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불진(拂塵)
【정견망】
8. 신공표의 질투심
신공표(申公豹)는 강자아(姜子牙)의 도술이 자기만 못하다고 여겼다. 때문에 질투심이 생겨나 강자아가 봉신(封神)하는 것을 질투했다. 그는 신통이 광대했음에도 무엇 때문에 강자아를 방해할 수 없었을까? 바로 이런 마음 때문에 처음에 강자아를 희롱하다 남극선옹(南極仙翁)의 징벌을 받았다. 그럼에도 회개하지 않고 끊임없이 절교와 천교간의 충돌을 도발했다. 그리하여 많은 수도자들을 상, 주의 살벌한 싸움 중에 죽게 만들었다. 독악한 맹세를 발하고 맹세를 어기다 결국에는 북해안(北海眼)에 깔린다.
《봉신연의》 중의 겁난은 정해져 있는데 그 중 한가지 원인은 신공표의 질투심이다. 수행자의 질투심은 얼마나 무서운가 알 수 있다. 끝없는 죄악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선인들은 신공표의 질투심을 이용해 수행자에게 질투심을 버리지 않고는 절대 정과(正果)를 얻을 수 없음을 경계한 것이다.
9. 은나라 충신들의 정신
기자(箕子 주왕의 숙부)는 노예가 되었고 비간(比幹 주왕의 숙부)은 간언을 하다 죽었으며 미자(微子 주왕의 형)는 나라를 떠났다. 이들이 소위 말하는 은나라 3대 충신이다. 그렇다면 고대인들은 무엇 때문에 이들 세 사람의 정신을 칭찬해마지 않는 것일까? 이는 바로 중국 고대인들이 사직을 중요시 하고 선조와 국가를 중시하며 문화와 윤리를 중시하는 관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군왕제란 바로 집이 국가이며 국가가 집이다. 집안이 혼란하여 패망할 때 반드시 군왕이 하늘에 거역하고 사람을 해치며 도덕이 떨어지고 성을 혼란시킨다.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그러면 황족의 자제들은 어떤 선택을 헤야하는가?
은교(殷郊)와 은홍(殷洪) 형제는 주왕을 도와 포악한 짓을 했다. 부왕을 돕는 것 역시 악을 돕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비간, 미자, 기자에게도 몇 가지 선택이 있었다. 미자는 주왕의 큰 형으로 누차 나아가 간언했으나 소용이 없자 주왕을 멀리 떠났다. 나중에 무왕이 주나라를 멸망시키자 상나라의 혈맥을 보존하여 미자는 송(宋)나라의 임금이 되었다. 기자는 주왕의 숙부인데 성질이 곧고 재능이 있어 누차 주왕을 간언했으나 듣지 않자 참지 못하고 멀리 고국을 떠나 머리를 풀어헤치고 미친 사람처럼 행세하다가 노예가 되어 숨어 지냈다. 나중에 무왕이 도를 묻자 기자는 《홍범구주》를 남겨 은나라 옛 신하 5천명을 데리고 고조선으로 건너가서 선진적인 중원 문화를 남겼다. 비간은 주왕의 숙부로서 보좌한 중신인데 주왕이 무도한 것을 보고 강하게 간언을 하다가 주왕의 노여움을 일으켜 심장을 도려내는 고문을 받다 죽는다.
은나라의 세 신하는 국가가 망할 때 하나는 혈통을 남기고 한사람은 문화를 또 한사람은 죽음으로 임금에게 간하였으니 모두 그들이 자기의 선조에 충성하고 선왕의 도덕과 왕도의 문화에 충성을 다하려 함인데 세 가지 태도, 세 가지 선택으로 패망한 왕조의 소중한 정신을 보존하였다.
10. 법기, 탈것과 도술
본서에는 다양한 탈것이 등장한다. 황비호(黃飛虎)는 오색 신우(神牛)를 탔고 강자아는 사불상(四不像)을 탔으며 문태사(聞太師)는 흑기린(黑麒麟)을 탔다. 형합이장(哼哈二將)은 금정수(金睛獸)를 탔으며 운소선자(雲霄仙子)와 용길공주(龍吉公主)는 청란(青鸞)을 탔으며 조공명(趙公明)은 흑호(黑虎)를 탔으며 도덕진군(道德真君)이 탄 것은 운하수(雲霞獸)였다.
이제 법기(法器)를 보자. 강자아는 타신편(打神鞭), 행황기(杏黃旗)라는 법기가 있다. 나타는 봉화륜(烽火輪)을 밟고 손에는 건곤권(乾坤圈)을 잡았으며, 조공명은 정해주(定海珠)와 박룡삭(縛龍索)이 있다. 경소(瓊霄)낭랑, 벽소(碧霄)낭랑, 운소낭랑(雲霄)은 혼원금두(混元金鬥)와 금교전(金鉸剪)을 지녔다. 금타는 둔룡주(遁龍柱)를 사용했으며 접인도인(接引道人)은 12품금련(十二品金蓮)과 접인보번(接引寶幡)이 있었다. 통천교주는 육혼번(六魂幡), 주선검(誅仙劍)이 있었고 여와낭랑은 강산사직도(江山社稷圖)가 있다. 육압(陸壓)은 정두칠검서(釘頭七劍書)가 있다. 광성자(廣成子)는 번천인(番天印), 적정자(赤精子)는 음양경(陰陽鏡), 연등도인(燃燈道人)은 건곤척(乾坤尺)과 영구등(靈柩燈)이 있었으며 위호(韋護)는 항마저(降魔杵) 등이 있다.
《봉신연의》에는 또 다양한 도술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삼두육비(三頭六臂 머리가 셋에 팔이 여섯), 팔구현공(八九玄功), 오행둔술(五行遁術), 기문둔(奇門遁), 오색신광(五色神光), 천리안(千里眼), 순풍이(順風耳) 등이다.
역사상 그 어떤 신마소설(神魔小說)도 이렇게 다채로운 것이 없었으며 신선세계의 법기, 탈것, 도술에 대한 묘사를 이렇게 상세하고 다채롭게 한 적이 없다. 이는 단순히 문인의 상상력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글의 저자는 분명 심후한 도가(道家)의 학식과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이런 기물과 기능을 서술해낼 수 있고 중국인에게 이런 수련계의 신비한 술어와 익숙하게 하도록 하여 풍부한 신전요소를 후세인에게 남겨 놓고 최후시대에 필요한 문화를 남겨주었다.
11. 중국은 중생이 가장 먼저 선택한 곳
지상의 어떤 서적도 다음과 같은 내포를 표현한 적이 없다. 중국문명은 연원이 아주 길고 오랜 세월 사람과 신이 같이 했다. 천지의 각 세계에서 인간 세상에 올 때 가장 먼저 중국을 선택해 인연을 맺은 후 나중에 세계 각지로 환생해 인류의 도덕 문화를 다져왔다.
대법제자는 이런 천기(天機)를 모두 알고 있으나 고대 서적 중에는 오직 《봉신연의》 에만 유사한 글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구류손(拘留孫)이 불교에 입문해 성불하고, 문수광법천존(文殊廣法天尊)이 나중에 성불하여 문수보살이 되며, 보현도인(普賢道人)은 나중에 보현보살이 되고 자항도인(慈航道人)은 나중에 관세음보살이 된다. 서방교주(아미타불)는 공작대명왕(孔雀大明王), 장이정광선(長耳定光仙)과 불교와 인연이 있는 사람을 거두는 등등이다.
상나라와 주나라의 교체기에 정사(正邪)를 구분하기 어려운데 절교(截教)와 천교(闡教) 간의 분쟁은 도력이 높은 사람들도 목숨을 잃는 겁난을 만나게 한다. 인연이 있지만 봉신방에 있지 않는 자는 서방교주와 연을 맺어 수행을 계속한다.
부처를 배우는자, 도(道)를 배우는자, 수많은 법문(法門)에서 모두 도를 배운 후 불법(佛法)에 들고 마찬가지로 부처를 배우는 자 역시 입도할 수 있다. 연분을 보고 자신의 선택을 보어야 한다. 동방문명은 일찍이 서방문명보다 빠르며 수많은 인연이 있는 선비와 속세 사람들은 우선 중국에서 인연을 맺고 나중에 서방에 가서 성취를 이뤘다.
봉신방 속의 이야기는 진실성은 논하지 않더라도 독특한 정보를 노출하며 중국 이 토지에 역사가 매우 길고 사람이 많으며 산천이 화려하고 신전문화를 가장 계통적이고 가장 풍부하게 중생이 먼저 선택한 곳이다. 아마 사람들이 모르는 더욱 많은 천기를 숨기고 있을수도 있다!
12. 고대의 음악과 도통(道通)
고금(古琴)은 복희씨가 만든 것으로 봉황의 형상을 본따서 제작했다고 한다.
고금의 길이는 일년 365일을 상징하고 처음에는 5줄로 되어 금목수화토 오행을 상징했다. 문왕 이후에는 억울하게 사망한 문왕의 큰아들 백읍고(伯夷考)를 기리기 위해 한줄을 더해 6줄로 되었다. 무왕이 주왕을 정벌할 때는 사기를 더 북돋우기 위해 또 한줄을 더해 “문무7현금(文武七弦琴)” 이라고 했다.
백읍고는 문왕의 장자로 서기(西歧)의 주인이었다. 부친이 조가(朝歌)에 7년간 갇히자 아들이자 신하로서의 충과 효를 다하기 위해 뭇 신하들의 권고를 따르지 않고 주왕을 찾아가 보물을 헌납하고 부친 대신 죄를 청했다.
백읍고는 고금(古琴)에 능했다고 하는데 세상에 둘도 없는 정도로 자태가 준수하고 단아했다. 이에 달기가 흑심을 품고 백읍고에게 금을 가르쳐 달라고 한다. 백읍고는 달기를 만나 음악의 도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했다. 내외오행(內外五行), 육율오음(六律五音), 좌수용정(左手龍睛), 우수호안(右手虎眼), 궁상각치우 누르는 법 외에 또 8가지 기법(지우기, 돋우기, 굽히기, 깎기, 닦기, 밀기, 치기, 따기 등)이 있다. 이외에 또 6가지 기피할 것이 있으니 슬픈 일을 듣거나, 울거나, 마음을 기울이거나, 분노하고 점을 품거나, 욕을 품어서 안되며, 놀라서도 안된다. 악기를 타지 말아야 7가지가 있는데 질풍노도, 아주 슬픈 경우, 옷이 가지런 하지 못한 것, 술에 취해 이성을 잃음, 불결한 곳에 다녀옴, 향기 없는 냄새, 속된 음악을 듣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에 거문고를 타지 말아야 한다.
백읍고는 이 말을 마치고 고금의 수법, 음률, 환경, 심태, 수양 등을 이야기했으며 고인들이 음악을 통하여 온화하게 몸을 다스리고 이를 통해 예를 배우고 교화하며 거문고는 수신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음을 말했다.
백읍고는 또한 음악으로 색의 유혹을 거절하고 노래로 군왕을 천거해 자식의 효와 신하의 충을 다했다. 결국 기꺼이 사로잡혀 살이 떼여 저미는 처벌을 받았다. 후세에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는 고산유수(高山流水)를 연주했고, 위진시대의 계강(嵇康)은 형장으로 갈 때 광릉산(廣陵散)을 연주했으며, 고점리(高漸離)는 형가를 떠나보내며 “바람은 소소히 불고 역수가 찬데 장사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한다네”라고 연주했다.
몇곡의 고금 소리에 얼마나 깊은 뜻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