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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면 진상에서 인터넷 댓글창 진상으로

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지난 몇 년 동안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각성하기 시작했고, ‘삼퇴(三退: 중국공산당의 당·단·대 조직 탈퇴)’를 통해 자신의 선택을 표현하고 있다. 일선에서 진상을 알리는 많은 파룬궁 수련자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민중에게 진상을 알리며 중공의 기만, 조작, 박해를 폭로하고, 왜 ‘삼퇴’를 해야 하는지 설명해 왔으며, 동시에 민중이 실명이나 가명으로 ‘삼퇴’ 수속을 밟는 것을 도와왔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많은 사람이 비록 진상을 들었을지라도 처음에는 여전히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중공의 오랜 정보 통제와 선전 조작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어릴 때부터 받아온 것은 모두 단일한 정보였기에, 완전히 다른 사실과 처음 접했을 때 자연스럽게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이다.

지난 수년 동안 점점 더 많은 중국인이 해외 관광, 친지 방문, 유학, 이민을 감상함에 따라 접하는 정보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그들이 원래의 정보 환경에서 벗어나면서 서로 다른 출처의 보도와 인터넷 정보를 접할 기회를 얻게 되고, 파룬궁 수련자가 배포하는 진상 자료를 받거나 그들로부터 진상을 들을 기회도 생기게 된다. 중공의 파룬궁 박해, 생체 장기적출 등의 문제를 포함해 관련 정보가 끊임없이 전파되면서 과거에는 몰랐던 일들을 알기 시작하는 사람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국내 민중이든, 해외 화교든, 혹은 전 세계 각지의 사람이든 모두 조금씩은 서로 다른 목소리를 접하기 시작했으며, 단지 각 개인이 이해한 정도가 다를 뿐이다.

여기에 팬데믹 이후의 사회 변화, 경제 하락, 그리고 각종 사회적 혼란과 정보 조작이 더해지면서, 왜 현실과 과거에 들었던 선전 사이에 이토록 큰 격차가 존재하는지, 왜 어떤 일들은 장기간 공개적으로 토론되지 못하는지, 왜 많은 진상은 늘 은폐되는지 반성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바로 이러한 과정 속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각성과 반성을 시작하고 있으며,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인식을 점차 바꾸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 따라서 파룬궁 수련자들이 수년간 끈질기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유해 온 것은 결코 사람들을 정치 활동에 참여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사람들이 진상을 알고 스스로 생각하며 자신의 생명을 위해 선택을 내리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인터넷 동영상: 진상을 알리는 또 다른 방식

지금 누구나 느낄 수 있듯이 사회 정세는 거대한 변화를 겪고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진상을 알릴 기회를 갖도록 하기 위해 파룬궁 수련자들도 인터넷상에서 대량의 동영상을 제작하고 있으며, 서로 다른 각도에서 충격적이면서도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드는 진실한 사례들을 선택하여 과거에 은폐되었던 일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단순히 이치만 설명하는 것에 비해 동영상은 훨씬 직관적이고 구체적이다. 눈앞에 놓인 하나하나의 사례는 시청자 스스로 보고 생각하게 만든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왜 많은 일들이 장기간 은폐되어 왔는가?’, ‘왜 공식 선전과 현실 사이에 차이가 존재하는가?’ 한 사람이 접하는 정보가 점점 더 많아질수록 원래 고정되어 있던 인식도 서서히 변화할 수 있다. 이 과정 자체가 끊임없이 알고, 생각하고, 반성하는 과정이며, 그들이 최종적으로 자신의 선택을 내리는 데 완충 역할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터넷 동영상 그 자체도 진상을 알리는 한 가지 방식임을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능동적으로 좋아요, 댓글, 상호작용에 참여할 때 사실 그것은 단순히 ‘동영상 하나를 지지하는 것’을 넘어 진상 알기에 동참하는 것이다. 과거에 우리는 대면해서 알리거나 전화로 알리는 것에 비교적 익숙해 ‘입 움직이기(말하기)’면, 이제는 인터넷 동영상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짐에 따라 우리 역시 ‘손 움직이기(글쓰기)’을 배워야 한다. 동영상의 조회수와 재생 수가 점점 더 높아진다는 것은 그것이 점점 더 큰 영향력을 창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더 많은 사람이 진상을 보기를 바란다면, 진상 알리기의 책임을 동영상 그 자체에만 떠넘겨서는 안 되며 우리 자신 역시 그 속에 참여할 수 있다.

댓글창은 ‘삼퇴 구호 외치는 곳’이 아냐

하지만 인터넷 댓글창은 대면하여 진상을 알릴 때와는 다르다. 대면하여 소통할 때는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맞춤형으로 질문에 답하고 왜 ‘삼퇴’를 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지만, 인터넷 댓글창에서는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삼퇴’를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동영상 속의 구체적인 내용을 빌려 사람들이 사실을 알고, 문제를 인식하며, 사고를 이끌어내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므로 댓글을 달 때는 가급적 설교조를 피해야 하며, 첫마디부터 남을 대신해 결론을 내려서도 안 된다.

예를 들어 동영상이 구체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면, 우리는 사건 자체를 중심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진실은 무엇인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과거에 보도된 적이 있는가?

왜 대중이 알기 어려운가?

유사한 다른 사례는 없는가?

때로는 직접적인 결론을 던져주는 것보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질문 하나가 사람들로 하여금 멈춰 서서 생각하게 만들기 더 쉽다. 만약 파룬궁 수련자가 댓글 속에서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싶다면, 단순히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실한 경험과 느낌을 공유할 수 있다. 파룬궁을 접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수련자의 내면세계를 잘 모르기 때문에, 진실하고 구체적인 개인적 경험이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더 쉽다. 물론 모든 댓글에 신분을 밝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일반인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사건을 평가하거나 생각할 가치가 있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오히려 더 쉽게 받아들여진다. 우리의 목적은 매번 무엇인가를 급하게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보이지 않았던 정보들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댓글은 ‘임무 완수’가 아니라 목표 지향적이어야

우리는 매체의 기사, 보도 및 관련 내용을 참고하여 그 안에서 해당 동영상 주제에 맞는 관점을 자신의 말로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다. 참여 방식은 사실 매우 다양하며, 매번 반드시 긴 댓글을 쓸 필요도 없다. 공감 가는 내용을 보면 좋아요, 하트, 엄지척을 누를 수 있고, 어떤 관점이 타당하다고 느껴지면 간단하게 “정말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이 문제는 과거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자신이 관련된 사실이나 사례를 알고 있다면 적절히 보충할 수도 있다. 글자 수가 꼭 많을 필요는 없으며, 핵심은 진실하고 자연스러우며 맥락에 맞아야 한다는 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댓글이 반드시 동영상 내용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동영상 자체의 내용은 아주 좋지만, 댓글창에는 어떤 동영상인지 상관없이 똑같은 표현인 ‘삼퇴하여 평안을 지키자’, ‘삼퇴로 스스로를 구하자’ 같은 똑같은 말이 천편일률적으로 등장한다면, 일반 시청자들은 이러한 댓글들이 동영상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느끼기 쉽고, 심지어 거리감까지 느끼게 될 수 있다. 원래는 동영상의 진상 전파를 돕고자 했던 것이 도리어 동영상 자체의 신뢰도와 전파 효과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댓글창에 글을 남기는 것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평범한 시청자의 입장에 서서 그 동영상을 바라보기 위함이다.

‘이것은 무엇을 다루고 있는가?’

‘어느 대목이 가장 생각할 가치가 있는가?’

‘어떤 사실을 보충할 만한가?’

‘평범한 사람들이 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가?’

이러한 질문들을 중심으로 표현해야 댓글이 더욱 자연스럽고 일반인들도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말하기’에서 ‘글쓰기’로

이것은 사실 우리가 과거에 대면하여 진상을 알리던 방식을 넓힌 것이다. 평소 대면 진상 경험이 많은 동수들에게는 문자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기회가 되고, 많은 것을 마음속으로는 잘 알면서도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동수들에게는 꾸준히 댓글을 쓰고 다른 사람들의 표현을 관찰하면서 문제를 어떻게 더 명확하고, 자연스럽고, 깊이 있게 전달할 수 있을지 배우는 계기가 된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진상을 알도록 돕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향상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단순히 ‘무엇을 아는가’에 그치지 않고, 더 중요하게는 우리가 아는 것을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어떻게 표현하느냐 하는 것이다.

인터넷 그 자체는 진상을 알리는 하나의 공간이다. 과거에는 한 사람, 혹은 한 무리의 사람을 마주하고 알렸다면, 지금 동영상 하나로 수천, 수만 명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고, 사실을 보충하는 것은 단순히 진상 동영상에 ‘응원’을 보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정보 전파에 참여하는 것이다. 인터넷 댓글은 곧바로 어떤 사람에게 우리의 결론을 억지로 수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며, 매번 곧바로 ‘삼퇴’로 이끌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많은 경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람들이 먼저 어떤 사실을 보게 하고, 의문을 품게 만들며, 더 깊이 알아보려 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선택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대면 진상은 직접적인 소통이다. 반면 인터넷 댓글창을 통한 진상 알리기는 마치 누군가의 마음에 생각의 씨앗을 심어주는 것과 같다. 우리는 남을 대신해 서둘러 결정을 내릴 필요가 없으며, 가능한 한 진실한 정보, 생각할 가치가 있는 문제, 그리고 우리의 진실한 소감을 드러내 보여줌으로써 더 많은 사람이 멈춰 서서 보고 생각하고 싶어지도록 만들면 된다. 이것이 아마도 오늘날의 인터넷 환경 속에서 우리가 진상 알기에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일 것이다. 과거에는 입으로 알렸지만, 이제는 글로도 알릴 수 있다. 과거에는 한 사람을 마주했으나, 이제는 더 많은 사람을 마주할 수 있다. 매번 자연스럽고 객관적이며 가치 있는 표현이 다른 사람이 진상을 알게 되는 하나의 통로가 되도록 하자.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4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