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혜면
【정견망】
한무제(漢武帝)는 죽기 전에 8세에 불과한 어린 불릉(弗陵 역주: 무제는 말년에 의심이 많아져 외척을 몰살하고 후계자였던 여태자 유거를 죽였다. 나중에 유거가 억울한 누명을 쓴 사실을 알고 그의 아들인 불릉을 데려다 후계자로 삼는다.)을 황태자로 지명하고는 곽광, 김일, 상관걸 등 세 대신에게 보좌를 부탁했다. 무제 사후 불릉이 즉위했으니 그가 바로 한 소제(昭帝)다. 그런데 세 대신 중 김일은 일찍 죽었고 곽광과 상관걸은 성향이 너무 달라 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고 충돌이 심했다. 곽광은 한무제 시절 흉노와 여러 차례 전투를 치른 공로로 군권을 장악한 대장군이 되었다. 그는 강직한 성품에 충성심이 강해 늘 진심으로 소제를 보좌했다.
하지만 상관걸은 달랐다. 그는 원래 소제의 이복형인 연왕(燕王) 단(旦)과 사이가 좋았다. 유단은 자신이 황제가 되지 못했다고 여겨 모반을 시도했다가 조정의 처벌을 받은 적이 있었다. 소제가 황제가 된 후에도 상관걸은 유단과 여전히 사사로이 왕래하며 때가 무르익으면 소제를 없애고 단을 황제로 세우기로 모의했다. 때문에 그들은 군권을 쥔 곽광을 가장 큰 장애물로 보았다. 이리하여 온갖 궁리를 다해 그를 해치려 했다.
한번은 곽광이 어림군(御林军)을 검열한 후에 한 장교를 대장군부로 전근시켰다. 상관걸은 이걸 꼬투리 삼아 글을 올렸다. 그는 자기의 친서를 연왕 유단의 어투와 필적을 흉내 내 황제에게 편지를 쓰고는 심복을 시켜 들여보냈다. 당시 14세였던 소제가 자칭 연왕의 서신을 받고 읽어보니 “소문에 따르면 대장군 곽광이 외출해 어림군을 검열하는데 마치 황제 같은 수레를 타고 다닌다고 합니다. 또 장교를 제멋대로 인사이동을 시켰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그가 다른 마음을 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그가 황상께 불리할까 염려되오니 원컨대 연왕의 옥새를 받들고 경성에 들어가 황상을 보위하고 싶습니다.”
소제는 이 편지를 여러 번 읽고는 한쪽에 놓아두었다.
다음날 아침 조회에서 곽광은 연왕이 자신을 고발했다는 말을 듣고 겁이 났다. 그래서 얼른 편전의 화실 속에 숨어 처분을 기다렸다. 소제가 조회할 때 곽광이 보이지 않자 물었다.
“대장군은 어찌 오지 않는가?”
상관걸이 기회다 싶어 말했다.
“아마 연왕에게 고발당한 것이 두려워 감히 입조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소제는 사람을 보내 곽광을 찾게 했다. 곽광은 소제를 보자 황급히 모자를 벗고는 바닥에 엎드려 죄를 청했다. 상관걸은 곽광이 죄를 청하는 것을 보자 이것이 그를 제거할 좋은 기회다 싶어 몇 마디 첨가했다.
하지만 소제는 오히려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대장군은 모자를 쓰시오. 짐은 누군가 경을 모함하는 것임을 알고 있소. 경에게는 죄가 없소.” 이 말은 상관걸과 그 일당들에게 마치 찬물을 끼얹은 꼴이었다. 하지만 곽광은 이 말을 듣고 또 이상하게 여겼다. 그는 공경하게 황제에게 절을 하고는 말했다. “폐하, 어째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대장군이 어림군을 검열한 곳은 경성에서 멀지 않은 곳이요. 또 교위를 전근시킨 것은 최근의 일로서 다 합해 열흘밖에 안 되는 기간이오. 연왕은 천리밖에 있는데 어찌 이리도 빨리 소식을 얻을 수 있단 말이요. 설사 정보를 알고 곧장 사람을 시켜 상서를 올렸다 해도 이곳까지 도착할 수 없을 것이요. 만일 대장군이 정말 모반을 하려했다면 교위를 전근시킬 이유가 없소. 내 보기에 이 편지를 쓴 사람은 다른 마음이 있는 듯하오.”
곽광과 나머지 대신들은 이 말을 듣고 소제의 지혜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제는 또 이런 거짓말을 지어낸 사람을 잡으라고 엄하게 명령했다. 상관걸이 비록 방비했지만 황제가 다그쳐 묻자 일이 탄로 날까 두려워 여러 차례 변명했다. “이런 사소한 일에 너무 진지하게 따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소제는 그 말을 듣지 않고 반대로 그의 충성심에 의심이 들었다.
나중에 소제는 과연 상관걸과 유단의 정변 음모를 발견했고 곽광을 파견해 일망타진 시켰다. 상관걸 부자와 같이 모의했던 대신들은 모두 피살되었다. 이리하여 한나라는 한차례 내란을 면할 수 있었다.
소제는 비록 어린 나이에 제위에 올랐고 재위기간도 비록 길지 않았지만 충신과 간신을 구분할 줄 알았다. 또 좋은 신하를 임명해 재위기간 천하가 태평했다. 사서에서는 “백성들은 충실하고 사방의 이민족들도 굴복했다.”고 평가했다.
아주 신중한 사람은 일을 하는데 근신한다. 근신한다는 것은 3번 생각한 다음 행동한다는 것인데 “깊은 물을 만난 듯 살얼음 위를 걷듯이 하는 것이다.”
인생이란 예측이 어렵고 앞날도 예측할 수 없는 심연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깊은 물도 있고 살얼음도 걸어야 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걸음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그래야 성공적으로 자기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으며 그가 채용한 방식이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한소제는 평소 주변 신하들의 언행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누가 충신인지 누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인지 알았다. 그러기에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출처: 《한서》)
원문위치: http://www.zhengjian.org/node/156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