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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대홍수를 예언

작자 : 상룡(翔龍)

[정견망]

명조(明朝) 정덕(正德) 12년(1517년) 큰 홍수가 초신현(招信縣) 현성(縣城)을 덮쳐 많은 사람이 죽었다. 하지만 또 많은 사람들은 홍수가 나기 전 한 마리 새의 예언을 믿고 살아남았다.

당시 매몰된 고대의 초신현은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명광시(明光市) 북쪽 여산호(女山湖)에 위치해 있다. 남북조 시기 남조(南朝) 송무제(宋武帝) 영초(永初)원년(420년)에 이 현을 설치했으며 원래는 휴릉현(睢陵縣)이라 불렀다. 나중에 지남현(池南縣), 초의현(招義縣) 등으로 이름이 변했으며 송나라 태평흥국(太平興國) 원년(976년)에 초신현이라 불렀다.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초신현 성은 직경 7리로 그 규모가 아주 컸다.”고 했던 고장이다. 그러나 대 홍수가 지나간 후 겨우 0.5평방킬로미터 가량의 작은 섬만 남았고 삼면이 물에 잠겼다.

당시 대홍수 후에 살아남은 사람들로부터 초신현이 수몰된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이 초신현에 낭중(郎中) 벼슬을 하던 공일(孔一)이란 유명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홍수가 일어나기 “비가 많이 와서 초신현이 다 잠길 것이다.”는 소식을 전했으나, 요언으로 민중을 미혹시킨다는 이유로 현령에게 잡혀갔다. 공일은 현령에게 “새들에게서 초신현이 물에 잠길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으며 그래서 백성들이 무고하게 수재를 당하지 않도록 이런 소식을 전한 것이다.”라고 했다. 현령은 “공일이 사리를 분별할 줄 알며 또 그는 공자(孔子)의 후손으로 성품이 선량하고 성실하니 일반적인 정황으로 볼 때 백성에게 손해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그의 진술을 끝까지 들어주었다.

알고 보니 공일이 한번은 왕진을 나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성내 시장에서 한 사람이 다친 기러기를 팔고 있는 것을 보았다. 공일이 멈추어 보니 그 기러기는 두 눈에 눈물을 흘리며 다친 날개를 파닥거리면서 슬픈 소리를 냈다. 마치 공일에게 구해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이미 나이가 50이 넘은 공일은 마음이 극히 선량하여 평소에 다른 사람의 병을 치료해줄 때 부자에게는 약값을 받았으나 가난한 사람에게는 한 푼도 받지 않았고 의원을 하는 반평생 동안 내내 간단한 음식에 낡은 옷을 입었다.

이번에 기러기를 팔던 사냥꾼 역시 공일이 무료로 치료해 준 적이 있는 사람이라 공일이 주머니를 뒤지는 것을 보자 그는 기러기를 인정상 그에게 돈을 받지 않고 그냥 주겠다고 했다. 공일은 기러기를 안고 돌아와 정성껏 치료해 주었으며 며칠 후 기러기는 상처가 회복되어 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기러기는 떠나기 전 몸에서 깃털을 쪼아 공일의 귀에 걸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구명지은에 보답하기 위해 이것을 드리니 몸에 지니고 계시면 새들의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공일은 새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새들이 말하는 일부 기후와 재난을 예언하는 일을 매우 정확히 알았다. 이렇게 공일은 미리 비가 올지 눈이 올지 하늘이 하는 일을 미리 알고 예방을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공일의 말을 믿지 않았다. 어느 해 큰 우박이 와서 기와가 모두 깨졌으나 공일의 지붕은 미리 짚으로 덮었기 때문에 조금도 손실을 입지 않은 적도 있다.

이번에 공일은 처음에 몇 마리 참새로부터 “며칠 후 성내에 못이 넘칠 큰 비가 온다.”는 것을 들었는데, 나중에는 또 까치가 노닥거리다가 “삼일 후 성 전체를 침수시킬 비가 7일간이나 오게 되니 빨리 이사를 가야한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성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공일은 도처로 다니며 사람들에게 대 홍수가 닥칠 것이라고 알리며 빨리 위험을 피하라고 알려 주어 많은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으나, 어떤 사람은 믿지 않고 “새가 하는 말이 진실일까?” 하며 주저했으며 또 어떤 사람은 공일이 미쳤다고 비웃으며 그를 관아에 고발했다.

현령은 공일의 말을 들은 후 친히 그 기러기 깃털을 귀에 걸고 관아를 나갔다. 어느 집 쌀가게를 지날 때 새 조롱 안에 한 마리의 노란 참새가 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다가가서 들어보니 그 새가 말했다. “하루 종일 여기 갇혀 있으니 비록 먹고 마실 것은 있지만 그래도 마음대로 하늘을 날았으면 좋겠는데.” 태수는 새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음을 알게 되자 즉시 “며칠 내에 큰 비가 올지 모르니 백성들은 빨리 재난을 피할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태수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이렇게 높은 성벽이 어떻게 물에 잠기겠느냐?” 하면서 대피를 하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3일이 지난 후 과연 큰 비가 쏟아 붓기 시작했으며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며칠 만에 성 밖에 있던 저수지가 넘치기 시작하여 현의 평지는 세 척(尺) 가량 물이 차올랐다. 그 후에도 폭우는 계속되어 황하의 제방을 무너뜨리고 강물이 범람하여 이 오래된 성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단지 초신성에 원래 있던 가우원(嘉佑院) 일대의 0.5평방킬로미터 정도의 작은 부분만 남기고 다른 곳은 모두 못으로 변해 버렸다.

공일은 함께 탈출한 사람들을 데리고 현 서남쪽 높은 지대에 집을 지었는데 이곳 언덕이 바로 지금 호서안에서 7리 떨어진 공부(孔埠)다.

사실 옛날에 새가 장차 일어날 재난을 예견할 수 있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현대과학자들도 각종 재난이 발생할 때 많은 동물은 이미 지구에서 일어날 재난을 미리 예지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동물이 어떻게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재난 발생을 미리 알고 있을 정도로 민감할 수가 있을 까? 과학자들이 아프리카 원시부락 사람들을 연구하다가 발견한 것이 있는데, 사람의 사상이 매우 단순할 때 동물과 같이 객관적 세계에 대해 극히 민감한 본능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고대에서 내려오는 각종 전설에서 “고대인은 현대인이 도달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초능력을 구비했다.”고 전해 오고 있다. 예를 들어 사유전감, 천리안, 순풍이(먼 곳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 등등 이런 능력은 아프리카 원시부락 사람들 중에 많이 있는데 타고날 때부터 구비하고 있는 것이다.

자고이래로 재난은 늘 발생하고 근대과학이 발견한 과학의 성과로 보면 지구상에 분포된 재난의 흔적과 인류활동의 유적으로 볼 때 뜻밖에 많은 평원, 고산, 협곡 심지어 사막, 바다 속에 다 망라되어 있다. 예컨대 누란국의 유적지가 사막에 묻힌 것 멕시코 태양의 피라미드와 달의 피라미드 그리고 마야 문명유적지 등 많은 것들이 있는데 정말 어느 때 존재했었는지 진실한 연대를 측정하기 어렵다. 더욱이 대양 아래에서 발견된 일본 해역의 사전문명 유적지, 대서양 아래서 발견되는 문명유적지 등은 하나의 문제를 설명한다. 바로 세계 각지에는 모두 한 때 인류가 거주했던 곳이나 나중에 거대한 재난이 삼켜버렸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늘 사람들이 말하는 “뽕나무밭이 바다로 변했다고 하는 “상전벽해”가” 정말 있었다는 것이다.

한 때의 이런 많은 인류문명들은 갑자기 찾아온 화산 해일 지진 등의 재난으로 완전히 소멸됐던 것이다. 한 번 생각해 보자. 만일 역대의 재난 중에 미리 재난이 발생할 것을 알게 된 민감한 사람이 예언을 하거나, 혹 공일 같은 사람이 동물로부터 재난이 임할 것을 알고 다른 사람을 구조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존재했는데 그 공일 같은 사람의 예언을 믿는 사람이 없었다면 무수한 재난을 거치면서 아마 인류는 이미 멸망했을 것이며 아무 데도 인류가 연속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물욕(物慾)이 횡행하는 오늘 날 일부 사람들은 본성을 유지하면서 오염되지 않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흔히 고대인이 말한 시중의 대은둔자처럼 겉으로는 보통 사람과 다름없지만 표현상 다른 사람에 비해 순박하고 선량하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흔히 다른 사람이 구비하지 못한 초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미래의 재난을 예언할 수 있다. 만일 공일 같은 사람이 위험한 경지에서 벗어나라는 권고를 한다면 당신이 믿을 수 있겠는가? 역사의 교훈을 기억하기 바란다.

발표시간 : 2011년 10월 24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1/10/24/781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