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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문제의 교훈: 책임자는 잘 살피지 않으면 안된다

작자/ 혜순(慧淳)

【정견망】

수문제 양견(楊堅)이 처음 수나라를 건국했을 때는 일념으로 나라를 잘 다스려 한때 명군으로 불렸다. 당시 정책은 간소하고 형벌이 너그러우며 부역도 가벼웠다. 문제는 매일 조례에 나가 밤늦도록 쉬지 않고 정치에 힘썼다. 그는 백성들의 질고에 관심을 두어 늘 민간에 사람을 파견해 민간의 풍속을 살피곤 했다. 관중(關中)에 기근이 들자, 어떤 사람이 백성들이 먹던 콩찌꺼기, 겨부스러기 등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문제는 이것을 보고 매우 괴로워했다. 그는 몹시 자책하며 영을 내려 좋은 식사를 물리치라 하고 근 1년간 술과 고기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문제가 태산에 제사를 지내러 갈 때는 시종들이 길가는 백성들을 쫓아내지 말도록 했고 백성들이 의장 행렬과 섞여도 개의치 않았다. 무릇 노인이나 아이를 업고 가는 백성이 있으면 마차가 백성을 피해 지나도록 했고 수하들에게 백성들을 돕도록 했다. 일국의 제왕으로서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는 원래 성격이 조용하고 의심이 많았다. 작은 일에는 총명했지만 큰 계략은 없었다. 때문에 충신이나 의사(義士)를 쓰기 어려웠다. 개국 원로나 공이 큰 장수들은 대부분 죽거나 파직되었고 운 좋은 극소수만 조정에 살아남았다.

수문제는 글공부를 제대로 한 적이 없으므로 시경이나 서경을 좋아하지 않았다. 또 학교를 없애고 문화를 무시했으며 늘 부인의 말을 들었다. 만년에 이르러서는 감정변화가 아주 심해졌다. 또 법을 너무 엄격하게 집행해 멋대로 살육을 저질러 개국 초기에 비하면 훨씬 못하게 되었다.

그는 수하의 관원이 청렴한지 보려고 고의로 사람을 시켜 뇌물을 주었다. 만약 그 관원이 뇌물을 받으면 반드시 죽였는데 조금의 용서도 없었다. 제왕으로서 이런 수단으로 관리를 다스리는 것은 취할 바가 못 된다. 문제는 몇 가지 나쁜 버릇이 있어서 수나라에 적지 않은 해악을 가져왔다. 결국 후대를 양성하고 후계자를 선택함에 있어 치명적인 착오를 범한다. 이는 양견의 비극이자 수나라 전체의 비극이다.

문제는 양용(楊勇), 양광(楊廣), 양수(楊秀) 등 아들이 5명 있었다. 양용이 큰 아들이라 어릴 때 태자로 세웠다. 사실 당시 군대를 움직이거나 사형죄 등 큰 일을 제외하면 조정의 여러 가지 업무를 양용이 전부 처리했다. 양용은 학문을 매우 좋아했고 너그러운 성품을 지녔다. 또 성격이 아주 곧아서 투정을 부리거나 가식이 전혀 없었다.

한번은 양용이 갑옷으로 매우 화려하게 장식했는데 문제가 보고는 매우 언짢아했다. 양견이 비록 황제이지만 평소에 매우 절약 검소하며 궁중의 기물 복식 따위를 매우 소박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의 가르침으로 인해 조정의 군신들은 모두 그를 따랐고 다 같이 비단을 입지 않았으며 평소에 무명옷을 입었다. 또한 금, 옥 등의 장식은 하지 않았으며 구리, 철, 쇠뿔 등의 작은 장식을 할 뿐이었다.

이때 양견이 양용의 화려한 갑옷을 보았고 그가 사치스런 분위기를 추구할까 두려워 아들에게 말했다. “내 듣기에 하늘에서는 특별히 어떤 사람을 돌보지 않는다 한다. 모두 사람의 덕성이 좋은지 아닌지 본다고 한다. 너는 자고이래 제왕들을 보라. 여태껏 사치를 추구하며 오래간 사람은 없었다. 너는 황태자인데 만약 위로는 천도에 상응하고 아래로 백성의 민심을 달래는데 부주의 하면 어떻게 황제의 자리를 계승하고 만민을 이끄는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내 과거의 옷, 물건 등은 모두 일부러 다 남겨놓고 갈 테니 늘 꺼내어 보도록 하라. 이로서 늘 자신을 경계해야 한다. 지금 내가 과거 한때 쓰던 칼을 줄 테니 이 교훈을 잘 기억해야 한다.”

양광은 둘째아들이다. 그는 어려서 매우 총명했으나 일찍이 형 양용의 지위를 넘보고 있었다. 양광은 매우 교활하여 부친이 근검절약을 숭상하는 것을 보고 꾸밈에 일부러 신경을 쓰고 문장을 지으며 양견의 신임을 얻었다. 한번 문제가 양광이 사는 곳에 갔는데 그곳에 있는 악기는 대다수 현이 끊어졌고 먼지가 많이 쌓여 마치 오래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수문제는 이것이 양광의 계략인줄 몰랐다. 아들이 소박하며 가무, 여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호감을 가졌다. 양광은 특별히 거짓으로 위장하는데 능하여 인(仁)과 효(孝)로 명성을 얻었다.

한번은 양광이 여러 신하들과 함께 놀러 사냥을 나갔는데 마침 비를 만났다. 시종이 기름먹인 비옷을 가져와서 그에게 덮어주었다. 양광은 일부러 입지 않고 가장하며 말했다. “병사들이 다 비에 젖는데 나 혼자 어찌 우비를 덮겠느냐!” 하면서 비옷을 가져가라고 했다.

양용은 오히려 동생 양광과는 반대로 남의 눈치를 살필 줄 몰랐다. 문제는 첩을 많이 거느리지 않았는데 양용의 궁중에는 많은 첩을 데리고 있어서 양견이 크게 불쾌하게 여겼다. 양광은 그렇게 하지 않고 심지어 낳은 아들도 고의로 양육하지 않아 자기가 사심이 없음을 드러내었다.

양광은 자기 뜻을 굽히고 여러 신하들과 사귀었으며 무릇 조정 중의 사람들이 그에게 가면 귀천을 가리지 않고 좋은 관계를 맺었으며 후한 예물을 주었다. 그곳을 드나드는 노비들까지도 다 양광이 인자하다고 말했다. 양광은 완전히 거짓 가면을 쓰고 세상 사람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점점 문제는 그에 대해 더욱 신임하게 되었다. 양용은 오히려 성질이 곧아서 겉치레를 몰라서 갈수록 총애를 잃었다. 마침내 황후와 대신 양소의 적극적인 재촉으로 문제는 결심을 내렸고 양용의 태자 지위를 폐한 후 양광을 태자로 세운다. 양광의 다년간 고심한 계획이 이때 와서 소원대로 보상을 받은 것이다.

양견은 표면적인 문장을 보기 좋아하며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후계자를 선택하는 문제에서 중대한 착오를 범했으면서도 죽을 때까지 잘못을 깨닫지 못했다. 인수 4년(서기 604년) 7월 문제는 병으로 서거한다. 죽기 전 유서를 남겼는데 여전히 양광의 위선에 속고 있었다. 유서 중에서 이렇게 되어 있다. “사람이 자식을 낳으면 누군들 사랑하지 않겠느냐. 하지만 천하를 위해서는 정을 끊어야 한다. 용과 수 등은 나쁜 생각을 품었으며 신하의 마음을 갖지 않았다. 그래서 폐출하여 양용은 태자에서 폐하고 아들 양수는 서인으로 강등한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신하를 아는 것은 임금만한 사람이 없으며 아들은 아버지가 제일 잘 안다고 했다. 만약 양용이나 양수가 나라를 다스린다면 필연코 여러 대신을 살육하고, 서민들에게 독해가 퍼질 것이다. 등등……. 오늘 백성을 위해 악한 자손을 폐출하고 좋은 자손이 대업을 떠맡을 수 있도록 한다. 이 일은 비록 짐의 가정 일이나 이치상 숨길 수 없다. 이전에 문무 시위 앞에서 이미 다 설명하였노라. 황태자 (양)광은 대를 이어 인의와 효성으로 소문이 났으니 대업을 행하여 짐의 뜻을 맡기 바란다. 다만 내외의 여러 관료들이 동심으로 협력하여 함께 천하를 통치하면 짐이 비록 눈을 감지만 회한이 없겠노라!”

수문제의 유서를 보면 그는 줄곧 용을 폐하고 광을 세운 것이 나라와 사직을 위한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에게는 사람을 보는 눈이 없었다. 양광은 즉위 후 사치가 극에 달했고 역사상 가장 황음무도한 황제 중 하나가 되었다. 그는 제위 14년 양주에 유람 갔다가 피살되었다.

결국 탄탄했던 수나라는 겨우 2명의 황제를 겪고 38년 만에 완전히 그의 대에서 끝나고 말았다. 양광은 당시에 비록 ‘인효(仁孝)’로 소문이 났지만 황위 계승 후에는 전혀 어질거나 효성스럽지 않았다. 역사에 비추어 다시 양견의 유서를 읽어보면 중간에 이렇게 되어 있다. “아들을 아는 데는 아비만한 사람이 없다.” 그러니 정말 슬프고도 웃기는 일이다. 양견은 자신이 양광을 후계자로 선택해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을 거라고 했지만 사실 지하에서라도 알게 된다면 그 회한이 무궁할 것이다.

우리는 양견이 아들을 가르친 일로부터 적지 않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실제를 중시하지 않고 겉모습만 보았기 때문에 양광의 성격이 구부러지고 일부러 가식을 하게끔 되었고 본질을 보지 못하고 가상을 중시했기 때문에 양견 본인도 시비를 거꾸로 알아 가치관에 근본적인 편차게 생기게 된 것이다. 양견이 아들을 가르친 것이 엄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으나 적절한 한도를 몰라 나쁜 결과를 초래했다. 이 역시 수많은 사실들로 증명할 수 있다.

양견의 교훈은 무릇 일을 책임진 사람이 잘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수서(隋書) 고조본기(高祖本紀), 양제본기(高祖本紀), 방릉왕양용전(房陵王楊勇傳)을 참조.)

http://www.zhengjian.org/2015/10/02/148315.家教珍事:隋文帝的教训,凡为主事者不可不察.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