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중공은 1999년 파룬궁을 탄압하기 위해 민중에게 수많은 거짓말을 주입했다. 최근 ‘CCTV’가 보기 드물게 파룬궁을 비방하는 영상을 다시 내보냈는데, 그 진부한 내용은 그것 스스로도 믿지 않으면서 또다시 텔레비전으로 민중을 바보로 만들고 망해가는 중공 정권의 명을 억지로 이어보려 망상하고 있다. 오늘날의 중국 사회는 “아무도 진정으로 공산당을 믿지 않고, 누구나 공산당을 욕하고 있다.” 이러한 선전 몰이는 아무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겠지만, 파룬궁이 도대체 무엇인지, 중공의 사악한 본질 및 장쩌민이 그해 파룬궁 박해를 발동한 진정한 원인을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파룬궁은 파룬따파(法輪大法)라고도 하며, ‘진·선·인(真·善·忍)’을 핵심으로 하는 불가의 상승(上乘) 수련 대법으로, 사람의 심성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병을 고치고 몸을 건강하게 한다. 1999년 당시 일찍이 1억이 넘는 중국인들이 수련을 배웠으며, 사회에 백가지 이로움만 있을 뿐 한 가지 해로움도 없었다. 파룬궁은 1992년 중국 동북에서 전해졌고, 1995년 프랑스에서 정식으로 해외로 전파되어, 지금까지 이미 150여 개 국가와 지역에 널리 전해졌으며, 각국에서 받은 표창, 지지 서한 및 결의안만 1만 4천여 건에 달한다. 전 세계에서 오직 중공만이 파룬궁을 ‘사교(邪敎)’로 모함해 국력을 기울여 탄압하고 있으니, 중공의 극단성과 변태성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중공은 박해 초기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파룬궁 서적을 불태웠는가? 그것은 왜 사람들이 명혜망(明慧網)을 보는 것을 감히 허용하지 않는가? 또 왜 세계적인 추세를 거스르며 인터넷 방화벽을 구축했는가? 왜냐하면 중공의 파룬궁 박해는 완전히 거짓말의 기초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며; 중공은 역대 정치운동 속에서 8천만 명에 달하는 중국 동포를 해쳐 죽였고 그 자체야말로 전 인류 최대의 사교이기 때문이며; 사람이 일단 중공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면 그것은 틀림없이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1. 4·25 사건: 톈진 공안의 체포 및 폭행과 자발적 평화 상방
1999년 4월 25일, 1만 명이 넘는 파룬궁 수련생들이 자발적으로 국무원 신방판공실에 와서 법에 따라 상방(上訪 청원)을 제기했다. 직접적인 도화선은 톈진 경찰이 파룬궁 수련생을 구타하고 체포했으며 석방을 완강히 거부했기 때문이다.
1999년 4월 11일, 중공 정법위원회 서기 뤄간의 손윗동서이자 정치건달 허쭤슈가 톈진 교육학원에서 발행하는 《청소년과 과학기술박람(青少年科技博覽)》 잡지에서 사실무근의 사례를 인용하여 파룬궁이 사람을 정신병에 걸리게 한다고 모함했다. 이에 일부 수련생들이 톈진 교육학원으로 찾아가 사실을 바로잡고 교섭을 통해 나쁜 영향을 없애고자 했다. 4월 23일과 24일, 일찍부터 파룬궁 사건을 도발해 승진하고자 했던 뤄간은 톈진시 공안국에 명령해 300여 명의 진압경찰을 출동시켰고, 평화롭게 상황을 반영하던 대중을 구타하여 유혈 부상 사건을 조작했으며, 45명을 체포했다. 톈진시 정부와 공안국은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공안부가 이 사건에 개입했으며, 베이징의 허가가 없으면 체포된 수련생들은 석방되지 않을 것이고, 베이징에 가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중국 《헌법》 제41조는 “공민은 어떠한 국가기관과 국가업무인원에 대하여도 비판과 건의를 제기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파룬궁의 직접적인 수혜자로서, 파룬궁이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을 때 걸어나와 진상을 밝히는 것은 의리상 당연한 일이며 이는 또한 《헌법》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4월 25일 아침, 주룽지 총리 일행이 중난하이 서문에서 나와 상방 민중을 접견했다. 주 총리가 물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는가? 왜 편지로 상방하지 않는가?”
어떤 수련생이 말했다.
“이미 많은 편지를 보냈으나 아무런 회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주 총리가 말했다.
“나는 당신들의 문제에 대해 비준을 내렸소.”
수련생들이 말했다.
“우리는 (통보를) 받지 못했습니다(뤄간이 방해).”
주 총리가 말했다.
“당신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면 대표를 파견하시오. 내가 당신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 대화하겠소.”
주룽지 총리는 현장에서 세 명의 수련생을 대표로 선정하여 그들을 데리고 중난하이 안으로 들어가 정부 관원들과 회담을 나누었다. 그날 오후, 파룬따파연구회 등 몇몇 수련생들이 추가로 중난하이로 들어가 회담에 참여했다. 국무원 상방판공실 책임자, 베이징시 책임자, 톈진시 책임자가 교대로 회담에 참가했다. 수련생 대표는 세 가지 요청을 제기했다.
① 부당하게 체포된 톈진 파룬궁 수련생들을 석방할 것;
② 파룬궁 서적의 합법적인 출판을 허용할 것;
③ 공정한 연공 환경을 조성해줄 것.
주룽지는 곧바로 톈진 공안국에 사람을 석방하라고 명령하였고, 국가가 대중의 연공을 간섭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재확인했다. 톈진은 그날 밤 구금되었던 모든 파룬궁 수련생을 석방했으며, 상방하러 온 대중은 즉시 흩어졌다. 떠난 뒤 바닥은 아주 깨끗하여 담배꽁초와 휴지 조각까지 모두 주워 담아졌고, 현장에 있던 한 경찰은 말했다. “이것이 바로 덕(德)이다!”
여기서 설명할 것은, 국무원 상방국이 위치한 곳이 중난하이 서문 옆이었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파룬궁 수련생들은 애초 중난하이 근처에 가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중난하이 정문인 신화문이 있는 창안제에는 상방 민중이 모이지 않았으니 이 점을 입증해 준다. 현장 사진과 영상을 보면 상방 민중의 뒤는 회색 벽이며 길 건너편이 바로 중난하이의 붉은 벽임을 보여준다. 그들은 인도 위에 조용히 서 있었고, 구호나 플래카드가 없었으며 교통을 막지도 않았다. 중난하이를 ‘포위’하지도 않았고 ‘공격’하지도 않았으며,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파견된 경찰조차 할 일이 없어 옆에서 한가롭게 잡담을 나눴다.
2. 국가체육총국: 파룬궁의 질병치료 및 체력 증진 유효율 97.9%
파룬궁을 ‘명예상 짓밟기’ 위해 장쩌민 집단은 온갖 거짓말을 날조했다. 그 조작과 멋대로 잘라낸 터무니없고 우스꽝스러운 왜곡은 파룬궁 서적의 가르침과 완전히 어긋날 뿐만 아니라 파룬궁 수련생들의 실제 행동과도 전혀 딴판이었다. 사실 1998년 국가체육총국은 의학 전문가 소조에 위탁해 베이징, 우한, 다롄, 광둥 등 인구가 밀집한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파룬궁에 대해 전면적이고 객관적인 조사와 이해를 진행했다. 표본 추출 방식으로 각지 수련생들의 수련 전후 질병 변화 상황을 중점적으로 수집했으며, 총 3만 5천여 부를 회수했다.
광둥성 1만 2천 5백 명의 조사 결과를 예로 들면, 2~3개월에서 2~3년까지의 서로 다른 수련 시간을 거쳐 병이 있던 수련생들의 완치 및 기본적인 회복률이 77.5%, 호전율이 20.4%였으며, 질병을 치유하고 체력을 증진한 총 유효율이 무려 97.9%에 달했다. 89.4%의 수련생이 파룬궁을 수련한 후 심성이 좋아지고 도덕이 향상되었으며, 철저하게 자신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7만 1천 7백 명의 수련생이 연간 절약한 의료비 수치를 기재했는데, 총 절약된 의료비가 1,265만 위안/년에 달해 1인당 연간 평균 1,700여 위안의 의료비를 절약했다. 의학 전문가들을 가장 놀라게 만든 것은 각 도시마다 불치병에 걸린 일부 환자들이 파룬궁을 수련함으로써 기적적으로 회복되었다는 점이다.
나중에 북미, 타이완 등의 조사 보고서도 유사한 결과를 얻었다. 전문가들은 파룬궁이 인체의 심신 건강에 가져다준 극대화된 효익은 현대 의학이 인식할 수 있는 범위를 완전히 초월한 것으로, 일종의 초상(超常)적인 과학 현상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998년 하반기, 차오스(喬石)를 수반으로 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일부 퇴직 노간부들은 많은 대중이 편지를 통해 공안이 파룬궁을 연공하는 대중을 불법적으로 대우하는 문제를 반영한 것에 근거하여, 역시 파룬궁에 대해 일정 기간 상세한 조사와 연구를 진행했다. 최종적으로 “파룬궁은 국가와 민중에 백 가지 이로움만 있고 한 가지 해로움도 없다”는 결론을 도출했으며, 그해 말 정치국에 조사 보고서를 제출했다.
3. 리훙쯔 사부님과 파룬궁의 사심없는 봉사
중공이 파룬궁을 모하하는 또 하나의 뻔뻔한 거짓말은 리훙쯔 사부님이 ‘재물을 축재했다’고 조작한 것이다. 사실 파룬궁의 모든 서적, 연공 비디오, 연공 음악, 그리고 리훙쯔 사부님의 설법 녹음과 영상은 줄곧 명혜망에서 무료로 열람하고 다운로드할 수 있었으며, 전 세계의 파룬궁 보도소와 연공장도 모두 일률적으로 무료로 연공을 가르쳤으며 그 누구에게든 1원 한푼의 돈도 받지 않았다.
리훙쯔 사부님이 초기 중국에서 법을 전하실 때 각지 관방 기공과학연구회의 초청에 응하여 총 56기의 파룬궁 학습반을 개최했으며, 매 회당 7일에서 10일이었다. 리훙쯔 사부님께서는 어느 곳에서 학습반을 개최하든 늘 최저 수준의 비용만을 받으셨다. 그분은 늘 기왕 중생을 널리 제도하려면 연공인의 부담을 가중시켜선 안 된다고 하셨다. 다른 기공반들은 모두 수수료가 너무 비싸서 관련 부문의 시정을 받았지만, 오직 파룬궁만이 수수료가 너무 저렴하여 일부 기공과학연구회에서 이의를 제기할 정도였다. 물론 완전히 돈을 받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는데, 학습 장소를 임대하는 데 비용이 들고 주관 단위와 주최측에도 분배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외에 학습반 관계자들의 식사와 숙박, 여비, 자료 인쇄비 등을 제하고 나면 남는 것이 거의 없었다.
파룬궁 수련생들의 온화함과 이지적 태도, 그리고 주룽지 총리의 솔직하고 개명한 태도로 인해 ‘4·25’ 사건은 원만히 해결되었다. 뤄간 무리가 고의로 꾸민 음모를 좌절시켰고 중국 정부가 국제적인 찬사를 받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마음이 협소한 장쩌민은 질투심에 눈이 멀어 파룬궁과 적이 되기로 결심하였고, 3개월 후 맹렬하게 파룬궁에 대한 전면적인 박해를 발동했다.
톈진 학습반에 참가했던 한 수련생은 이렇게 회고했다. “리훙쯔 사부님께서 파룬궁 학습반을 개최하실 때, 소위 기공사라는 사람도 있어 소위 전수반을 열었는데, 약 2시간이 넘는 한 차례 수업에 35위안이었습니다. 반면 사부님은 1차례 수업에 오직 5위안만 받으셨습니다.”
지난 학습반의 또 다른 수련생은 말했다. “내가 아는 바로는 일반적인 기공 학습반은 일주일 정도 과정에 120~200위안이었고, 일부는 더 비쌌습니다. 하지만 사부님은 10일 과정에 50위안을 받으셨고 그나마도 일부는 감면해 주셨습니다.”
1993년 12월 17일, 리훙쯔 사부님은 베이징 동방건강박람회에서 기공 과학 보고를 한 차례 하셨는데, 수익금 4천 위안을 전부 중화견의용위기금회(中華見義勇爲基金會)에 기부했다. 1994년 5월 14일과 15일, 리 사부님께서는 베이징 공안대학 강당에서 기공 학술 보고를 두 차례 하셨는데, 수익금 6만 위도 전부 중화의인용위기금회에 기부했다. 1994년 8월 27일, 리 사부님께서는 옌볜 조선족 자치주에서 학급반을 여셨는데 수입 7천 위안을 전부 해당 주 적십자회에 기부했다.
리훙쯔 사부님 본인의 생활도 매우 검소했다. 리 사부님께서 중국 각지에서 공을 전하실 때 타신 것은 싸고 딱딱한 기차 좌석이었고, 머무신 곳은 가장 싼 여관이었으며, 입으신 것은 평범한 옷이었고, 드신 것은 대부분 인스턴트 라면이었다. 중공은 그가 창춘에 호화 저택을 살았다고 모함했으나, 사실 창춘시 해방대로 103호 서문 4층 1호의 집은 난방조차 없는 허름하고 낡은 오래된 주택이었다. 1998년, 리 사부님께서 탁월한 인재 신분으로 미국 비자를 받아 이민가셨을 때는 돈도 없고 머물 곳도 없어 애틀랜타로 가서 한 수련생과 임대된 좁은 아파트에서 옹기종기 살았으며, 정말 생활할 수 없어 다시 뉴욕을 거쳐 마지막에는 한 수련생이 임대해 준 스튜디오(부엌·거실·침실이 삼위일체인 단칸 아파트)에서 사셨다. 그 스튜디오가 있는 빌딩을 중공은 ‘이것이 리훙쯔 빌딩이다’라고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
나중에 리훙쯔 사부님은 션윈예술단(神韻藝術團) 예술 총감독을 맡으셨다. 학생 부모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션윈을 위해 인재를 양성하는 페이톈학교(飛天學校) 학생들의 학비, 숙박, 식음료, 교재, 의류, 여비 등은 줄곧 무료였으며, 사실상 학교가 모든 학생에게 매년 5만 달러의 장학금을 주는 것과 같았다.
4. 톈안먼 분신 자살 사건: 장쩌민 집단이 연출한 사기극
장쩌민은 탄압 초기 “3개월 내에 파룬궁을 소멸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는 파룬궁 수련생들의 저항이 그토록 완강할 줄은 절대 예상치 못했다. 1년 반이 지났으나 전국 각지에서 베이징으로 상방하러 오는 수련생들은 여전히 끊이지 않았고, 대다수 중국 국민의 탄압에 대한 반응은 비교적 소극적이었다. 중공 중앙부터 본래 파룬궁 문제에 대해 이견이 존재했던 터라 장쩌민을 진퇴양난에 빠뜨렸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장쩌민과 뤄간 무리는 더 큰 음모를 기획하여 ‘전 국민 성토’라는 센세이션 효과를 내고, 증오를 더욱 선동하며, 탄압 수위를 높이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바로 2001년 섣달그믐날 발생한 ‘톈안먼 분신 자살’ 날조 사건의 배경이다.
사실 파룬궁 서적에는 살생과 자살을 명확히 금지하고 있다. ‘분신 자살’ 위조 사건의 수많은 헛점들 역시 당사자들 중 누구도 애초 파룬궁 수련생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예를 들어: 류춘링(劉春玲)의 이웃은 <워싱턴 포스트> 기자에게 그녀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을 본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으며 그녀는 나이트클럽에서 일했고 수시로 노모와 어린 딸을 구타했다고 밝혔다; 왕진둥(王進東)의 가부좌 자세와 구호는 모두 파룬궁의 것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중공 군인과 흡사했다; 류바오룽(劉葆榮)이 CCTV에서 말한 소위 ‘검은 연기’, ‘하얀 연기’ 등의 터무니없는 발언은 파룬궁 서적에서는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중앙음악학원 천궈(陳果)의 동창인 왕보(王博)는 2005년 비디오를 녹화해 이렇게 폭로했다. “1999년 내가 천궈를 알게 된 때부터 시작하여 그녀는 이미 《전법륜》을 보지 않았고 리훙쯔 사부님을 사부로 여기지도 않았으며, 그녀는 허난에 있는 류윈팡(劉雲芳)이라는 사람이 진정한 ‘고인(高人)’이라고 여겼고, 심지어 나와 우리 어머니에게 허난에 가서 소위 고인의 설법을 들으라고 초대했습니다. 나는 이에 그녀를 간곡히 말리며 그런 행위는 매우 위험하니 제발 다시는 류윈팡 무리들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말을 믿지 말라고 당시 천궈는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왕보는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일가족 세 명이 납치되어 불법 판결을 받았다; 2014년 천궈 본인은 천광뱌오(陳光標)의 기자회견에서 분신 자살한 것은 “류윈팡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시인했으며, 류윈팡은 파룬궁과 전혀 관계가 없다.
게다가 중앙텔레비전방송국(CCTV)의 슬로모션 장면은 분신 현장에 있던 류춘링이 경찰에게 구타당해 바닥에 쓰러져 사망했음을 똑똑히 보여준다. 또 녹화 속 왕진둥이 불을 끈 후 두 다리 사이의 새것 같은 플라스틱 병, 기관 절개 수술을 하고도 기자와 또렷하게 대화할 수 있었던 류쓰잉(劉思影), 스스로 휘발유 반 병을 마셨다고 하면서도 딴전을 피우며 대화하는 류바오룽(劉葆榮), 광장에 갑자기 나타난 대량의 소화기, 각종 ‘분신 자살’ 추적 및 클로즈업 화면, 그리고 사건 발생 후 신화사의 유례없이 신속한 보도 속도 등은 모두 이 사건이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을 모함하기 위해 연출한 악랄한 음모임을 설명한다.
‘분신 자살’이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공안부 고위 관리의 폭로에 따르면 왕진둥이 23일 ‘분신 자살’했는데 공안부장 자춘왕(賈春旺)은 이미 22일에 그 소식을 알고 있었다고 폭로했다. 중앙정법위원회 회의에서 뤄간은 “장악한 상황에 근거할 때, 설령 우리 왕진둥이 분신 자살하지 않았더라도 장진둥, 리진둥 등이 뛰쳐나와 연기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5. 장쩌민이 파룬궁 박해를 발동한 근본 원인: 소인배의 질투심
에포크타임스 편집부의 저서 《장쩌민 그 사람(江澤民其人)》은 장쩌민의 극도로 추악한 일생을 상세히 폭로했다. 장쩌민의 부친 장스쥔(江世俊)은 왕징웨이(汪精衛) 괴뢰정부의 친일파이자 매국노로 선전부 부부장(차관급)이었으며, 장쩌민이 다닌 대학은 일제가 설립한 중앙대학(항일전쟁 종료 후 다른 두 학교와 합병해 상하이교통대학교가 됨)이었다. 나중에 공산당이 천하를 빼앗자 장쩌민은 돌변하여 자신이 사망한 공산당원 숙부 장상칭(江上青)의 양자로 들어갔다고 날조했다. 이런 거짓말과 아첨으로 출세한 소인배가 결국 중공 최고위직까지 기어올라간 것이다.
많은 사람이 파룬궁 진상을 알게 된 후 장쩌민이 어째서 이 선량한 민중을 그토록 잔혹하게 박해했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많은 사람이 장쩌민이 당시 파룬궁을 진압한 것은 파룬궁 수련생이 공산당원보다 더 많아 중공 정권에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박해 전 중공의 모든 정치국 상무위원들은 《전법륜》을 보았고 가족 중에 파룬궁을 수련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파룬궁 수련생들이 정치적 목적이 없는 선량한 무리라는 것을 완전히 똑똑히 알고 있었다. 게다가 파룬궁은 ‘대도무형(大道無形)’의 길을 걸어 보도소는 오직 수련을 보도할 뿐 실체가 없고, 돈을 받지 않으며, 직책을 주지 않고, 심지어 명부조차 없었다. ‘4·25’ 다음 날의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 중 장쩌민을 제외한 6명이 파룬궁 탄압에 명확히 반대했다. 중공은 당초 거의 모든 사람이 파룬궁을 적아(敵我) 모순으로 격상해 처리하는 것이 정말로 불필요하다고 여겼다.
장쩌민이 독단적으로 행동한 진정한 근원은 파룬궁 창시인 리훙쯔 선생님이 당시 중국 사회, 당원과 군인을 포함한 많은 이들로부터 아주 큰 찬사와 존경을 받았기 때문인데 다시 말해 질투심에 이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장쩌민은 극도로 과시하길 좋아해 도처에서 연기했고, 그 질투심의 강렬함과 남이 자신을 뛰어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은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저장성 위야오시(餘姚市)에는 ‘허무두 유적 박물관’이 있는데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이며, 그 간판 휘호는 원래 차오스가 쓴 것이다. 1992년 9월, 장쩌민이 참관하러 갔을 때 차오스가 쓴 친필을 보고 안색이 매우 심하게 어두워졌다. 수행원들은 매우 긴장했는데, 한편으로는 장쩌민이 차오스를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장쩌민이 과시하길 좋아해 어디를 가든 친필 휘호를 걸어두려 했기 때문이었다. 박물관 지도부는 장쩌민을 감히 소홀히 대하지 못했고, 이에 1993년 5월 박물관을 재개관한다는 구실을 대고 장쩌민의 친필 글씨로 교체했다.
‘4·25’ 그날 밤, 장쩌민은 정치국에 편지를 보내 걱정스러운 듯 위선적으로 부르짖었다. “우리 공산당원이 지닌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우리가 신봉하는 유물론·무신론이 어찌 파룬궁이 선전하는 일련의 것들을 이겨내지 못한단 말인가? 진정으로 그렇다면 거대한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는가!” 전 세계는 이상하게 여겼다. 국가 지도자가 어찌하여 자기 통치 하에 있는,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을 먹어도 대꾸하지 않으며 오직 좋은 사람이 되려 하는 비무장한 민중을 ‘싸워 이기려’ 한단 말인가? 이지를 상실한 것이 아닌가? 불행히도 이 어릿광대 같은 자의 손에 권력이 쥐어져 있었고, 수천만 명의 무고하고 선량한 민중의 겁난은 정말 그의 질투심의 사주하에 ‘망당망국(亡黨亡國)’의 허울을 뒤집어쓴 채 터무니없이 발생했고, 중공 역시 이로부터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맺음말
거짓말을 천 번 반복해도 여전히 거짓말이며, 사실의 진상(真相)은 모든 편견을 씻어낼 것이다. 파룬궁 수련생들이 27년 동안 평화롭고 이지적으로 박해에 반대하고 진상을 알리면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는 중국 내에서 점차 인심 깊이 파고들었으며, 총 4억 6천만 명이 중공의 당·단·대 조직 탈퇴를 성명했다. 국제적으로 파룬궁은 원래 30여 개국에서 150여 개 국가와 지역으로 널리 전파되어 당초의 약 5배에 달한다. 타이완을 예로 들면, ‘4·25’ 상방 이후 수련생 수가 급증해 수년 만에 1만여 명에서 수십만 명으로 늘어났다. 중공의 파룬궁에 대한 모함과 먹칠은 결국 모두 파룬궁을 널리 알리는 꼴이 되었으며, 전 세계로 하여금 중공의 깡패 본성을 똑똑히 보게 만들었다. 말하자면, 중공 스스로가 자신을 무너뜨린 것이다.
이미 죽어 지옥에 떨어진 장쩌민은 파룬궁 박해의 원흉일 뿐만 아니라 장기 생체 적출을 명령한 자, 중국 탐오 부패의 배후조종자, 러시아에 국토를 팔아넘긴 민족 반역자이며, 그 죄악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다. 2000년부터 파룬궁 수련생들은 중국 대륙을 포함한 30여 개 국가, 50여 개 법원에서 반인륜죄, 집단학살죄, 고문죄 등으로 장쩌민과 그의 주요 하수인들을 고소했다. 2009년 아르헨티나 최고법원은 장쩌민 및 중공 전 정법위 서기 뤄간에게 국제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선과 악에는 언젠가 응보가 따르게 마련이다. 지금 중공 정권은 내우외환에 처해 있고 누구나 침을 뱉고 욕할 정도로 명이 다했다. 현 집권자들이 하늘의 뜻과 민심(民心)에 순응해 중공을 해체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권력을 수호하기 위해 하늘에 사무치는 큰 죄를 범한 중공 및 장쩌민과 한데 묶여 천명을 거스르며 불법(佛法)을 비방한다면, 머지않아 중공과 함께 순장당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