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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명 이야기: 꿈에 여동빈을 만나다

【정견망】

왕양명(王陽明 1472-1528)은 절강성 여도 출신으로 이름이 수인(守仁) 자는 백안(伯安)이다. 스스로 ‘양명자’라 불렀다. 세상에서는 보통 양명선생으로 불렸고 후세에 왕양명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그는 평생 많은 일화를 남긴 대유학자로 후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오늘 그와 유관한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

명나라 정덕(正德) 12년(1517)의 일이다. 당시 왕양명은 46세에 명을 받아 장주(赣州)의 지부(知府)로 있었다. 그는 군령이 매우 엄해 지부 아문을 지키는 숙직 병사들은 하나같이 경비가 삼엄했다. 아무도 소홀하지 않았고 말을 퍼트리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날 심야, 한 무사가 보니 지부 아문이 열리고 도사 한명이 밖에서 아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긴 수염에 손에 파초선을 들고 있었다. 앞에는 동자가 등불을 들고 그를 인도하고 있었고 저절로 문이 닫혔다. 그는 대체 어찌 된 일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마주 보고만 있었다. 한참 후 그 문이 다시 열리더니 도사가 나와서 길게 읍을 하고는 보이지 않았다. 문은 다시 닫혔다. 무사는 놀라서 멍하니 있었고 다음날 이 일은 관청에 다 알려졌다. 사람들도 어찌된 일인지 알지 못했다.

어떤 사람이 이 일에 관해 왕양명에게 알렸다. 그러자 왕양명이 말했다. “내가 그날 밤 꿈에 순양진인 여동빈이 나를 방문했소. 내가 꿈에 ‘어떤 사람을 신선이라 합니까?’라고 물으니 여동빈은 ‘유학에서 지극히 뛰어나지 않은 자는 진짜 신선이라 할 수 없소이다.’라고 대답했소. 내가 또 물어보기를 ‘어떻게 해야 유학자라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여동빈은 ‘선(仙)이 극에 이르지 않은 자는 진정한 유학자라 할 수 없소이다.’라고 대답했소.”

이때부터 많은 사람들은 비로소 그날 밤 호위무사들이 본 사람이 팔선의 하나인 여동빈임을 알았다. 또 그가 왕양명과 꿈에 서로 만났으니 왕양명 역시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았다. 진정한 수련인은 다 알 듯이 깨어난 후에도 기억이 뚜렷한 꿈은 흔히 육신이 수면 상태 중에서 원신이 몸을 떠나 다른 공간의 생명과 접촉하여 겪은 일이다. 이야기 속에서 무사들이 본 여동빈은 바로 신체는 수면 상태에 처해 있는 왕양명의 원신을 방문한 것이다, 무사들이 그를 본 것은 아마 이런 인연이 있었던지 아니면 신이 일부러 이 이야기를 남겨 중국문화를 풍부히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기록 중에 여동빈과 왕양명의 대화는 세인들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해준다.

“유학이 지극히 뛰어나지 않은 자는 진짜 신선이라 할 수 없고 선이 극에 이르지 않은 자는 진정한 유학자라 할 수 없다.”

여동빈이 보기에 진유(眞儒)와 진도(眞道)는 그가 있는 고층차의 경지에서는 구별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인들의 유가 도가에 대한 논쟁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지금 세계 일백여 나라에 널리 전해진 파룬따파는 더욱이 근본적으로 명확하게 수련계의 진상을 말해주었고 대법서적 《전법륜》에서 “유교가 극히 높은 층차로 수련되면 도가에 귀속한다.”고 했다. 수련하려는 사람은 오늘 대법이 전해지는 기회와 인연을 놓치지 말기 바란다. 설사 당신이 대법을 수련하지 않더라도 대법 수련자가 중국에서 아직 박해 중에 있지만 비방하거나 공격하지 말기 바란다. 사실은 어떤 대각자, 신선들이 세상에서 선을 행하고 사람을 제도하는 것은 다 방해를 받고 있다. 그러므로 ‘개가 여동빈을 물어도 사람 마음을 모른다’는 속담이 전해지게 되었다.

자료출처: 《왕양명 전집》


원문위치
: http://www.zhengjian.org/node/155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