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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정 경험 : 여자영웅 목계영 (상)

작자/ 서양인 대법제자 구술

【정견망】

서문

몇 년 전의 일이다. 서양인 동수가 생일 밤 연공 중 입정하여 다른 공간을 보았다. 사부님께서 그(주원신)를 데리고 천 년 전으로 돌아가 목계영(穆桂英)이 어려서부터 클 때까지의 일생의 전기를 보여주셨다. 사부님께서는 나중에 또 다른 공간에서 목계영이 천문진(天門陣)을 대파하는 과정을 한번 보여 주셨고 목계영이 쓴 전술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셨다. 또 이 서양인 동수는 최근 몇 년간 수련 중에 인연으로 인해 그가 사람들 속에서 목계영의 백룡 전마, 좌우 양쪽의 두 여자 장수와 목계영의 (통신용) 매를 통하여 더욱 진귀한 역사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목계영과 양가(楊門) 여장부들의 이야기는 폐부를 감동시키며 눈물을 흘리게 한다.

근대에 와서 사람들은 주로 예술 작품을 통해 일부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각종 원인으로 인해 목계영 일행의 역사는 경전이나 고대 서적에서는 사라졌고 민간에 전해진 부분은 끊어지거나 혹은 똑똑하지 않거나 아니면 진작에 잃어버린 것도 있다. 이에 우리가 의무적으로 할 수 있는 바를 해야 한다고 느껴 아는 상황을 정리해 낸다. 속세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그 시기 역사를 환원해보자.

1. 목계영의 무공에 대해

역사적으로 줄곧 어떤 신녀(神女)가 목계영에게 무공을 전해주었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이런 설들은 목계영에 대한 중국인들의 깊은 사랑과 존경을 나타내는 동시에 그녀의 무공이 입신의 경지에 도달했음을 설명한다. 물론 실제 정황은 그렇지 않다.

목계영의 부친 목우(穆羽)는 산을 점령한 왕이었다. 즉 백성이 산에 들어가 도적이 된 것으로 요즘 말로 하자면 산적 두목이었다. 옛날에는 도적에게도 도(道)가 있었다. 목가채 두목(穆坷寨主)처럼 이렇게 큰 강도 두목은 일반인이 감당할 수 없었다. 목우는 의협심이 강하고 담이 큰데다 무예도 고강해 강호의 기인이사(奇人異士)와 결의형제 맺기를 즐겼다. 또 고인(高人)들과 교류했다. 그는 평소 무술 연마와 병사 훈련을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병사들로 진을 치는 등 병법을 연습했다.

그는 이렇게 할 때면 늘 목계영을 안고 와서 옆에 앉혀놓고 구경하게 했다. 목계영도 어려서부터 늘 보다보니 익숙하게 되어 고수와 겨루는 중에 자라게 되었다. 목가는 계영을 키우는데 마음을 많이 썼다고 볼 수 있다. 그녀가 좀 더 자란 후에는 각 방면의 영웅호걸을 불러 그녀에게 18가지 무예, 기마, 활쏘기 등을 가르쳤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목계영의 실력과 군사적 재능은 표면적으로 말하면 그 부친의 정심어린 양성과 훈련 하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목가채를 야습하고 낮에 목계영을 취하다

당시 북송 양가(楊家)는 (요나라의) 천문진을 깨기 위해 도처로 강룡목(降龍木, 매우 단단하며 자르면 칼같다는 전설의 신목)을 찾아다녔다. 조정에서는 목가채의 규모가 날마다 강해짐을 알았기에 군사를 파견해 평정하고자 했다. 이에 양가장에 군령이 떨어졌다. 사령관인 양연소(楊延昭)는 먼저 산채에 사람을 보내 충분히 상황을 파악한 후 절대 지지 않을 작전방안을 만들었다. 그리고 아들인 양종보(楊宗保)로 하여금 선봉대를 거느리고 목가채를 야습케 했다.

양가장의 선봉대는 모두 엄선된 정예부대였는데 또 야습을 했기 때문에 목가채에서는 사전 준비가 전혀 없었다. 양종보는 일거에 목우를 사로잡았고 목계영 등은 어쩔 수 없이 무기를 내려놓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불이 켜지자 양종보는 첫 눈에 목계영이 마음에 들었다. 이때부터 목가채의 운명은 완전히 뒤바뀐다.

목우는 영웅적 기개를 지닌 인물이라 목이 잘릴지언정 무릎을 꿇릴 수 없었다. 하늘을 떠받드는 대장부의 기개에 양종보는 차마 그를 해치지 못했고 강룡목도 가져오지 못했다.

목계영은 그의 속마음과 그가 온 목적을 추측하고 목가채와 부친을 구하기 위한 계책을 생각해냈다. 바로 양종보에게 일대일 결전으로 승부를 내자고 도전한 것이다.

양종보 역시 마침 구하던 바라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두 사람은 말 위에 올라 즉시 싸우기 시작했다. 이들은 싸우는 한편 사람들의 시선을 벗어났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이야기가 이루어진다. 목계영이 양종보를 생포한다. 그녀는 언월도를 양종보의 목에 댄 채 반강제로 그를 설득했다. 강룡목을 혼수품으로 하자며 그 자리에서 즉시 결혼하게 한다.

그녀는 왜 즉시 혼례를 치르자고 요구했을까? 이는 목계영의 추측이 귀신같음을 설명한다. 양종보는 삼대에 걸쳐 관직을 지낸 가문의 아들이고 자신은 본래 산적 출신이다. 이번 기회에 쇠뿔을 단김에 빼지 않으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혼례가 이뤄질 수 없었다. 그가 일단 양가장으로 돌아가면 혼인이라는 큰일을 혼자 마음대로 할 수 있겠는가? “기회를 잃으면 다신 오지 않는다.” 그러니 오늘 당장 혼사를 치르면 쌀이 익으면 밥이 되듯이 누군들 자신이 양종보의 아내라 하지 않겠는가?

양종보는 목계영의 무공, 기개, 미모에 아주 만족했다. 그들 둘은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게다가 목계영은 “강룡목이 없이 어떻게 적을 쳐부숩니까? 어떻게 나라와 가정을 지킵니까?”

인연은 사전에 정해진 것으로 시간이 되면 하늘의 뜻대로 되게 마련이다. 목가채에서는 당일 불을 밝히고 경축연을 베풀었다. 떠들썩하게 갑옷 입은 사위를 맞이하니 비극이 큰 기쁨으로 바뀐 것이다.

3. 먼저 천문진을 파하고 후에 양가에게 정식 인가를 받다

이튿날 날이 밝자 양종보는 급히 돌아가 복명했다. 목계영은 자신의 매(통신용)를 양종보에게 주어 소식을 전하게 했다.

목계영의 매에 대해서는 후인들이 언급한 적이 없다. 당시 목가채에서는 매를 이용해 신속하게 소식을 전달했다. 이는 목계영의 부친이 기인을 초빙해 정심하게 훈련시킨 결과이다. 목계영에게는 가장 좋아하는 매가 한 마리 있었다.

그녀의 예측대로 대장군 양연소는 양종보의 보고를 듣자마자 즉시 진노하며 불효(不孝)불충(不忠)한 놈이라고 크게 욕했다. 죄명은 대략 다음 몇가지였다.

첫째, 충의지가(忠義之家) 명문의 후예가 어찌 도적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는가?

둘째, 부모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 중매인도 거치지 않고 마음대로 아내를 취하니 조상과 가법(家法)을 무시한 것이 아닌가?

셋째, 장수가 싸우러 나가 공은 이루지 못하고 혼인을 하다니 이래서야 되겠는가?

때문에 양연소는 송나라 군기를 엄히 세우고 대의에 따라 친자식도 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이려 했다. 사람을 시켜 양종보를 포승에 묶어 감옥에 가두고 날을 잡아 목을 베고자 했다.

이곳에는 의외의 실수가 있었는데 그쪽에서 편지 보낸 매가 곧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목계영은 두말 않고 등에 용봉(龍鳳) 쌍검을 지고 언월도를 뽑아들고는 순백의 용마에 올라탔다. 강룡진목(降龍真木)을 싣고 매의 눈을 가려 어깨에 단단히 매어놓고 번개처럼 양가의 대군영으로 달려갔다. 부친 목우는 수백의 기병을 이끌고 목계영이 간 길을 따라갔다.

목계영은 남편을 구함에 두려울게 없었다. 군영에 도착하자 직접 안으로 들어갔다. 양가장의 장막 내에는 구름같이 많은 고수들이 있는데 어찌 함부로 난입을 허용하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묻지도 않고 우선 화살을 쏘며 가로막았다. 화살이 줄줄이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데 빠르고 정확했으며 갈수록 많아졌다. 아주 위급한 순간이라 만약 목계영이 한발짝만 더 나아갔더라면 아마 화살에 적중당했을 것이다.

역사는 이렇게 안배되지 않았다. 생사존망의 관문에 달렸을 때 목계영의 부원신이 작용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역사상 목계영의 무공과 계략은 출신입화(出神入化)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보물인 강룡목(이름으로 보건대 신룡을 불러 돕게 할 수 있다)이 있는데,이로부터 그녀가 표현해 낸 능력이 매우 큼을 알 수 있다. 목계영의 부원신이 신체를 주도할 때에 사람들 중에서 그녀를 가로막을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마침내 사령관인 양연소가 어쩔 수 없이 직접 말을 타고 진으로 올라갔고 장수들이 양쪽에 모여들었다. 이들이 모여든 것은 주로 양종보가 대체 어떤 여자를 취했는지 보고자 한 것이었다.

양육랑(양연소)은 목계영을 보자마자 정말 눈앞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고 눈가에 갑자기 자애로 충만했다. 종보가 왜 급히 결혼을 했는지 완전히 알게 된 것이다. 당시 목계영은 칼을 가로들고 말을 세우고 있었는데 기의 마당이 강력하여 세속을 벗어난 듯했다. 양연소가 어떤 인물인가? 그는 보자마자 곧 알았다. ‘이 여자는 운명이 비범하구나!’

목계영은 아주 지혜로와 즉시 말에서 내려 예의를 표했고 거만하거나 비굴하지 않았다. 대신 “강룡목으로 천문진을 부수겠다”는 조건을 내걸고 종보와 함께 공을 세워 죄를 씻고 양가장을 위해 공을 세우겠노라고 했다. 양연소는 이 말을 듣자 매우 기뻐했고 즉시 목계영에게 응답했다. “네가 만일 천문진을 부술 수 있다면 우리 집에서 팔인교(8명이 드는 가마)를 내보내 며느리로 맞이하겠다.”

주지하다시피 목계영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고 일거에 천문진을 대파한다. 이로써 요나라는 더이상 감히 북송을 침범하지 못한다.

4. 양종보가 해를 입은 원인

목계영은 군사를 따라 전쟁에 참가했을 뿐만 아니라 양가의 자식들을 낳았다. 매번 출정할 때면 그녀는 남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작전을 짰다. 모래밭에 임하면 몸은 반드시 병사 보다 먼저 나아가서 늘 적군 십수명 맹장을 무찔렀는데 너무 날카로워 막을 수 없었다. 목계영은 활 솜씨가 아주 뛰어나 적을 죽이는 한편 자기 장수들에게 호응했는데 시간을 지체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늘 활 하나에 세 개의 화살을 함께 쏘았는데 백발백중이었다. 만약 화살이 떨어지면 그녀는 또 칼끝으로 적군의 화살 주머니를 잘라내 자신이 사용했다.

오직 한번 양종보가 외출하여 적의 정황을 탐지하러 갔을 때 양군이 교전하는 중이 아니었기 때문에 목계영은 동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뜻밖에 양종보가 적이 매복한 함정에 빠져 비참하게 죽었으며 따르던 장졸들도 거의 봉변을 당했다.

양종보가 탔던 백룡마는 원래 아버지인 양육랑이 타던 말을 물려받은 것이다. 고대에는 싸우는데 좋은 말이 없으면 안된다. (동수의 말에 따르면 영웅 악비를 제외한다. 그는 몸놀림이 너무나 대단해 적의 대군 앞에서도 말에서 뛰어내려 적군을 뚫고 대장 앞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이렇게 적장이나 왕을 잡는데 속전속결이라 완전히 사람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한다.) 역사적인 인물의 전마(戰馬)가 되는 것 역시 보통 생명은 아니다.

창세주(創世主)의 선택을 거쳐 사명을 띠고 온 것이다. 당시 정식 교전이 아니었기 때문에 백룡마는 군영에 남겨져 쉬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영성이 있는 백룡마가 양종보를 태우고 적군이 설치한 함정에 쉽게 빠지진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만일 양종보와 수종들이 전부 다 난을 당했다면 백룡마는 겁난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나중에 목계영을 따라 생사를 넘나드는 인연은 없었을 것이다.

(계속)

http://www.zhengjian.org/2015/11/03/149001.定中經曆:巾幗英雄穆桂英上.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