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제자
【정견망】
정견망에 최근 발표된 글 《사상 속에서 색욕심을 물리치라》를 읽고 나는 매우 감동을 받았다. 글에서 색욕심을 없애는 것에 대해 한 말은 종이를 뚫을 정도로 힘이 있었는데, 그중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것이 죽거나 내가 죽거나, 둘 중 하나만 살아남아야 한다’는 결연함을 품어야 한다.”라는 구절이 있었다.
나는 비록 수련한 지 비록 30년 가까이 되었지만, 색념(色念)이 줄곧 끊이지 않아 매우 괴로웠다. 동수의 글을 보고 나는 이전에 결심이 부족했음을 깨달았다. 색욕도 생명이라 조금만 주의하지 않으면 그것에 에너지를 보충해 주게 되고, 구세력도 계속해서 그것에게 에너지를 보내주므로 항상 다 없애지 못한다고 느껴졌다. 만약 색욕이 수련인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똑똑히 볼 수 있다면 놀라 깨어날 것이고, 제거 효과도 좋을 것이다.
작자는 “그것이 죽거나 내가 죽거나”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이 참으로 통쾌하고, 힘이 있으며, 단번에 제위치에 이르고,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모두 화근이 된다고 느꼈다. 최근 나는 색욕에 관한 생각을 제거할 때 자주 이 구절을 떠올렸는데, 힘이 있고 간결하며 효과가 현저하다고 느꼈다!
수련이 마지막에 이르렀으니 색욕에 대해 더 이상 우유부단해서는 안 되며, 더는 시간이 없다. 만약 정법이 내일 끝난다면 오늘 머릿속이 여전히 그렇게 더러운데 스승님께서 어떻게 배정하시겠는가? 어디로 가겠는가? 이전에 색욕심 제거가 늦은 것은 힘이 작았기 때문이며, 그것을 “그것이 죽거나 내가 죽거나” 하는 차원에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옛날의 수도(修道)에서는 만약 색욕관을 넘기지 못하면 죽음과 다름없어 영원히 다시는 수련할 수 없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강력한 불법(佛法) 신통을 하사하셨으니, 오직 사상적으로 깊이 인식하고 제거하고 또 제거해야 한다! 색욕의 생각이 일어나기만 하면 “네가 죽을래? 아니면 내가 죽을까?”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죽음”의 위치에 놓으며 이러한 심태로 대한다면 색욕이 여전히 있을 수 있겠는가?
이를 통해 나는 다른 사람 마음을 없애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사람 마음이 아무리 많고 아무리 무겁든 간에, 당신은 “네가 크냐 법(法)이 크냐? 네가 죽을래 아니면 내가 죽을까?”라고 생각해보라. 힘이 맹렬하고 칼이 날카로우니 무엇이 또 막을 수 있겠는가?
이상은 작은 독후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