았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흔히 모순이 생길 때, 사람의 심령(心靈)을 자극하지 않으면 소용없고 쓸모없으며 제고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음속에서 내려놓지 못하면, 마음이 번거로워질 것인데, 사람의 마음을 불러일으켜, 그를 헐뜯는 두 사람의 형상을 자꾸 되돌아보려는 생각이 날 것이다. 되돌아보니 그 두 사람은 흉한 표정으로 한창 열이 나서 말하고 있다. 그는 순간 참지 못하고 화가 치밀어, 당장 그들과 맞설 것이다.” (<전법륜>)
고개를 들자 그녀가 엉성하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더 이상 이 화를 억누를 수가 없어 몸을 돌려 콘센트 쪽으로 걸어가 전원 코드를 뽑아버리려 생각했다. 저 컴퓨터 전원을 끊어버리면 저러는 걸 더 이상 못 보겠지 싶었다. 그러나 허리가 굽혀지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멍하니 서서 두 눈을 콘센트에 고정한 채 머릿속은 윙윙거리며 엉망진창으로 뒤엉켰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어떤 목소리가 외치고 있었다. ‘뽑으면 안 돼, 뽑으면 안 돼!’ 마침내 이성이 우세해졌고, 이 분노의 불길을 억지로 눌러 담았다.
마음을 가라앉히며 생각했다. ‘됐어, 저 사람이 하기 싫다니 내가 혼자 하지 뭐, 시간이 얼마 없잖아.’ 화가 난 채로 나는 혼자서 조금씩 자료를 담고, 상자를 봉하고, 번호를 매기며 상자 또 상자를 채워나갔다. 오후 내내 일한 끝에 마침내 끝마칠 수 있었다. 마지막 상자를 테이프로 봉하고 있을 때 비로소 안기가 다가와 나를 도우려 했다. 나는 그녀를 본 체만 체하며 손에 쥔 일을 계속했다.
이 일은 나를 무너뜨린 마지막 지푸라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사직을 결심했다. 그토록 거대한 압박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기에, 이 일터와 안기를 그저 도망치듯 벗어나고만 싶었다.
직장을 옮기면 마음이 서서히 나아질 것이라 여겼지만, 이토록 강렬한 집착심들을 버리지 못한 채 어찌 좋은 마음이 들 수 있겠는가? 마음속은 늘 억눌리고 답답했다. 법을 읽으면 읽을수록 문제를 대할 때 자신이 여전히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당시에는 그래도 내가 꽤 괜찮다고 여겼었는데—그녀와 맞붙어 싸우지도 않았고, 말을 가려 했으며(수구·修口), 충분히 참아낼 만큼 참았다고 생각했다—이것을 보라,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수련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던가! 정말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나는 조용히 내가 겪었던 일들과 마주한 난관들을 되짚어 보았다. 내가 제대로 관을 통과하지 못했고, 수련인조차 못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찾아낸 집착심만 해도 한 무더기였다. 질투심, 투쟁심, 원망심, 억울한 마음, 남을 얕보고 업신여기는 마음, 그리고 게으름이라는 안일심 등등. 정념을 발휘해 이들을 제거하려 애썼지만, 때로는 이 일들이 머릿속에서 마치 영화 필름처럼 멈추지 않고 재생되어 도저히 털어내지 못했고, 생각하면 할수록 더 화가 났다. 나의 상태는 그렇게 좋았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했다.
어느 날 아침, 출근길을 걷다가 문뜩 또다시 안기가 떠올랐다. 그녀가 왜 그렇게 멍청한지, 왜 내 평생 이토록 멍청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는지 생각하며 걷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는 일념이 있었다.
‘그녀가 멍청한 것도 그녀의 잘못은 아니잖아? 그녀도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그렇게 멍청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겠지. 하지만 그녀는 원래 그런 사람인 걸. 뭇 생명은 각양각색이어서 똑똑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멍청한 사람도 있는 법이야. 사부님께서는 상생상극의 이치를 말씀해 주셨잖아.’
사부님께서는 법 중에서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도가(道家)에서는 인체를 소우주(小宇宙)로 본다. 사람에게는 물질신체가 있지만, 이 물질신체만 가지고는 완정(完整)한 사람을 구성할 수 없으며, 또 반드시 사람의 성격(脾氣)・천성(秉性)・특성(特性)・元神(왠선)이 존재해야만 비로소 완정하고 독립적이며 자아개성을 가진 사람을 구성할 수 있다.” (<전법륜>)
새로운 사물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느린 것은 바로 그 생명의 특징이며, 신(神)이 그녀의 업력 크기에 따라 일생을 안배해 준 것인데, 내가 어찌 그녀의 그런 특징을 업신여길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곧 신의 안배를 업신여기는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나의 마음 씀씀이가 어찌 이토록 좁아터져서, 겨우 평범한 사람의 성격 특징 하나조차 포용하지 못한단 말인가.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 많은 대법제자들이 장래에 매우 큰 생명으로 성취되어야 하고, 매우 많은 중생, 나아가 무량한 중생을 포용해야 하므로, 당신이 표준을 낮춘다면 그 한 층의 우주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고, 그 한 층의 궁체(穹體)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므로 반드시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 (<2003년 캐나다 밴쿠버법회 설법>)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가슴속이 큰 충격을 받았고, 장기간 나를 짓누르던 억압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면서 ‘포용’의 법리(내가 이 층차 속에서 인식한 법리)가 단번에 이해되었다. 대법제자는 사부님을 도와 정법을 행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이들인데, 어찌 속인(常人)과 따지며 그들을 업신여길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그들을 피해 다니다니, 그들은 바로 내가 구도해야 할 중생들이 아니었던가!
세상에 존재하는 중생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개성이 존재한다. 성격의 좋고 나쁨을 떠나 모두 내가 포용하고 선하게 대해야 할 대상이다. 비단 세상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주의 무량한 중생이 모두 그러하다. 포용은 자비이며, 사랑이고, 광활한 흉금이다. 이는 수련인이라면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련하는 사람의 입장으로 말하건대, 내가 말하기에 수련인에게는 적이 없고, 여러분에게는 오직 중생을 구하는 몫만 있을 뿐이다.” (<시카고시법회 설법>)
“당신이 당신의 적을 사랑할 수 없다면 당신은 원만성취할 수 없다.” (<오스트레일리아법회 설법>)
사부님께서는 적조차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는데, 하물며 내가 평소에 마주치는 일반 사람들에게 내가 그들에게 잘해주지 못할 그 어떤 이유가 있겠는가? 신은 인간에게 자비롭거늘, 우리는 신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법리를 깨달았을 때의 기쁨이 나를 너무나 흥분시켰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위로 펄쩍 뛰어올라 나무의 잎사귀를 만져보았다. 아이처럼 쾌활하게 두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비로소 깨달았다. 눈앞의 저 커다란 나무는 엄청나게 크고 높았으며 잎이 무성해 사람의 점프력으로는 결코 그 나뭇잎에 닿을 수 없다는 것을. 내가 방금 어떻게 그것을 해냈던 것일까! 대법은 정말로 너무나 신기했다. 제자는 사부님께 머리 숙여 절 올립니다!
후기
1년 뒤, 인연이 닿아 또한 사부님의 안배로 나는 다시 그 회사로 돌아가게 되었다. 안기와 마주한 그 순간, 우리 두 사람은 서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나에게 이 일 년 동안 나라는 ‘보호막’이 없어 혼자 겪어야 했던 억울함과 고생들을 털어놓았다. 그녀의 슬픈 모습을 바라보며 내 마음도 편치 않았고, 가득한 연민을 담아 그녀에게 딱 한마디 건넸다.
“걱정 마, 내가 있잖아. 이제부터 다 괜찮아질 거야.”
안기는 눈물 끝에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근무 외 시간에 나는 안기에게 대법의 진상을 알려주었다. 공산당의 무신론 영향 탓에 그녀는 처음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곧바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언니, 언니가 해주는 말이라면 뭐든 다 믿을게요.”
그녀는 순조롭게 삼퇴(중국 공산당의 당·단·대 조직 탈퇴)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