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삼(梅森)
【정견망】
작년 어느 날, 동수 A가 뒤에서 동수 B를 원망하고 있었고, 나는 조용히 듣고 있었는데 마음이 꿀을 먹은 것처럼 달콤했다. 집에 돌아온 후에야 나는 비로소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째서 이런 것인가?’ 알고 보니 내 마음속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동수 B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데, 단지 그 생각이 나오자마자 내가 눌러 담았던 것이다. 이번에 동수 A가 내 마음속의 말을 끄집어내 주니 나는 꿀을 먹은 것처럼 흡족했던 것이다. 보라, 동수 B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니지 않은가.
사실, 동수 B를 만날 때마다 나는 동수 B에게 아주 완곡한 질책을 듣곤 했는데, 말의 앞뒤 뜻은 내가 너무나 터무니없이 잘못했다는 것이었다. 한두 번이면 괜찮지만 횟수가 잦아지자 불쾌해졌고, 그리하여 부지불식간에 동수 B를 멀리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일찍이 이 방면에서 비교적 잘 닦아왔다고 생각했다. 특히 ‘7·20’ 이전에는 동수가 무슨 말을 하든 이렇게 불쾌해한 적이 없었다. 동수 소진(小陳)과 나의 관계가 이를 입증해 주었다.
소진은 지금 내게 말을 아주 정중하게 하고 종종 내 말에 장단을 맞춰준다. 하지만 그는 예전에 내게 말할 때 직설적이었고, 때때로 엇나가는 소리를 하곤 했다. 내 눈에 그는 마치 《임금님은 벌거숭이》에서 진실을 말한 그 어린아이와 같았다. 비록 때로는 가슴이 콕콕 찔릴 정도로 아팠지만, 그로부터 수혜를 입은 것은 여전히 나였다.
‘7·20’ 이전에 우리는 대학 연공장에서 만났다. 나는 대학 교수이자 연공장 보도원이었고, 그는 대학생으로 나보다 한두 해 늦게 법을 얻었다. 한 연공장의 십여 명 남짓한 대학생 중에서 오직 그만이 바른 소리를 하기를 좋아했다.
기억하기로 《홍음》이 정식으로 출판되기 전에 연공장에서는 인쇄된 소책자를 먼저 배웠는데, 고작 12수(首) 안팎의 시사(詩詞)뿐이었다. 나는 아주 기쁘게 모두를 조직해 배우게 했는데, 시사의 수가 적었기 때문에 나는 “시 한 수를 네 번 읽읍시다.”라고 말했다.
말이 끝나자마자 소진이 동의하지 않았다.
“그렇게 여러 번 읽어요? 두 번이면 충분해요.”
나는 깜짝 놀라 생각했다. ‘네 번과 두 번이 무슨 차이가 있지?’ 그러나 다른 학생들이 읽기 시작하며 몇 번을 읽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그냥 두 번 읽자.”라고 말했다. 소진은 이번에 비록 나를 의외로 당황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나에게 일깨워주기도 했다. 보도원으로서 크고 작은 일에 모두의 의견을 많이 구하고 모두의 의견에 따르면 원융한 환경을 조성하기가 비교적 쉽다는 것을 말이다.
또 한 번은 내가 약혼녀와 다투고 방 문을 막 나서다가 문 앞에서 소진과 마주쳤다. 소진은 내 머리를 가리키며 큰소리로 웃었다. “아이쿠, 당신 머릿속에서 검은 기가 막 뿜어져 나오네요!” 나는 그의 천목(天目)이 열려 있어서 내가 화났을 때 다른 공간의 광경을 보았음을 알았다. 나는 당시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어서 고개를 휙 돌리며 가버렸고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소진이 내 머리를 가리키며 “검은 기가 뿜어져 나온다”고 했던 그 장면이 종종 내게 아내를 선하게 대하라고 일깨워준다. 이 점에 대해 나는 그에게 감사해야 한다.
때로 그는 대중 앞에서 나를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다. 한 번은 법 공부 교류를 할 때 내가 한창 열변을 토하고 있는데, 소진이 갑자기 내 말을 끊고는 십여 명의 동수들 앞에서 최근 사부님께서 설법 중 지식인의 대법 학습 문제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내게 물었다. 내가 그해 사부님의 지식인에 관한 일부 설법을 암송하고서야 그는 잠잠해졌다.
그것은 사부님께서 《북미 제1기 법회설법》에서 하신 설법이었다.
“지식인이 법을 배우는 데는 현대과학의 장애가 있다. 나는 과학에 부합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부합되지 않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그에게 심한 장애를 준다. 내가 설법할 때 왜 현재의 과학에 결부시켜 강의하는지를 아무도 모른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 하면 내가 당신의 그 껍질을 깨트려야하기 때문인데, 당신이 법을 얻는 데 장애가 되는 그 층의 껍질을 깨트려야 한다.”
그 설법을 다 외운 후 나는 곧바로 깨달았다. 그는 내가 말을 할 때 다른 공간에 나타난 장(場)이 순수하지 않은 것, 즉 나의 그 한 층의 ‘과학의 껍질’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을 보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지식인의 머릿속에 현대과학의 정보가 비교적 많아서 쉽게 간섭을 받으며, 이를 돌파하는 방법은 법을 많이 공부하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나중에 소진도 말하고 싶다고 다 말해서는 안 되며 관용해야 하고 수구(修口)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한 번은 참지 못하고 나에게 사적으로 말했다.
“어쨌든 난 당신에게 한 가지 결점이 있다는 걸 알지만 그냥 말하지 않을 뿐입니다. 나란 사람은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바로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지 않는 겁니다.”
나는 그의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모습이 우스워서 그를 자극했다.
“어쩌면 네가 본 것이 정확하지 못할지도 몰라? 그래도 말해봐.”
그가 나중에 한 말의 뜻은, 내가 비록 보도원 신분이면서도 동수가 잘하고 못하는 것에 대해 전혀 입을 열지 않고, 동수와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려 하지 않으며, 동수를 그다지 관심 있게 돌보지 않고 연공장에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사실 나의 고결하고 고립된 성격 때문에 빚어진 것이었기에 당시에는 그리 큰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후에 일어난 많은 일들이 모두 다소간 내 성격의 고결함 및 고립됨과 연관되어 있었고, 전체를 형성하는 데 일정한 간극을 조성했기에 비로소 나의 주의를 끌게 되었다. 소진은 내게 이것을 지적해 준 첫 번째 사람이었다.
바로 이렇게 철부지 같고 가감 없이 직언하는 동수가 종종 내 마음에 충격을 주곤 했지만, 그 시기 나는 여전히 그를 선하게 대할 수 있었고 그를 멀리할 생각조차 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어려울 때 도와주기도 했다. 그는 나와 가장 오랫동안 함께한 동수이자 내게 가장 유익했던 동수였다.
사부님께서는 《로스앤젤레스 시 법회 설법》에서 간곡히 당부하셨다.
“바로 대법제자에게 잘못이 있을 때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인데, 말만 하면 폭발하여 누구도 말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제기한 의견이 맞아도 언짢아하고, 다른 사람의 말이 틀려도 언짢아하는데, 말하기만 하면 언짢아한다.”
“당신들이 한 그 일체를 나는 다 보았고 또 정말 대단하지만 가장 근본적으로, 가장 본질적으로 한 사람이 수련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증명하자면,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하게 하는 이것은 반드시 제거해 버려야 한다. 당신이 어느 방면에서나 다 잘했더라도 이 방면에서 좋지 않다면, 그건 수련인일 수 없다. 과거에 그 수련인은 올라오자마자 먼저 이 방면부터 하였고, 이는 또한 제자를 선택하는 조건이었다.”
“절대 주의해야 하는데, 지금부터 시작해서 누가 다시 남에게 말을 못하게 한다면 그가 바로 정진하지 않는 것이며, 누가 다시 남에게 말을 못하게 한다면 그는 바로 표현한 것이 수련인의 상태가 아닌데, 최소한 이 한 점에서 말이다. (박수) 누가 만일 이 하나의 고비를 더는 넘기려 하지 않는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그럼 너무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수련인의 가장 근본적이고 또한 가장 마땅히 제거해야 할 것이며, 또한 반드시 제거해야 할 것으로, 당신이 제거하지 않는다면 원만을 향해 걸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법에 대조해 자신을 비춰본 후, 문득 동수 B를 은근히 원망하던 그 사람이 자신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해외에 온 후, 일정한 기간 나는 슈퍼마켓 매니저가 내게 소리 지르는 것을 불쾌하게 여겼다. 어느 한 번은 내가 한 고객에게 탈당을 권유하고 싶었는데, 이 고객이 틈을 타서 내게 버려진 양배추 잎사귀 몇 개를 가져가겠다고 했지만 슈퍼마켓 매니저는 원하지 않았다. 나는 그래서 매니저를 상대하지 않았고, 그녀가 내가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여겼다. 나의 태도는 매니저를 격분시켰고, 그녀는 늘 큰 목소리로 내게 소리를 지르며 트집을 잡았다. 나는 한동안 겉으로는 말을 안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아주 불쾌했다.
나중에 다른 동료가 양배추가 비싸고 사장님이 남겨두어 사용하려는 것이라고 일깨워주어, 나는 비로소 매니저가 화가 난 원인을 알게 되었다. 나도 이를 빌어 공산당 문화 속의 노사 갈등이라는 변이된 관점을 바로잡았고, 더는 사장님을 ‘착취자’로 여기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매니저는 점차 내게 태도가 온화해졌고, 동료들도 내가 성격이 좋다고 감탄했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말하며 진상 책자와 신문을 건네주었다.
어느 날, 원래 관계가 아주 좋았던 집주인 동수가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며 내가 세 들어 사는 방의 수도꼭지가 고장 난 지 1년이 넘었는데 자신이 서면 통지를 세 번이나 받았고 모두 물 사용량이 초과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무척 의외였다. 이런 사소한 일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하면 명백해질 텐데 말이다. 마음이 차분해진 후에 나는 내가 자신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집안의 수도꼭지가 물을 새는 것은 나의 과거 경험으로 미뤄볼 때 대개 사부님께서 내게 어디가 새고 있는지 일깨워주시는 것이었다. 장기간 물이 샌다는 것은 장기간 누수(漏)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찾아보니 정말 그랬는데, 주로 연공을 너무 적게 하고 발정념을 형식적으로 하는 이 두 가지 점이 장기간 존재하던 부족함이었다. 찾아내고 나니, 정말로 집주인의 이 한바탕 질책에 감사했다.
또한, 나는 원래 고독한 것에 익숙해 정체를 벗어나기 쉬웠다. 해외 대조직이라는 이 정체에 융화되기 위해서 때로는 자신을 억지로 다그쳐 어떤 교류들을 하곤 했다.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내가 대조직에서 한 교류를 겨냥해 두 동수가 직접적인 의견을 제기했고, 또 다른 두 동수는 암시적인 의견을 제기했다. 나는 처음에는 약간 불평하며 그들이 말만 하고 행동은 하지 않는다고 여겼지만, 결국에는 여전히 안으로 찾았고 그들의 의견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 그들이 옳은 말을 했든 틀린 말을 했든 내게는 모두 아주 좋은 일깨움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제1강〉에서 밝혀주셨다.
“당신에게 한 가지 진리를 알려주겠다.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각지 설법 13》〈2015년 미국서부법회설법〉에서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과거의 수련인은 집착을 하나씩 하나씩 제거했다. 당신들은, 거의 모든 집착을 다 가지고 있는데, 그것들을 한층 한층 약화시키고, 약화시키고, 약화시키고, 약화시켜, 갈수록 더 약해지게 하고 갈수록 더 적어지게 하는 것이다. 나는 당신들에게 이렇게 해주는데, 대법제자가 원만에 이르기 전에 속인 중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정상적으로 사람 무리 속에서 사람을 구할 수 있도록 했다. 동시에 바로 이런 다 제거하지 못한 사람마음이 있기에 또한 당신으로 하여금 사람마음의 교란 중에서 수련할 수 있게 하고, 시시각각 자신을 각성하고, 자신을 수련하며, 대법제자의 책임을 완성하도록 하는데, 이것이 바로 위덕이고, 이것이 곧 대단한 것이며, 이것이 바로 당신들이 걷는 길이다.”
나는 깨달았다. “남이 말하는 것을 언짢아하는” 마음은 일전에 잘 닦았으니 이제는 닦을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므로 끊임없이 그것을 약화시켜야 한다. 해외의 정법 수련 환경 속에서 나는 여전히 당시 중국에서 소진을 대했던 것처럼 계속해서 이 마음을 약화시키고 닦아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