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서양인 대법제자 구술
【정견망】
5. 목계영이 희생한 수수께끼
서역 정벌하는 길에 호랑협(虎狼峽)이 있다고 한다.
(양종보의) 할머니 사노태군(佘老太君)은 서역 정벌의 장수로 목계영을 적극 지지했다. 뿐만 아니라 70의 나이에도 기꺼이 군대를 따라가며 보호했다. 사실 천문진을 대파한 후부터 양가장에서는 목계영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다. 사노태군은 특히 처음부터 목계영을 손자 며느리로 인정했고 당시 공주를 (양종보의) 배필로 주려는 황제의 뜻조차 따르지 않았다.
하지만 서역 정벌은 지세가 험하고 괴상했다. 적들은 목계영이 반드시 지형을 살필 것을 사전에 추측하고 최후의 승부수로 호랑협 일대에 군대를 매복시켰다.
사실 목계영의 재주로 겹겹이 둘러싼 포위쯤은 문제되지 않았다. 하지만 역사는 안배된 것이다. 때가 되면 사람은 전생해야 한다. 설사 동일인물의 주원신과 부원신이라 하더라도 각자 제 갈 길을 가야한다. 기왕에 일체는 다 정해져 있으니 상세한 부분에도 우연은 없었다.
고대에는 전투할 때 전마의 살상을 피하기 위해 말의 몸과 얼굴 면에 매우 무거운 갑옷과 면구로 보호했다. 백룡마는 오랫동안 군을 따라 정벌전쟁을 했으므로 등에 반복적으로 상처를 입었다. 서역은 날씨가 뜨거웠는데 백룡마는 온몸에 걸친 덕은 너무나 괴로웠다. 그래서 당시 문을 나설 때 목계영은 백룡마에게 갑옷을 입히지 않았다. 목계영이 매복에 당했을 때 백룡마가 먼저 화살이 맞았는데 화살은 불이 붙어 있었다.
백룡마의 강인함은 일반 말이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비록 화살에 맞았지만 여전히 네 발굽으로 나는 듯이 달렸다. 그때 그 화살 자루와 깃털은 줄곧 붙어 있었는데 화살 끝은 말이 달림에 따라 말다리 안에서 끊임없이 근육과 뼈를 상하게 했다. 목계영은 몸을 굽혀 화살 자루를 잘랐다. 이때 아픈 보마는 까닥하면 기절할 뻔 했으나 억지로 참고 그녀를 태운 채 적을 쓰러뜨렸다.
호랑협 아래에 도착했을 때 백룡마는 사실 기어 올라갈 수 없어 쾅 쓰러졌으며 가슴속의 피가 주둥이로 쏟아져 나왔다. 목계영은 아픔과 배고픔을 참고 마지막 남은 사과를 꺼내 예전처럼 자기가 한입 깨물고 애마에게 주었다. 이렇게 양대에 걸쳐 세 사람의 장군을 태우던 백룡마는 모래밭에 피를 토하고 죽었으며 창세주가 부여한 사명을 완성했다.
다시 목계영으로 돌아오자. 적병의 추적이 갈수록 가까워지는 순간 백룡마는 다시 살아날 수 없었고 그녀는 이곳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었다. 계획대로 호랑협으로 기어올라가 높은 곳을 택하여 적군 장수를 쏘아 죽이기로 했다.
목계영은 맨손으로 절벽을 기어올랐는데 반쯤 올랐을 때 따라온 적군 중의 무명소졸이 쏜 화살에 맞았다.
목계영의 사인에 대해 의혹을 표시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목계영은 복이 많고 운명이 강하며 게다가 천룡이 호법하는데 어찌 쉽게 해를 당하는가? 그녀는 또 신묘한 예측력을 지녔고 양종보가 먼저 매복에 당했는데 설마 적이 매복할 것을 예측하지 못했을까? 일대의 영웅은 어려서부터 창검을 가지고 놀았으며 백전을 치르고도 조금도 다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최후에 무명소졸의 화살에 쉽게 죽는단 말인가?
역사의 큰 막은 표면적으로 이렇게 연기하지만 속인의 상태에 부합되어 진행한다. 수련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그 실질적인 것을 투철히 알겠는가? 목계영의 부원신은 이미 그것과 결별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작용을 발휘하지 않았다. 조용히 목계영이 절벽에 매달려 맨손으로 바위를 잡고 힘들게 검을 빼들고 막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신의 그 일면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명백했다. 역시 아픔을 참으며 목계영이 연기해야 할 최후의 한 장면을 완성하고 그 일생을 원만히 걸을 수 있을 뿐이었다.
당시 목계영이 억지로 통증을 참고 절벽을 기어오를 때 적군 대장이 큰 부대를 지휘해 포위 공격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몸에 무거운 갑옷을 입고 있었다. 목계영은 속으로 이 먼거리에서 자기의 화살은 적군의 철갑을 뚫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목계영은 죽기 전에 일생 중 최후의 신화를 만들어 냈다. 강대한 의념으로 자기 영성을 지닌 화살(만물에는 영이 있다)을 공중으로 쏘았다. 화살이 떨어질 때 중력의 힘으로 더 빨리 떨어지게 하여 곧장 적군 장수의 목에 박히도록 하여 적군 장수를 쏘아 죽였다. 목계영은 당시 역사상 가장 먼 거리에서 화살을 쏘아 사람을 죽인 기록을 창조했으니 일대 영웅이 되기에 부끄럽지 않다. 후대에 사람이 그녀의 무공을 신녀가 전수한 것이라고 하는 말도 이상하지 않다. (남송 시기에 이르면 구국의 영웅 악비가 가장 멀리 화살을 쏜 사람이 된다)
목계영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에 고통 중에 천천히 죽어 갔다. 그 과정은 매우 고통스러웠다. 영혼이 공중으로 날아오른 백룡마는 줄곧 목계영과 함께 하며 다음 세에 전생하는 곳까지 호송했다. 그 후 백룡마는 또 주불(主佛)께 간청해 목계영과 다시 인연을 이어가기를 발원했다.
(목계영은 부원신이 오직 하나였다. 사람의 부원신이 많다고 꼭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역사상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만 전생했다. “천년에 한번 윤회” 또는 “천년 이상에 한번 윤회”라 할수 있다.)
6. “내생에 다시 만나요”
목계영은 줄곧 두 명의 여장(女將)을 데리고 있었다. 둘은 모두 양가장 사람인데 상당히 젊었다. 동생은 목계영의 왼쪽, 언니는 오른쪽에 있었다.
위급한 시기에 두 자매는 남아서 적군을 막고 목계영이 절벽에 오르기 쉽도록 엄호하기로 결정했다. 목계영은 함께 포위를 뚫으려 했으나 두 자매는 적을 섬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고집했다. 그녀들은 목계영에게 안전을 당부하며 장수가 쓰러지지 않아야 군사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이 좋은 기회를 이용하여 적군 장수를 사살하고 정벌 대첩을 확보하겠다고 했다. 목계영이 절벽에 매달려 있는 동안 몇차례나 고개를 돌려 그들 둘을 구하려고 했으나 둘은 사양했다.
양가의 여장수들은 하나같이 모두 여장부였다. 전장에서 그녀들은 철골처럼 기개가 굳세기가 남아 같았고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몸 바쳐 싸웠으며 자신의 안전을 돌보지 않았다. 양가의 여장부들은 무술이 높고 담이 크며 전장에서 진감을 일으켰으며 사적이 눈물겨운 이야기다.
애석하게도 이런 감동적인 역사는 기록 중에 반밖에 남지 않았고 후세에서 조사할 근거도 남지 않았다.
동생은 특히 영특하고 용맹했는데 전세가 불리함을 보자 소리를 질렀다. “언니, 먼저 가, 내가 적의 퇴로를 끊을 께.”
얼마 되지 않아 적은 먼저 언니를 죽였다. 갑옷을 벗겨 처녀임을 발견한 음험한 적장은 몸을 돌려 동생을 생포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적들은 마치 이리나 호랑이떼처럼 서너겹으로 동생을 포위하고 긴 창으로 여러 각도에서 동시에 찔러왔다. 가장 많을 때는 한꺼번에 십여 개의 창이 일제히 찔러왔다. 그러나 동생의 몸에는 닿지 못했다. 동생의 검법은 상당히 빨랐다. 일반인은 팔지창은 막지만 십지창은 막지 못한다. 어쩌면 어느 창이 그녀의 목을 찔러 꼼짝 못하게 할수도 있었다. 그녀는 마침내 적들의 피로전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로잡혔다.
적장이 그녀의 투구를 벗겨보니 까만 머리가 허리에 닿도록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겨우 18,9세 정도였다. 당시 동생은 이미 혼사를 정했지만 집안과 국가를 보위하기 위해 아직 시집을 가지 않은 상태였다. 적장이 동생의 고귀하고 아름다운 모습과 몸매를 보고 무슨 짓을 했는지 알만하다. 그는 금수같이 소매를 능욕했고 또 다른 적들에게도 능욕하게 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병들이 회피했는데 그들에게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 적을 죽일망정 욕보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처녀이자 양가장의 장수로서 가문과 나라의 원수인 적군에게 사로 잡혀 치욕을 당했으니 그 수치심이 더 했다. 물론 그녀만이 적군에게 해를 입은 양문 여장은 아니었다. 아마 이 점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은 차마 여자 영웅들의 비극적 결말을 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일은 송나라 백성들의 마음속에 저절로 지워지고 더 전해 내려가지 않았다.
在慘烈的血與火的廝殺中,在無情的敵我對決中,楊門女將爲保衛中原所締造的壯舉,所遭受的悲涼,因爲沒有被載入史冊而無從考證。
비참하고 피투성이의 전투 중에세 무정한 적군과 대결 중에 양문 여장은 중원을 보위하는 장거를 일으켰다. 그러나 그녀가 맞닥뜨린 슬픔은 아무도 역사 책에 기록하지 않아서 고증할 길이 없다.
지금에 와서는 심지어 역사적으로 목계영이라는 인물과 양가장의 여장수가 실제로 존재했는지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수련의 각도에서 보면 구세력의 악신(惡神)은 질투심에서 많은 음험한 안배를 했다. 그것들은 여자가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전장에서 말을 달리며 창세주가 안배한 중원을 보위하는 일을 완성함을 허용하지 않았다. 아울러 구세력은 그것들의 조종 하에 대송의 어린 부녀들에게 행한 그런 간음과 노략질은 근본적으로 빛이 나서는 안됨을 똑똑히 알았기 때문에 극력 역사를 은폐했던 것이다.
음욕을 푼 후 적들은 검으로 동생을 찔러 죽이려 했다. 그러나 동생은 두 손으로 검날을 잡아 반대로 당겼다. 동생이 다시 검을 손에 쥐었을 때 눈에는 무장의 눈빛이 드러났고 무술 에너지가 검에 주입되어 옷으로 몸을 가리지도 않은 상황에서 또 무수한 적을 찔러죽였다. 마침내 다시 잡혔고 죽을 때까지 짐승들에게 능욕을 당했다.
이 경력은 동생의 심령에 참혹한 낙인으로 새겨졌다. 구세력은 일부러 악독한 안배를 하여 그녀가 거대한 고통과 두려움을 지닌 채 전생하게 했다. 이는 그녀가 대법을 수련하는데 장애가 되었다.
동생과 언니는 죽기 전에 목계영이 있었던 절벽에 대고 맹세를 했다. “금생에 당신을 보호하지 못했으나 다음 생에 절대 헛되게 하지 않을께요. 우리 다시 만나요.”
동생의 깊은 기억 속에 약간의 자책이 있었다. 적의 퇴로를 끊으려던 자신의 판단이 간접적으로 목계영을 희생시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생에 목계영을 찾으려는 소원이 특히 강렬했다.
주불은 자비로와 금생에 우리는 또 함께 모였다. 그때 비할 바 없이 용맹했던 두 여장은 다시 인간세상에 돌아왔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백룡마도 있고 매도 있고 목계영은 물론 강룡목을 실어보낸 천룡도 있었다. 게다가 대법이 114개 국가에 널리 전해짐을 알았고 대법 사부님이 중생을 널리 제도하고 있으니 자기들이 생생세세 겪은 고생이 헛된 것이 아니었으며 마침내 정법이 반드시 성공하는 최후시기까지 기다렸다.
지난날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나 당신과 나는 인연이 있어 금생에 다시 만났다. 사람이든 동물이던 아니면 만물이던 늘 이런 말이 있다. “인연이 없으면 서로 만나지 못한다.” 우리가 서로 만난 연분을 소중히 여기고 생명들이 대법에 대해 정념을 가지며 “파룬따파하오, 쩐싼런 하오”를 기억했으면 한다.
(계속)
http://www.zhengjian.org/2015/11/04/148991.定中經曆:巾幗英雄穆桂英中.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