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혜순(慧淳)
【정견망】
동진(東晉) 태원(太元) 12년(역주: 서기 387년) 외국에서 한 승려가 왔다. 이 서양 승려는 매우 능력이 있어서 입으로 칼을 삼키고 불을 토하며 금은보화를 토할 수도 있었다.
그가 중원으로 가는 도중 바랑을 짊어진 사람을 만났는데 이 사람의 바랑 위에는 쌀 두되쯤 되는 작은 대나무 광주리가 있었다. 승려가 짐을 진 사람에게 말했다. “저는 많이 걸어왔기에 매우 피곤합니다. 당신의 바랑 위에서 좀 쉬어도 되겠습니까?”
바랑을 짊어진 사람은 이 말을 듣고 좀 이상하게 느껴 미친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하며 그 승려에게 놀려주듯이 말했다. “당연히 괜찮지요. 하지만 내 짐 어디에 앉으려 합니까?”
“괜찮으시다면 당신 짐의 광주리 위에서 좀 쉬었으면 합니다.”
바랑을 진 사람은 갈수록 이상하게 느껴 속으로 생각했다.
“내 광주리는 매우 작은데 이 사람이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을까? 설마 오늘 정말 신선을 만난 것일까?” 그래서 “광주리에 들어갈 수 있다면 바로 신선이겠구료.” 하며 짊어진 바랑을 땅에 내려놓았다.
승려는 두말하지 않고 즉시 광주리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놀라운 것은 그가 들어간 후 광주리는 원래보다 더 크지 않았고 승려도 원래보다 더 작지 않았다. 짐을 멘 사람이 다시 짐을 메었을 때 짐이 조금도 더 무거워지지 않고 여전히 원래 무게와 꼭 같았다.
그 사람은 매우 이상히 여겨 자기가 정말 신선을 만났음을 알고 더 이상 감히 승려에게 농담을 하지 않고 부지런히 앞으로 길을 갔다.
이렇게 수십 리를 가다보니 짐을 진 사람도 좀 피곤하여 음식을 먹고 나서 다시 걷기로 했다. 그가 큰 나무 아래에 가서 멈추고는 좋은 뜻으로 승려에게 말했다. “스님, 나와서 좀 드시고 가시지요.”
그러나 승려는 나오려고 하지 않고 말했다.
“전 매우 피곤하니 나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 광주리 속에서 먹겠습니다.:
하고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많은 음식용 그릇을 꺼냈다. 그릇 속에는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 차 있었다. 승려는 이런 것을 자기 앞에 펼쳐놓고는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잠시 후 승려는 허리를 쭉 펴더니 앉았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배불리 먹었고 잘 쉬었으니 이제 이 광주리에서 나와야겠소.”
하고는 승려는 자기 앞에 펼쳐놓은 찬 그릇을 입속에 집이 넣었다. 그리고 그는 광주리 속에서 나와서 짐 진 사람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함께 성을 향해 걸어갔다.
성에 들어선 후 승려가 말했다. “이 성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당연히 알지요. 성 북쪽에 있는 왕부자(王財主)라는 사람인데 재산이 만관(萬貫 역주: 1관=3.75Kg)이라고. 하지만 이 사람은 매우 인색하여 여태 가난한 사람에게 죽 한그릇 희사하지 않아서 사람들은 그를 ‘왕배피(王扒皮)’-껍질을 벗긴다는 뜻-이라고 부르지요.
그러자 승려가 말했다.
“내가 오는 도중에 이 왕부자가 매우 돈이 많은데 속이 좁다는 말을 들었소. 내가 온 김에 그를 좀 다스릴테니 그저 구경만 하시오.”
그는 오는 도중 이미 승려의 능력을 보았으므로 그를 믿었고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인의도덕(仁義道德)을 모르는 부자를 다스릴 지 궁금했다.
승려가 성 북쪽에 위치한 왕부자의 집에 도착하자 왕부자를 불러내고는 물었다.
“듣자하니 당신은 하루에 천리를 가는 좋은 말이 있다고 하는데 혹시 이 말을 좀 구경하여 제 안목을 좀 높일 수 있겠습니까?”
왕부자의 집에는 분명 좋은 말이 있었다. 이 말은 정원의 뒤뜰에 기둥에 묶어 놓았다. 그는 기개가 비범한 서양 승려가 자신의 말을 칭찬하는 것을 듣고 득의만만하여 곧 사람을 시켜 말을 끌고 오라고 했다.
하지만 말을 끌고 오려던 그 하인은 기겁하여 돌아오더니 말했다.
“말이 보이지 않습니다!”
승려는 매우 실망한 듯 왕부자에게 말했다.
“그럼 전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말을 찾기를 바랍니다.”
밤이 되어 왕부자의 집에서는 대략 닷 말 정도 크기의 커다란 항아리 속에 들어간 말을 발견했다. 이 항아리 병은 입구가 작고 배는 부른데 말보다는 훨씬 작았다. 아무도 이 말이 어떻게 그 단지 속으로 들어갔는지 알지 못했고 더군다나 어떻게 말을 끄집어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위인됨이 아무리 인색해도 그는 항아리를 깨부수어 말을 꺼내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사람을 불러 도끼로 단지를 부수라고 했다. 그러나 평소에 조금만 부주의해도 잘 부서지던 이 항아리가 어떻게 해도 깨지지 않았다.
그 하인은 한때 화가 나서 도끼의 날카로운 부분으로 사용하여 쪼개려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항아리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한 갈래의 갈라진 틈도 없었다.
왕부자는 ‘이 괴상한 일은 어쩌면 그 승려와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고 추측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많은 돈을 들여서 산 말이 가슴 아파서 한잠도 잠을 잘 수 없었다.
하루가 지나 승려가 또 와서 부자에게 물었다.
“당신의 말을 찾으셨습니까?”
왕부자는 매우 조심스럽게 승려에게 물어보았다. “스님의 행색을 뵈니 서방에서 오신 것 같고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 혹여 제가 언제 죄를 지은 적이 있습니까?”
승려는 왕부자가 이미 자신의 속셈을 알아차린 것을 보고 물었다.
“말을 꺼내고 싶지 않습니까?”
왕부자는 안절부절하며 “물론 꺼내고 싶고 말고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승려는 “그럼 좋습니다. 오늘부터 집 문앞에다 백명이 먹을 수 있는 죽포(粥鋪)를 열고 주위의 가난한 사람을 구해주시오. 그렇게 해야만 말을 꺼낼 수 있습니다.”
왕부자는 승려가 이런 요구를 할 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부득불 이렇게 했지만 그는 죽을 희사할 때 적지 않은 돈을 써야 하지만 그래도 이 말은 그보다 돈이 더 많이 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승려의 말을 듣고 문 앞에 하루치의 죽을 펼쳐놓았다. 잠깐 만에 주위의 가난한 사람들이 모두 왕부자의 집앞에 몰려와 장사진을 이루었다. 그래서 죽포의 죽을 다 깨끗이 해치워 버렸다.
짐꾼은 왕부자가 죽포를 펴는 것을 보고 승려에게 말했다.
“스님께서 무슨 수단을 썼기에 평소 쌀 한톨도 아까워하던 왕부자가 죽포를 펼치도록 했습니까?”
그러자 승려는 좀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뜻밖에도 이곳에는 매일 밥을 먹지 못하는 가난뱅이들이 이렇게 많군요. 백명분의 죽으로는 이 문제를 전혀 해결할 수 없으니 나는 내일 천 명의 죽포를 열도록 해야겠군요.”
한편 왕부자의 집에서는 죽포를 열고 나자 항아리 속에 들어갔던 말이 과연 후원 마당에 잘 묶여 있었다.
왕부자는 이젠 아무 일 없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 집의 쌀이 아까워 다음날 죽포를 열지 않았다.
하지만 오후가 되자 하인이 보고했다.
“나리, 나리 부모님께서 방금 잘 앉아 계셨는데 갑자기 보이지 않습니다!”
왕부자는 도처에 사람을 보내 부모님을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왕부자는 이것이 또 승려의 장난인 줄 알았다. 그래서 또 그를 찾았다. 하지만 승려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저녁이 되자 왕부자는 자신의 부모가 요강 속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아무리 방법을 생각해도 양친을 요강 속에서 꺼낼 수 없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을 동원하여 그 승려를 찾으라 했다. 마침내 어느 집에 교외의 어느 여관에서 그 승려를 찾았다. 왕부자는 얼른 달려가서 말했다. “사부님 저희 부모님이 요강 속에 들어가서 나오지 못합니다. 좀 도와주세요.”
승려는 매우 놀란 듯 물었다.
“정말 이상하군요. 당신의 부모님이 어째서 요강 속에 들어갔을까요? 제가 먼저 묻겠는데 말을 나왔습니까? 어제 당신의 말을 끄집어내는데 아주 애를 먹었습니다.”
왕부자는 승려가 이렇게 말하자 더욱 급해져 말했다.
“말은 나왔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또 요강 속에 들어가셨으니 사부님 좀 봐주세요.”
승려는 또 말했다.
“정말 이상하군요. 평소 나의 법술(法術)은 매우 영험한데요.” 하고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그렇소. 당신이 오늘 가난한 자에게 죽을 대접했소?”
왕부자는 멋쩍은 듯이 말했다. “저, 저는 말이 나온 것을 보고 다른 일은 잊어버렸습니다. 오늘 죽을 대접하는 일을 잊어버렸습니다.”
승려는 탄식하며 말했다.
“알고 보니 그렇게 되었군요. 어쩐지 부모님이 요강 속에 들어가 계신다 했더니. 당신에게 내가 말해주지 않았소, 죽포를 날마다 열어야 한다고? 이번에 더 나빠졌네요. 저도 방법이 없군요.”
그러자 부자는 더욱 마음이 급해져서 뱅뱅 돌며 손을 잡고 고개를 굽히며 빌었으나 승려는 이 한마디 밖에 없었다.
짐꾼은 줄곧 승려와 같이 있었는데 이전에 왕부자가 이같이 다급한 꼴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착실한 사람이고 마음이 약해서 이 왕부자는 그래도 보모님께 효성이 있는 사람이니 옆에서 그를 대신해 사정을 봐달라고 부탁했다.
승려는 이 말을 듣더니 매우 기분 나쁜 듯 왕부자에게 말했다.
“좋소, 제가 이 친구의 체면을 보아 당신을 한번 도와주지요. 하지만 한번 뿐이요. 당신이 일백 명 먹을 수 있는 죽으로는 안되며 천 명이 먹을 수 있는 죽포를 열어야 합니다.”
왕부자는 승려의 말을 듣고 기뻐했다.
“그럼 우리 부모님은 언제 나오실 수 있습니까?”
“지난번 그 말처럼 때가 되면 나올 겁니다. 하지만 먼저 경고하는데 죽포를 줄곧 펴야지 하루라도 그치면 안됩니다. 내일 저는 이곳을 떠날 텐데 만일 집에 무슨 일이 있으면 모두 자기가 책임이지 무엇에 끼거나 떨어지거나 해도 이젠 도와줄 수 없습니다.”
이때부터 왕부자는 매일 문앞에 죽포를 열어 가난한 사람을 구제했다. 며칠이 지나자 그들은 점점 사람을 돕는데 습관이 되었다. 어쩌면 자신이 어떤 곳에 끼어 나오지 못할까 봐 겁이 났을지도 모른다.
왕부자가 사망한 후 그의 자손들은 부친의 요청에 따라 여전히 문앞에서 사람들에게 죽을 제공했다. 나중에 그곳 사람들은 다시는 “왕배피”라 하지 않았고 모두 “선행의 집(行善之家)”이라 했다. 왕부자의 자손들도 이웃간에 서로 도우며 풍족하게 지냈다.
출처: 진(晉)나라때 순(荀)氏가 저술한 《영귀지(靈鬼志)》
발표시간: 2014년 5월 6일
정견문장: http://www.zhengjian.org/node/13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