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오(明奧) 정리
【정견망】
제3편 이순풍 원천강의 《추배도(推背圖)》
시(詩)에 이르기를:
뛰어난 선비 한쌍 대당(大唐)에 내려와,
그림을 밀고 역(易)을 풀어 아름다운 문장 지었네.
궁극의 현묘함으로 천기(天機)를 누설하니,
뜻과 운치가 심원하여 길이 세상을 경계하노라.
逸士雙雙降大唐
推圖演易著華章
窮極玄妙天機泄
意韻深遠警世長
당대(唐代)에 역학(易學)에 기이한 재능을 지닌 두 선비가 났으니, 한 사람은 중앙정부 사천감(司天監)을 지낸 이순풍(李淳風)이고, 다른 한 명은 은사(隱士) 원천강(袁天綱)으로 역시 초당의 명사였다. 이들 두 사람은 모두 박학다식한 명사(名士)로, 그 신비로운 예언 능력과 정확성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수많은 구체적인 국사 예측 외에도, 이순풍과 원천강 두 사람은 후세에 극히 신비롭고 난해한 역학의 기서인 《추배도(推背圖)》를 남겼다.
이 기이한 책은 당조(唐朝) 이후 수천 년간 국운의 흥망성쇠와 치란(治亂)을 예언했기에, 역대로 세인들의 주목을 받으며 앞다투어 비밀을 풀고자 했다. 《송사(宋史)·예문지》는 정식으로 이 책을 정사에 올렸으니, 당시 이 기서를 얼마나 중시했는지 알 수 있다.
이순풍은 정사에서 고찰할 수 있는데, 그는 당대의 걸출한 천문학자이자 수학자로 섬서 기산(岐山) 사람이다. 서기 602년에 태어나 670년에 세상을 떠났다. 622년 그는 비각낭중(秘閣郎中)을 맡아 새 역법을 편찬할 것을 주청했고, 644년 《갑자원력(甲子元歷)》을 편찬해 후세 천문, 역법 및 수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그는 또한 총 7권으로 된 《법상지(法象志)》를 저술해 ‘전대(前代) 혼천의의 오차’를 논했는데, 이는 후세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641년에는 《양서(梁書)》, 《진서(陳書)》, 《북제서(北齊書)》, 《주서(周書)》, 《수서(隋書)》 편찬의 총지도를 맡았으며, 또 《진서》에서는 직접 〈천문지〉, 〈율력지〉, 〈오행지〉를 집필해 고대 천상 변화 및 재해(災害) 사료를 보존했다. 그는 또한 세계 최초로 풍급(風級 바람 세기의 등급)을 정한 과학자이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상학 전문 서적 《을사점(乙巳占)》에서 바람을 8등급으로 나누었다. 1,000년 후 영국 학자가 비로소 《을사점》을 기초로 풍력을 0에서 12등급으로 획분했다.
원천강은 비록 정사에서 고찰할 수는 없으나, 역사상 그에 관한 전설이 끊이지 않는다.
신당서(新唐書)-이순풍전
이순풍은 당조(唐朝) 기주(岐州) 사람이다. 아버지 이파(李播)는 수조에서 고당(高唐)의 현위(縣尉 현의 치안 책임자)였으나, 관직이 낮아 뜻을 얻지 못하자 관직을 버리고 도사가 되었다. 문학에 조예가 깊어 자호를 황관자(黃冠子)라 했으며, 《노자》에 주를 달고 《방지도(方誌圖)》를 저술했으며 문집 10권이 있어 그 시대에 유행했다.
이순풍은 어려서부터 여러 책을 널리 섭렵했으며, 특히 천문, 역산(曆算), 음양(陰陽)의 학문에 밝았다. 당 정관(貞觀) 초년에 그는 장사랑(將仕郎) 관직을 제수받아 태사국(太史局)에서 근무했다. 그는 정관 7년 혼천의를 제작했는데 당시 사람들이 모두 그 정묘함을 찬탄했다. 그는 또 이전 조대 혼천의(渾儀)의 득실을 논술해 7권의 책을 저술했으니 그 이름이 《법상지》다. 정관 15년 태종은 그를 태상박사로 임명했고, 얼마 후 태사승(太史丞)으로 전임되어 《진서》 및 《오대사》 편찬에 참여했는데, 그중 〈천문〉, 〈율력〉, 〈오행지〉는 모두 이순풍이 지은 것이다. 그는 또 《문사박요(文思博要)》 편찬에 참여했다. 정관 22년 그는 태사령(太史令)으로 승진했다.
처음에 태종 시대에 《비기(秘記)》라는 책에서 이르기를, “당조는 3세(三世) 후 여주(女主) 무왕(武王)이 당의 천하를 대신할 것이다”라고 했다.
태종이 일찍이 비밀리에 이순풍을 불러 이 일에 관해 묻자, 이순풍이 대답했다.
“제가 천상(天象)을 근거로 추산해 보니 그 징조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게다가 이 사람은 이미 태어나 폐하의 궁 안에 있으며, 지금으로부터 30년을 넘기지 않아 천하를 차지하고 당의 자손을 다 죽일 것입니다”라고 했다.
황제가 말했다.
“의심스러운 자들을 모두 죽이면 어떻겠는가?”
이순풍이 말하기를 “천명(天命)은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진정으로 왕이 될 사람은 반드시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며, 아마도 무고한 이들에게 화가 미칠까 두렵습니다. 또한 천상에 근거하면 징조가 이미 이루어졌고 또 궁 안에 있으니 이미 폐하의 권속입니다. 30년이 지나면 그녀는 이미 노년이 될 것이니, 노년에는 인자해질 것이라 폐하의 자손에 대해 과하게 해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지금 그녀를 죽이면 그녀는 다시 환생할 것이고, 그때는 젊고 강성한 나이일 것이니 반드시 독해져서 폐하의 자손을 도륙하고 단 한 명도 남기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태종은 그의 말을 옳게 여겨 체포해서 죽이는 행동을 중단했다.
이순풍은 매번 길흉을 점칠 때마다 부절(符契)처럼 꼭 들어맞으니, 당시 술수(術數)에 능한 자들이 그가 별도로 귀신을 부려 공부하지 않고도 해내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으나, 또한 그가 도대체 어떤 방법을 써서 이토록 영험한지 알 수 없었다.
고종 현경(顯慶) 원년 이순풍은 또 국사(國史)를 편찬한 공으로 낙창현(樂昌縣) 남작 작위를 받았다. 이보다 앞서 태사감후(太史監候) 왕사변(王思辯)이 표를 올려 《오조(五曹)》, 《손자》 등 10부 산술서(算術書)에 결점이 많다고 칭했다. 이순풍은 국자감 산학박사 양술(梁述), 태학조교 왕진유(王真儒) 등과 함께 조칙을 받아 《오조》, 《손자》 등 10부 산술서에 주석을 달았다. 주석이 완성된 후 당 고종은 국학에서 교재로 사용하도록 명했다.
용삭(龍朔) 2년 이순풍은 비각낭중으로 관직을 옮겼다. 당시 《무인역법(戊寅曆法)》에 점차 오차가 생기자 이순풍은 다시 유작의 《황극력(皇極曆)》을 수정하고 《인덕력(麟德曆)》을 개찬하여 올리니, 기술을 잘 아는 이들이 모두 그 정밀함을 찬탄했다. 함형(咸亨) 초년 이순풍의 관명이 복구되어 다시 태사령을 맡았다.
이순풍은 69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편찬한 《전장문물지》, 《을사점》, 《비각록》, 《연제인요술(演齊人要術)》 등 총 10여 부의 책이 그 시대에 많이 전해졌다. 그의 아들 이언(李諺)과 손자 선종(仙宗) 모두 태사령을 지냈다.
(참고자료: 《신당서·열전 제129방기》 등)
원천강전(袁天罡傳)
원천강은 별명이 원천강(袁天綱)이며 당조의 은사(隱士)이자 역학 수술(數術)의 고인(高人)이었다. 구체적인 생평(生平) 사적 및 생몰 연월은 고찰할 길이 없다. 여기서는 독자들을 위해 몇 가지 단편적인 전설과 사료를 수집해 기록한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원천강은 원래 익주(益州) 성도(지금의 사천 성도) 사람이다. 풍감(風鑒)에 능하여 여러 번 영험함이 틀림없었으며, 수조(陏朝)에서 벼슬길에 나서 염관령(鹽官令)을 지냈다. 당나라 때는 화산령(火山令)이 되었다. 저서로는 《육임과(六壬課)》, 《오행상서(五行相書)》, 《추배도》, 《원천강칭골(袁天罡稱骨)》 등이 있다.
유명한 예언가들은 모두 미증유의 사실을 미리 아는 능력이 있는데,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원천강은 자주 제자들과 함께 관성루(觀星樓 별을 관측하는 누대)에서 성상(星象)을 관찰했으며, 별을 볼 때마다 원천강은 곧 현기(玄機)를 깊이 깨달았다고 한다. ‘동전으로 시초를 대신하는(以錢代蓍)’ 예측 방법은 서한 시대에 경방(京坊)이 창시했는데, 당송 시기에 이르러 이미 성행했으며 원천강도 이 법에 정통했다. 삼국시대 촉의 제갈량은 전(前), 금(今), 후(後) 삼세(三世)의 운명을 살필 수 있는 《고삼세서(古三世書)》를 지었다. 원천강은 당대(唐代)에 새로운 《삼세상법(三世相法)》을 저술했다.
전설에 따르면 원천강은 능운산(凌雲山)에서 득도한 후 백일비승(白日飛昇)했다고 한다. 능운산 일대는 땅이 영험하고 인걸이 많이 나는 곳으로,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화하(華夏) 문명의 인조(人祖)인 복희와 여와가 이 신비로운 땅에서 탄생했다. 수행 중 크게 성취한 이들의 이야기가 지금까지 민간에 전송되고 있는데, 당대 도사 호비원(胡備元), 장진(張真) 등이 여기서 백일비승했으며, 원천강이 여기서 득도하고 백일비승했다는 이야기는 더욱 집집마다 잘 알려져 있다.
한 전설에 따르면 원천강이 바로 이순풍의 사부이며, 그들 모두 수말의 지식이 해박한 고도(高道)였다고 한다. 원천강은 일찍이 낭주(閬州) 반룡산(蟠龍山) 앞에 집을 짓고 거처했는데, 이순풍이 오래전부터 그 이름을 흠모하여 금붙이를 가지고 멀리서 찾아와 문하에 배움을 청했다. 원천강과 이순풍은 후세에 명저 《사탄자(四彈子)》를 남겼다고 하며, 후세의 유백온이 이에 대해 교정까지 보았다고 전한다.
또 다른 전설은 원천강과 이순풍은 동창이자 절친한 벗으로, 자주 만나 역을 논하고 천지를 담론했으며, 함께 등을 맞대고 땅에 앉아 한 명은 쓰고 한 명은 그려서 후세에 신비로운 예측 천서인 《추배도》를 남겼다고 한다.
또 하나의 더 생동감 있는 전설은 두 사람이 만년에 선계(仙界)에 들어가 명사로서 산수와 숲 사이를 유람했다는 것이다. 어느 날 두 사람이 만났으나 할 일이 없자, 서로 등을 지고 앉아 고금의 일을 추산했다. 한 가지 일을 추산할 때마다 한 폭의 비상(秘象)을 그리고 몇 구절의 참언(讖言)과 게어(偈語)를 써서 기록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자 천제(天帝)가 천기를 너무 많이 누설할까 두려워 곧 진단노조(陳摶老祖 상계의 신선이 변화한 사람이라 한다)를 보내 저지하게 했다. 진단이 두 사람을 불러 “당신들이 무슨 천하 대사를 예측하는가, 우선 내가 나아갈지 물러날지부터 계산해 보게나”라고 말하며 한 걸음을 떼고 두 명가(名家)를 주시했다. 이순풍과 원천강 두 사람은 문득 깨닫고 곧 표연히 떠나갔다.
《추배도》 시해(試解)
《추배도》는 중국 예언 중에서 그야말로 누구다 다 아는 유명한 책이다. 이것은 당초(唐初) 정관 연간(서기 627-649년)에 사천감을 지낸 이순풍과 은사 원천강이 공동 편저한 도참(圖讖)이다. 서명 《추배도》는 제60도상(마지막 상) 중의 송(頌)에서 이르기를 “만만천천 다 말할 수 없으니, 등을 밀며 돌아가 쉬느니만 못하리(萬萬千千說不盡, 不如推背去歸休)”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
《추배도》는 유전된 지 오래되어 그 사이에 위작 판본이 없지 않으나, 현재 비교적 신빙성 있는 것은 명말 청초의 재자(才子) 김성탄이 비주(批註 비평과 주석)를 단 김비본(金批本) 《추배도》이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이 바로 김성탄이 비평하고 주석을 단 판본이며, 원본은 현재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에 보존되어 있다.
어떤 이들은 김성탄의 판본이 당나라 이순풍과 원천강이 지은 것이 아니라, 후세 사람들이 역사를 근거로 뜯어 고치고 편찬하여 이, 원 두 사람의 이름을 빌려 가탁한 것이라고 의심한다. 그러나 우리가 김성탄 이후의 각 상(제34상 이후)의 응험 상황을 보기만 하면 그것이 결코 김성탄이나 김성탄 이전의 사람이 날조한 것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다. 만약 정말로 그 이전에 날조하여 당대(唐代)의 이, 원이 지은 것으로 가탁했다면, 그 날조자 또한 대예언가이다. 왜냐하면 그(김성탄과 동시대) 이후의 세상일을 그가 모두 맞혔기 때문이다.
김성탄은 청조의 유명한 학자로 명말 청초 사람(1607~1661)이다. 원래 성은 장(張)이며 이름은 인서(人瑞), 약채(若采)라고도 했다. 과거 시험 때 글을 괴상하게 지어 쫓겨난 후 다시 응시하며 이름을 김인서(金人瑞)로 바꾸어 1등을 했는데, 성탄(聖嘆)은 그의 불호(佛號)이다. 그는 많은 고전에 주를 달았으며 기재(奇才)였다.
서양의 저명한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가 저술한 《제세기(諸世紀)》와 다른 점은, 《추배도》는 역사의 순서를 어지럽히지 않았고(후 20상이 후세 사람에 의해 의도적으로 섞인 것을 제외하면), 예언한 내용도 모두 국가 흥망에 관한 대사(大事)라 연구 가치가 크고 정확성도 매우 높다. 가장 위안이 되는 점은 《제세기》가 예언한 비관적인 세계의 결말과는 정반대로, 세계 대동과 천하가 한 집안이 되어 화락하게 지내는 미래 세계를 예언해 고무적이라는 점이다.
《추배도》에는 총 60폭의 도상이 있고, 각 도상 아래에는 참어(讖語)와 ‘송(頌)’ 율시 한 수가 부가되어 당나라 이후 역대 왕조에서 발생한 대사, 심지어 미래의 대사까지 포함하고 있을 수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 파해(破解)되었는데, 그중 김성탄이 살아있을 때 이미 제33상까지 응험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파해되지 않은 것이 많다. 오늘날까지 앞의 40상에 대한 파해는 기본적으로 공인되었으나, 뒤의 20상은 바로 오늘날 사람들에게 남겨진 수수께끼이다.
전설에 따르면 역사상 《추배도》가 너무 정확했기에 나중에 순서가 뒤섞였다고 한다. 그러나 문자상으로 보면 제35상은 제2차 아편전쟁 때 영불 연합군이 북경을 침입하고 함풍제가 열하로 도망친 역사적 사건을 말한다. 제36상은 신유정변과 그 후 두 대비의 수렴청정 역사 사건을 묘사한다. 제37상은 바로 청나라의 종결이다. 39상에 이르면 이미 일본의 중국 침략이다. 그런데 제55상에서 말하는 것은 명백히 청말의 갑오전쟁이다. 이러한 점들은 그 순서가 정말로 뒤섞였음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사실 예언이 역사 순서대로 배열되지 않는 것은 매우 정상적이며 서양의 유명한 예언 《제세기》가 그 예이다. 반면 중국 예언은 대부분 순서를 따른다. 《추배도》가 뒤섞인 것은 아마도 집권자가 예언이 너무 널리 퍼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의도적으로 그렇게 함으로써 신하들이 앞을 내다보는 밝음이 없게 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뒤의 20상은 확실히 순서가 혼란스러워졌기에 파해의 난도가 더 높아졌다. 이 점을 고려하여 여기서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자 하는데, 즉 이미 파해된 몇몇 상을 시간순으로 복원하는 것이다.
제1상 갑자(甲子) 건괘(乾卦)
참(讖)에 가로되:
망망한 천지는
머무는 바를 모르니
일월이 순환하여
돌고 다시 시작하네
茫茫天地
不知所止
日月循環
周而復始
송(頌)에 가로되:
반고로부터 희이(希夷)에 이르기까지
용쟁호투의 일이 참으로 기이하구나
순환에 참뜻이 있음을 깨닫고
당 이후의 원기(元機)를 논해보리라
自從盤古迄希夷
虎鬥龍爭事正奇
悟得循環真諦在
試於唐後論元機
김성탄 주해: “이 상(象)은 치세와 난세가 서로 인함이 마치 해와 달이 가고 오며 음양이 번갈아 바뀌는 것과 같으니, 곧 공자가 백세(百世) 이후에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붉은 것은 해가 되고 흰 것은 달이 되니, 해와 달이 있은 후에 낮과 밤이 이루어지고, 낮과 밤이 있은 후에 추위와 더위가 나뉘며, 추위와 더위가 있은 후에 역수가 정해지고, 역수가 정해진 후에 계통이 나뉘며, 계통이 나뉜 후에 흥망이 보이게 된다.”
제1상은 서문 격으로, 예언의 근본 근거를 말하고 저자의 우주관을 표명했다. “일월이 순환하여 돌고 다시 시작하네”와 “순환에 참뜻이 있음을 깨닫고”는 저자가 미래를 예측하는 근거를 나타낸 것이니, 솔직히 말하면 그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미래를 알았는가를 말한 것이다. 그들은 우주가 쉬지 않고 ‘순환’하며 돌고 도는 참뜻을 보았기에 예측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돌고 도는 것이기에 한 ‘주기(周)’의 법칙을 알면 당연히 미래의 일을 알 수 있게 된다.
“망망한 천지는
머무는 바를 모르니
일월이 순환하여
돌고 다시 시작하네”
이는 천지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없으나, 천지가 아무리 크더라도 모두 주기적으로 순환하며 쉬지 않는다는 뜻이니, 해와 달이 교대하는 것과 같다.
“반고로부터 희이에 이르기까지”에서 반고(盤古)는 중국의 오래된 전설에서 “천지를 개벽해” 세상을 개창한 분이니 곧 천지의 시작을 말한다. ‘희이’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도덕경》에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희(希)라 하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이(夷)라 한다”는 구절이 있으니, 여기서는 천지의 최후 상태를 가리킨다. ‘흘(迄)’은 ‘까지’라는 뜻이니, 이 구절은 천지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말한다.
“용쟁호투의 일이 참으로 기이하구나”는 천지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들이 매우 신기하며 모두 용쟁호투와 같음을 말한다.
“순환에 참뜻이 있음을 깨닫고”는 저자가 천지가 순환 발전하는 참뜻을 보았음을 표명한다.
“당 이후의 원기를 논해보리라”, 저자는 당대에 살았으므로 당연히 당대 이후의 일을 예언하는 것이며, 저자는 자신들이 예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원기를 논하는(論元機)’ 것, 즉 ‘현기(玄機 역주: 元은 玄과 통한다)’를 사람들에게 누설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제2상 을축(乙丑)
참(讖)에 가로되:
주렁주렁 열린 많은 열매
그 수를 알지 못하니
열매 하나에 인(仁) 하나라
곧 새것이면서 곧 옛것이로다
累累碩果
莫明其數
一果一仁
即新即故
송(頌)에 가로되:
만물은 흙 속에서 생겨나고
이구(二九)에 먼저 결실을 맺네
일통(一統)하여 중원을 정하니
음(陰)이 성하여 양(陽)이 먼저 다하도다
萬物土中生
二九先成實
一統定中原
陰盛陽先竭
김성탄:
“한 쟁반의 열매는 곧 이씨(李氏)의 열매니, 그 수가 21이라 당 고조부터 소선제(昭宣帝)에 이르기까지 무릇 21명의 군주이다. 이구(二九)는 당나라 국운이 대략 290년(289년)임을 가리킨다. 음이 성하다는 것은 무측천이 나라를 다스리며 음란하고 혼탁하게 정치를 어지럽혀 당대(唐代)를 거의 위태롭게 했음을 가리킨다. 그 후 개원의 치세가 비록 정관에 비견될 만했으나, 귀비가 화를 부르고 어가가 파천했으며, 여총(女寵 총애받는 여인)이 대를 이어 일어나고 하제(夏娣)가 이으니 또한 음이 성한(陰盛) 상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추배도》 제2상부터 제9상까지는 당조(唐朝 618-907년)의 일을 예언하고 있다. 매우 은유적인 수법으로 측천무후의 집권, 안사의 난, 양귀비의 죽음, 토번의 중원 침입, 건중의 난(建中之亂 덕종 시기 경원 병변을 말함), 황소(黃巢)의 기병 및 주온(朱溫)의 당나라 멸망 등 당나라의 대사들을 예언했다.
제2상은 당조의 기수(氣數)를 예언했다. “주렁주렁 열린 많은 열매 그 수를 알지 못하니”, 당나라는 중국 고대에서 가장 융성했던 왕조 중 하나로 각 방면에서 결실이 풍성했다. 가장 강성한 왕조로서 문화 발전이나 국가 통치 모두 정점에 도달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동시에 이 예언 구절은 우리에게 열매의 개수를 세어보라고 대놓고 말하고 있다. 그림 속 쟁반에는 21개의 열매가 있는데, 이는 당나라가 21대 황제까지 전해졌음을 암시한다. 본문의 “열매 하나에 인 하나(一果一仁)” 또한 열매의 함의를 분명히 밝히고 있으니, 열매 하나가 한 ‘사람(人)’이다.
당조는 역사상 확실히 중원을 통일했으니 “일통하여 중원을 정하니”도 사실이다.
송의 네 번째 구절 “음이 성하여 양이 먼저 다하도다” 또한 이 문자 그대로 미루어 상세히 풀 수 있다. 통상 우리가 ‘음성양쇠(陰盛陽衰)’라고 하면 여자가 왕성하고 남자가 쇠약해지는 것으로 직접 이해한다. 그런데 당조는 측천무후가 스스로 여황제를 칭한 후 여자가 정치에 간여하는 것이 드디어 풍조가 되었다. 예컨대 위후(韋后)의 정사 간섭이나 중종이 위후에게 독살당한 일 등이 있다. 무후의 딸 태평공주는 현종 이융기와 연합해 위후를 죽였다. 이융기는 또 양귀비에게 미혹되어 조정을 황폐하게 하여 재앙을 빚어냈고, 당조는 이때부터 쇠락하기 시작했다. 가장 주요한 것은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인 측천무후가 당조에서 나왔으니, “음이 성하여 양이 먼저 다하도다”는 확실히 가리키는 바가 있다.
“이구(二九)에 먼저 결실을 맺네”는 즉 290이니, 당나라가 618년부터 907년까지 289년, 즉 햇수로 290년임을 뜻한다. ‘결실을 맺다(成實)’는 당연히 결과의 뜻이며, 이구는 수(數)라 년수나 어떤 숫자를 연상시키기 쉽다. 당조 황제의 수는 앞서 이미 암시되었으므로 당조 국운의 총 년수로 시도해 보자. 당 고조 이연이 개국한 것은 서기 618년이며 소선제(애제) 천우 4년인 서기 907년까지이니, “이구에 먼저 결실을 맺네”가 바로 이 일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 290년의 국운은 이순풍 등이 직접 보지 못한 것인데, 참으로 교묘하게도 그에 의해 적중되었다.
더욱 기묘한 것은 그림 속의 열매 중 순서대로 네 번째 것은 ‘꼭지(柄)’가 없고 다른 열매들은 모두 ‘꼭지(把)’가 달려 있다는 점이다. 그 꼭지 없는 열매가 바로 당조 4대 황제인 여황제 측천무후이다.
제3상 병인(丙寅)
참(讖)에 가로되:
해와 달이 공중에 떠서
아래 땅을 비추네
남녀 구별이 어려우니
문이 아니고 또한 무라네
日月當空
照臨下土
撲朔迷離
不文亦武
송(頌)에 이르길
부처님께 참례하며 색상(色相)을 잊었다가
하루아침에 다시 제왕의 궁궐에 들어가네
남은 가지 없앴으나 뿌리는 아직 남았으니
꼬끼오 새벽 닭 우니 누가 수컷인가?
參遍空王色相空
一朝重入帝王宮
遺枝撥盡根猶在
喔喔晨雞孰是雄
김성탄: 이 상에서 말하는 것은 측천무후 무조가 집권해 중종(中宗)을 폐위시켜 방주로 내쫓고 당나라 황실을 거의 죽여 버린 일이다. 앞서 무씨는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기 때문에 부처님께 두루 참례했다는 구절이 나온 것이다. 고종이 원래 왕(王) 황후를 폐위하고 무씨를 황후로 세웠기 때문에 “꼬끼오 우는 새벽 닭 누가 수컷인가”라고 한 것이다.
정관(貞觀) 11년(637년), 태종 이세민이 궁녀를 점지할 때 형주자사 개문달(蓋文達)이 한 미녀를 선발했으니 이름이 무미랑(武媚娘)이었다. 개문달은 그녀를 위해 이름을 무조(武照)로 고쳐주며 해와 달이 공중에 떠서 만방을 비춘다는 뜻을 취했다. (조照와 조曌는 통함) 무씨가 입궁한 후 빠르게 태종의 총애를 받았으며, 그 아버지는 무호도독 직에 봉해졌고 개문달도 포상을 받았다.
태종 시대에 《비기》라는 책이 있어 “당조는 3세(世) 후에 여주 무왕이 당조 천하를 대신할 것이다”라고 했다. 태종이 일찍이 비밀리에 이순풍을 불러 이 일을 물으니, 이순풍이 말하기를 “제가 천상을 근거로 추산해 보니 그 징조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게다가 이 사람은 이미 태어나 폐하의 궁 안에 있으며, 지금으로부터 30년을 넘기지 않아 천하를 차지하고 당씨 자손을 다 죽일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순풍의 예측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당 태종은 이번 과거의 장원이 누구인지 물었다. 이순풍이 무심코 대답하기를 “불의 개 두 사람 중의 걸출한 이(火犬二人之傑)”라고 대답했다. 방이 붙는 날이 마침내 도달하니 방방(榜首)은 적인걸(狄仁傑)이었다. 태종은 이에 무호도독의 직을 추탈하고 무씨를 궁 밖으로 쫓아냈다.
고종이 즉위한 후 무씨를 다시 궁으로 불러들여 측천소의로 삼았다. 이것이 바로 송의 두 번째 구절 “어느 날 아침 다시 제왕의 궁으로 들어오네”이다.
무씨가 황후로 세워진 후 고종이 병이 들자 무씨가 조정에서 수렴청정을 했다. 냉궁으로 쫓겨난 왕후가 태자를 낳았다. 두회(杜回)가 태자를 데리고 강하왕 이개방(李開芳)에게 몸을 맡겼다. 이 태자가 바로 이단(李旦)이니 곧 훗날의 예종이다. 이것은 바로 송의 세 번째 구절 “남겨진 가지 다 뽑아도 뿌리는 오히려 남아 있으니”라는 예언에 응한 것이다.
훗날 무씨는 중종을 폐하고 수공(垂拱) 원년으로 개원해 스스로 조정의 권력을 전횡했다. 그러고는 정식으로 황제를 칭하고 국호를 주(周)로 고치니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가 되었다. 송의 네 번째 구절 “오오 우는 새벽 닭 누가 수컷인가”에서 ‘누가 수컷인가’는 당연히 누가 패권을 잡는가를 가리키며 암컷이 반대로 수컷이 된다는 뜻이 큰데, 이 ‘오오 우는 새벽 닭’은 닭띠 해의 일을 가리킨다. 무후가 황제를 칭한 수공의 해는 서기 685년으로 바로 을유년(乙酉年)이니 유(酉)는 곧 닭이며 닭띠 해이다.
제4상 정묘(丁卯)
참(讖)에 가로되:
나는 것이 날지 않고
뛰는 것이 뛰지 않네
높은 언덕에 날개를 펴나
뒤를 이을 이가 있네
飛者不飛
走者不走
振羽高崗
乃克有後
송(頌)에 가로되:
위세 높은 푸른 여인 실권이 높아
눈 닿는 곳마다 열여덟 가지 썰렁하네
원숭이들이 일제히 힘써주어
이미 넘어진 큰 나무를 붙잡아 일으키네
威行青女實權奇
極目蕭條十八枝
賴有猴兒齊著力
已傾大樹仗扶持
김성탄: 이 상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적인걸(狄仁傑)이 장간지(張柬之) 등 5명을 추천해 측천무후의 주(周)를 뒤엎고 당조(唐朝)를 중흥시킨 것이다. 측천무후는 일찍이 앵무(鸚鵡)새의 두 날개가 모두 꺾이는 꿈을 꿨는데 적인걸이 말하길 “무(武)는 폐하의 성씨이니 두 아들이 일어나면 두 날개가 꺾일 것입니다.”라고 했다. 다섯 원숭이는 장간지 등 5명을 가리킨다.
“나는 것이 날지 않고 뛰는 것이 뛰지 않네”는 ‘비(飛)’ 자가 들어간 사람이 날아오르지 못하고 떠나야 할 사람이 떠나지 못함을 말하는 듯하다.
“높은 언덕에 날개를 펴나 뒤를 이을 이가 있네”는 어떤 사람이 높은 지위에서 위풍을 크게 떨치고 후대가 이어짐을 말하는 듯하다.
“위세 높은 푸른 여인 실권이 높아”는 ‘청(青)’ 자가 들어간 어떤 여자가 위권을 크게 행하니 참으로 기이하다는 뜻이다.
“눈 닿는 곳마다 열여덟 가지 썰렁하네”는 살펴보니 18개 지파의 사람들이 모두 살해당해 일대가 쓸쓸하다는 뜻이다.
“원숭이들이 일제히 힘써주어 이미 넘어진 큰 나무를 붙잡아 일으키네”는 ‘원숭이(猴)’에 속하거나 원숭이와 관련된 여러 사람이 마음을 합쳐 위태로운 조정을 구했음을 뜻한다.
”큰 나무“는 분명 대당의 국운을 가리킨다.
김성탄 비주에서 “이 상은 적인걸이 장간지 등 5인을 천거하여 주를 반대하고 당으로 복귀시킨 일을 주관한다. 무후가 앵무새의 두 날개가 모두 꺾이는 꿈을 꾸었는데 적인걸이 말하기를 앵무새는 폐하의 성씨이니 두 아들을 일으키면 두 날개가 떨칠 것입니다라고 했다. 다섯 원숭이는 장간지 등 5인을 가리킨다”라고 했다.
앵무새로 ‘무(武)’ 자를 상징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송의 첫 구절 “나는 것이 날지 않네”는 비록 ‘무(武)’가 있으나 날 수 있는 새인 무(鵡)가 아님을 분명히 가리킨다. 그러나 이 구절의 뜻은 ‘날지 못한다’인데, 측천무후가 집권하여 위세가 혁혁했으니 ‘날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뛰는 것이 뛰지 않네 높은 언덕에 날개를 펴나 뒤를 이을 이가 있네”는 또 어떤 일에 대응하는가?
또한 송의 첫 구절 “위세 높은 푸른 여인 실권이 높아”는 한 여자가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듯하다. 이 여자는 측천무후를 가리킬 수도 있으나, 이 시기에는 무씨 이후에 조정을 좌우했던 또 다른 여자가 있었으니 바로 중종이 복위한 후의 위후(韋后)이다. 그녀는 중종을 독살하기까지 했다.
“눈 닿는 곳마다 열여덟 가지 썰렁하네” 또한 가리키는 바가 불분명하다.
“원숭이들이 일제히 힘써주어 이미 넘어진 큰 나무를 붙잡아 일으키네”는 또 어떤 일에 대응하는가? 무후가 황제를 칭한 지 22년(서기 684년~705년) 후 장간지 등이 안에서 호응하고 중종 노릉왕과 이단(예종)이 밖에서 공격하여 대당을 다시 일으켰으니 “이미 쓰러진 큰 나무가 부지함에 의지하네”라고 한 것은 확실히 일리가 있다. 그러나 “원숭이들이 일제히 힘써주어”는 주(周 무후의 나라)를 반대하고 당(唐)을 복구한 인물들을 가리키는 것 외에 이 원숭이의 의미는 이해하기 매우 어렵다.
김성탄은 그림 위의 다섯 마리 원숭이가 장간지 등 5인을 대표한다고 했으나, 이 다섯 사람이 왜 ‘원숭이’라고 불리는지는 이해할 수 없다. 원숭이 해에 당나라가 중흥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중종이 복위한 해는 원숭이띠 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융기(현종) 등이 위후 전횡을 뒤엎은 행동도 이미 쓰러진 큰 나무를 부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상은 태평공주가 이융기 등을 도와 위후의 전횡을 뒤엎고 이단을 등극시켜 다시 한번 대당의 강산을 구한 중대한 역사적 사건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이 그러한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계속)
원문위치: http://big5.zhengjian.org/node/421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