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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 수련이야기: 살수견과 왕령관

작자/ 육문

【정견망】

살수견(薩守堅)은 북송 말기 유명한 도사다. 자칭 ‘분양살객(汾陽薩客)’이라 했고, 도호(道號)는 ‘전양자(全陽子)’다. 살수견은 젊을 때 본래 의원이었으나 나중에 의술을 버리고 도를 택했다.

전설에 의하면 살수견은 섬서의 길에서 우연히 세분의 도인을 만나 도가의 법술(法術)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살수견은 이때부터 정성스럽게 뜻을 지켜 각고의 수도를 하여 ‘흰머리가 검게 되고 빠진 이가 다시 자랐다.’ 점점 수련에 성취가 있어 세간에 떠돌아다니며 두루 구제를 하고 법술로 유명해졌다. 일부 도교 유파 중에 살수견과 장도릉, 갈현, 허손을 도교의 4대 천사(天師)라고 하며 왕왕 그들은 살천사, 살진인, 숭은진군(崇恩真君)이라 부른다.

한편 왕령관(王靈官)은 살수견의 호법신으로 나중에 도교의 호법진산 신장(神將)이 되었다. 수많은 도관의 산문에서 제 일 좌전(座殿)은 모두 호법신 왕령관을 모시고 있다. 그는 어떻게 이런 내력이 있게 되었는가? 도교 신선전 등의 기록에 따르면 왕령관은 원래 상음부량의 어느 사당에서 모시던 신이었다. 비록 왕악(王惡)이라 불렸지만 본성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 점점 본성을 잃어 나빠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에게 살생하여 그를 모시라고 요구했다. 살수견이 이곳에 놀러왔다가 이 신이 나쁘게 변해 사람을 해치는 것을 보고 술법을 펼쳐 하늘에서 벼락을 내려 그 사당을 깨끗이 태웠다. 하지만 뜻밖에 이 신이 불복하여 구실을 대면서 자신이 사람을 해친 까닭은 사람의 죄업이 크기 때문이라 했다. 그러면서 하늘에 고소해 복수를 요구했다. 옥황대제는 혜안과 금채찍을 내려주면서 그에게 다른 공간에서 몰래 살수견을 따라 다니며 그의 잘못을 살피게 했다. 만약 잘못이 있으면 즉시 이전의 원한을 보복할 수 있었다.

살수견은 일심으로 도를 닦고 해이하지 않았다. 12년간 신의 혜안으로 관찰했음에도 도무지 하나의 잘못도 찾을 수 없었다. 마침내 크게 감동한 왕령관은 복수심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어느 날 살수견이 사방을 떠돌아다니다가 마침 강변에서 손을 씻을 때 그는 물속에서 튀어나와 살수견 앞에 나타나서 그간의 경위를 말해주었다. “진인이 내 사당을 불태운 후 몰래 12년간 따라 다녔으나 진인이 공이 높고 행동이 바른 것을 보고 감동했습니다. 나중에 하늘에 직무를 맡을 때 부장이 되어 법지(法旨)를 받들고자 합니다.” 이때부터 그는 살수견의 호법신이 되었다. 살수견은 그의 이름을 왕선(王善)이라 고치게 하며 하늘에 상주하여 뇌부(雷部)의 뭇신 중 하나의 직위를 주었다. 살수견은 나중에 득도해 하늘로 돌아갔는데 그도 따라서 올라갔다. 이리하여 도교에서 널리 모시는 호법신장 왕령관이 되었다.

왕령관의 형상은 일반적으로 붉은 얼굴 긴 수염에 황금갑옷과 붉은 도포를 걸치고 손에는 강철 채찍을 잡고 있다. 이랑신과 마찬가지로 이마에 하나의 눈이 더 있는데 세 개의 눈이 노한 빛으로 용맹하게 노려본다. “세 눈으로 천하사를 볼 수 있고 채찍은 세상 사람을 일깨운다.”

왕령관을 모시는 일은 도교를 숭상하던 명나라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명사(明史)》《예지(禮志)》에 보면 “융은진군은 바로 옥추화부(玉樞火府)의 천장(天將) 왕령관이다. 한때 살진군으로부터 부적의 술법을 전해 받았다. 영락 연간에 주사덕이 영관법을 전수받아 자금성 서쪽에 천장묘(天將廟)와 조사전(祖師殿)을 지었다. 선덕(宣德) 연간에 대덕관(大德觀)이라 고쳤고 왕령관을 2진군에 봉했다. 성화(成化) 초기에 다시 여러 현령관(顯靈宮)이라 고쳐 불렀다.” 고 되어 있다.

명나라 시대의 《야항선(夜航船)》 《제경경물약(帝京景物略)》 등의 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명나라 영락연간(1403-1425)에 영락대제가 왕령관을 위해 자금성 서쪽에 천장묘와 조사전을 건립해 살진인과 왕령관을 모시게 했다. 그 속에는 26명 천장(하늘장수)의 조각이 있는데 왕령관이 우두머리다. 얼마 후 영락대제는 세상에 전해지는 칡으로 만든 왕령관의 상을 얻었다. 그 상은 매우 가벼워 영락대제가 그것을 침궁에 놓게 하고 “아침 저녁으로 예를 올리고 손님처럼 대했다.” 영락대제는 용맹하고 웅대한 지략이 있어 평생 전쟁을 했는데 출전할 때마다 왕령관의 칡상을 가지고 다니며 군대의 수호신으로 삼았다. 제 5차 출정에 북쪽 사막으로 나갔는데 금천하까지 쳐들어갔을 때 갑자기 칡상이 무거워져 들 수 없었다. 영락대제가 기도를 올렸더니 답이 나와 말했다. “하늘은 경계가 있으니 여기서 그쳐야 한다.” 과연 얼마 후 영락대제는 과연 중병을 얻어 더 나아갈 수 없었다. 마침내 북경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붕어했다. 이것으로 왕령관이 역사상 신적을 드러내어 중화 신전문화에 공헌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역사상 살수견은 일심으로 수련해 원래 패괴한 생명이었던 왕령관을 좋게 변화시켜 신이 되게 했다. 그러니 수련의 위대함을 알 수 있다. 왕령관은 당초 몰래 그를 따르며 늘 보복을 하려 했다. 만약 살수견이 수련에 정진하지 않았다면 왕령관을 좋게 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자신도 난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수련의 엄숙성을 알 수 있다. 수련이 이렇게 엄숙하고 위대하다면 우리 오늘 수련하는 사람은 또 정진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수련인은 오직 수련이란 한 갈래 길만 가야 한다.


원문위치
: http://www.zhengjian.org/node/237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