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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에 돌의 말과 글을 말하다

춘화(春華)

【정견망】

필자는 일찍이 몇몇 희귀한 수석 수집품을 본 적이 있는데, 자연적으로 형성된 결속에 마치 한 폭 한 폭의 풍경화나 인물화 같은 것이 담겨 있었고, 여기에 시적인 이름까지 더해지니 뜻밖에도 매우 가치 높은 예술품이 되었다. 물론 인공적인 조각의 정확한 비율과 전문적인 구도 수준은 없지만, 그것들에는 또 다른 자연스러운 운치가 안에 담겨 있었다.

이러한 희귀한 돌들을 관상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이 자연적인 돌의 결속에도 누군가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과학적인 수단으로 이 일을 증명하려 한다면 어쩌면 매우 오랜 시간을 인내하며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지만, 이 문제를 옛사람들에게 던져보면 이것이 결코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님을 발견하게 된다.

서진(西晉) 혜제 영강(永康) 원년, 양양군(襄陽郡)에서 돌 하나가 발견되었는데, 그것을 치면 웅장한 소리를 냈으며 그 소리가 칠팔 리 밖까지 울려 퍼졌으니, 그 내부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사실 이런 돌은 드문 것이 아닌데, 예컨대 소식(蘇軾)의 글에 나오는 석종산(石鍾山)도 바람과 파도가 부딪칠 때 종소리 같은 소리를 낼 수 있었으니, 조물주의 기교를 족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어떤 돌은 외력으로 두드리지 않아도 스스로 소리를 낼 수 있다. “기남(冀南)에 돌북(石鼓)이 있으니, 길이가 1장 2척이고 넓이와 두께도 이와 비슷하다. 한 성제(漢成帝) 때 소리가 우레와 같아 평양(平襄) 240리 내에 들렸으니, 이때 들꿩들이 모두 울었다.” (《물류상감지(物類相感志)》)

여기 적힌 돌은 참으로 대단하여, 치지 않아도 스스로 울릴 뿐만 아니라 소리가 우레와 같아 반경 200여 리 내의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었고, 당시 들꿩들까지 따라 울었을 정도였다.

매우 희귀하긴 하지만 이것은 비단 유일한 사례가 아니었다. “건흥(建興) 5년, 평양(平陽)에서 돌이 말을 했다.” (《문헌통고(文獻通考)》)

서진(西晉) 건흥 5년, 어떤 돌이 뜻밖에 ‘말’을 했는데, 당시 사람들은 이를 불길한 징조로 여겼으며 진 민제(晉湣帝)의 죽음과 이를 연관 지었다.

돌이 갑자기 소리를 내는 것은 옛사람들이 보기에 결코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좌전(左傳)》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소공 8년 봄, 진나라 위유(魏榆)에서 돌이 말을 했다. 진후(晉侯 진평공)가 사광(師曠)에게 “돌이 무슨 까닭으로 말을 하는가?” 물었다. 사광이 대답하기를 “돌은 말을 할 수 없으니 혹 누군가 빙의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백성들의 들음이 과도한 것입니다. 엎드려 신이 또한 듣건대 ‘일을 함에 때에 맞지 않게 하여 원망과 비방이 백성들에게서 일어나면 말하지 못하는 물건이 말을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궁실이 높고 사치스러워 백성의 힘이 다 쇠하였고, 원망과 비방이 함께 일어나 그 성품을 보전할 수 없습니다. 돌이 말하는 것이 또한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진후가 토목공사를 크게 일으켜 백성들의 원망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함으로써 “말하지 못하는 물건이 말을 하게” 만들었으니, 이는 하늘이 내린 경고였다.

혹자는 아마 생각할 것이다.

‘돌이 말을 한다니 어찌 그럴 수 있는가, 이것은 참으로 당치 않은 이야기다.’

하지만 말하는 돌은 확실히 경전 속에만 존재하는 ‘신화’가 아니다. 중국 태항 대협곡 풍경명승구 내에도 이렇게 소리를 내는 돌이 하나 있는데, 매번 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돼지 울음소리’를 내기 때문에 ‘저규석(豬叫石, 돼지 울음 돌)’이라 불리며, 돌 아래에는 ‘신석(神石)’이라는 비석이 서 있고 양옆에는 대련이 적혀 있는데 위에는 ‘세상의 풍운 징조를 보여주고, 만만민의 편안을 보우한다(兆世事風雲;佑萬民安康)’고 적혀 있다.

천하에 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이 돌은 매우 안절부절못하며 언제나 돼지 울음 같은 소리를 냈다. 중공 스스로가 이러한 ‘미신’을 공연히 선전하고 심지어 그것에 ‘비석을 세우고 전기를 남기기’까지 하니 참으로 의아함을 느끼게 하며, 어쩌면 이 역시 천의(天意)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가장 신기한 것도 아니다. 역사상에는 수많은 신비한 장자석(藏字石, 글자가 새겨진 돌)이 기록되어 있어 그야말로 진정한 ‘석파경천(石破驚天, 돌이 깨지고 하늘이 놀라다)’이라 할 만했다.

《북제서·신무본기(北齊書·神武本紀)》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동위(東魏) 천평(天平) 4년 6월 임신일, 무제(고환高歡)가 천지(天池)에 이르러 상서로운 돌을 얻었는데, 은은히 솟아올라 글자를 이루니 ‘육왕삼천(六王三川)’이라 하였다.”

즉 동위 천평 4년, 고환(高歡)이 돌 하나를 얻었는데 그 위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육왕삼천’이라는 네 글자가 있었다. 고환이 매우 이상하게 여겨 부하에게 물으니, 누군가 대답하기를 “육(六)은 대왕님의 자(字, 고환의 자는 하육혼賀六渾이시니, 이는 대왕께서 하늘의 명을 받으신 징조입니다. 삼천(三川)은 관우(關右)의 땅이니, 대왕께서 관우를 통치하시게 될 것임을 예시합니다.”라고 했다. 훗날 고환의 아들 고양(高洋)이 북제(北齊) 정권을 세워 6명의 황제를 거치며 총 28년 동안 지속되었으니, 이 돌은 마치 예언처럼 모두 응험되었다.

《복건통지(福建通志)》에도 이러한 일이 기록되어 있는데, 대만 봉산(鳳山)의 어떤 돌이 갈라졌는데 그 안에 뜻밖에도 글자가 숨겨져 있었다. “봉산의 한 조각 돌, 백만 명을 족히 수용하리라.(鳳山一片石,堪容百萬人)” 500년 이후, 과연 곳곳에 민남(閩南)인들이 이곳에 거주하게 되었다.

《책부원귀(冊府元龜)》의 이야기는 더욱 신기하다.

“당 태종이 무덕(武德) 9년 8월에 즉위한 후, 9월 임술일에 임주(林州)에서 상서로운 돌(禎石)을 바쳤는데, 은은히 글자를 이루니 “성주모대길, 자손오천세(聖主某大吉,子孫五千歲)”라 하였다.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전서와 예서가 섞여 있었다.”

즉 이 돌은 뜻밖에도 당 태종이 세운 그 위대한 왕조를 축하해 주었으며, 그 위의 글자는 심지어 전서체와 예서체가 혼용된 자연적인 글자였으니, 마치 대자연이 자신의 박학한 지식을 과시하는 듯했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이 돌들 위에 튀어나온 글자들은 대체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라고 말하자면, 그것이 글자를 형성할 확률이 얼마나 미미한지 아무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말하자면, 그것의 정확한 예언은 흔히 일반인의 인식을 뛰어넘는다. 그러므로 옛사람들은 흔히 이를 천의, 즉 하늘의 뜻이라 불렀다.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러한 기록을 볼 때 대부분 하하 웃으며 ‘미신’이라고 하거나 ‘사기극’이란 한마디로 넘겨버릴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귀주성 평당현(平塘縣)의 장자석을 본다면, 사람들은 비로소 깨닫게 된다. 옛날의 그 기이하고 믿기 힘든 일들, 그 이른바 신화, 전설, 참어(讖語), 예언, 천의는 결코 ‘상상하기 좋아하는’ 옛사람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모두 진실된 역사적 사건들의 기록이었음을 말이다.

당 태종에게 상서로움을 바쳤던 그 상서로운 돌이 전서와 예서가 섞여 있었던 것처럼, 평당현의 이 돌 역시 번체자와 간체자가 섞인 한자로 중공의 운명을 말해주고 있다. “中國共產黨亡(중국공산당망)!”

그리고 여기에 결론을 내린 것은 중공 지질학자들이었다. 이 장자석의 역사는 이미 2.7억 년이나 되었으며 완전히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어떠한 인공적인 조각의 흔적도 없다는 것이다. 비록 중공은 지금까지도 여섯 번째 ‘亡(망)’ 자에 대해 못 본 척하며 못 들은 척 입을 다물고 있지만 말이다.

대자연에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는 사실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니며, 단지 인류가 현대 관념에 미혹되어 무의식적으로 이러한 전통적인 관념을 배척할 뿐이다. 그리고 말하지 못하는 물건이 말을 했을 때, 그것은 결코 사람들에게 구경거리나 보여주고 신기함을 느끼게 하여 허허 웃고 끝내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늘이 경고하는 것이며, 다가올 거대한 변화 속에서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