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안진
【정견망】
하북성 회래(懷來), 적성(赤城) 및 북경 교외에 수 킬로미터에 걸쳐 우뚝 솟은 큰 산이 있고 이 산맥을 따라 수십여 개의 마을이 자리한다. 이 산이 바로 유명한 해타산(海陀山)으로 옛부터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내려온다.
전설2: 왕모낭랑이 수레를 타고 해타산에 내려오다.
옛날에 해타산 아래에 물이 없었고 그 높은 산봉우리에는 초목이 무성한 큰 화원이 있었다. 폭이 백장 되는 반듯한 산봉우리는 평평하고 주위에 울창하고 무성한 관목 덤불이 있었으며 중간은 짙푸른 화초가 있어 일년 사계절 내내 푸르렀다.
爲什麼海陀山下後來有水了呢?千百年來流傳著這樣一個神話故事: 傳說王母娘娘想在人間修造一座行宮大殿,便派四值功曹去看看地址。四值功曹駕著祥雲巡遊了九州十八府,最後看中了海陀山,於是回宮稟奏了娘娘,王母娘娘很是高興,決定親自去看一看。
왜 해타산 아래에 나중에 물이 있게 되었을까? 수천년 내내 유전되어 오는 신화이야기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왕모낭랑(王母娘娘 서왕모)이 인간에 커다란 행궁 대전을 지으려고 4명의 신하를 내려보내 그곳의 지형을 관찰하게 했다. 신하는 구름수레를 타고 온천하 9주 18부를 돌아다닌 후 마침내 해타산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하늘로 돌아가 낭랑에게 보고를 올렸다. 왕모가 매우 기뻐하며 직접 가서 보기로 했다.
다음날 왕모낭랑이 마차 대신을 시켜 18두의 황금소, 18필의 황금말을 골라 18량의 수레를 몰게 하고 어가 호위신을 보냈으며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해타산 서남 언덕에 내려왔다. 이때 수레가 너무 무거웠으므로 산등성이에 두 갈래 깊은 수레바퀴 자국이 패였다. 오늘날까지 이 두 갈래 자국은 여전히 몇장의 깊이로 남아 있으며 사람들은 수레도랑이라 부른다.
왕모의 수레가 산꼭대기에 도착한 후 왕모는 인간세상의 경치에 매료되었다. 문득 보니 넓은 들판에 갖가지 풀들이 빽빽하고 들꽃이 다투어 피어 있었다. 샘물은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고 나무가 우거졌으며 새가 지저귀고 꽃향기 만발하며 벌 나비가 춤을 추는 것이 천궁에 못지않았다. 왕모는 경치를 관상하면서 수레에서 내려 금동옥녀의 부축 하에 봉우리로 걸음을 옮겼다. 금동옥녀는 급히 산봉우리 중앙에 왕모의 자리를 만들었는데 뜻밖에 왕모가 막 앉자마자 산 전체가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왕모는 놀라서 물었다. “어째서 산이 아래로 가라앉는가?” 신하들이 여기저기로 알아본 후 상주했다. “인간 세상의 바위, 토목 등이 왕모낭랑의 수레를 견디지 못해 산아래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이때부터 해타산 아래의 바위틈에서 맑은 샘물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에는 신이 인간과 함께 하던 시대가 있었고 신선은 늘 인간세상에 내려왔다. 인간은 신선을 볼 수 있었고 심지어 함께 살기도 했다. 그래서 중국을 ‘신주(神州)’라 불렀다. 보통 사람들은 천상의 신계를 우러러 보고 신선도 내려올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의 전통이 파괴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신불(神佛)의 존재를 믿지 않는데 심지어 이런 신화를 미신으로 치부한다. 션윈 순회공연은 중국 전통문화를 부흥하는 것이다.
http://www.zhengjian.org/2015/05/02/145200.民間傳說:海陀山的傳說(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