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안진
【정견망】
하북성 회래(懷來), 적성(赤城) 및 북경 교외에 수 킬로미터에 걸쳐 우뚝 솟은 큰 산이 있고 이 산맥을 따라 수십여 개의 마을이 자리한다. 이 산이 바로 유명한 해타산(海陀山)으로 옛부터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내려온다.
전설3 : 낭랑봉 이야기
적성현 대해타촌 북쪽 산비탈 동쪽에 마을에서 수백미터 떨어진 바위틈에 높이 3미터에 팔뚝 굵기의 맑은 샘물이 도랑 옆에서 뿜어져 나오는데 일년내내 끊이지 않으며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무릇 이곳을 지나가는 행인들은 다 한번 감상하며 어떤 이는 한모금 마시거나 세수, 손발을 씻는데 시원하기 이를 데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물로 산모에게 죽을 끓여 먹이면 젖이 잘나온다는 것이다. 때문에 연경, 회래, 용관, 적성 등 주위 마을 사람들이 늘 산부들에게 죽 끓일 물을 가지러 이곳에 물을 온다. 사람들은 이 샘을 “낭랑봉” 이라 부른다.
낭랑봉의 내력을 이야기 하자면 이곳에 감동적인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이전에 회래, 연경 북산 일대와 대해타산 주위에 늘 가뭄이 들었는데 일대의 사람들이 하늘에게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 저공하구(豬拱河口 오늘의 관청 저수지)에 “수모낭랑묘(水母娘娘廟)”를 건설하고 왕모낭랑의 상을 조각상을 모셨다. 그리고 향을 피우고 낭랑에게 자비를 베풀어 비를 내리게 해달라고 빌었다. 과연 몇 년간 비바람에 순조롭고 수확이 좋아 백성들이 다 하늘에 기뻐했다.
그러나 좋은 날이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가뭄귀신”이 회래 북쪽산의 상채자 마을 일대에 정착했고 이 일대에 잇달아 가뭄이 들기 시작했다. 백성들은 다시금 수모낭랑신에게 기도를 했는데 기도가 어찌나 간절했던지 마침내 낭랑을 감동시켰다. 처음에 수모낭랑은 가뭄귀신에게 말로 권했다. 그러나 귀신은 꿈쩍도 않으면서 거드름을 피웠다: “이 곳은 나의 관할이니 상관마시오. 당신은 되게 할 일이 없나보군요” 두 사람은 뜻이 맞지 않자 싸우기 시작했다. “수모낭랑”은 자기의 젖먹이를 돌보지 않고 가뭄신과 죽어라 싸웠다. 천지가 새까매지도록 싸워 마침내 수모낭랑은 가뭄귀신을 쫓아냈다.
이때 수모낭랑도 너무나 피곤해서 자리에 앉아 쉬었다. 그런데 다리가 좀 아픈 것 같아서 신을 벗어 보니 발에 물집이 나 있었다. 다시 보니 신 속에 많은 흙과 돌멩이가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알고보니 너희들이 때문이구나.” 그러면서 흙과 돌을 쏟아냈는데 바로 현재의 교구산 꼭대기의 그 흙이다. 수모낭랑은 잠시 쉬었다가 신을 신고 저수지 부근의 사당에 도착했는데 젖이 팽창함을 느꼈고 그때야 비로소 아기가 생각났다. 젖이 너무 아팠기 때문에 해타산의 굽어진 곳에서 젖을 짜내었는데 이 젖이 바위틈을 따라 흘러나온 것이 낭랑봉이다.
적성민간전설’에 근거》
http://www.zhengjian.org/2015/05/03/145199.民間傳說:海陀山的傳說(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