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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예지했던 당나라 장경장

작자/ 당안(唐安)

【정견망】

당나라 때 장경장(張憬藏)은 젊을 때부터 관상이나 술수에 능해 원천강(袁天罡)과 더불어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장엄(蔣儼)이 젊을 때 우연히 장경장을 만나 관운과 수명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러자 장경장은 “당신은 오늘부터 이듬해에 태자 동궁의 병권을 장악하는 관직을 얻을 것이며 임기가 끝나기 전에 면직될 것이오. 면직된 후에는 액운이 3척의 흙아래에 있을 것이요. 또 6년을 지나 죽음의 징조가 나타날 것이고 그 후 부귀를 누릴 것입니다. 61세가 되면 포주자사(蒲州刺史)가 될 것이며 10월 30일 오시(午時)에 관록이 끝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장엄의 운명은 모두 장경장이 말한 대로 되었다. 장엄은 과연 태자첨사(太子詹事)가 되었다. 황명으로 고구려에 사신으로 갔다가 막리지에게 붙잡혀 토굴에 6년이나 갇혀 있다 겨우 귀국했다. 61세 되어 포주에서 황명을 받들어 관직에서 물러났다.

유인궤(劉仁軌)가 평민이었을 때의 일이다. 그가 고향이 같은 정사현(靖思賢)과 함께 장경장에게 관운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장경장은 유인궤에게 “당신은 5품 관직에 나아가 비록 잠시 파면 당하겠지만 마침내 재상의 자리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또 정사현에게는 “고향을 떠나 고독하게 객지에서 죽을 것”이라고 했다.

유인궤는 나중에 “급사중(給事中)”이란 관직을 맡았지만 연좌제로 파면되어 관복을 벗었다. 그럼에도 평민이 입는 백의를 입고 백제 침공에 힘을 보탰다. 누가 알았으랴! 유인궤는 결국 고진감래 끝에 “좌복야(左仆射 상서성의 최고위직으로 보통 재상으로 불린다)”에 이르렀다.

유인궤가 “좌복야”로 있을 때 정사현은 아직 살아 있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장경장이 유복야의 운명에 대해 예지하고 추산한 것이 정말 정확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미 세 아들, 전답과 집 등 여유 있게 잘사는데 그의 말과 다르지 않은가?”라고 했다. 그러나 얼마 후 정사현의 세 아들이 연달아 사망했고 집과 전답을 다 팔았으며 친척집에 붙어살다 객사했다. 장경장의 말이 정확하지 않은게 아니라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을 뿐이다.

중국 전통문화에서 선인들은 사람의 일생은 하늘이 잘 안배해 놓았다고 한다. 즉 어느 날이 되면 재난을 만나고 어느 날에 관직을 얻으며 어느 날 관운이 끝난다는 것을 알았다. 관상이나 법술을 아는 사람은 다 예지 능력이 있었다.

(참고자료: 『구당서 열전 제141 방기』)

http://www.zhengjian.org/2015/07/19/146743.預知未來的唐代高人張憬藏.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