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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下五千年】화하(華夏) 역사 진면모:창세기 역사(1)

작가:심연(心緣)

【정견망 2004년 5월 12일】

들어가는 말

망망천지 운운중생(茫茫天地,芸芸眾生 망망한 천지에 많고 많은 중생들), 유유만사 과안연운(悠悠萬事,過眼煙雲 유유한 만사는 눈앞을 지나가는 구름이라네). 만장(漫長)한 세월을 지난 후 역사를 돌이켜보면 우리는 역사는 단지 이미 정해진 궤도에 따라 발전하는 것으로 수많은 선철(先哲)들의 예언이 확증되지 않은 것이 없음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게 된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역사는 정말 암암리에 미리 배치된 것인가? 이는 신(神)이 배치한 것인가? 이 일체를 배치한 것은 또 무엇 때문인가? 신(神)은 정말로 존재하는가?

주지하다시피 중화(中華)문명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의 하나이다. 중화문명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통일적이며 연속적인 문명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고대 문명을 연구할 때 현대인들은 줄곧 그들 선조(先祖)들의 문자를 해독할 수 없지만 중국인들은 몇천년 전의 문자라도 읽을 수 있어 선조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역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우리가 선조들이 남겨놓은 문자를 연구할 때 우리는 다시 한 번 원고(遠古)시기 중화문명이 신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수많은 신화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역사의 진실은 우리가 현재 그리고 있는 그런 것이 전혀 아니며 우리 선조들은 하늘에 대해 특별한 경외를 품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오늘 날 많은 고대출토문물과 전적으로 통해 볼 수 있듯이 동방과 서방을 막론하고 고대인들은 신을 믿고 신을 공경하며 신이 가르친 사람의 도리와 일을 처리하는 도리를 지키며 대대로 전해왔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후대인들은 더 이상 신화의 내포를 이해할 수 없었으며 사람들은 점차 신화는 단지 일종 가물가물한 상상으로 치부한다. 비록 많은 역사의 진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미 매몰되었고, 우리 눈앞에 펼쳐진 역사는 너무나도 어지럽고 복잡하지만, 오히려 뜻밖에도 보이지 않는 한 가닥 줄거리가 모든 세부절목들을 하나로 이끌고 있다. 역사는 이처럼 진시황, 한무제를 거치고 당송(唐宋)을 거치며 오늘날의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가급적 역사의 진실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새로 설명하고 중화민족의 기원, 발전, 조대의 교체를 서술하며 주요 역사 사실, 사건, 주요 인물, 사상, 사람들의 생활상태, 문화에 대한 개략적인 서술 등을 하는 동시에 관련 예언을 결합하고 예언의 정확성을 분석하여 사람들에게 중국역사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사고를 계발해주고자 한다.

창세기사(創世紀史)

천지는 어디에서 왔는가? 무엇 때문에 생겼는가? 사람은 어디에서 왔는가? 무엇 때문에 생겼는가? 이런 문제들은 오늘날 미혹 속에 빠진 우리를 여전히 곤혹스럽게 하는 문제들이다.

천지의 기원에 대해 서방에서는 하느님이 천지와 만물을 창조했다는 설이 있고 중국에서는 반고(盤古)가 천지를 개벽했다는 설이 있다. 《산해경(山海經)》의 기재에 따르면 우주는 반고라고 불리는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 편의상 이를 반고우주(盤古宇宙)라고 하자. 생각해보면, “반고우주가 처음 생겨났을 때는 마치 사람이 모체 속에서 배태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작은 입자에 불과했다. 혼돈(混沌) 상태 중에서 이 우주는 점차적으로 생성되었고 “우주 중의 층층 물질이 층층의 하늘과 땅을 만든 동시에 천지 사이의 만물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반고와 같은 신과 층층의 중생을 포함하며” 지구상의 산천수목과 조수(鳥獸), 곤충과 어류 등 만물을 포함한다.

지구에 천지와 만물이 생겨난 후 하늘에서는 일부 신들이 내려왔는데 법력(法力)을 이용해 자신을 모방하여 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전설에 의하면 중국인들은 여와(女媧)라고 불리는 한 여신(女神)이 창조했다고 한다. 여와는 아름다운 여신으로 사료에 의하면 사람 머리에 뱀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태평어람(太平御覽)》에서는 다음과 같이 여와가 사람을 만들었다고 전하고 있다. 여와는 처음에 황토와 물로 자신의 모양을 따라 작은 진흙인간(小泥人)을 만들었다. 이렇게 한 무리 한 무리씩 만들다보니 너무 느리게 느껴졌다. 이에 한 가닥 덩굴을 흙탕물에 넣은 후 휘둘러 흙탕물을 땅에 뿌리자 모두 사람으로 변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신(神)인 여와는 인력(人力)으로 한 것이 아니라 법력(法力)으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실상 “중국의 고대에 여와(女媧)가 사람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신들은 신통으로 했고 신 또한 손으로 가서 할 필요가 없으며 아울러 사람의 신체의 그 구조는 모두 아주 복잡한 것인데 손으로 빚어낼 수 없다. 사람의 가장 아둔한 방법은 안 되기 때문에 신은 법력(法力)으로 했던 것이다. “(『대(大) 뉴욕지역 법회 설법』)

중국인들은 이때부터 지구에서 번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 만들어 낸 사람은 우주, 생명과 인간 세상에 대한 일체의 인식능력이 없었고 대천(大千)세계의 변화에 대한 그 어떤 감당능력도 없었으며 당연히 형태를 이룬 사상은 더욱 없었다.

인신(人神)이 함께 했던 시기

사람들의 기능을 풍부하게 하고 우주와 지구, 자연계에 대한 인식능력과 감당능력을 제고시키기 위해 천상에서는 또 일부 신들이 내려와 사람들에게 각종 기본적인 생활기능과 지식을 가르쳤다.

가장 먼저 나타난 신이 유소씨(有巢氏)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나무 위에 올라가 나뭇가지와 나뭇잎으로 간단한 덮개를 만드는 것을 가르쳤으니 이것이 바로 원시적인 집으로 적어도 야수와 홍수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따라 배웠고 아울러 건축 기능이 날로 진보했다. 후대인들은 이런 방법을 지상으로 옮겨왔는데 역시 마찬가지 효과가 있었다.

중국 역사상 전설 속에 나오는 삼황(三皇) 역시 이런 신들이었다. 삼황이 정확하게 누구를 지칭하는 가에 대해 사학계에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데 주로 수인(燧人), 복희(伏羲), 신농(神農)이라는 설과 복희, 여와(女媧), 신농이라는 설이 있다. 이중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설은 수인, 복희, 신농 설이다.

그렇다면 왜 수인, 복희, 신농과 같은 천상의 신들이 속세에 내려왔는가? 사료의 기재에 따르면 3사람은 각기 수인씨, 복희씨, 신농씨로 존칭되었으며 “씨(氏)”의 원시적인 의미는 바로 신기(神祇)이다. 이외에 세 사람은 모두 기이한 모습을 띠고 일반인보다 훨씬 총명했다. 전설에 의하면 수인씨는 매우 총명했다고 한다. 복희의 모친은 화서(華胥)라고 하는데, 뇌택(雷澤) 지방에서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임신하여 12년 후 복희를 낳았다고 한다. 복희의 모습은 사람 머리에 뱀의 몸을 했다고 하며 또는 사람 머리에용의 몸을 했다고 한다. 그는 지혜와 용기가 완벽했고 힘이 아주 강했다. 자칭 “용사(龍師)”라고 했으며 이후 용은 화하(華夏)족의 민족적인 상징, 즉 토템이 되었다. 중화민족이 처음으로 용을 칭한 것은 대개 이로부터 연유한 것이다. 신농씨에 관해 《춘추위(春秋緯)·원명포(元命苞)》 중에는 그를 사람 얼굴에 용의 안면을 하고 있다고 했다. 처음 출생했을 때 배가 수정처럼 투명해 오장육부를 전부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출생한 지 3시진이 지나 바로 말을 할 수 있었으며 5일이 지난 후에는 걸을 수 있었고 7일 후에는 치아가 가지런히 자랐다. 또한 인류의 지혜를 초월하는 3인의 많은 행위로부터 보건대 이는 결코 막 생겨난 사람들의 지혜로는 따를 수 없는 것이니 이들은 틀림없이 인류를 교화하기 위한 사명을 지니고 인간세상으로 온 신이다.

사서(史書)의 기록에 의하면 수인씨는 가장 먼저 사람들에게 나무를 이용해 불을 얻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는 천상의 가장 큰 비밀을 인류에게 누설해주었으니 그것은 바로 “불(火)”이었다. 불은 없는 곳이 없지만 어떻게 그것을 얻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수인씨는 사람들에게 나무를 이용해 불을 얻는 방법을 가르친 것이다. 인류는 불을 얻은 후에야 비로소 익힌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신체도 건강해졌으며 생활방식도 비약적인 돌파를 이뤄낼 수 있었다. 이는 사람들에게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가 하늘에서 불을 훔쳐 인류에게 주었다는 일화를 생각나게 한다.

고고학과 사료의 근거에 따라 판단할 때 복희의 부락은 대략 지금의 감숙(甘肅)성 일대에 거주했으며 지금 감숙성 천수시(天水市)에는 “복희괘대(伏羲卦台)”로 불리는 좌대가 있다. 복희의 사명은 바로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물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고 사냥을 하며 씨를 뿌리고 경작해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생활로 이끄는 것이었다. 그는 또한 사람들에게 불을 이용해 요리하는 방법을 가르쳤고 문자부호를 창조해 결승기사(結繩記事)를 대신했다. 그는 또 관직을 설치하고 백성들을 관리했으며 관원들의 몸에는 모두 한 마리 용을 그려 그들의 신분을 표시했다. 그는 또 주천(周天)의 수와 오행(五行)에 근거해 요금(瑤琴)이란 악기를 제작했으며 봉황의 날개 형상에 근거해 퉁소(簫)라는 악기를 만들었다. 아울러 《가변(駕辨)》이란 곡을 창작했는데 이는 사람들의 생활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그는 엄격한 혼인의 예를 제정했으며 또 부부제도를 만들어 반드시 결혼이란 의식을 거친 후에야 자식을 낳을 수 있게 했다. 이로써 다음 세대로 하여금 부모의 교양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그는 또 성씨를 확정하여 자신의 성을 풍(風)으로 정했으며 이때부터 중국인들은 비로소 성씨가 있게 되었다.

특히 주의할 내용은 복희가 음양의 변화에 근거해 팔괘(八卦)를 창제했다는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복희씨가 어느 날 황하(黃河)에 갔는데 갑자기 용마(龍馬)가 등에 그림을 지고 나타났으며 이로부터 팔괘를 얻었다고 한다. 나중에 황제가 이에 근거해 “희화(羲和)에게 해를 점치게 하고 상의(常儀)에게 달을 점치게 하며 유구(臾區)에게 별(星氣)을 점치게 했다.” 소위 “용의 그림(龍圖)를 받아 팔괘를 그렸다”는 것은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고대에는 이 그림을 하도(河圖 황하에서 나온 그림이란 뜻)라고 했고 또는 복희팔괘, 선천팔괘라고도 하는데 가장 원시적인 역경(易經)인 셈이다. 그 특징은 흑백의 둥근 점으로 수(數)를 표시하고 이를 배열하여 그림을 이뤘다. 1과 6은 아래, 2,7은 위에 있고, 3,8은 왼쪽에 4,9는 오른쪽에 있으며 5,10이 가운데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하도는 사람에게 하늘의 뜻을 따르는 방법을 남겨준 것이라고 한다. 때문에 중국인들은 늘 천상의 변화를 중시하고 천명은 어기기 어렵다고 여겨 하늘에 대해 무한한 공경을 했으며 천지변화의 이치가 바로 도(道)이다. 나중에 주(周)나라 문왕(文王)에 이르러 하도에 근거해 주역을 풀어냈다. 역경을 원시적인 그림에서 문자적인 괘상(卦象)으로 변화시켰으니 이것이 소위 말하는 주역(周易), 후천팔괘이다. 공자의 시대에 이르러 사람들이 도에서 더욱 멀어지자 비로소 문자로 역경에 주석을 가했으니 이것이 바로 역경 계사전(繫辭傳)이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왜 몇 가지 간단한 괘상이 불가사의한 예측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몹시 궁금해 하고 있다. 사실 이것은 하늘이 사람에게 정보를 전달해준 경전으로 인류의 지혜로 창조해 낸 것은 분명 아니다.

이때 인류의 발전역사상 한 가지 큰 사건이 발생했다. 《회남자(淮南子)·남명편(覽冥篇)》과 《논형(論衡)·담천편(談天篇)》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공공씨(共工氏)와 축융씨(祝融氏)라는 두 신이 부주산(不周山 신화에 나오는 신선의 산)에서 결투를 벌였다. 결과는 공공씨가 패해 자신의 머리로 부주산을 들이받아 부주산이 부러졌다. 부주산은 하늘과 땅 사이의 주요한 기둥인데 기둥이 부러지자 큰 틈이 벌어졌다. 대지는 평형을 잃어 동남으로 기울어졌고 홍수가 발생해 천지는 망망한 바다로 변했다. 인류는 피할 곳이 없어 큰 고통을 겪었다. 여와가 인류의 고통을 차마 보지 못하고 산위에 있던 오색석(五色石)을 이용해 찢어진 틈을 수선했다. 전설에 의하면 지금도 지평선에서 볼 수 있는 휘황한 붉은 노을은 여와가 수선할 때 사용했던 오색석이라고 한다. 그녀는 또 신령스런 거북(神龜)을 잡아서 네 다리를 잘라 기둥으로 만들어 대지를 다시 지탱했다. 하늘이 갈라질 때 생긴 틈으로 홍수가 났으나 여와는 갈대를 태운 재로 그것을 막았다. 하늘을 잘 보수하고 사방(四方)도 바르게 되었으며 홍수도 다스리자 천하가 비로소 안정되었다. 이때 오직 선량한 사람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우리는 반드시 여와에게 감사드려야 하는데 그녀는 사람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인류를 구원해주었다.

이후 인류는 계속해서 번성하고 퍼져나갔다. 인류에게 혼인의 예법(禮法)이 생긴 후 인구는 번식하기 시작했다. 알다시피 원고(遠古)시기에 백성들은 주로 사냥으로 생계를 이어갔는데 인구가 증가하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사냥감이 점점 부족해졌다. 아울러 인류는 불이 있었고 요리법을 알았기 때문에 이전보다 많은 음식물이 필요했다. 이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여 어느 것이 먹을 수 있고 어느 것을 먹을 수 없는지 알아야 했고 또 하나는 질병에 걸렸을 때 무엇을 먹어야 치료할 수 있는지 알아야했다. 이에 신농이라고 불리는 다른 신이 내려와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했다. 신농씨는 식용 가능한 식물을 알아내기 위해 인공적인 종자번식을 통해 각종 꽃, 초목과 열매를 채집했으며 이를 일일이 씹어보고 맛을 보아 그것들의 성질과 기능을 확정했다. 이런 방법을 사용한 결과 어떤 때는 하루에 70여 차례나 독물(毒物)에 중독되었다고 한다. 다행히 그는 보통 인류가 아니었기에 죽지는 않았다. 결국 그는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종을 찾아냈고 일부 종류는 약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찾아냈다. 그중 상등약은 120종으로 양생할 수 있고 연년익수할 수 있으며 중등약은 120종으로 양생할 수 있고 허한 것을 보하고 기를 도울 수 있었다. 하등약 125종은 병을 치료할 수 있다. 신농씨가 세상에 와 중국인들에게 상당히 완전한 의약기초를 세워주었으니 후세에 몇천년을 이어온 한약의 발전은 사실 모두 신농의 본초를 기초로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신농씨는 중국의약의 시조로 존중된다. 이외에도 신농씨는 오현금(五絃琴)을 창조했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정신생활을 풍부하게 했다. 그는 또 쟁기와 보습을 발명해 백성들에게 경작을 가르쳤다. 또 도자기를 제작해 물을 담고 운반할 수 있게 했으며 음식물을 익힐 수 있게 했다. 바로 신농시대에 중화민족은 농경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인류는 이렇게 수인, 복희, 신농 세 분 신인(神人)의 도움 하에 생활의 질이 제고되기 시작했고 아울러 자연계에 대한 일정한 인식과 대처능력이 생겼으며 기본적인 인류의 행위규범이 생겨났다. 유치했던 인류는 이렇게 신의 가호 하에 한걸음씩 요람에서 걸어 나왔다. 이때부터 우리 선인들은 야만에서 초기 문명으로 진입한다. 중국 역사상 기재된 삼황(三皇)이 겪은 만장한 세월을 보자면 신이 사람을 만든 후 중국에서는 분명 한동안 사람과 신이 공존하는 세월이 있었고 신이 직접 인류에게 문화를 전수해주었다. 중국인들은 하늘에 대해 무한히 공경했기 때문에 하늘을 공경하는 것은 단지 중국문화가 신을 믿는 문화일 뿐만 아니라 신전문화의 징표와 내포의 체현이기도 하다.

발표시간:2004년 5월 12일
정견문장 :http://zhengjian.org/articles/2004/5/12/2709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