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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시’하는 인지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어제오후, 내 휴대전화에서 자동 결제가 발생했다. 삼십 위안밖에 안 되는 적은 액수였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왜냐하면 내게는 휴대전화 번호가 두 개 있는데, 그중 하나는 직장용으로 예전에는 줄곧 직장에서 요금을 납부해 주었기에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이번에는 내 계정에서 다이렉트로 요금이 빠져나간 것일까? 곧바로 캡처를 해서 상사에게 보내어 다음 달 월급에서 나에게 이체해 달라고 하려고 했다. 이때 이성적인 일면이 나타나 나에게 먼저 결제된 휴대전화 번호부터 확인해 보라고 일깨워주었다.

번호를 대조해 본 후에야 그것이 바로 내가 예전에 쓰던, 오래전에 잊고 지내던 내 번호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기본요금이 없고 통화량만큼 결제하는 휴대전화 번호였는데, 내가 비록 사용하지는 않지만 해지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몇 년이 되었으니 아마 연회비가 청구되어 삼십 위안이 결제된 모양이었다.

결제된 것 자체는 그다지 큰일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째서 애초에 생각조차 해보지 않고 사장님이 내 업무용 번호에서 요금을 빼갔다고 단정 지었는가 하는 점이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경문 《각지 설법 15》〈2019년 뉴욕법회설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우리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밖으로 밀고 있는가. 밖으로 밀 뿐만 아니라, 또 아주 교활하게 변한다. 어떤 때 내가 그들을 도와 무슨 일을 할 때, 그들은 심지어 내 앞에서도 거짓말을 하고, 교활하게 변명한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아주 우스꽝스럽다고 느꼈다. 하지만 나도 알고 있는데, 사람은 바로 이럴 수밖에 없다. 당신이 잘 수련하지 못한 이 면은 바로 사람마음이며, 그럼 사람은 바로 이렇다.”

예전에는 자신의 잘못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여겼다. 이제 와서 비로소 깨달았는데, 많은 경우에 자신은 애초에 자신의 문제를 의식조차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사고 속에서는 결코 자신의 문제를 돌아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모순을 상대방에게 겨누곤 한다.

오늘도 이런 일을 겪었다. 나는 이발하러 갔다. 내가 끊은 것은 월정액 카드인데, 내가 이발한 횟수가 기록된 표가 하나 있었다. 상대방은 내가 저번 이발과 두 달이나 떨어져 있다는 것을 보더니, 자신이 아마 저번에 기록하고 저장하는 것을 깜빡했을 것이라며 횟수가 한 번 적게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나는 서둘러 해명하며 상대방에게 내가 원래 두 달에 한 번씩 이발한다고 알려주었다. 앞서 다섯여 차례가 다 그랬으며, 표 위에도 그런 기록이 다섯여 차례나 있는데 모두 두 달 간격이었다. 사장은 그제야 이해했다. 사장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계산할 때 최대한 더 많이 계산하려 들었던 것이다. 이것 역시 일종의 당연시하는 관성적 사고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문제를 만났을 때 안으로 찾기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많은 일들을 자신은 아예 의식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미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즉, 후천적인 인간 세상에서 형성된 사고방식인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중국에서는 질투심의 표현이 극히 강렬하며, 강렬함이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자신마저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해하기에는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집착심이 아주 많으며, 오직 안으로 찾을 때에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다. 우리는 반드시 이러한 당연시하는 인지 오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것이 가장 발견하기 어렵다.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 글로 써서 동수들과 공유한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동수들이 바로잡아 함께 제고하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