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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효람이 한자로 점을 친이야기

작자/ 고운(古韻)

【정견망】

중국은 신주(神州)라고도 하는데 중국 전통문화는 신전문화다. 그 박대정심한 내포는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한자 속에는 많은 현기가 숨어 있다. 아래는 기효람이 직접 경험한 것이다.

기효람은 청나라 건륭 시대의 대학자로 《사고전서》 책임자였다. 그의 저서 《열미초당필기》 중 몇 편에 두 차례 측자한 신기한 경험을 기록해놓았다.

1. 건륭 19년(1754년) 내가 전시(展示 역주: 과거의 마지막 관문으로 궁궐에서 치르는 시험)에 참가한 후 아직 발표가 나기 전이었다. 동문락(董文恪) 선생 집에 우연히 글자로 점을 치는 절강 사람을 만났다. 내가 묵(墨)자를 썼더니 그가 말했다. “장원은 아니군요. 里’자는 펼치면 ‘二甲’ 이 되는데 아래 네 점이 있으니 당신은 2갑 중 네 번째 인가. 하지만 반드시 한림원에 들어갈 거요. 네 점은 ‘庶’ 자의 발이고 ‘土’ 자는 ‘吉’의 머리이니,당신은 서길사(庶吉士)가 될거요.”(주: ‘庶吉士’는 명청 시기 한림원의 임시직을 말한다. 진사시험에 합격한 사람 중 잠재력이 있는 사람이 맡는다) 나중에 과연 그렇게 되었다.

2. 건륭 33년(1768년) 가을 나는 정보를 누설한 죄를 얻었다. 그 사건은 매우 심각했는데 매일 군관이 나를 지켰다. 동(董)씨 성을 가진 군관이 자신이 측자로 운명을 점친다고 했다. 나는 동(董)자를 썼다. 그는 “당신은 멀리 유배를 갈 것입니다. – 이 글자는 천리만리라는 의미입니다.” 나는 또 명(名)자를 썼다. 그는 “아래쪽은 입구 ‘口’,위에는 ‘外’자의 부수이니 국외(口外)로 유배가겠군요. ‘夕’자는 태양이 서쪽으로 진다는 뜻이니 어쩌면 서역일지 모릅니다.”

내가 물었다. “장래 돌아올 수 있겠소?” 그는 “‘名’ 자와 ‘君’ 자는 비슷한 모양이고 또 부를 ‘소(召)’자 같으니 분명 황제께서 당신을 사면해 부르실 것입니다.”

내가 물었다 “언제인가요?” 그는 “ ‘口’ 자는 ‘四’자의 테두리이며 중간에 두 획이 없으니 아마 4년이 안되지 않을까요? 금년이 건륭 33년이니 4년이 안되면 신묘년(건륭 36년)일 것이고 ‘夕’는 ‘卯’ 자의 부수이며 잘 어울립니다.” 과연 나는 우루무치로 종군했고 건륭 신묘년 6월 경성으로 돌아왔다.

기효람은 이 글의 말미에 감격해서 적었다. “대개 정신에 움직임이 있으면 귀신이 서로 통하는가 보다. 기미가 생기면 형상은 미리 조짐이 있게 된다.”


원문위치
: http://www.zhengjian.org/node/158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