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전법륜(轉法輪)》을 암기할 때 이 단락을 암기하게 되었다.
“다 전한 다음 사부는 또 그에게 알려 준다. “자네는 많은 집착심을 제거해야 하니 자네는 나가서 행각하게나.” 행각은 무척 고생스러운 것으로서, 사회 중에서 다니며 동냥을 해야 하는데, 각종 사람과 마주치게 된다. 그를 비웃고, 그에게 욕설을 퍼붓고, 그를 우롱하는데, 어떤 일에든 모두 부딪힐 수 있다.”
나는 마음속으로 혼자 생각했다. 행각을 하면 하는 것이지, 왜 하필 밥을 빌어먹는 동냥을 해야 하는가? 다른 사람에게 단기 일자리를 해주며 일을 하는 한편 호구지책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행각하면 되지 않는가? 동냥이란 얼마나 어려운가. 수련하는 사람은 몸이 매우 좋은데 만약 어떤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고 “당신은 장애인도 아니고 손발이 멀쩡한데 게을러서 일을 하지 않고 뻔뻔스럽게 남에게 먹을 것을 구걸하다니, 꺼져!”라고 욕한다면? 머릿속으로 이러한 정경을 보충해 떠올리니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생각을 바꾸어 또 생각해 보았다. 만약 동냥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각양각색의 세인(世人)을 만날 수 있으며, 또 어떻게 비웃음, 욕설, 우롱을 마주칠 수 있겠는가? 만약 이러한 비웃음, 욕설, 우롱의 단련이 없다면 어떻게 심성(心性)과 층차(層次)를 제고하고 위대한 각자(覺者)로 성취할 수 있겠는가? 나는 행각 중의 ‘동냥’이 단지 음식물을 얻는 한 가지 방식일 뿐만 아니라 더욱이 하나의 수행이자 철저히 자아(自我)를 내려놓는 수행임을 깨달았다.
발우 하나를 들고 거리로 나가 낯선 사람에게 밥을 구걸하여 먹는 것은 한 사람의 자존심에 얼마나 큰 고험인가?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도리어 제자가 이렇게 하기를 바라셨는데, 바로 그가 모든 오만함과 체면 차리는 마음을 내려놓고 진정으로 겸손해지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밥을 빌어먹기 때문에 자아를 극도로 낮게 두어야 하고, 다른 사람의 집 문앞에서 기다리며 다른 사람의 시혜를 기다려야 한다. 주든 주지 않든 오직 인연에 따를 뿐이므로 오만함은 자연히 둘 곳이 없어진다. 차가운 눈총, 거절, 심지어 욕설을 마주하더라도 모두 마음을 평온히 해야 한다. 서서히 “그는 자신을 연공인(煉功人)으로 여기고 사람들과 관계를 바로잡으며, 心性(씬씽)을 지키고, 끊임없이 心性(씬씽)을 제고해 속인의 각종 이익의 유혹에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전법륜》)를 실천해야 한다.
《불본행경(佛本行經)》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아들 라후라가 막 출가했을 때 아직 어린아이였다. 한번은 그가 부처님을 따라 걸식하러 가다가 어느 집 문앞에 다다랐는데, 그 집 주인은 음식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악담을 퍼붓고 심지어 그의 발우에 침을 뱉었다. 어린 라후라는 당시 바로 울음을 터뜨리며 몹시 억울하다고 느꼈다. 부처님께서 이를 보시고 그 시주를 꾸짖지 않으시고 도리어 라후라를 위로하며 말씀하셨다. “이것이 바로 수행할 좋은 기회이다. 만약 네가 이러한 모욕조차 견디지 못한다면 어떻게 도업(道業)을 이룰 수 있겠느냐?” 그때 이후로 라후라는 다시는 걸식할 때의 조우 때문에 흔들린 적이 없었다.
우리 대법제자들은 속인 사회에서 수련하며 생계를 유지할 직업이나 생업이 있으므로 자연히 밥을 빌어먹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속인 속에서 비웃음, 욕설, 우롱에 마주칠 때, 혹은 법을 실증하는 일로 동수와 협조할 때 자신이 비웃음, 불공정, 우롱이라 여기는 것과 마주칠 때, 우리 역시 행각 중에서 ‘동냥’하는 수행인처럼 자아를 내려놓고 모든 오만함과 체면 차리는 마음을 내려놓으며 진정으로 겸손해져야 하지 않겠는가. 차가운 눈총, 거절, 심지어 욕설을 마주하더라도 늘 마음을 평온히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 가지 얕은 견해이니 부당한 부분은 자비로 바로잡아 주시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