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운개
【정견망】
‘왕기(王杞)’는 당나라 때 인물로 자는 ‘창우(昌遇)’이며 사천(四川) 재주(梓州) 사람이다. 그는 관아에서 감옥을 담당하는 ‘옥리(獄吏)’의 직을 맡아서 늘 심문 에 참여하곤 했했다. 그는 가끔 아내에게 자기가 얼마나 심문을 잘하는지 떠들어 댔고 때로는 뇌물로 받은 돈을 가져와 상으로 받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아내는 마음속에 점점 남편이 심문하다 핍박하여 얻은 것이 아닐까 하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내가 왕기에게 오늘 하녀를 시켜 반찬을 보낸다고 하면서 그 중 몇 가지 안주 등 상세한 정황을 미리 알려주었다. 점심 때 하녀가 밥을 가져 왔는데 왕기가 찬합을 열어보니 듣던 것과 반찬이 달랐다. 그는 하녀가 자신의 음식을 훔쳐 먹었다고 여겨 즉시 그녀를 야단쳤다. 시녀는 위협에 못 이겨 자기가 음식을 훔쳐 먹었다고 자백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온 왕기는 아내에게 어떻게 비녀가 음식을 훔쳐 먹은 것을 발견했는지 과장해서 떠벌렸다. 그러자 아내는 “오늘 제가 일부러 반찬을 적게 넣었습니다. 이유는 당신이 사건을 판단하는 능력을 시험해 보기 위한 것이었어요. 하지만 뜻밖에도 당신은 시녀를 강압적으로 굴복시켰더군요. 그러니 당신이 심문할 때 상사의 상금을 받은 것은 핍박하여 받아낸 것이 반드시 적지 않을 것이며 억울한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네요. 당신이 그러고도 어찌 편안할 수 있겠어요?” 왕기는 아내의 말을 듣고서 활연히 깨달았다.
그는 즉시 붓을 들어 시를 한편 썼다.
돈 때문에 사람을 못살게 굴었으니
억울한 빚이 얼마나 많았으랴
지금부터라도 옥리를 그만두고
모든 것 내려놓고 숲으로 돌아가리라
枷拷推求只爲金
轉遭冤債幾何深
從今不願爲刀筆
放下歸來遊翠林
이때부터 왕기는 일심으로 도를 닦았다. 나중에 이인(異人)을 만난 신선이 되는 비결을 전수받았다. 대중(大中) 13년(서기 859년) 왕기는 온가족이 함께 신선이 되어 떠났다. 후세 사람들은 이 때문에 그에게 기도를 올리고 제사를 지냈으며 그는 고대 민간에서 모시던 신선의 하나가 되었다. 북송(北宋) 대관(大觀) 2년(서기 1108년)에는 황제가 ‘보화진인(保和真人)’이라는 호를 내렸다.
자료출처: 『이견지 보권(夷堅志補卷)』, 『이견지습유(夷堅志拾遺)』
발표시간: 2012년 9월 15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130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