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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문인 축지산의 법술에 관한 기록

작자/ 육문(陸文)

【정견망】

중국 민간에는 역대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법술(法術)을 할 수 있었다. 비록 대다수는 대도(大道)와 비교하면 낮은 소도에 불과하지만 현대 과학으로는 해석할 수 없으면서 일부 무신론을 타파하는 작용을 할 수 있다. 명나라의 유명한 문인으로 4대 재주꾼중 하나인 축윤명(祝允明)은 자가 “희철(希哲)”, 호는 “지산(枝山)”이다. 사람들은 그를 “축지산(祝枝山)”이라 불렀다.

나(축지산 본인을 지칭)는 이미 세상을 떠난 부친 축헌(祝瓛)이 일찍이 산서의 모 지역에서 관직에 있을 때 여러 차례 각종 공연을 보았다. 어떤 이는 식초를 몇 되나 마시고도 아무렇지도 않았고, 때로는 맨발로 발가벗고 하늘을 향해 누워 큰 바위로 가슴과 배를 눌러도 아무 일도 없었다. 또 어떤 경우에는 불에 달궈 빨갛게 된 저울추를 삼켜도 괜찮았다. (필자는 이런 것들이 경기공이나 마술 혹은 잡기공연이라고 본다) 비교적 자주 보는 이런 것들 외에도 더 놀라웠던 것은 일부 여자와 어린이가 일상생활에서 드러낸 신기한 법술이었다.

예를 들면 어느 여행자가 객잔에 들어와 한 여인이 돌절구에 보리를 빻는 것을 보았다. 여자는 종이를 가위로 잘라 나귀를 만들어 돌절구를 돌려 밀가루를 얻었고 일이 다 끝나자 종이 나귀를 거두어 소매 속에 넣었다. 어느 부인이 물을 긷는데 길가는 객상이 그녀에게 물 한 사발을 청했다. 마음씨 착한 그 부녀가 마실 물을 주자 이 사람은 이 기회에 부녀를 희롱했고 여자가 화를 냈다. 객상은 다음날 자기가 탄 노새의 머리가 원형의 돌난간 속에 끼었다. 노새의 목이 돌난간의 구멍보다 더 굵은데 어떻게 노새가 구멍 속으로 들어갔는지 알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얼른 여자한테 가서 사과하라고 했고 그가 간절하게 사과한 후 부인이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는데 나귀의 목이 자연적으로 빠져나왔다.

어느 마을에 아이가 소, 양, 나귀 따위의 가축을 방목했다. 아무런 무기도 없고 지키지도 않으며 그저 교외 먼 들판에 마음대로 뛰어다니게 할뿐이었다. 그는 몇 덩이 모래를 쌓아놓고 지휘를 했는데 참 편리한 법술이었다. 커다란 원을 그려놓고 가축을 그 속에 두고 양을 방목하는 어린이는 잠을 자기 시작했다. 설사 호랑이 이리가 이곳에 와도 그저 무릎을 꿇거나 배회하며 나아가지 못하고 큰 원 밖에서 빙빙 돌면서 양이 눈앞에 있어도 잡아먹지 못하고 단지 침만 질질 흘리며 들어오지 못했다. 해질녘이 되면 원에 입구 하나만 그리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런 법술은 당시 그곳에서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늘 있었다.

이 같은 일은 축지산의 부친이 직접 그에게 말해준 것이다. 아비가 자식을 속이진 않을 것이다. 더욱이 축지산은 유명한 문인으로서 함부로 거짓을 쓰진 않았을 것이다. 옛사람들은 효도를 중시하는데 더욱이 세상을 떠난 부친의 이름으로 함부로 사람을 속이진 않는다. 그러니 이 일들의 진실성은 매우 높다. 현대 과학으로 해석할 수 없으니 과학은 절대 만능이 아니며 지극한 제한적이다. 오늘 무신론자들은 각종 미지의 사물을 부정할 때 늘 “과학이 아직 발달하지 못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아서 이런 일은 진실인지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사실 과학으로 말하면 어떤 과학자도 승인할 수밖에 없는데 과학에서 미해결의 수수께끼는 실제 너무나 많다. 견식이 있는 과학자들은 절대 이미 아는 이론으로 모르는 것을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과학이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자료출처: 《지괴록志怪錄》


원문위치
: http://www.zhengjian.org/node/243887